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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어떤 행동은 무슨 죄가 된다는 식으로 결론만을 알려 주는 법률 정보는 많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레고를 선물 받는 거나 마찬가지로 이런 지식은 거의 값어치가 없습니다. 법의 세계에서는 벽돌 하나만 빠져도 집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법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논리를 구사할 수 있고 신문 기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도진기는 1994년 사법시험 합격을 통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한국추리작가협회의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해 작가로 데뷔, 2014년엔 한국 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주중엔 판사로, 주말엔 소설가로 지내며 꾸준히 장편소설을 펴낸 인물이다. 2017년 공직을 떠나 변호사로서 강연, 기고, 방송 활동 등을 통해 법과 대중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책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는 재판의 기본이 될 만한 법 상식을 우화로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도 읽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법학 이야기’로 소개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법률가가 추리소설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쓴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를 통해 가장 쉽고 재미있는 법 상식을 배울 수 있다.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법과 도덕)
추운 겨울날 밤,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맨발로 거리에서 성냥을 팔고 있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갈 길이 바쁠 뿐, 아무도 소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에 지친 소녀는 성냥을 하나둘 켜기 시작했다. 성냥 개비 불꽃 속에서 환상을 보았다. 환상 속에서 할머니는 소녀를 안고 하늘로 데려갔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다 탄 성냥개비와 함께 미소를 띤 채 죽어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이 사건을 검사가 소개하자 염라 판사는 훌쩍였다. 피고는 행인行人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변호사였다.
검사는 소녀를 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던 행인의 나쁜 행동을 고발하고 있다. 이에 소크라테스 변호사는 변론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착한 사마리아인 사건’을 함께 진행할 수 있도록 동의를 구하자 염라 판사는 이에 동의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 변호사가 사마리아인 사건을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길에서 강도를 만나 큰 상처를 입고 길에 버려졌다. 길을 가던 제사장이 발견했음에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쳤고 두 명의 레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로부터 가장 천대받던 사마리아인이 지나가다가 상처 입은 사람을 구해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었다.
착한 사라미아인 법에 의하면 남을 구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법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는데 구하지 않은 행동은 나쁘지만 처벌까지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 법은 모든 나라에 있는게 아니다. 한국에도 이 법은 없다. 이는 바로 도덕과 법의 구별이라는 어려운 문제인 셈이다.
(소크라테스) 법은 무엇보다 강한 규칙입니다. 이런 법을 함부로 사용하면 곤란하겠죠? 불편한 일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법을 만들어대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법은 중요한 일에만 관여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도덕은 사람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염라) 맞아. 법이 너무 많아도 살기 힘들 거야.
(소크라테스) 법은 도덕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습니다. 도덕 중에서 중요한 일에만 관여합니다. 예를 들어서 때리거나, 훔치거나, 사기를 치거나 하는 못된 행동은 법이 나서서 못하게 막는 것이죠. 많은 도덕 중에서 ‘최소한 이것만은 어기면 안 된다’는 것들입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란 말은 이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염라) 흠. 그런 기준이면 이제 해결되겠군….
(소크라테스) 그게 또 그렇지도 못합니다.
(염라) 왜!
(소크라테스)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어던 경우에 법이 기어들고, 어떤 경우에 법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지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거죠.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고, 정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그 나라의 문화와 국민 다수의 생각대로 정해지게 되겠죠. 그래서 나라마다 다르게 되어 있는 겁니다.
결국 염라 판사는 한국 법에 따라 판결했다. 성냥팔이 소녀를 그냥 지나쳤던 행인, 사마리아인 사건의 제사장과 두 명의 레위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소크라테스 변호사는 명판결에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반면 사마리아인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왜 처벌하지 않나며 바보 같은 재판이라고 언성을 높인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유괴범인가?(인과관계)
13세기 독일의 작은 마을 하멜른에 갑자기 쥐가 들끓기 시작했다. 도무지 퇴치할 방안이 없어 곤란을 격고 있을 때 한 사나이가 피리를 들고 나타나 돈을 주면 쥐를 박멸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사람들은 쥐를 잡아 주면 많은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나이가 부는 피리 소리에 쥐 떼들이 뒤를 따르자 그는 쥐 떼를 강물오 유인해 빠뜨려 죽게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변심해서 돈을 주지 않았다. 마을을 떠났던 사나이가 얼마 후 다시 마을에 나타나 피리를 불자 마을의 아이들이 그 뒤를 따라가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피리부는 사나이의 처벌을 원한다.
이 사건을 맡은 염라 판사가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처벌을 내리는 판결을 하려 하자 소크라테스 변호사가 인과관계를 지적하며 결과와 관계없는 행동을 처벌할 수 없다고 피리부는 사나이를 변호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백설 공주 이야기 사례로 설명을 이어 나간다. 백설 공주가 쓰러진 것은(결과) 왕비가 몰래 독이 든 사과를 먹인 데(원인) 있으므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만 법에선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히는데, 왕비를 낳은 왕비의 어머니(노파)를 처벌할 수 있을까?란 문제를 제기한다.
(소크라테스) 독을 먹인다는 원인과 쓰러진다는 결과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딸을 낳으면 ‘보통은’ 그 딸이 나중에 커서 다른 사람에게 독 사과를 먹이게 된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왕비의 엄마가 왕비를 낳은 일과 백설 공주가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진 일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법으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나이의 피리엔 아이들을 꾀어내는 신기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나 이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당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일 또한 불가능하므로 피리부는 사나이는 처벌할 수 없다고 소크라테스는 변론을 마친다.
이밖에 책은 긴급피난의 경우 타이타닉호의 침몰 때 디카프리오가 케이트를 밀치고 혼자 살았을 지라도 처벌할 수 없으며(‘카르네아데스의 판자’), “열 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 등이 잇달아 소개되면서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모르면 평생 답답할 법의 핵심 원리
대학시절 고시를 준비할 때 유독 민법, 상법 등 법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뺨엔 침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재미가 별로라 철학 책만큼이나 나에겐 수면제와 같았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법률가이면서 작가인 까닭에 22가지 재판 이야기를 통해 딱딱한 법의 핵심 원리를 부드러운 카스테라 맛으로 바꾸어 놓았다. 법의 실체가 궁금한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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