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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라면 군주론
김경준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2월
평점 :
마키아벨리의 탁견은 인간 심성과 군중심리의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력에서 출발한다. 그의 관점은 백면서생의 책상머리 공부가 아니라 변화무쌍한 국제정세 속에서 조국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분투하는 현장 외교관의 치열한 경험에서 배테되었기 때문에 냉정한 현실 인식에 기인하고 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의 저자 김경준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 칼럼을 연재했으며, 방송 미디어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오십에 읽는 오륜서>, <로마인에게 배우는 경영의 지혜> 등 다수가 있다.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마키아벨리가 전하는 삶의 본질, 내 삶의 리더가 되는 비법, 사람이 보이기 시작할 때 필요한 것들, 위기에 대처하는 역사의 패턴, 흔들려도 나아가는 힘, 군주론에서 배울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정치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근대적 인간’으로 평가받았고,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사회학자’로 인정받았다. 통상적 오해와 달리 도덕에 있어 마키아벨리가 추구하는 바는 ‘배덕주의’가 아니라 ‘초도덕주의‘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근대독일철학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마키아벨리는 이미 ‘존재’와 ‘당위’의 기본 개념을 언급하고 있다. 피렌체의 외교관으로 외교 최일선에서 활약했던 그는 경험을 통해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과 ‘당연히 되어야만 하는 것’의 간격間隔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윤리적 공상’에만 매몰된 리더와 조직의 몰락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현실을 도외시하고 당위성에만 매몰된 군주의 위험성을 절감했다. 마키아벨리는 ‘희망적인 미래’는 ‘냉혹한 현실’의 기반 위에서 만들어 가는 거라고 봤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건 이기심利己心에 대한 공리공론空理空論이 아니라, 이기심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갈무리해 개인과 조직의 현재에 대처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에너지로 이끄는 것이다. 신선의 경지에나 있는 이들은 상상 속의 인물일 뿐이기에 세속世俗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고려할 대상도 아니다.
(사진, 군주론 15장)
숭고한 목적과 효과적 수단이 결합할 때
배신하고 신의 없이 무자비하게 종교심을 저버린 일을 덕德이라고 부를 순 없다. 그런 수단으로는 지배권을 잡을 순 있어도 영광을 차지할 순 없다. - ‘군주론 8장’에서
숭고한 목적과 효과적 수단이 결합할 때 리더는 진정한 영광을 얻을 수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이해했다. 이는 근대 정치학에서 권력은 정딩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축軸으로 유지된다는 관점과 동일하다. 목적과 수단은 별개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시칠리아 시라쿠사 왕국에서 미천한 평민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아가토클레스(기원전 361~기원전 289년)를 불명예의 대상으로 지목했는데, 그는 권력을 쟁취하고자 효과적인 수단을 사용했으나 목적이 천박했다. 젊은 시절 방탕하게 생활하던 아가토클레스는 군대에 들어가 시라쿠사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이후 시라쿠사의 권력을 장악하기로 결심하고 시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카르타고 군사령관 하밀카르 바르카와 은밀히 내통한다.
(사진, 시라쿠사 지도)
그는 중대 사항이 발생한 것처럼 위장해 유력자들을 소집한 뒤 병사들을 동원해 모조리 살해했다. 이후 시라쿠사의 왕이 되었고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도 이겨 권력 기반을 견고히 다졌다. 그러나 그는 권력욕에 눈이 멀어 군주가 된 사람이었을 뿐 ‘진정한 덕성德性을 갖춘 통치자’라는 평가를 당대에도 그리고 후대에도 얻지 못했다.
현명한 엄격함이 진정한 자비慈悲다
군주들은 잔인하기보다 인자하다는 평판을 받길 원한다. 그러나 이런 온정溫情도 역시 서투르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체사레 보르자(1475~1507년)는 잔인한 인간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의 잔인함은 로마냐의 질서를 회복하고 그 지방을 통일해 평화와 충성을 지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군주는 시민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惡評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 ‘군주론 17장’ 중에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해양동물원의 조련사가 범고래를 훈련할 때 칭찬이라는 당근을 활용하는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 칭찬이 능사能事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반인과 리더는 이 점에서 분명히 구분된다.
리더의 엄격함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리더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가지도자는 영토를 지켜야 하고, 군대 지휘관은 규율을 유지해 적군에게 승리해야 하며, 경영자는 경쟁력을 확보해 기업을 생존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다.
엄격 함이 개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공인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면 리더에겐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평면적 자애심이 아닌 ‘현명한 엄격함’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진정한 자비가 될 수 있는 리더의 역설을 꿰뚫고 있다.
위기를 극복한 인간이 더욱 강해진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직과 리더의 내공이 드러난다. 위기를 맞은 조직과 조직의 리더는 자신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하면 위기조차 오히려 조직과 리더의 자산이 된다. 그러나 타인의 도움으로 극복한 위기는 자산이 될 수 없다.
위기대응 체제의 출발점은 핵심 인력으로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주요 경영진들이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상황을 장악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의사결정을 진행하며 실무진의 실행과 점검을 제어한다.
평상시의 자율경영 등의 구호는 폭풍우가 지나갈 때까지 한편에 치워두는 게 좋다. 비상시에는 그에 맞는 의식과 조직으로 무장해 대처해야 한다.
평상시 바다를 항해하던 배에선 각자 맡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폭풍우를 만나면 선장을 포함한 핵심 선원들이 조타실에 모두 모여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기를 맞은 조직은 무엇보다도 통제와 효율을 높여 생존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군주는 절대적 위기에 처했을 때 절대적 권력을 휘두를 여유가 없다. 고난에 처했을 때 군주가 신뢰할 수 있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가. - ‘군주론 9장’ 중에서
야심을 가져라
남에게 좋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권력이 필수불가결하지 않지만 뭔가를 이룩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그것을 해내는 데 필요한 힘이나 권력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허영심은 있지만 야심이 없는 사람은 욕심 없는 인물로 여겨진다. 또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은 인물로 간주된다. 추대되는 건 항상 이런 부류의 위험하지 않은 인물이다. - ‘로마인 이야기 4권’ 중에서
타인에게 좋게 보이고 찬사를 받으려는 욕망이 허영이다. 개인적 성격 차원에서 허영은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부류가 리더가 되면 무난하지만 성취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욕 먹지 않으려면 언제나 어중간한 타협과 현상 유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성취는 문제의 본질을 통찰하고 해결하는 새로운 생각과 과감한 실행의 결과물이다. 새로운 생각은 기존 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불편하고 거부감을 불러온다. 이런 부분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취는 없다.
뭔가를 이루려는 야심에는 힘이 필요하다. 야심은 있으나 힘이 없으면 추진력이 없다. 힘은 있으나 야심이 없으면 깡패로 전락한다. 야심도 없고 힘도 없으면 화려한 언변의 훈수꾼에 불과하다.
야심을 갖고 힘을 확보하려면 권력 의지가 필요하다. 권력을 획득해야 공적 책무를 실행할 수 있다. 먼저 의지가 있어야 힘을 확보하고 뭔가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탁월한 리더는 높은 이상과 목표를 이루려는 야심을 품고 권력 의지로 힘을 확보해 스스로를 불태워 구체적 성취를 만든다.
역사는 미래학이다
19세기 말 미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대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근데 기업의 역사는 100년 남짓이지만 사실 경영의 역사는 길다. 이집트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 경에 건설되었다. 현대의 건설 장비로도 쉽지 않을 대형 건설 프로젝트임에도 석기와 인력만으로 수행한 것은 많은 관리 계급과 시스템, 그리고 유능한 경영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가든 기업이든 사회단체든 결국 자원을 사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점에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경영이란 인력과 물자를 투입해 목표를 이루는 것이고, 리더는 일련의 과정을 책임지고 이끄는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리더는 모두 경영자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보통 사람은 경험에서 배운다. 그러나 우둔한 사람은 경험에서조차 배우지 못한다.”
이는 격언이다. 경험으로 배우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만 개인이 겪을 수 있는 경험의 폭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인의 경험을 배우는 간접 경험이 필요하다. 다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경험인 역사가 현재에도 필요한 이유다.
역사는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호흡을 길게 해준다. 길어야 100년을 사는 인간의 체험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역사를 접하다 보면 수천 년을 관통하는 세상살이의 본질적 측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조직의 모습, 표면적 양상과 본질적 핵심을 구분하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다. 역사는 현실의 당면 과제를 헤쳐 나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사진, 군주론 14장)
마키아벨리는 현실론자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선악을 초월하는 초超도덕을 주장했고, 부정적 비관도 아니고 막연한 낙관도 아닌 긍정적 현실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현실에 기반한 낙관주의로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냉엄한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한 후 숭고한 이상을 추구하라는 현실론을 펼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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