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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
크리스 반 툴레켄 지음, 김성훈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초가공식품은 이제 영국과 미국의 평균 식단에서 무려 6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초가공식품의 공식적인 과학적 정의는 간단히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포장되어 있고 표준의 가정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성분이 한 가지라도 들어 있다면 초가공식품이다. 이 중에는 우리에게 ‘정크푸드’로 알려진 것이 많지만 유기농 식품, 방목 식품, 윤리적 식품이라는 것들 중에도 초가공식품이 많다. - ‘서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크리스 반 툴레켄은 영국 의사이자 의학 전문 방송인으로 현재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에서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 한달 동안 식단의 80퍼센트를 초가공식품으로 섭취한 후 몸의 변화를 관찰한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이때 ‘초가공식품’이란 용어를 널리 알렸다.
2023년 올해의 책으로 주요 언론에 선정되었던 이 책은 총 5부(‘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 ‘먹는 행위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우리의 몸과 뇌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위태로운 식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걸쳐서 20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초가공식품의 공포를 온전히 경험해보면서 책을 읽는 동안 우리들이 먹는 음식 포장지 뒷면에 적혀 있는 성분 목록도 함께 읽어보길 권했다. 그 목록에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질이 들어 있을 것이다. 먹고 난 후에도 이상하게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얼마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던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흑백요리사’다. 익히 우리들에게 알려진 백수저 스타 요리사와 재야의 숨은 고수인 흑수저 요리사들간의 요리 대결이었다.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인간의 식탐 때문 아닐까 싶다. 그렇다. 인간은 먹기 위해 살고 있는 존재다. 아무리 멀어도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을 찾아 기꺼이 발품을 판다. 초가공식품도 맛이란 점에선 흑백요리사와 공통점을 지녔을 것이다.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건강한 식품인가에 의문표를 단다는 점이다.
(사진, 초가공식품)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맛있게 식사한 후 우리들이 즐겨먹는 후식 중 하나가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는 제품이라면 초가공식품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초가공식품은 집에서 해 먹는 음식보다 저렴하고, 신속하게 먹을 수 있으며, 영양 측면에서도 그리 뒤떨어지진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적인 아이스크림은 얼음 결정, 액체 상태의 물, 우유 단백질, 우유 지방 방울이 모두 기포에 둘러싸여 있는 복잡한 배열을 통해 질감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보통 내부 공간의 50퍼센트 정도가 공기로 채워져 있는 폼이다. 차가운 상태에서도 지나치게 딱딱해지지 않는 이유이다.
초가공 아이스크림의 비밀 역시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이라는 3가지 필수 분자의 가장 저렴한 버전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목표 자체가 전통적인 음식을 더 저렴한 재료와 첨가물 성분으로 대체해서 유통기한을 늘리고, 기술화된 유통을 통해 소비자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섭취하도록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초가공식품이 아닌 음식은 비싸기 때문에 전통적인 재료 성분을 저렴한 재료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합성물질을 사용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아이스크림에 잔탄검, 구아검, 유화제, 글리세린이 들어 있다. 이런 성분을 넣으면 비용을 아낄 수가 있어서다.
잔탄검은 역겹게도 세균 삼출물渗出物이다. 이것의 정체는 세균이 표면에 달라붙기 위해 분비하는 점액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식기세척기를 청소할 때 보이는 필터에 쌓인 끈적끈적한 오물인 것이다. 이 검들도 값비싼 분자를 대체하고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어서 첨가제로 사용된다.
초가공식품과 건강
초가공식품이 몸에 안 좋은 이유는 소금, 지방, 설탕으로 만들어져 있고, 식이섬유는 별로 없어서가 아닌가?
화학물질, 물리적 가공, 첨가물, 마케팅 등등 실제 가공 과정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2022년에 학술지 <신경학Neurology>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7만 2,000명 이상을 통해 추출한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10퍼센트 늘면 치매 위험이 25퍼센트 올라가고,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은 14퍼센트 올라갔다. 건강에 미치는 이런 여러 가지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식생활 패턴을 보정한 이후에도 초가공식품을 제일 많이 먹은 4분의 1의 참가자가 제일 적게 먹은 4분의 1과 비교했을 때 사망 위험이 26퍼센트 높았다.
비슷하게 보정한 미국의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고했다. 6만 명의 영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전 원인 사망 위험률이 22퍼센트 증가했다. 스페인의 한 연구에서는 전 원인 사망 위험률이 62퍼센트 증가했다. 이런 규모의 영향이 거의 모든 연구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초가공식품은 중독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식품은 중독성이 없다. 반면 초가공식품은 중독성이 있다. 점점 더 많은 주류 과학이 이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시간대학교 심리학 부교수인 애슐리 기어하르트는 초가공식품과 중독 물질의 유사점에 대해 그 증거를 논문에서 설명했다.
첫째, 초가공식품은 진짜 식품과 비교했을 때 식품 중독성 점수에서 일관되게 높은 점수가 나왔다.
둘째, 초가공식품은 여러 가지 중독성 약물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강한 중독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남용되는 약물과 초가공식품이 공유하는 어떤 생물학적 속성이 있다. 양쪽 모두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변성시켜 보상 물질이 빨리 흡수될 수 있게 만든다.
넷째, 약물 중독과 식품 중독은 중독, 정신적 외상, 우울증의 가족력 같은 위험 요인을 공유하고 있다.
다섯째, 부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용 등 사람들은 초가공식품과 다른 중독성 물질에 대해 비슷한 중독 증상을 보고한다.
여섯째, 뇌 영상을 보면 식품 중독과 약물 남용 모두에서 보상 신경로에 비슷한 기능장애 패턴이 나타난다. 초가공식품은 중독성 약물과 비슷한 방식으로 보상 및 동기 부여 관련 뇌 영역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썩지 않는 햄버거(?)
초가공식품은 좀처럼 부패하지 않는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보관해두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신문에 자주 등장한다. 이런 식품이 잘 썩지 않는 것은 화학 방부제가 잔뜩 들어 있어서일까? 실상은 초가공식품의 건조함과 관련이 더 깊다.
대부분의 초가공식품은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건조하다. 즉 칼로리 밀도가 높다는 의미다. 물은 에너지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희석한다. 고기, 과일, 채소는 일반적으로 수분 함량이 대단히 높다.
건조함은 초가공식품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식품 안에서 미생물이 성장하지 못하게 막는 핵심적인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초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늘려서 수익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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