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없다 - 교통사고에서 재난 참사까지,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제시 싱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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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죽는지에 관한 책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사고로 죽는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사고 사망자 수는 연 20만 명이 넘으며, 이는 만석인 보잉 747-400 비행기가 날마다 한 대 이상씩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것과 같다. (중략) 왜 우리는 사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가? 사망과 중대 손상의 증가 추세를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한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저자 제시 싱어는 저널리스트로 <워싱턴 포스트>와 <가디언> 등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해 왔다.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자전거 교통사고(2006년 12월 1일)로 친구가 사망한 일을 계기로 ‘사고’라는 용어가 어떻게 이를 초래하게 만드는 위험한 시스템에 면죄부를 주는지, 권력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더 큰 피해로 내모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은 과실, 조건, 위험, 규모, 낙인, 인종주의, 돈, 비난, 예방, 책무성 등 10가지 주제에 걸쳐서 교통사고, 산업재해, 재난 참사 등 지난 한 세기 동안 벌어진 '사고'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사고'라는 용어가 죽음과 손상을 감추고 이를 반복하게 되는지를 밝혀낸다. 즉 우리 모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바로 “사고는 없다”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1997년에 ‘사고’라는 단어를 정부 발간물에 사용하지 않기로 했고, <영국 의학 저널>은 2001년부터 이 표현을 이 저널에 게재되는 논문에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뉴욕 경찰국도 2013년에 이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이는 사건에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지 않고자 ‘사고’라는 용어 자체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를 알려면 과실을 알아야 하며 우리가 왜 실수를 저지르는지 나아가 권력자는 어떻게 실수를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사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고라는 말엔 항상 과실에 대한 질문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1911년 3월 25일 오후,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대형 봉제공장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10층짜리 건물 내부 여러곳에 적재되어 있던 넝마에 불이 붙었다. 건물은 환기가 거의 되지 않았고 스프링클러 시스템도 없었다.


위급시 대피를 위한 비상구는 너무 적었고 불에 인화가 잘되는 헝겊들이 도처에 쌓여있었다. 결과적으로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대부분 10대와 20대 여성이었다. 일부는 잠긴 문 뒤에서 질식했고, 많은 이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숨졌으며, 또 다른 이들은 화상으로 사망했던 사고였다.


이 화재의 공식적인 이야기는 다른 유사한 화재와 마찬가지로 소유주의 탐욕을 지목했다. 그러나 사고 후 또다른 루머가 떠돌았다. 공장 노동자들이 워낙 도둑질이 심해서 불가피하게 소유주들이 출입문을 잠갔다는 얘기였다. 노동자들의 잦은 옷감 도둑질 때문에 현장 감독관은 일과 후 노동자의 가방과 지갑을 수색했으며, 이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다.


1991년 9월 3일, 노스캐롤라이나주 햄릿에 위치한 닭고기 공장인 임페리얼푸드의 공장에서 불이 났다. 유압액이 호스에서 누출되어 가스구동식 튀김 기계에 불이 붙었다. 이 공장은 주로 흑인들이 거주하는 동네의 1층 건물이었다. 환기가 거의 되지 않았고, 스프링클러도 작동하지 않았다. 바닥은 발화성 기름으로 미끌거렸다. 공장 화재로 대부분 흑인인 25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1층임에도 문이 잠겨져 있어서 질식사와 화상으로 죽었던 것이다.


80년이 지난 유사한 화재임에도 공장문이 닫혀 있었던 이유를 노동자들의 도둑질과 연관시켰다. 숨진 사람이 대부분 흑인 여성이었기에 닭의 도둑질로 몰아갔던 것이다. 기소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도 “그저 비천한 흑인들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고’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할 때는 누가 해를 입었는지,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 책에는 계속 돈을 벌려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또 자신이 죽게 하고 다치게 한 사람들에 대한 책무성을 가지지 않으려고 ‘그것은 사고였다’고 말하는 권력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너무나 많은 경우에 ‘그것은 사고였다’는 말은 권력자들이 만든 위험한 조건에 대해 그들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 그리고 그들은 사고가 계속해서 나고 또 나게 만든다.


하지만 권력이 없는 사람이 ‘그것은 사고였다’고 말할 때는 의미가 다르다. 이것은 약물 과용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결과가 후회스럽다는 의미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럴 뜻은 정말 없었다고 말하는 방식일 수 있다.


한 실험 결과, 총을 쏠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흑인이라는 피부색이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쓰레기통 뒤에서 나타난 사람이 흑인이면 그가 들고 있는 것이 총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것을 잘 구별하지 못했고, 그래서 고양이를 든 흑인 민간인에게 총을 더 쏘았다. 또 흑인이 들고 있는 것이 총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경찰이어도 총을 더 쏘았다.


사고라는 말을 그만 사용하자


해결책은 간단하다. 사람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도구와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가 그것들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면 된다.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생명, 건강, 존엄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서 지으면 된다.


‘사고’라고 말하지 말자.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건 사고였어요’라는 말이 들리면 이를 경고음으로 여기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계기로 삼자. 어떻게 된 것인가? 왜 그런 것인가?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 또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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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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