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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2 - 우연한 사건이 운명을 바꾼다 ㅣ 현대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
천위안 지음, 정주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4월
평점 :
세상을 호령하는 영웅에게도 늘 적수나 맞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이 영웅을 더 영웅답게 만들고 활약의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제갈량에게는 방통이라는 맞수와 수많은 적수가 있었다. 때로는 우호적이면서도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관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외부 사물이나 타인에 대한 인지는 종종 ‘첫인상’의 영향을 받는다. 남을 대할 때 언제나 처음에 느낀 인상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일단 처음에 어떤 사람을 보고 나쁜 인상을 받았다면 나중에 이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심리학에선 이를 ‘초두初頭효과’라 부른다.
사람이 생김새가 좀 못났다고 사는 데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옷이 날개다’라는 말도 있듯이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입으면 못난 얼굴도 잘나 보인다. 머리엔 윤건을 쓰고 몸엔 학창의를 걸친 제갈량은 신선神仙과 다름없는 풍모를 자랑했지만 대나무로 얽은 관冠을 쓰고 도포를 입고 검은 띠를 두르고 흰 신을 신은 방통은 꾀죄죄하기만 했다.
방통에 대한 유비의 첫인상은 매우 나빴다. 유비의 인식을 바꾸려면 제갈량과 노숙이 준 추천서를 내밀어야 할까? 물론 추천서가 유비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효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유비가 자신의 눈으로 바라 본 그 첫 모습(진실,Fact)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한다. 더구나, 방통의 자세가 가관이다. 그는 어느 누구의 추천서에 의지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방통은 유비의 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었을까? 맘에 들지 않는 외모 탓에 유비는 방통에게 마땅한 자리가 없다면서 그를 작은 고을인 뇌양현의 현령으로 발령냈다.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났지만 방통은 묵묵히 이를 받아들여 뇌양현으로 갔던 것이다.
이후 그의 모사가 빛을 발한다. 부임하자마자 고을 일은 외면하고 주야로 술에 취해 살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유비의 귀에도 이 소문이 도달했다. 유비의 지시를 받고 뇌양현에 간 장비는 고을에 부임한 방통이 100일이나 이러고 있었음을 알고선 호통을 쳤다.
하지만 방통이 100일이나 밀린 일을 반 나절도 걸리지 않아 뚝딱 처리하자, 이를 목격한 장비는 그 능력에 감탄하며 자신의 호통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조조와 손권의 일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알고 있는데, 이 정도를 일이라느냐는 방통의 말에 장비는 유비의 홀대를 직감하고 돌아가서 유비에게 힘껏 천거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방통은 근인近因효과를 성공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근인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선 사전준비가 철저해야 하는 법이다. 방통은 두 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발 물러나 유비의 처분이 맘에 들지 않아도 작은 고을의 현령으로 부임해서 이런 최악의 상황을 연출한 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드러내는 최상의 상태로 만들고 말았다. 마치 닭 잡는데 명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말이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외모의 불리함을 뛰어넘어 인재에 목말라하는 하지 않는 유비에게 마치 경고장을 날리듯이 그제사 방통은 장비에게 ‘노숙의 추천서’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심지어 군사軍師로 유비 진영에 합류해 있는 제갈량의 추천서는 내보이지도 않았다.
자, 그렇다면 사람 욕심이 그렇게 많다는 조조는 유비와 달리 외모 같은 것은 신경도 안 쓰고 인재를 중용했을지 의문스럽지 않나? 그 해답을 밝혀주는 내용이 이 책에 담겨져 있다. 이제 한번 한번 살펴볼까요.
나중에 유비의 관리 하에 떨어진 서천 땅은 다소 유약한 성품을 지닌 유장이 다스리고 있었다. 사실 유비는 이 땅이 탐나긴 하지만 워낙 지세가 험난해서 공략이 쉽지 않았고, 같은 성 씨의 친척 유장 때문에 이곳을 공격해 수중에 넣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한편, 유장의 부하 장송이 불만을 품고 이 땅을 송두리째 바치려고 구실을 찾아 조조와의 면담을 가졌다. 그런데, 장송의 외모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수준이었다. 비딱한 얼굴, 뾰족한 머리통, 팍 주저앉은 코, 입 밖으로 드러난 이빨 등이 그러했다. 게다가 그의 키는 5척에도 미달하는 단신短身이었다.
이에 조조는 첫 눈에 장송의 외모가 맘에 들지 않아 큰 선물을 갖고 온 손님을 냉대했다. 그러자 자존심 상한 장송도 조조 면전에서 빈정거리는 말투로 일관하다 하마트면 목이 달아날 뻔했다. 결국 울적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첩보를 입수한 제갈량은 기회를 포착하고 장송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유비가 친히 중신들과 장수들을 대동하여 나가서 장송을 맞이한 후 사흘 동안 성대한 대접을 해주었다. 극진한 대접을 받음으로써 짓밟혔던 자존심이 보상되자 장송은 아무런 요구가 없음애도 불구하고 유비에게 ‘서천 지도’를 바쳤던 것이다.
이 지도의 중요성을 말하자면, 서천 일대의 험난한 산길은 악명惡名이 높아서 공략하기가 쉽지 않음에 있었다. 이제 유비의 손에 서천 지도가 들어갔으니 그 땅을 차지하기가 훨씬 수월해진 셈이었다.
다시 방통 얘기로 돌아가보자. 사실 노숙도 유비가 방통의 외모를 트집잡아 중히 인재로 쓰지 않을 것으로 예감했는지, 추천서 내용에 이런 글을 포함하고 있었다.
“만일 황숙께서 외모만 보시고 그 배움을 알아주지 않아 결국 그가 다른 사람에게 쓰이게 된다면 실로 애석한 일일 것입니다.“
<삼국지>에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등장한다. 책의 저자 천위안은 주요 인물들을 현대 심리학으로 재해석한다. 조조, 제갈량, 관우, 유비, 손권, 사마의 등이 그 대상이다. 난 <삼국지>를 읽으면서 유비의 ‘우유부단함’과 ‘도덕 우선’ 등이 그 시대의 소명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때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시기였다. 도덕 군자만 내세우다가는 죽기 딱 쉽다.
홍콩에 여행갔을 때 명장 관우를 기리는 사당이 있음을 일게 되었다. 심지어 관우와 연결된 기념품 판매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토록 조조가 관우를 흠모해서일까. 생각보다 관우를 큰 영웅이자 지도자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했다.
우리들 모두 영웅적 기질을 갖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간에 말이다. 이는 지난 역사 속의 특정 인물들의 활약상을 보면서 이에 매료되어 자신에게 잠재된 그런 기질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평가하다면 바로 ‘자기감정 이입’인 것이다. 아무튼 뭍한 영웅호걸들을 보면서 인간들의 심리란 정말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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