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간 철학 - 중년의 철학자가 영화를 읽으며 깨달은 삶의 이치
김성환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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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보여주려고 영화를 찾았습니다. <매트릭스>가 딱이었습니다. 오라클의 부엌에 소크라테스의 말이 현판으로 붙어 있으니까요. 그러다 <매트릭스>가 신화를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매트릭스 안에서 체험은 환각 체험이고 신화는 환각 체험을 보존하고 있는 인류의 첫 문화입니다. 모든 영화에서 철학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들어가며’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철학 공부는 영화 감상”이라고 말하는 책의 저자 김성환은 현재 대진대학교 역사·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철학이라는 창으로 영화를 들여다보며 궁극적으로 인생과 세상을 제대로 읽어내려는 목적을 지녔기에 그렇게 말했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저자가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에 연재했던 <김성환의 영화 한 컷, 철학 한 마디>의 내용 중 일부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영화 감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난 이미 감상한 적이 있었던 책 속에서 소개한 영화 2편에 대한 이야기로 서평에 갈음하려고 한다.


환각 체험


환각제의 효과는 느린 시간이다. 환각제를 투여하면 투수의 손을 떠난 야구공의 실밥과 상표까지 보일 정도이다. 이는 마치 우리들이 슬로 모션 비디오를 보는 것과 같다. 불타는 금요일 밤을 꼬박 밝히려는 섹스파트너들이 이를 이용하는 이유 또한 ‘늦춤’에 있는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매트릭스>가 우리들에게 나타났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나 심지어 자신에게로 향하는 총알을 멈춰 세우는 광경은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중심은 ‘델포이’였다. 개인이든 국가든 고민 해결을 위해 델포이 신전을 찾아가 신탁(신의 계시)을 물었다. 이곳 신탁소엔 피티아 女神官이 이를 행하고 있었기에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여행 명소였던 셈이다.


흔히 우리들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명언으로 이해하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실은 델포이 신전 입구에 쓰여진 경구警句였던 것이다. 타인의 운명을 알려준다는 게 제정신에서 가능한 일이겠는가. 당시의 여신관은 환각 상태에서 신의 대답을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 <매트릭스>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등장한다. 즉 주인공 네오가 오라클의 부엌에서 신탁을 받는다.


신화는 원시 시대의 문화인 반면, 이 영화 <매트릭스>는 현대의 사이버 문화이자 첨단 문화이다. 그럼에도 사이버 문화의 특징 또한 환각 체험이다. 이는 인터넷 게임으로 접신하는 형태이다. 즐길 때는 모르다가 게임을 중지하면 머리가 멍해진다. 사이버 공간에서 환각 체험은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이다.


내 앞에 파란 약과 빨간 약이 있으면 나는 어떤 약을 선택할까? 파란 약을 먹으면 각성 체험의 세계 속에서 산다. 빨간 약을 먹으면 환각 체험의 세계로 떠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빨간 약이다. 뭘 선택해야 하나?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하기 전이든 후든 계속 품고 있는 물음이다. 네오가 빨간 약을 선택하는 건 이 물음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자기 정체, 다른 말로 ‘자의식’이다.


네오는 빨간 약으로 몸만 되찾는 게 아니라 자의식도 얻는다. 빨간 약은 자의식의 약이기도 하다. 해석이 없는 환각 체험은 마약에 취해 몽롱한 정신 상태와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묻고 대답을 얻는 수밖에 없다. 사이 버문화가 제공하는 환각 체험은 자의식의 해석을 거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지하든 반지하든 냄새는 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정말 명작 대열에 합류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냄새’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냄새는 재산 정도와 부유 상태를 구분하는 은유어이다.


한국의 상류층 사회를 은근슬쩍 비판하는 영화의 내용이 전 세계인들에게도 먹히면서 호평 일색이었다. 그만큼 세계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부자들의 삶에 은근히 빌붙어 마치 기생충처럼 살다가 결국 부자 주인의 뒤통수를 때리는 기우, 기정 남매의 가족들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들이 많았기에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을 것이다.


한편, 저자는 헤겔의 ‘개념 변증법’을 설명한다. 개념은 언어로 표현되는 생각이다. 개별 개념, 특수 개념, 보편 개념 등 세 종류를 열거하면서 ‘기생충’은 개념이라고 말한다. 이, 벼룩, 회충 등 여러 기생충을 다 포함하므로 보편 개념이고 이 한 마리, 벼룩 한 마리 등은 각각 개별 개념이며 이, 벼룩, 회충 등은 기생충(보편 개념)에 비해 특수 개념이다.


영화 <기생충>은 개별이다. 감독 봉준호가 말하는 ‘가장 한국적인 것들’은 특수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건 보편이다. 나아가 영화는 한국적인 특수와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보편을 통일한 개별이다.


“개별은 특수와 보편의 통일이다.”


나는 홀로 사는 노인이다. 흔히 홀로 사는 늙은 남성을 ‘홀애비’라 부르면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무진장 노력하는 편이다. 자주 씻고, 화장품도 애용하고, 심지어 향수도 뿌린다. 그래도 특별한 사람은 ‘내가 홀애비’임을 귀신같이 맞춘다. 누가 일부러 홀애비가 되고 싶어 그런가?


그런데, 나이가 들어 늙으면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서 특별한 냄새가 자연스레 난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된 후로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이라면 거역할 수 없는 현상이니까 말이다.


가난해서 반지하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겐 자연스레 그 특유의 냄새가 배일 것이다. 그래서 난 ‘반지하’ 냄새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부자랍시고 동익(부잣집 주인)이 이런 냄새를 비아냥대는 말투는 정말 싫다. 냄새만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리라.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냄새를 결합해 기택(기우, 기정 남매의 아버지) 냄새를 만든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다. 가족 사랑에 가족 사기를 결합해 기택 가족을 만든다. 가족 사랑에 방공호 대피를 결합해 문광 가족을 만든다. 가족 사랑에 과외 교사를 결합해 동익 가족을 만든다. 이 영화가 지닌 철학적 요소는 반지하 냄새, 가족 사기, 방공호 대피, 과외 교사라는 특수들을 발견한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우리들의 인생은 영화의 한 장면과 닮아 있다. 영화와 우리 인생 중 어떤 것이 먼저인지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의 내용처럼, 영화의 장면들을 이어 붙인다면 우리들의 인생과 흡사할 것이다. 한편, 영화 속에는 어렵게만 느끼는 철학적 내용이 담겨있다. 이를 안다면 그 영화가 더욱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리라. 그래서 누군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말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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