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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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나타나는 범죄라는 '‘사회적 거울’'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모습 그리고 인류가 살아온 역사의 단면을 함께 엿보고, '‘괴물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 보고 싶어서였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은 총 2부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당신이 몰랐던 세계사 속 범죄자 열전)는 세계사 속 범죄자의 면면을 살펴보는데, 1장은 <모나리자> 도난 사건,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된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 사건’, 인권 존중의 전범이 된 ‘미란다 원칙’ 등 역사를 바꾼 범죄 이야기를 다룬다. 2장은 만들어진 괴물의 사연인데 맹목적인 연쇄살인범 ‘헨리 하워드 홈스’, 900여 명의 동반자살을 이끈 사이비 교주 ‘짐 존스’ 등이 소개된다.


이어서 3장에선 노동자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았던 철강왕 ‘카네기’, 황당무계한 면죄 조건의 면죄부를 팔았던 종교사기꾼 ‘요한 테첼’, 절대 권력자의 내시 위충현 등을 통해 야만적 범죄를 살펴본다. 4장은 죄 없는 마을 주민들을 몰살시킨 ‘미라이 학살’ 관련자들, 아내 살해 누명을 쓰고 12년간 옥살이를 한 의사 ‘샘 셰퍼드’ 등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 정의는 살아있는지 살펴본다.


모나리자 도난사건


기네스북에 따르면 현존하는 예술 작품 중 최고의 몸값은 40조 원 상당 가치를 지닌 <모나리자> 그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여기에 10배를 더한 돈을 준다 할지라도 그림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는 절대로 팔지 않을 게 분명하다. 2002년, 프랑스로 자유여행을 갔을 때 우리 가족은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선수 격인 이 작품 앞에 서 있었다. 몰려든 관광객들의 발길로 인해 제대로 실물 감상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놀랍게도 이 명화는 당초 루브르의 심장으로 여겨질 그런 위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11년 8월 벽에 걸렸던 그림이 도난 됨으로 말미암아 예상 밖으로 <모나리자>의 가치 평가가 수직 상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평소엔 미처 느끼지 못하다가 분실된 후 밀려오는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에 프랑스 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용의자를 수사선상에 올렸다. 과거 도난품을 사들여 구설수에 올랐던 파블로 피카소, 박물관을 불태우라고 주장했었던 기욤 아폴리네르 등 두 사람에게 온통 시선이 몰렸다. 하지만 실제 범인은 따로 있었다. 대담하게도 박물관에 걸린 <모나리자>를 벽에서 떼어내 태연하게 들고 나간 사람은 이탈리아 사람 ‘빈센초 페루자’였다.


이탈리아의 미술상 알프레도 제리의 신고로 인해 10만불에 이를 팔려던 페루자가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되었다. 아마도 그림이 피렌체의 돈많은 귀족에게 팔렸다면 이 그림은 영원히 루브로로 돌아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탈리아인들도 이 그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국외로 반출된 이탈리아 예술품이 어디 한두 점 뿐이었겠는가.


아무튼 페루자의 범행동기는 밝혀졌다. 모나리자를 프랑스로 가져간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고 (이건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를 고향으로 되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오히려 페루자는 절도범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 되고 말았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 왕국을 이룬 지 수십 년밖에 안 되는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절도가 밝혀진 이상 결국 이 그림은 프랑스로 반환되었다. 현재 이탈리라 사람들은 이 그림을 이탈리아로 가져오길 강렬히 원한다고 한다.


미국의 연쇄살인범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 400주년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시카고에서 세계 박람회가 개최된다. 1893년 박람회 개최까지 ‘단 3년의 기간 동안 완전한 도시 하나를 파리 박람회의 영광을 뛰어넘을 정도의 수준으로 건설’했고 광기 어린 건설 과정에서 시카고로 몰려든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고 고통받았다.


미국인 헨리 하워드 홈스는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기괴한 사업에 맛들려 있었다. 즉 변사체를 구해 병원에 해부용 시신으로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당시 각지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의 빈민굴에서 무연고 시신을 구하기 손쉬웠다. 이후 그의 사업은 더욱 대담해졌다.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보험에 들게 한 후 죽인 다음 보험금을 가로채고, 시신은 해부용으로 팔아넘긴 것이다. 사업가라기보다는 살인마인 셈이다.


홈스는 박람회 기간 동안 마치 자신의 성城 같은 호텔을 지어놓고 광기어린 사업을 벌인다. 박람회를 보러 온 손님들, 일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 운 나쁜 사람들은 가스실과 화장터까지 갖춘 홈스의 호텔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최대 200명으로 추정되는 희대의 살인사건인데, 결국엔 보험 사기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형사에 덜미를 잡혀 이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아내 살인 누명을 쓰고 옥살이한 의사


“아내는 얼굴이 다 부서질 만큼 잔인한 공격을 받고 죽었는데 정작 남편은 범인과 두 차례 마주쳐 격투를 벌이고도 살아남았다? 말도 안 된다! 범인은 남편이야!”


특히 언론은 별 증거도 없이 샘 셰퍼드를 범인으로 예단해버렸다. 이후에도 흥분한 언론은 수백 건의 기사를 생산하며 셰퍼드를 살인자로 몰아갔다. 지역 라디오 방송에 ‘셰퍼드의 정부(情婦)이며 그와의 사이에 아이를 두고 있다.’라는 정체불명의 여성이 출연할 지경이었으니 그야말로 언론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태평소 불며 추임새까지 넣은 셈이었다.


이는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도망자>(1993년)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했다. 1954년 7월 4일 일요일밤, 미국 오하이오주에 살았던 의사 샘 셰퍼드는 이웃들과 함께 저녁 파티를 즐기다가 이웃들이 귀가하기도 전에 소파에서 곯아떨어졌다. 부인은 이웃 부부들이 모두 돌아간 뒤 2층 침실로 올라갔다. 일곱 살 아들도 자기 방 침대에서 곤히 잠들었다.


2층에서 아내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들리자 잠에서 깬 샘은 침실로 급히 올라갔다. 누군가 있음을 발견하지만 이내 머리를 둔기에 맞고 쓰러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는 참혹한 아내의 피살 현장을 목격했으며, 누군가 후다닥 도망치는 모습을 포착하고 잡아채려 했지만 또다시 두들겨 맞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도망친 남자는 머리가 덥수룩한 백인이었다는 샘의 기억 뿐이었다.


아침이 찾아오고 현장엔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수사 결과 아내를 살해한 둔기는 현장에 없었고, 집안의 금품이 없어진 상태였기에 흔히 발생하는 강도 살인 사건으로 보엿지만 경찰과 언론들의 의심은 남편인 샘에게로 쏠려 증거도 없으면서 아예 그를 범인으로 예단하고 말았다. 언론이 검사, 판사, 배심원 노릇을 다한 셈이었다.



이어서 2부는 한국사를 뒤흔든 범죄를 재구성해본다. 1장은 나쁜 놈들의 이야기인 셈인데 복싱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에 가짜 복서를 데려오는 파렴치한 범죄, 중동 건설붐 때 독버섯처럼 파고든 제비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2장에선 일제 강점기 시절 민족차별의 모멸감에 무차별로 살인했던 ‘이판능’, 가족 살해 후 자살을 택한 50년 전 2인조 카빈 강도, 빈번하게 등장했던 ‘고려장’ 사건 등을 다룬다. 3장은 밀수꾼, 도굴꾼, 보물찾기, 보험 살인, 일제 강점기의 스토킹 등 한국사의 풍경을 되짚어본다. 4장은 남파 간첩, 고정간첩, 이중간첩 그리고 간첩을 ‘만든’ 애국적 버러지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IBF 타이틀전 합동범죄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까지라고 말할 수 있다.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김태식, 장정구, 유명우 등 내로라하는 챔피온들이 탄생했다. 당시 세계적인 복싱기구는 WBA, WBC로 나뉘는 양대 산맥이었다. 이후 1980년대 초반에 IBF라는 새로운 기구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지금껏 험난했던 챔피온 고지에 뻔질나게 태극기가 꽂히는 일들이 IBF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한국 선수들끼리 세계 타이틀전을 치르는 진귀한 풍경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이러면서 챔피언 벨트의 값어치가 평가 절하되어 갔다.


당시 IBF 플라이급 챔피언 권순천은 4차 방어전을 국내에서 치렀다. 상대 선수는 콜롬비아에서 온 무패의 복서 알베르토 카스트로로 KO율이 70%를 넘는 하드 펀처였다. 막상 경기는 지루했고, 중반 권순천의 회심의 펀치가 적중해 KO로 경기가 끝났다. 며칠 후 중남미 현지에서 충격적인 외신이 날아들었다.


“한국에서 타이틀전을 치렀다는 IBF 세계 랭커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한국에 간 적이 없다.”


아니 그럼, 한국에 와서 시합도 하고 훌륭한 복서라는 칭찬도 받은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어디 사는 누구란 말이냐. 외신이 연이어 날아왔다. 한국에서 시합한 선수는 ‘카라발로 플로레스’고 진짜 카스트로는 황당해하고 있다고 말이다.


가짜 도전자를 상대로 세계 타이틀 매치가 벌어져 KBS가 중계하고 수천 명이 표를 사 수백만 명이 경기를 지켜보며 열광했으니 이는 범죄 행위였다. 프로복싱계의 대부로 불리던 전호연 씨와 남미에서 온 복싱 사기단은 모두 구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한국 프로복싱계도 정화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왕서방은 돈을 벌었지만 재주 넘은 곰 역할을 한 복싱 선수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간첩을 만든 사람들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이종찬 장군은 김창룡을 불러 일갈한 바 있다. “전기 고문을 해대면 아무거나 불지 않을 이가 어디 있느냐. 이 버러지 같은 놈아!”


1956년 특무대장 김창룡이 그의 전횡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에 의해 암살되었을 때 이승만은 말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순국한 것이며 충렬의 공훈을 세운 것이다.” 김창룡 같은 ‘버러지 애국자’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양산되고 활약한다.


영화 <1987>에서 배우 김윤식이 열연한 배역은 바로 '박처장'이다. 본명이 박처원인 그는 실존 인물이었는데 평안도 용강 지주 집안 출신으로 부모가 공산당 손에 죽었기에 빨갱이를 잡는 데는 공산당 못지 않게 잔인하고 가혹했다. 열일곱 나이에 남하, 공산당 잡겠다는 일념으로 경찰에 투신, 경무관까지 승진했다. 북한에서 그를 죽이려고 암살 간첩까지 내려보냈다는 얘기도 있다. 혁혁한 공로를 세우는 과정에서 그는 김창룡을 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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