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 목소리는 어떻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가?
존 콜라핀토 지음, 고현석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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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인 <사피엔스>를 읽었다면 과학자들이 인간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만든 동인動因으로 대부분 언어를 꼽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반면 새, 개, 침팬지, 돌고래 같은 동물도 목소리를 사용해 두려움, 분노, 짝짓기 욕구 등을 나타내지만 이는 숙명적인 생존과 번식에 관계된 것에 한정된다. 따라서 인간만이 가진 언어 능력은 다른 생명체와 인간을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건널 수 없는 루비콘 강’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하라리는 이전 언어 능력이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언어는 상대적으로 뛰는 속도가 느리고 체격적으로 약하며, 포식자들에게 쉽게 약탈 당하던 초기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협력해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간보다 크고 빠르며, 치명적인 포식자들을 제압할 수 있음에 따라, 다른 동물들보다 사이즈가 더 큰 집단(또는 부족)을 구성하고(침팬지는 인간보다 한 단계 낮은 협력 형태를 보이며, 약 100마리가 한 집단을 구성할 수 있다), 결국 마을, 소도시, 도시 그리고 국가를 구성해 인류가 지구와 지구상 모든 존재를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문자 언어도 이런 과정을 가속加速하는 데 한 몫 거들었지만, 사실 문자가 등장한 것은 5,000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이 정도 기간은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보면 찰라의 시간밖에는 안 된다. 문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간의 모든 의사소통은 말을 통해 이뤄졌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 언어 때문만은 아니며, 언어라는 놀라운 특성을 소리로 만드는 특별한 능력에도 힘입었다. 이에 저자는 목소리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포유류의 발성 기관


대부분의 포유류는 말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발성 기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침팬지의 입술, 혀, 연구개軟口蓋(, 폐, 후두는 구조와 기능 면에서 인간의 그것들과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침팬지는 얼굴 정면에 눈이 있고, 엄지가 나머지 네 손가락과 마주 볼 수 있으며, 두 젖꼭지가 대칭적이며, 주둥이가 짧다는 해부학적 특징도 인간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18세기 스웨덴의 박물학자 칼 린네는 인간과 유인원을 같은 목, 즉 ‘영장목’으로 분류했다. 다윈보다 한 세기 먼저 활동한 린네는 유인원과 인간이 진화 측면에서 연결돼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린네는 해부학적 유사성에만 집중했다. 교회가 표명했던 우려 때문에 린네는 결국 인간이 동물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도록 호모 속 사피엔스 종이라는 독립된 영장류 범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린네는 생물학자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인간과 유인원을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은 겨우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네’라고 썼다. 린네에 따르면 그 하나의 특징은 해부학적 특징이 아니라 행동적 특징이다. 바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소리에서 성적 이형성이 나타난다


인간의 목소리는 동물의 목소리 중에서도 특이하다. 목소리가 말을 하는 데 특화돼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목소리에 성적 이형성異形性이 나타난다는 점, 즉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포유동물은 암컷과 수컷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다. 암컷이든 수컷이든 같은 종이면 똑같이 으르렁거리고, 짖고, ‘야옹’ 소리를 낸다.


설득의 목소리


민주주의 개념은 기원전 500년경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안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가 인간집단을 통치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극찬하면서도 김성에민 호소해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 모으는 폐단 또한 경계했다. 즉 사기꾼을 선출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이런 사기꾼을 '데마고그(대중 선동가)'라고 불렀다.


정치적 연설에서 수사학과 웅변술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시도가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윈스턴 처칠을 비롯한 유명 정치인의 연설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버럭 오바마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을 통해서였다. 그의 목소리에 감정이 담겨 있었다. 흑인에 대해 비판적인 선입견을 가진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대통령 후보로서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오바마는 2004년 기조연설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던 절묘한 목소리 조절 능력을 보여줬다. 이런 능력은 연설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모두 드러났다. 식당, 교회, 재향군인회관, 시장, 토론장, 대중유세장에서 오바마는 인종적 배경, 성별, 교육수준이 다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들을 매우 자연스럽게 냈다.


그는 명확하고 딱 부러지는 비즈니스 스타일의 시카고 법학대학원 교수의 목소리, 단어 마지막의 g를 발음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 웨스트 109번가에서 살면서 컬럼비아 대학을 다니다 졸업 후에 이스트 94가로 이사 간 청년의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면서 냈다. 이스트 94번가에서 오바마는 도시 중심에 사는 흑인들의 억양과 문법을 흡수했다.

오바마가 워싱턴 D.C.의 유명한 햄버거 집인 벤스 칠리 보울에서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점원에게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Nah, we straight”다. 이 말은 완벽한 흑인 영어다. 그는 ‘No’의 o를 입 앞쪽에서 발음해 ‘Nah’로 내고, be 동사를 생략해 ‘we are straight(계산다 된 겁니다)’를 ‘we straight’로, 표준 영어에서는 ‘even’을 쓸 자리에 ‘straight’라는 길거리 표현을 쓴 것이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의 목소리는 발음이 추하다는 사실외에도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동물적인 욕망, 즉 '킬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사람이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이 보여준 판단력과 절제력엔 상대적으로 매우 미흡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목소리엔 설득력이 내포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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