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2 - 춘추시대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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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는 낱낱의 사건과 개개인의 드라마를 마치 유능한 극작가가 짜고 얽어서 흥미롭게 구성한 서사극 같았다. 인간사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미시사이면서 고대 중국 3,000년의 거대 역사였다. 나는 저마다 인물들의 매력에 취해 한참을 몰입하는가 하면, 해를 거듭하는 동안 건강의 한계와도 싸웠다. 때로 궁형을 당한 채 죽간을 채워 나갔던 사마천을 떠올렸다. 사마천의 고역에 천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가 그린 인물들을 끌어내 오늘의 세상과 대면하게 하는 현재형 <사기>를 그리는 일에 내 60대를 쏟아부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춘추시대를 살펴본다

 

저자 이희재는 1970년 만화계에 입문해, 1981년 데뷔작 <명인>과 <억새>를 발표한 지 40년이나 된다. 그는 한국 만화에 리얼리즘의 기운을 불어넣은 한국 만화사의 명실상부한 거장으로 고단한 삶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주변부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 깊은 울림을 주었고, 현실 참여적인 만화의 면면을 일깨웠다.

 

고전은 일찍 만날수록 좋다. 그만큼 넉넉한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을 읽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사마천의 <사기>는 더욱 그러하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날 수 있으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적인 상황들을 엿볼 수 있는 유익한 통찰이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운 탓이다.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었는데, 노자와 장자를 시작으로 제나라의 덕장인 사마양저, 병법의 대가 손무, 초나라 평왕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생을 산 오자서, 오나라의 부차와 월나라의 구천 간의 경쟁이 담긴 와신상담의 고사, 마지막으로 주유 천하의 주인공 공자와 그 제자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중국 천하가 주周나라를 중심으로 봉건 체제로 재편됨으로써 기원전 7세기에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주나라가 수도를 낙양으로 이전한 이후를 동주東周라 부르면서 비로소 춘추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엔 무수히 많은 제후들이 등장하고 멸하는 가운데 중원의 패자覇者가 나타나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잡아 이끌어 갔다.

 

춘추의 정세가 진晉나라에서 초楚나라로 기울어지기 시작할 무렵, 초나라에선 노장사상이 움트기 시작했다. 노자는 초나라 사람으로 정식 이름은 이이李耳인데, 주나라의 기록관이었다. 당시에 공자가 노자를 찾아 예禮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죽은 성현들의 말에 집착하는 공자에게 노자는 "왜 쓸모없는 것을 품고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책은 춘추시대에 발생한 주요한 사건사고 등을 다룬다. 이 중에서 백미는 역시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싸움이다. 여기서 탄생한 고사성어가 바로 '와신상담', 즉 '섶나무에 눞고 쓸개를 핥다' 이다. 두 나라 간에 24년 여에 걸쳐 서로 복수극을 벌이는 가운데 춘추시대의 마지막 패자가 등장한다. 바로 범려라는 뛰어난 인재를 곁에 둔 월나라의 구천이다.

 

 

 

 

그런데, 와신상담의 고사 속에서 또 한 명의 유명 인사가 있다. 초나라 평왕에게 집안이 풍지박산 당한 오자서라는 인물이다. 초나라를 탈출해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송나라에 피해 있던 평왕의 태자 건을 만난다. 이후 내분이 발발한 송나라를 떠나 정나라에 잠시 몸을 의탁했다가 태자 건의 진晉나라 스파이 행위가 들통남으로써 건은 정공에게 피살, 오자서는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된다. 가까스로 장강을 건너 변두리의 소국 오나라로의 탈출에 성공한다. 운명적으로 후일 오나라 왕(합려)이 될 공자 광을 만나게 된다. 

 

이후 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자 오자서는 외무대신으로 등용되고, 병법가인 손무도 합류한다. 또 초나라의 비무기가 전횡을 일삼자 살기 위해 오나라로 도망친 백비를 대부로 삼는다. 합려는 왕이 된지 3년 되던 해에 초나라를 침략해 투항했던 요왕의 두 공자를 사로잡는다. 마침내 합려 9년에 초나라 수도를 정벌한다. 이때 오자서는 평왕의 묘에서 시신을 꺼내어 300번의 채찍질을 가한다.

 

월왕 구천이 왕이 되던 해(기원전 496년)에 합려는 월을 공격했다. 월나라엔 범려라는 특출한 인재가 있었다. 당시 죄수특공대를 내세워 월나라 군대에 맞서게 했다. 나라를 위해 죽으면 부모와 처자의 생계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군대였다. 그래서 오나라 군대는 얼이 빠졌다. 이때 월나라 군대의 기습 작전이 성공, 독화살을 맞은 합려는 죽고 만다. 죽기 전에 그의 아들 부차에게 월의 구천이 원수임을 상기시킨다.

 

이에 오의 부차는 섶나무를 바닥에 깔고 잠을 자면서 아버지 합려의 유언을 가슴에 새긴다. 부차는 초나라에서 온 백비를 태재로 삼고 군사훈련에 열심이었다. 범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에 못마땅한 구천은 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했지만, 사기충천한 오나라 군대에 치명타를 입고 만다. 월의 구천은 회계산에서 대패하고 겨우 목숨을 건진다.

 

오자서는 부차에게 나중에 후환이 되므로 구천을 죽이라고 권하지만 부차는 월 구천으로부터 커다란 뇌물을 받은 백비의 건의를 받아들여 목숨을 살려준다. 낙담한 오자서는 아들을 제나라에 있는 포숙의 후손인 포목에게 맡긴다. 그러자 오의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한다. 이때 오자서는 '자신의 눈을 도려내어 동문에 매달아 오나라가 망하는 걸 보겠다'고 섬찍한 유언을 남긴다.

 

 

 

 

남에게 원한을 사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에게 복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오자서의 드라마틱한 생은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다. 마침내 주야로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한 월의 구천에게 오의 부차는 죽임을 당하고 만다. 한편, 월의 일등공신인 범려는 '토사구팽'을 피하려고 일족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자서가 대장부인 것은 맞지만 현명함은 범려에 미치지 못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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