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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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는 우리 인생, 우리 삶,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녹아 응축된 거울이다. 그 투박한 거울을 바라보면 우리의 얼글도 보이고 날카로운 눈빛도 비피도 세월의 주름살도 헤아릴 수 있다. 물론 옛이야기에들 속에는 음탕하고 못된 계모도 있고 사악한 첩들도 있다. 손대는 것마다 사고를 치는 한심한 아버지도 있고, 무능하다 못해 차리리 그냥 없어졌으면 하고 바랄 만큼 한슴 나오는 남편들도 잇다. 당연히 효성스러운 아들, 절개를 지키는 열녀들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효녀가 되려고 기를 쓰고 열녀가 되려고 목숨을 끊는 이유가 무엇일까? - '들어가며' 중에서

 

 

고전 속에는 마주치는 인간 본성을 통찰하다 

 

책의 저자 유광수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교에서 〈옥루몽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이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교양교육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TBS FM 〈송정애의 좋은 사람들〉의 요일코너 '유광수의 은밀한 고전'에 고정 출연 중이며, 주말과 학기 외 시간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고전, 감동의 울림을 찾아서' 등의 주제로 기업체, 학교에서 인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2007년에 <진시황 프로젝트>로 상금 1억 원의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을 받았으며, 2010년과 2012년, 2014년, 2018년 연세대학교 우수 강의 교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진시황 프로젝트>를 비롯해 <윤동주 프로젝트>, <홍계월전>, <싱글몰트 사나이 1, 2>, <고전, 사랑을 그리다> 등이 있다.

 

책은 총 9개 관으로 구성되었는데, 주제별 고전 큐레이팅을 통해 가부장의 이중생활부터, 열녀 만들기 프로젝트, 자식 사랑 패러독스까지, 가족에 얽힌 인간의 민낯을 파헤치는 9가지 고전 독해를 선보인다. 치밀하고 발칙한 고전 비평은 물론이고, 하나의 이야기를 근현대 서구 사상가들의 이론, 지식과도 입체적으로 견주었다.

 

<손순매아〉, 〈장화홍련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구운몽〉, 〈옥루몽〉, 〈홍계월전〉, 〈변강쇠가〉, 〈열녀함양박씨전〉등 우리들이 몰랐던 은밀한 고전, 즉 지배층의 시선으로 쓰인 옛이야기 속에 숨겨진 가족의 신음과 한숨, 통곡 소리를 파헤치고 거기서 새로운 지혜를 발견해내는 지적 모험으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옛날 이야기가 마치 지금의 이야기로 들리는 듯하다. 그 속에 인간 본성의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옹고집전

 

이름부터 한 고집 하게 생긴 '옹고집'은 대단한 부자다. 고을의 유지이며 향촌 양반들의 우두머리인 좌수座首 양반이다. 뭐 하나 부족함이 없었을텐데도 이 양반의 욕심이 어마어마했다. 이 소문은 다른 마을까지 퍼졌다. 소문을 들은 학대사가 일부러 옹고집 집을 찾아 시주를 부탁한다. 당연히 옹고집은 시주는커녕 대사를 욕보인다. 이에 학대사가 도술로 허수아비를 똑같은 옹고집으로 변신시켜 그의 집으로 보내 가짜가 진짜 옹고집을 집에서 쫓아내고 안방을 차지하도록 만든다.

 

<옹고집전〉의 목표가 옹고집을 오쟁이 지게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오쟁이 진다'는 말은 자신의 아내가 딴 남자와 간통을 저지르는 것을 모른다는 우리말이다. 그래서 옹고집의 처는 양반가 부인의 품위 있는 모습에서 차츰 격하되어 어리석고 우둔한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꼭 맞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가짜 옹고집의 시각을 통해 옹고집의 처는 상당히 아름다운 것으로 드러나는데 이는 이야기를 성적인 분위기로 끌고가는 기능을 하는 동시에 가짜의 목적이 처에 대한 성적性的 공략임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첫날밤 이야기의 폭로, 내외가 필요없다며 굳이 부인을 불러내는 일, 고을 사또의 재판에서 이기고 "고운 마누라 뺏길 뻔 했다"는 발언 등이 그러하다. 이처럼 가짜의 목적은 진짜 옹고집을 오쟁이 지게 하기 위해 그의 처를 공략하는 것이었다.

<쥐 변신 설화〉에서 쥐에게 폭력적으로 당하는 여성의 경우는 비참한 면이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짜냐 가짜냐 논쟁하기 전에 이미 동침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쥐에게 당한 셈이다. 즉 그녀는 '자신이 동침하는 존재가 남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동침을 한다. 그 이후에야 똑같이 생긴 선비가 나타나면서 진짜 가짜 다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쥐뿔도 몰랐냐"는 질책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비록 잠자리의 느낌이 달랐어도 그 느낌은 공개적으로 드러내서 말할 수 없는 은밀한 것이고, 모두들 진짜라고 여기고 있는 존재를 '느낌이 다르니 남편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행실이 나쁜 여성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옹고집전>에선 동침 이전에 한 명이 가짜임이 분명한 '두 명의 남편'이 있었다. 누구를 선택하든 잘못될 확률은 반이다. 자신이 비록 옳은 선택을 했다 해도 찜찜한 구석이 없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진짜 여부의 판결을 외부의 결정에 맡겼고 그에 따랐다. 비록 사또가 결정했더라도 동침의 결정은 자신에게 달렸음에도 처는 가짜의 손을 잡고 호들갑을 떤다. 그녀는 진위 여부는 뒷전이고 함께 뒹굴 남편만이 필요했던 셈이다.

 

홍길동전

<홍길동전〉에서 언뜻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오해가 빚어지기도 한다. 바로 소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길동이 조선을 떠나 바다 건너 율도국을 정벌하고 왕이 된다. 그리고 당연히 처와 첩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산다. 그렇게 끝난다. 바로 이 부분이다. 서자로서 그렇게 괴롭힘과 설움을 당한 길동이 제 스스로 첩을 두다니 이게 될 말인가 하는 비판이 인다.

 

이것은 두 가지를 떼어서 보는 대신 합해놓고 보는 바람에 생긴 문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길동이 벗어나고자 한 것은 '적서차별의 문제'이지 '처첩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 길동은 적자와 서자의 차별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 근본적으로 첩을 반대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길동은 처의 자식이든 첩의 자식이든 공평하고 균등하게 대우하고 관직에 진출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옥루몽

 

기녀妓女들에게 처녀성을 요구한다면 이는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인가? 기녀와 처녀성, 이는 양립할 수 없는 근본이다. 그런데, 19세기에 창작된 어떤 소설은 기녀들에게 절개가 아닌 순결을 요구한다. 바로 <옥루몽>이 그러하다. 가히 '노망' 수준이다. '지조 높은 기녀'라는 허상을 만든 것도 남자들이다. 여자의 정절을 지키는 기녀들은 오직 남자들만의 희망사항인 것이다.

 

이 소설에는 기녀들이 무척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 양창곡의 첩이 되는 강남홍, 벽성선 그리고 양창곡의 아들과 풍류로 맺어지는 설중매와 빙빙 등이 중요 인물이다. 동일한 기녀임에도 강남홍과 벽성선은 첩이 되고 설중매와 빙빙은 첩이 되지 못한다. 몸까지 섞었음에도 신분의 결말은 이렇게 달랐다. 그 결정권은 오직 남자의 마음에 달렸기 때문이다. 

 

강남홍은 과거를 보러 황성으로 올라가는 가난한 선비 양창곡을 만나 서로 정을 통하며 몸을 허락한 후 평생을 바치기로 약조한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를 탐낸 황 자사가 끈질지게 들어붙자 결국 그녀는 강물에 투신하며 수절한다.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그녀는 무술과 도술을 수련, 양창곡을 도와 전장을 누비며 눈부신 활약을 한다. 

 

군중에서 여성 신분임을 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개인적인 쾌락은 곤란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기에 양창곡의 거친 요구를 거부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남홍의 몸을 계속적으로 요구한다. 결국 장군의 막사 안에서 옷을 벗은 강남홍은 장군의 질퍽한 욕망을 채워준다. 강남홍은 현재 장수 홍혼탈의 신분으로 행동해야 함에도 강요에 의해 자기 정체성을 장군에서 일개 천첩으로 바꾸어 자신의 몸을 바친 것이다.   

결국 이렇게 이루어진 군중 정사는 강남홍의 자발적 동의가 아닌 폭력적 강요에 의한 것이지만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녀를 그저 유순하게 복종하는 첩으로 볼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려내는 장면이 에로틱하기에 더욱 문제적이다. 성교의 피곤함으로 몽롱한 새벽, 이불이 반쯤 흘러내려 아무렇게나 드러난 옥같이 하얀 몸에 달빛이 조요하게 비추어 영롱하게 빛나고 구름처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치렁치렁하게 늘어져 있다. 여자임이 드러나서는 안 되는 삼엄한 군중에서, 그것도 급한 전령이 느닷없이 뛰어 들어올지 모르는 장군 막사에서 말이다. 이런 미묘한 긴장감이 더욱 질탕한 감정을 자극한다. 그와 함께 강남홍에게 가해진 폭력성은 은폐되고 만다.

 

정말 군중정사(軍中情事)가 문제적인 것은 강남홍에게 폭력이 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없어서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 정사를 거부했고 또 부정했다. 그럼에도 "웃기네, 너도 좋아서 그런 거잖아!"라면서 음흉한 눈길로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혹시 강남홍이 듣는다면 정말 억울해서 복장이 터져버릴 일이다. 비록 그녀가 제발로 양창곡의 막사를 찾았다해도 이는 자발적인 동의가 아니라 강요된 동의였기 때문이다. 

 

심청전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심 봉사는 무기력하지 않아도 무기력하게 살라고 사회가 강요한다. 장애는 죄로 인한 형벌이고 악이니 그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하는 데 고마워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으로 대접하는 사람이 없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아니라고 보니까 말이다.

정말 억울한 점은 이것이다. 무엇을 해도 장애인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 아무리 좋게 봐도 흥부는 가부장답지 못한 가부장이었고 변강쇠 역시 남편이라기보다는 기둥서방이었다. 하지만 흥부나 변강쇠를 두고 남편답지 않다고 보는 시선은 정말 드물다. 흥부는 악독한 형 놀부에게 희생당한 불쌍한 동생이란 측면이 앞서고 변강쇠는 기존 사회 질서에 편입하지 못한 유랑민의 애환이 묻어난 인물이라는 동정표가 던져진다.

하지만 심 봉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딸의 지극한 효성으로 기적적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것은 물론 행복한 결말이지만 그 덕분에 심 봉사를 무능하게 보는 시선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딸의 노력과 고생에 무임승차한 무능한 인간일 뿐이란 시선이 따갑게 내리쪼인다. 무기력과 무능이 체화되어 자존감까지 완전히 상실한 흥부나 변강쇠보다 끊이지 않는 봉변에도 불구하고 황성까지 이를 악물고 올라간 심 봉사가 훨씬 더 인간답지만 그런 것을 제대로 보아주지 않는다. 슬프게도 정당한 대접과 평가는 다음 세상에서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장화홍련전

배 좌수는 장화를 죽이지 않으면 가문家門에 화가 있을 거라고 부추기는 허 씨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외삼촌 집에 보내는 척하다가 연못에 빠뜨려 죽이는 것이 좋겠다는 구체적인 살해 계획까지 듣는다. 그리고 그러라고 허락한다. 자신의 딸을 죽이라고 한 것이다. 게다가 배 좌수가 직접 아들 장쇠를 불러 '이리이리하라는 계교를 가르쳐' 보내기까지 한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그는 허 씨의 끔찍한 계략에 한마디 대꾸도 없이, 의문도 없이 그렇게 하라며 전격적으로 결정하고 밀어붙인 것이다.

 

그날 밤 자다 말고 깨어난 장화는 아버지 배 좌수를 뵙지도 못하고 그대로 끌려가다시피 외삼촌댁을 향해 가다가 연못에 빠져 죽고 만다.

배 좌수는 평소에 계모 허 씨가 장화를 음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허 씨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따져보지 않았다. 그는 당사자인 장화에게 무슨 일인지 한번 물어보지도 않고 일사천리로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고 만다. 그렇게 애지중지 끼고돌던 딸에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라고 물어볼 생각도, 아니 하다못해 "변명이라도 해봐라!" 하고 윽박지를 시간도 여유도 없었단 말인가? 그녀가 자는 동안 전격적으로 그녀의 운명을 결정하고 밀어붙일 정도로 화급한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245

 

왜 이렇게 배 좌수는 일 처리를 서둘렀을까? 무엇이 그의 마음을 그리 화급하게 만들었을까? 혹시 임신과 낙태의 문제를 그토록 중히 여긴 탓일까? 쥐를 가지고 교묘한 계략을 꾸민 것도 계모 허 씨이고, 딸 장화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자고 꼬드긴 것도 허 씨다. 장화는 허 씨하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이지만, 배 좌수는 자신의 친 딸이 아닌가 말이다. 어떻게 아버지란 작자가 이렇게 막 돼 먹을 수가 있는가? 잠자리를 같이 하는 허 씨의 품이 혈육인 딸보다 그리도 소중했더란 말인가? 

 

 

아홉 가지 고전 독해

 

준엄한 남편과 현숙한 부인, 효성스러운 아들, 절개를 지키는 열녀가 아닌, 자식을 생매장하는 부모와 부모의 간을 빼먹는 딸, 처에게 정숙함과 음탕함을 동시에 요구하는 이중적 가부장 등 불온하고 끔찍한 모습들이 우글우글한 우리 옛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춰본다. 참혹하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고전 속 가족 이야기를 통해, 위선과 증오라는 인간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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