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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하지 못한 말 - 최영미 산문집
최영미 지음 / 해냄 / 2020년 4월
평점 :
지난 사오 년간 여기저기에 기고한 글들과 SNS에 올린 글들을 모아, 책상에 앉아 쓴 글과 침대에 누워 허공에 지껄인 문장들을 모아, 내 영혼의 물음표와 느낌표들을 모아 다시 책을 엮는다. 축구 산문집 <공은 사람을 기자리지 않는다> 이후 처음이니 거의 9년 만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최영미 시인이 만들어냈던 시대의 일기
책의 저자인 최영미 시인은 대한민국 미투운동의 문을 연 결정적 인물 중 한 명으로, 작품 '괴물'(황해문화, 2017년 겨울)을 통해 문단 내 성폭행을 폭로하고 2018년 폭풍을 몰고온 미투운동에 불을 붙였다. 그녀의 고발대상자는 한국 문학계의 큰 별이자 늘 한국인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던 고은 시인이었다.
이 산문집은 그녀가 9년만에 새로 펴낸 것으로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억과 방황, 촛불시위를 향한 응원과 의지, 시 '괴물' 발표 이후 미투의 중심에 서게 된 시인의 고민과 투쟁의 과정을 기록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페이스북과 지면을 통해 공개했던 글을 다듬고 내용을 보충했다.
"세상과 넓게 소통하고 크게 부딪쳤던 내 삶의 궤적이 여기에 있다.
저 이렇게 살았어요"
저자가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알리기' 위해 써왔던 글들을 취합해보면 우리들은 한국 문단 내에서, 또 1980년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빚어졌던 만행들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최영미 시인도 "내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을 글로 불러오는 것은, 80년대가 여성들에게 어떤 희생을 강요했는지 말하고 싶어서다"라고 표현했다.
누군가 진실을 외부에 알리는 일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더구나 그 상대가 큰 힘과 세력을 지닌 집단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대체로 우리들 대부분은 나의 삶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타인의 일에 대해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므로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약자의 진실은 용기없는 사람들의 외면으로 인해 이 사회의 바닥으로 슬그머니 묻히고 만다.
그렇다. 억울하게 피해를 당한 당사자가 그토록 수치스러운 일을 조용히 묻어 버리지 않고 굳이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폭로하려는 이유는 폭행을 가한 그 당사자의 죄를 물어 사회에서 매장시키려는 그런 나쁜 의도가 아니라 또다시 이런 일이 이 사회에서 재발되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림으로써 상대적인 약자로서 이 사회 어딘가에서 지금도 폭행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런 사람들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할 수 있하는 선한 영향력을 기대해서다. 그렇기에 저자 또한 이렇게 강조한다.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다시 시를 쓰며(2015년 7월)
2014년 8월 말 소설 <청동정원>을 끝낸 뒤 아홉 달이 지나도록 저자는 제대로 된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랫만에 시를 만들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노력이 시였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의 의미)를 확대할려는 노력, 일상의 언어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에서 시가 탄생했다.
시는 살아 있는 숨결이며 생명이기 때문에, 때를 놓치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지는 않는다. 내게 왔던 시들, 내가 놓쳤던 순간들, 꿈처럼 왔다 가버린 사랑을 생각하며 나는 탄식한다. 인생은 지루하도록 길지만, 시처럼 아름다운 시간은 짧았다. 앞으로 내게 올 시들, 깊고 맑은 얼굴을 상상하며 나는 노트북을 닫는다. 봉천동의 2층 카페에서 자판을 두드리다 너를 보았다. 너, 푸르고 푸른 나뭇잎들. 내가 가고 난 뒤에도 그 자리에 있을 영원한 젊음이여.
자신 있으면 얼마든지 타협해(2017년 6월 3일)
최선을 다하는 삶보다 차선을 다하는 삶이 더 어렵다. 타협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게 된 지금, 난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려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언젠가 어느 기업의 연구원과 간부들을 상대로 진행한 강의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원칙을 지키는 건 쉬워요. 그냥 (원칙을) 지키면 돼요. 그러나 타협은 어려워요."
타협하면서도 망가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절충할 수 있다. 자신을 지킬 자신이 잇으면 악마하고도 거래하는 게 정치 아닌가.
문단 내 성폭력(2018년 2월 17일)
1992년 등단 이후 저자가 원하지 않은 신체적 접촉(성추행)을 했던 남자는 4명이다. 악수를 하며 그녀의 손을 오래 잡고 손바닥을 간질이는 등 비정상적인 행위를 한 사람들도 두어 명 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그녀는 밝힌다. 이는 일부 매체에서 그녀가 JTBC의 '뉴스룸'에 출연한 뒤 "최영미 시인 문단에서 수십 명 성추행"이라고 왜곡 보도를 했기에 이를 해명한 글이다.
권력을 쥔 남성 문인들의 이런저런 요구를(노골적이지 않더라도 결국 성적인 함의를 포함한 메시지를) 거절했을 대, 여성 작가가 당하는 보복은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시간에 걸쳐 '제외되는' 식으로 문단의 주변부로 밀려나간다. 그들에게 희롱당하고 싶지 않아 문단 모임을 멀리하고 술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더 큰 불이익을 당하는 셈이다.
미투는 과거와 미래의 싸움(2018년 3월 23일)
작년 가을에 시를 쓰고 사람들 앞에서 '괴물'을 읽은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다. 추운데도 많이 오셨더군요. 젊은 그들의 열기에 감염되어 저도 흥분해 무대에서 몇 마디 더 했지요.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게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겼지만, 남자와 여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날을 위해 더 전진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싸움은 나중에 돌아보면 역사가 될 것입니다."
저자의 용기가 돋보이는 글
산문, 즉 에세이란 글쓰는 이가 평소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특정이슈나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해 스스로의 주관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글이다. 따라서 이는 글쓰는 이가 느끼는 여러 생각의 편린이자 단상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전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은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글 중 동의할 수 없는 대목들, 심지어 눈에 거슬리는 글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의 용기가 내포되어 있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런 말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