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머스 린치 외 지음, 김소정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월
평점 :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다. 몸은 피부를 경계로 안과 밖으로 나뉜다. 안쪽에는 뼈와 근육, 피, 장기,세포 등이 있고, 바깥쪽은 '나'라는 형상으로서의 물질인 몸이 있다. 몸과 나는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몸으로 살아가며 가끔은 영혼의 일탈이나 해방을 꿈꾼다. 하지만 영혼은 몸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 '추천의 글' 중에서
우리들은 자신의 몸을 얼마나 깊이 생각할까?
책의 저자 토머스 린치는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버밍엄 대학에서 법학과 법철학을 공부했다. 1989년, 히틀러 정권 초기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경찰 출신 탐정 베른하르트 귄터가 활약하는 소설 <3월의 제비꽃>으로 데뷔한다. 이 작품은 이후 이어지는 <창백한 범죄자>, <A German Requiem>과 함께 '베를린 누아르 3부작'이라 불리며, 나치 치하에서 냉혹하고 비정상인 것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하드보일드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3월의 제비꽃>으로 필립 커는 프랑스 미스터리 비평가 상과 프랑스 모험소설 대상을 받았고, 영국 대거 상 처녀작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 책은 영국 BBC 라디오 3에서 방송된 ‘몸에 관한 이야기(A Body of Essays)’를 모아 엮은 것이다. 영국에서 주목받는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피부, 눈, 코, 폐, 심장, 갑상샘 같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에 얽힌 이야기를 한 편씩 들려준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 관련 지식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가들은 몸 속 기관이라는 지극히 생물학적 주제를 아름다운 문학적 형태로 바꿔놓는다.
즉 열다섯 명의 작가들은 소설, 시, 오페라, 스탠드업 코미디 등 활동 분야뿐만 아니라 출신지나 앓고 있는 질병, 작가 외의 직업 등 제각각 다양한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몸과 몸속 기관들에 대해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그들은 각자의 삶이 각자의 몸에 새긴 고유의 무늬를 읽어낸다.
피부는 우리가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할 때가 많다. 우리가 슬프고 화나고 절망스럽고 외로울 때면 피부는 부글부글 끓고 아프고 허물어진다. 대개는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쩌면 거의 대부분 모를 수도 있다. 아는 것이라고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들(일, 가족, 집, 정신)이 피부를 스멀거리게 만든다는 것뿐이다.
흉터가 남더라도 피부는 상처를 낫게 한다. 하지만 복숭아 같은 뺨은 더는 남지 않을 수도 있다. 더 많은 생을 살아갈수록 피부는 복숭아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더 오래 살아갈수록 이 세상과 당신을 가르는 이 탄력적인 장벽은 당신이 싸우고, 결국 이겨낸 전투의 흔적을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상흔들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은 감을 수 있어도 귀는 통제하기 어렵다. 소리를 차단하는 귀마개에서부터 300파운드나 하는 잡음 소거 이어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활동하는 귀를 막을 방법을 찾는다. 심지어 귀는 들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도 들을 소리를 찾는다. 손으로 귀를 막으면 맥박이 뛰는 소리, 머릿속에서 피가 흘러가는 소리처럼 아주 친숙하지만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우리 자신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귀는 장소다. 집이, 미로가, 궁전이 방과 복도와 통로로 가득 차 있는 장소인 것처럼 귀도 독같다. 귀의 일부는 머리 바깥에 있고 일부는 머리 안쪽에 읶으니 공적이기도 하고 사적이기도 한 장소다. 귀는 물과 비와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허락해준다. 한편 귀는 아주 취약하기도 하다. 갑자기 귀 바로 옆에서 모깃소리가 들린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보라. 우리는 귀걸이와 장신구로 귀를 치장한다. 귀는 우리 눈에 보이며,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꾸밀 수 있다. 하지만 귀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지 못한다.
입과 항문,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창자는 아름다움을 부패로, 군침 도는 식욕을 구역질로 바꾸어버린다.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몸과 맺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유산이 될 부패와 부식을 매일같이 경험한다. 몸은 신비롭다. 우리야말로 우리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큰 수수께끼는 바로 여기, 창자이다. 음식을 전혀 다른 형태로 바꿀 능력을 가진 우리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갑상샘은 목 아래쪽에 있는 나비넥타이처럼 생긴 분비샘이다. 누구의 것이든 갑상샘은 모두 녹이 슨 것 같은 붉은색으로 자연은 개인의취향에는 관심이 없다. 이를 가장 먼저 기록한 사람은 히포크라테스나 플라톤 등의 그리스인인데, 두 사람 모두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이를 언급했다. 두 사람은 이것이 호흡기 통로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17세기에 인기를 끈 가설은 '갑상샘은 여성의 목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기관'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은 살짝 부풀어 오른 갑상샘이 백조처럼 긴 목을 훨씬 아름답게 보이도록 한다고 여겼다. 다빈치, 카라바조, 티티안 같은 르네상스 시기의 거장들은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마리아를 그렸다. 메시아를 무릎에 안고 있는 마리아, 어린 예수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마리아, 구름 속에 승천하는 마리아 등등. 그림에 등자하는 마리아의 목 아랫 부분은 한결같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자신을 위해 모델로 일하는 여인들의 목이 부푼 것은 갑상샘 탓이라는 걸 알았을까? 박학다식했던 다빈치는 알고 있었을까? 마리아를 그리려고 자신들이 선택한 토스카나 혹은 움브리아 출신 소녀들이 갑상샘종을 앓고 있다는 것을 화가들이 알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리는 가장 복잡하고도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쨌거나 아침에 깨어 활동을 하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거의 흥미가 없다. 하지만 매일같이 쓰고 읽고 생각하는 동안 목의 가장 아랫부분에서는 모든 일이 골디락스 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애쓰는 작은 용광로가 있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가 되도록 애쓰는 나비넥타이 모양의 용광로가 말이다.
패랭이꽃을 든 성모(라파엘로,1507년)
몸의 이야기는 곧 우리들의 이야기다
책은 피부, 귀, 눈, 갑상샘, 대장, 뇌 등으로 이어지면서 열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 인체의 기관 중 한 곳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미처 몰랐던 지식을 배우면서 우리들은 자신의 몸과 더욱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설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