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 경쟁 시대
임용택 지음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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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반 영국에서 1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 사회, 경제, 문화 구조의 변화를 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금의 순도를 99퍼센트 또는 99.99퍼센트 등으로 표시하는데, 소수점 뒷자리에 9가 늘어날수록 순도는 더 높다. 이처럼 높은 순도의 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적으로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는, 과정에 대한 올바른 사회적 인식과 시스템이 절실하다. - '글을 시작하며' 중에서

 

 

과학기술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

 

이 책의 저자 임용택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서 기계설계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버클리대학교 대학원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 후 오하이오주립대학교 공과대학 산업및시스템공학과 조교수를 역임했고, 1989년 한국과학기술대 조교수로 부임했다. 1996년 에어랑겐대학교 생산공학연구소 훔볼트 팰로우 과정을 거쳤고, 2000~2002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기계전문위원을 지냈으며, 2007~2011년에는 KAIST 홍보국제처장, 대외협력처장, 글로벌협력본부장 등을 맡아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14~2017년 한국기계연구원 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후학 양성과 정밀제조업 분야 발전에 힘쓰고 있다. 2019년 기계공학 분야 연구와 개발, 후학 양성, 국제화, 정부출연연구기관 운영 등을 통해 국가산업 경쟁력 발전에 다양하게 이바지한 공로로 청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저자는 선진 교육 및 연구 환경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회적 기술, 사회적 기술을 이용한 국제화 전략,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통합을 통한 과학기술 강국 건설이라는 큰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례를 세밀하게 나누어 총 11장으로 정리했다.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저자의 의견과 함께, KAIST와 기계연이 이제껏 발전해오기까지 구성원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질적 평가가 확대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구성원들의 참여와 노력 없이 기관이 발전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공정한 평가가 중요하다. 평가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공정하게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어느 정도의 역사와 규모가 있는 연구실이라면 연구비 지원을 받는 평가가 상대적으로 신규 실험실에 비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기관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선 훌륭한 연구자와 행정원이 모두 필요하다. 따라서 평가 시스템은 업무와 기관의 특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일방적인 잣대로 줄 세우는 식의 평가는 곤란하다. 기계연과 같은 출연연의 평가 시스템은 연구, 공공, 행정 서비스의 세 분야가 같이 이루어져야 하며, 상대 평가보다는 질적 평가가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행정과 공공 서비스 부문과 연구 영역에서 이바지하는 구성원들의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기계연의 신임 연구원들은 2년차까지는 평가가 유예된다. 2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기존 연구원들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2015년, 신생 조직인 기계연 대구연구센터의 인사 평가 결과는 정말로 참담했다. 인사 평가를 담당한 연구부원장은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너무 가혹한 평가는 연구를 종료할 수도 잇다는 생각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2016년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일부 연구원들의 논문이 한국연구재단에 게재되는 등 대구연구센터의 실적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2015년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면 이런 성과가 발생했겠는가? 때론 황소걸음이 빠른 걸음인 것이다.  

 

 기계연 대구연구센터

 

 

고등교육 재정 지원 강화

 

"학사 과정의 수준을 대학원 과정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학사 과정 교육에 교수들이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고, 학과별 학사 과정 수준의 차이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ABET 평가팀의 KAIST 평가 최종 보고서(1992년)

 

(주석) ABET : 미국공학교육인증원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의 2017년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 경쟁력은 63개국 중 37위다.  세계경제포럼의 국가 경쟁력 순위가 2011년 24위에서 2017년 26위로 하락하는 동안, 대학 시스템의 질은 55위에서 81위로 급락했다. 한강의 기적은 교육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도 잘 훈련받은 인력이 공급되어야 이룰 수 있다. 교육 목적에 맞게 고등교육 재정 지원을 강화할 방안이 시급한 이유다. 그런데, 현 정권의 교육 정책을 보면 앞날이 참담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회의감일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기관 대 기관으로 이루어지는 공동 연구 주제는 전략적으로 대학의 경영진이 결정할 수밖에 없다. 재정적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 미국 정부는 국방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컴퓨터, 전자공학 등이 강한 대학을 지원했다. 최근에는 생명과학이 강한 대학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모든 대학을 균등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분산 투자 방식으로는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기가 어렵다. 21세기를 대비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연구중심대학이 필요하고, 잘하는 대학을 집중적으로 밀어줘야 한다. 이에 우리들도 전세계 연구중심대학과 경쟁하기 위해선 대학 육성 방식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과감한 도전의 유발효과 

 

한 기관이 발전하려면 국제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선 체계적인 국제 행사가 많은 도움이 된다. 2014년 10월 24일, 대전 ICC호텔에서 1회 미래기계기술포럼 코리아를 개최했다. 이 포럼에서 다룰 주제는 흔히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인더스트리 4.0이었다. 세종대왕 시절, 찬란한 과학기술의 역사가 있었던 점을 상기해서 이를 국제적으로 재현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자기부상열차는 소음과 진동이 적고 분진이 없어 친환경적이며 승차감이 우수해 미래형 열차로 꼽힌다. 이 기술은 전선 주변에 생기는 자력자력으로 열차를 선로 위에 살짝 띄워 동력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설치비용 또한 지하철보다는 30% 정도 적게 든다. 독일이 1971년 처음 개발했고, 1989년 동경 엑스포에서 일본이 선보인 적도 있다.

 

인천공항에 설치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는 무인 운행 시스템으로 개발되었는데,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 비상 대피로를 설치해야 함에도 처음 하는 일이라 성계 단계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미처 갖추지 못했다. 이 시스템이 안정되기까지 임시로 기관사를 활용하면 해결할 수 있음에도 인천공항공사는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2월 3일 세계에서 3번째로 개통됐다. 

 

작은 인연에서 시작되는 국제 협력

 

ARAMCO는 세계적인 석유회사다.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 위치한 ARAMCO 근처에는 킹파드석유광물대학교가 있다. 이 학교의 베키르 새미 일바스 교수는 기계과에 근무 중인데, 저자와는 국제 논문집 편집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사이였다. 한번은 그가 외국인 자문 교수단을 초청하려는데 서남표 총장을 원한다고 이메일을 보내왔다.

 

당시 자문단은 쉘석유회사 부회장, 유명 대학의 총장을 포함한 유력 인사들로 구성되엇는데, 이에 흡족한 서총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당시 칼리드 알 팔리 자문단 의장은 ARAMCO 회장이었다. 이렇게 맺어진 인년으로 KAIST는 ARAMCO와 이산화탄소 저감에 관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와 별도로 사우디아라비아 교육부 장관 일행이 2010년 10월 26일 KAIST를 방문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문화원 주관으로 사우디 교육부와 주요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문화원장의 소개로 킹사우드대학과 국제 공동 연구 과제가 성사되었다. 

 

 

 

인생을 행복하게 영위하려면

 

2014년은 한국의 무역 교역량이 세계 10위에 오른 해이다. 외국의 많은 이들이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하면서 이를 매우 궁금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에게 이를 문의해오면 "1962년 제1차 국가경제5개년계획을 필두로 중공업 위주로 신업화의 초석을 마련한 선각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가난에서 벗어나 좀 더 살아보겠다는 국민의 의지가 성공 신화를 이루어냈다"고 답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경제 혜택은 국민의 교육열, 민주화와 더불어 이룬 사회적 통합, 과학기술 연구 개발의 결과물임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는 기계 산업 의 부흥을 위해 1974년 4월 기계산업단지를 창원에 설립했고, 산업체에서 필요한 관련 연구를 진흥코자 1976년 창원산업단지 내에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한국기계연구원의 전신)를 설립했다.

 

기계연은 1973년 대덕연구단지 조성 계획에 따라 1992년 본원을 대덕으로 이동했다. 재료 부문은 기계연의 부설 연구 기관으로 창원에 그대로 남아 창원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 2014년 현재 대덕연구단지에는 KAIST, 충남대학, 대덕대학이 있으며, 22개의 국가 출연연이 자리잡고 있어서 전체 연구 인력은 2만여 명에 이른다.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힘입어 경제는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진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무역규제 사태 등을 극복하기 위해선 각국에 가지고 있는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에 의한 복합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잇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상대방을 원수로 여기는 그런 보이콧 정책은 자국에도 피해를 기친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아닐까.

 

1967년 4월과 1973년 10월에 발발했던 3,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했다.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이집트 동맹군은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제공권制空權에 기반한 이스라엘의 치밀한 작전 때문에 단기간에 초토화된 뒤, 국제연합의 중재로 휴전에 들어갔다. 이 전쟁은 한국에 교훈을 주었다.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에서 생존하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 정부는 이를 잊고 있는 듯하다. '탈원전'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생아 출산율 개선을 위해 지난 10년간 100조 원을 투자하고도 여전히 OECD국 중에서 최저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5년 OECD가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 평가는 더욱 충격적이다. 15세 국내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6.36점으로 48개국 중 47위다. 그렇다. 각 분야에서 문제의 본질을 좀 더 잘 들여다보고 허울보다는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과학기술 강국이 돼야 한다

 

한국 사회를 정치적 이분법으로 혼란을 만들 일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것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원칙을 지키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이를 통해 교육과 연구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한 과학기술 개발에 매진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과학기술 강국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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