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 상처 입은 뇌가 세상을 보는 법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조성숙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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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질문이 조금 많은 편이다. 미니밴의 뒷자리에 앉아 부모에게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부모가 울화통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계속해서 "그런데 왜요?"라고 묻는 꼬마 아이의 성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 이들 학문과 의학적인 신경학의 접점까지 공부하는 동안 나는 똑같은 엄밀함을 적용해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려 노력했다. 결정을 내리는 작동방식은 무엇인가? 정신질환은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와 뇌 사이에 벌어지는 상호작용은 무엇이며, 뇌는 어떻게 해서 우리라는 사람을 만들어내는가? - '서문' 중에서

 

 

 

 

책의 저자 엘리에저 J. 스턴버그 박사는 예일대학교 예일-뉴헤이븐병원의 신경과 상주의다. 그는 신경과학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어떻게 하면 뇌 연구를 통해 의식과 의사결정의 신비를 밝힐 수 있는지 탐구한다. 17세에 그의 첫 책 <우리는 기계일 뿐인가>를 출간해 철학과 신경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저술가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2세에 출간한 <뇌가 나를 그렇게 만든다>는 전작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논의를 전개하며 뇌의 결함이 있는 사람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이 책으로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주목한 젊은 과학저술가로 선정되었다. 지금도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리뷰>, <GQ> 등 다수의 매체에 기고하며 과학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시각은 세상을 안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은 결손된 시력을 보완하려고 다른 감각을 활용하는 게 비결이라고 말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은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보다 청력이 더 좋다고 한다. 대다수의 시각장애인은 사고를 당하기 전에 경험했던 사물의 생김새를 기억한다. 이에 반해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예컨대 포옹, 목소리, 향수냄새, 귀걸이, 긴 손톱 등처럼 만지거나 냄새를 맡거나 들음으로써 말이다. 

 

두뇌가 눈을 통과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면 인간은 카니자 삼각형을 볼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눈에 이것이 보이는 이유는 뭘까? 눈이 보낸 정보를 뇌가 '해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각은 빈틈을 메우고 외곽선을 그어가며 존재하지 않는 흰색 삼각형을 만든다.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뇌는 이런 식으로 세계를 창조한다.

 

 

사진에서 흰색 삼각형이 보이는가? 윤곽선이 없는 흰색 삼각형이 뒤의 삼각형과 검은 색 원을 부분적으로 가리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흰색 삼각형은 없다. 이는 착시 그림이다. 인간의 시각이 세상으로 향한 단순한 창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해석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이를 '카니자 삼각형'이라 부른다.

 

시각장애인도 꿈을 꿀 것이다. 그렇다면 꿈속에선 시각을 제공할까?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분명히 그들도 꿈속에서 생생한 장면을 만난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변에서 만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꿈을 꾼 시각장애여성은 키가 크고 잘 생긴 섹시한 남성의 머리는 금발이었고 주위는 온통 모래였다고 설명한다. 이 꿈엔 무의식이 개입한다.

 

아래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년)의 <석류 주변을 날아다니는 꿀벌 한 마리에 의해 깨어나기 직전의 꿈>(1944년)이라는 작품이다. 이는 자신의 아내가 낮잠에서 깨기 직전에 꾸었다는 꿈을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몽환적인 이 그림은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그중에서도 폭력적인 이미지와 남근의 상징으로 라이플총을 이용, 강간 장면을 묘사했다는 해석이 가장 유명하다.

 

 

"잠자고 있는 뇌는 능숙한 이야기꾼이다"

 

우리들이 꿈을 꿀 때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윙윙거리는 곤충 소리처럼 일부 자극이 꿈속 이미지와 합쳐지기도 한다. 잠자는 사람에게 물을 뿌릴 때 외부 감각이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다. 물세례로 인한 자극의 40퍼센트 이상은 그 사람의 꿈과 직접 합쳐진다. 잠에서 깬 피실험자는 비가 왔다거나 물총 세계를 받았다거나 비가 새는 지붕을 고쳤다는 등의 장면을 묘사한다.

 

꿈을 꾸는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이마앞엽겉질이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꿈이라는 것은 한 편의 영화와 비슷하다. 우리는 꿈속 모험을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대부분은 그렇다. 다만 자각몽(lucid dream)은 예외다. 자각몽을 꾸는 사람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심지어는 자기 의지대로 꿈속 세상을 탐험하기도 한다.

 

자각몽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렘수면에서는 이마앞엽겉질이 활성화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꿈을 능동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자각몽을 꾸는 사람은 꿈속에서도 자기숙고, 자기통제, 의사결정 능력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매번 굼을 짜릿한 가상현실 연습게임으로 바꾼다. 게다가 자각몽은 훈련을 받으면 습득이 가능한 기술이고, 성공적인 악몽 치료법으로 이미 사용되고 있다.

 

 

 

 

뇌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뇌의 전체 영역과 각 기능을 함께 살펴보게 된다. 우리가 흔히 '미쳤다'고 말하는 현상들에도 나름 배경과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인식의 빈틈을 메우는가?', '우리가 무심코 보는 것이 기분과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선천적 맹인이 환각을 볼 수 있을까?', '심상 훈련만으로 우리의 신체활동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최면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등 흥미로운 질문 덕분에 '뇌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가히 뇌에 관한 '백과사전'을 읽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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