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일어서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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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곳은 대개는 전원 지대고, 땅이다. 달리 뭐가 부족하건 땅만큼은 공급이 달린 적이 없었는데, 사실 땅이 그렇게 완전히 넘쳐나는 것은 어떤 지칠 줄 모르는 기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땅은 분명히 인간보다 앞서 생겼고, 오래, 아주 오래 존재해왔음에도,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늘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9쪽) 

 

 

마우템푸 가족의 일대기


책의 저자 주제 사마라구는 포르투칼 작가로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22년 포르투칼 중부 지역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3세 때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에 공산당에 입당해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 1975년에 국외로 추방되었으며 그 후로는 생계를 위해 번역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했다. 신사실주의 문예지 <세아라 노바>에서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9년부터 전업작가가 되어 소설, 시, 일기,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그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2010년 6월 18일,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란사로테섬에 있는 자택에서 지병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화공 도밍구스 마우템푸, 주요 등장 인물로는 아내 사라 다 콘세이상, 아들 주앙 마우템푸, 장인 라우레아누 카항카 등이다. 첫 무대는 포르투갈 남부의 시골길이다. 도밍구스는 몰아치는 폭풍우를 맞으며 아내와 어린 아들을 리어카에 태워서 이사 중이다. 첫 장면이 이렇게 날씨가 불순한 것은 앞으로의 마우템푸 가족의 여정이 순탄스럽지 않음을 미리 암시하는 셈이다.

 

거센 비바람을 맞으며 제화공 도밍구스는 장인에게 빌린 수레에 짐을 싣고 아내와 아들을 이끌고 몬트 라브르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는 중이다. 술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상황이 어려워졌기 때문인데, 그는 상크리스토방에 도착해서도 선술집을 전전한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은 란데이라로 이사하게 되고, 이번엔 그는 성당지기의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성당 사제인 아가메드스 신부의 여조카를 탐내는 눈으로 본 탓에 성당지기 임무에서 쫓겨나자, 이에 반발한 그는 미사 중 신부에게 완벽하게 망신을 준다. 결국 마우템푸 가족은 또다시 마을을 떠난다.

 

이런 도밍구스의 일생은 그리 길지 않다. 아내에게 다섯 아이를 낳게 하고, 어려운 삶을 비관한 그는 나뭇가지에 밧줄을 감고 목을 매달앗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수차례 이사를 하면서 타지로 떠나야 했고, 무책임한 탓에 가족으로부터 세 번이나 도망쳤으며, 세 번째는 결국 가족과 화해하지도 못했다.

 

"땅은 크고 탐욕스러운 입에 어울리는 풍만한 젖가슴을 가진 어머니, 자궁이다. 땅은 가장 큰 땅과 그냥 큰 땅으로 나뉘어 잇다. 아니 더 큰 것은 더 큰 것에 합친다고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때와 장소는 급변하는 20세기의 포르투갈이다. 소설은 가진 자들의 폭정에 저항, 삶의 조건을 쟁취해나가는 마우템푸 가족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라티푼디움이란 옛 로마 시절에 노예가 경작하던 광대한 사유지를 가리킨다. 20세기에서나 21세기에서나 땅은 가진 자들에겐 풍요를, 없는 자에겐 불행과 고통을 안겨준다.

 

도밍구스의 아내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토록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도밍구스에 푹 빠져 이 남자가 아니면 다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결혼 승낙을 받앗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 쓸모짝에도 없는 술주정뱅이가 사위로 결코 흡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딸은 그러지 않았다. 급했다. 덜컥 속도위반으로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정치 상황은 군주제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다. 이후 치솟는 물가와 굶주림에 더욱 궁핍해진 사라와 세 아이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도밍구스를 뒤로한 채 몬트 라브르의 친정아버지 집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아이들은 올가미에 목을 매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일찍부터 밀밭의 일꾼으로, 가정부로 나가 일하며 냉엄한 농촌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주앙 마우템푸는 이제 가장이고, 맏이다. 첫째의 유산이 없는 첫째,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이며, 아주 짧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큰아들 주앙이 파우스티나와 결혼해 아들 안토니우와 딸 그라신다, 아멜리아를 낳고 근근이 살 무렵, 살라자르의 독재 정권에 맞서 하루 여덟 시간 노동과 임금 인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대지주들과 주교는 일터에 나오지 않는 농민들로부터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군경찰과 공모하여 무고한 노동자들을 체포하기에 이르고, 주앙 마우템푸 역시 파업의 대가로 체포되었다가 가까스로 풀려난다. 이 무렵 사라 다 콘세이상은 거의 매일 남편 도밍구스가 핏자국 난 목을 드러낸 채 올리브나무 숲에 누워 있는 꿈을 꾸다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주앙의 아들 안토니우는 군에 징집되고, 큰딸 그라신다는 몬트 라브르의 첫 번째 파업꾼 마누엘 이스파다와 결혼한다. 주앙은 농장 동료들과 파업을 진행하려다 누군가의 밀고로 4년 만에 다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6개월 만에 출옥한다. 제대한 안토니우가 프랑스로 일하러 간 사이 그라신다는 아버지의 파란 눈을 빼닮은 딸을 낳고, 이로써 온 가족들이 모여 아기의 탄생을 기뻐한다. 

 

한편 몬트 라브르의 밀밭에서는 일자리에 대한 소동과 이를 억누르려는 지주들의 신경전이 반복되는데, 광활한 밀밭의 수확을 포기해서라도 노동자들을 응징하려는 지주들의 횡포에 농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진다. 광장에서 큰 시위가 일어나고, 몇 사람은 다치고 죽는다. 그리고 뒤이어 보수 우파의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카네이션 혁명' 끝에 소작농들은 대지주의 땅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앙 마우템푸는 그의 명이 다하여 가족들의 보살핌 아래서 평온하게 생을 마감한다. 

 

민중은 굶주리고 더러워지게 되어 있었다. 자주 씻는 민중은 일하지 않는 민중이다, 아, 도시에서는 다를지 몰라도, 나도 그건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대농장에서는 서너 주, 때로는 몇 달 동안, 그게 알베르투가 원하는 거라면, 집에서 멀리 나와 일을 해야 하고, 그동안에는 얼굴도 손도 씻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명예와 사내다움에서 중요한 점이다. 만일 씻거나 면도를 한다면, 말도 안 된다고 웃음을 터뜨릴 만한 그런 가정을 현실로 만든다면, 그 사람은 윗사람과 동료 일꾼들 모두에게 놀림거리가 된다. 그게 이 시기와 시대의 훌륭한 점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기뻐하고, 노예가 자신의 굴종을 기뻐한다는 것이.

 

 

 

포르투갈 현대사를 바탕으로 대농장에서 일하는 농업 노동자 3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들이 억압당하고 짓눌리던 존재에서 우뚝 일어서는 존재로 바뀌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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