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눈이 먼 남자는 초조한 마음에, 얼굴 앞으로 두 손을 내밀어, 그가 우유의 바다라고 묘사했던 곳에서 헤엄치듯이 두 손을 휘저었다. 입에서는 벌써 도와달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절망으로 넘어가려는 마지막 순간에, 눈이 먼 남자는 다른 남자의 손이 자신의 팔을 가볍게 잡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겨우 고등학교만 졸업한 후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나이 마흔 여섯에 이르기까지 우익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용접공 시절 독학으로 문학수업을 했던 사라마구는 신사실주의 문예지 「세아라 노바」에서 계급투쟁적 시각의 작품을 선보이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7년에 소설 <죄악의 땅>으로 데뷔했다.

 

그 후 19년간 한 편의 작품도 생산하지 못 한 채 공산당 활동에 전념하며, 기술자 공무원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자유기고가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그가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 여섯 되던 해인 1968년에 시집 <가능한 시>를 내놓은 이후의 일이었다. 문학의 전성기를 연 것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이었다. 사라마구는 이 작품으로 일약 포르투갈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순식간에 유럽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문제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눈이 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주행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한 남자의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이 원인불명의 실명失明은 이 남자에게만 그치는 게 아니다. 마치 급성 전염병처럼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익명의 도시, 익명의 등장인물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알베르토 까뮈의 소설 <페스트> 에서처럼, 불가항력의 재난은 인간성의 다양한 국면을 드러낸다. 같은 이름으로 2008년 개봉한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눈 먼 남성을 도와주겠다고 나선 낯선 사람은 과연 '선한 사마리아인'이었을까? 아니다. 이 사람은 눈 먼 남성을 집 근처에 내려다 놓고는 그의 차를 훔쳐서 달아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결코 선하지 않은 사마리아인도 실명을 당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행태를 보는 셈이다. 과연 우리들 중에 자신은 남의 물건을 그렇게 도둑질하지 않겠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눈 먼 남성은 아내가 귀가하길 기다린다. 집에 돌아온 아내에게 갑자기 자신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그의 아내는 이 남성을 병원으로 데려간다. 병원 안은 복잡하다. 마침내 눈 먼 남성의 차례가 되었다.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환자의 말에 안과 의사는 환자의 눈을 살펴본다. 언뜻 봐도 남자의 눈은 건강해 보인다. 홍채는 밝게 빛나고 공막은 하얗고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휘둥그레진 눈, 얼굴의 주름, 치켜올린 눈썹을 보아하니 괴로운 모습이 역력하다.

 

이후 안과 의사는 귀가해서 자신이 겪은 이상한 환자의 얘기를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눈이 먼 남자는 마치 눈을 뜬 채로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진하고 균일한 백색을 본다"고 단언했다. 잠자리에 들어야 할 때라 그는 탁자에 흩어진 책을 모아 책꽂이로 가져 갔다. 아뿔사, 어찌 된 영문일까? 안과 의사도 자신의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전체로 실명 전염병이 퍼져나감에 따라 불가피하게 국가는 공권력을 가동한다. 눈 먼 사람들을 수용소에 모아 놓고 무장한 군인들이 이들을 감시하도록 한다.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상태를 우려해서다. 심지어 통제에 필요한 총기 사용권까지 부여한다. 한편, 수용소 내부에선 눈 먼 자들의 약탈과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발생한다. 보이지 않음에도 인간들의 소유욕구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 수용소에 화재가 발생한다. 이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 여성은 바로 안과 의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수용소 생활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남편을 보호할 목적으로 자진해서 안 보이는 척하면서 수용소에 입소했던 것이다. 수용소 내의 모든 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이 여성만은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만약 이 세상이 모두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도 이런 모습이 연출되는 듯하다. 분명하게 죄를 지은 사람인데도 어떤 이들은 이 범죄인이 결백하다면서 '조국 수호'를 외치고 집단 시위까지 펼친다. 정말로 안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 속의 안과 의사 아내처럼 안 보이는 척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중요한 점은 안 보려는 행동에 있는 것이다.         

눈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그와 세계를 갈라놓던 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가라, 너는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정신병원이라고 정의된 곳에서 살았다. 사실, 그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307쪽)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ㅡ <훈계의 책>에서

 

이 소설의 맨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이말을 지금의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지면서 서평을 마차려 한다. 읽기 쉬운 소설이 아니기에 소설 뒷편의 '작품 해설'을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모든 이에게 발표된 지 십년 이상 지난 이 소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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