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주소록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해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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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무레 요코1954년 도쿄 태생으로, 니혼대학교 예술학부를 졸업한 후 광고회사 등을 거쳐, 1978년 '책의 잡지사'에 입사했다. 이때 지인의 권유로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1984년에 첫 에세이 <오전 0시의 현미빵>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여성들의 소소한 일상을 경쾌하고 유머 넘치는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요코 중독'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카모메 식당>,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세 평의 행복, 연꽃 빌라>, <일하지 않습니다>,  <구깃구깃 육체백과>, <그렇게 중년이 된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지갑의 속삭임>,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등이 있다. 특히, 이 책 <고양이의 주소록>은 디자인을 바꾸며 세 번이나 출간했을 정도로 인기를 끈 스테디셀러다.

 

대체로 우리 일반인들은 개나 고양이 등의 동물들을 피하거나 무심한 듯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아온 저자는 남들과는 다른 섬세한 터치로 이들을 바라본다. 책에 실린 39편의 동물과 인간의 에피소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들이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그런 소재를 섬세하게 이야기한다.

 

 

 

 

"동물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그들의 이름을 묻는다"

- 길리언 잭슨 브라운

 

 

저자는 고양이를 정말로 좋아하나 보다. 이중묘격, 소용돌이무늬 고양이의 행방, 매달리는 고양이, 새끼를 데리고 온 고양이, 소문을 좋아하는 고양이, 마법을 거는 고양이 등 여러 편의 에피소드에 고양이들이 제일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제법 큰 화단을 가진 복층 아파트에 살때 주인 없는 고양이들이 화단에 자주 출현해 화단을 어지럽히면 바로 고무호스로 물세례를 퍼붓던 나였다. 고양이에 관한 나의 일화는 또 얘기하기로 하고 저자의 에피소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중묘격, 우리 사람들도 한 몸에 다양한 인격을 갖고 있듯이 고양이도 이런 모습이 내재되어 있나보다. 저자는 이사를 가면 동네의 고양이 상황을 주로 살핀다. 다세대주택에선 동물을 키우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남의 집 고양이하고 친목을 도모할 심산이었다. 수컷 고양이 '부타오'는 길가는 사람들을 놀리는 취미를 가졌다. 길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채로 있으면 누가 봐도 영락없이 죽은 시체로 보인다. 그런데, 이 녀석은 주인 할아버지가 "곤, 또 그러고 있냐. 다들 놀라니까 빨리 집으로 들어와"라고 말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냐옹"라고 답하면서 태연하게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 녀석의 속마음은 "에헤헤, 또 한 놈 속였다"라며 쾌재를 부를 것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고양이를 '영물靈物'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도 고양이를 멀리한다. 내가 여름방학 시골집 앞마당 평상에서 듣던 '옛날 옛적 얘기'에 등장하던 고양이는 소름을 돋게 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자신을 해롭게 한 대상에겐 반드시 복수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기에. 이후부터 고양이는 미워할 수도 없는 멀리하고픈 존재가 되고 말았다. 특히,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어떤 집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다른 마을에 고양이를 버리고 왔는데, 밤에 집으로 찾아왔다는 얘기엔 온몸에서 땀이 났던 기억까지 있다.

 

하지만 나의 어린 딸은 나와 영 딴 판이었다. 복층아파트 앞 화단엔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들을 키우기에 볼거리가 많은 야생화 동산이었는데, 이곳에 자주 출몰하는 고양이들에겐 밀애를 즐기는 장소였던 거다. 어느날, 아침, 그것도 휴일날. 화단에 물을 주려고 나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앙증맞은 새끼 고양이들이 보름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의 외침에 두 딸과 아내가 나와서는 귀엽다고 바라보며 한껏 즐기다가 심지어 작은딸은 호기심이 발동해 새끼의 등과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어미가 찾아와서 새끼를 데려갈지 모르기에 더이상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가족을 철수시켰다. 역시나 어미가 입에 물고 새끼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나중에 상황이 종료되었는지 현장을 살펴보았더니 새끼 두 마리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동네 동물병원에 문의했더니 사람의 손을 많이 탄 새끼는 어미가 버린다고 했다. 이후부터 이 두마리 새끼는 나의 어린 두 딸이 키우는 대상이 되었다. 한동안 실내에서 우유와 사료 등을 먹고 자라다가 이후엔 화단에서 놀도록 해주었는데, 결국엔 바람나서(?) 가출하고 말았다. 아이들은 모두 아빠 탓이라고 원망했지만, 자연으로 돌아간 게 잘 된 일 아닌가 말이다.

 

'매달리는 고양이'편은 씁쓸한 현실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마주친 주인없는 강아지가 좋다고 졸졸 따라오는 그런 광경과 흡사하다. 저자가 장 보러 가던 중 뒷골목에서 버려진 고양이를 만났다. 암컷인데, 빈약한 체형으로 가엽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저자의 다리에 찰싹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어. 그래서 아무리 그래도 안 돼"


비록 고양이를 좋아하는 저자일지라도 다세대주택에선 동물 키우는게 불법인지라 냉정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녀의 다리 주위와 사이에 몸을 비벼대면서 숫자 8을 눕힌 모양으로 돌아다니며 한 걸음도 떼지 못하게 했다. 이때 열세 마리 고양이를 키웠던 본가의 어머니 해결법이 떠올랐다. "진심으로 말하면 안다" 이후 몇 차례 실강이 끝에 저자는 고양이와 헤어졌다. 정말 고양이가 사람의 진심을 알까?

과연 이런 고양이가 있을까 싶다. '소문을 좋아하는 고양이' 편에는 옛날 사람들은 '고양이는 나이를 먹으면 사람 말을 알아든는다'는 얘기가 소개된다. 10년 전쯤 저자의 본가 근처 채소 가게엔 암고양이가 살았다. 25년째 살고 있는 할머니 고양이 시로다. 참새의 방앗간처럼 이 가게엔 동네의 온갖 소문이 흥미거리로 나돈다. 이때 시로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대화를 듣는다고 한다. 예전에 AFKN TV에 '믿거나 말거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게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전파사 부부는 어쩐지 이혼할 것 같더라"
이런 말을 하면서 모습을 지켜보니 지금까지 자고 있던 시로가 벌떡 일어나서 언제나처럼 옆으로 다가와 한쪽 귀를 쫑긋 세우고 음음, 하고 얘기를 듣고 있더란다.
"하여간에. 소문 얘기 할 때만 그래요. 대체 그런 얘기 들어서 뭐가 좋다는 건지"(211쪽)

 

 

 

이밖에도 책은 개(강아지), 꿀벌, 생쥐, 원숭이, 새 등 다양한 동물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그냥 흘려 들을 그런 동물들과의 일화는 우리들이 사람이기에 만들 수 있는 얘기거리가 아닐까.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비추어볼 때 이런 섬세한 감정이 녹아든 스토리에서 우리들은 충분히 힐링되기 때문에 저자의 이 책이 오래토록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리라.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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