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플로베르는 한 예술 형식을 다른 예술 형식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명화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믿었다. 브라크는 우리가 그림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야 이상적인 경지에 도달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경지에 이르기란 요원한 노릇이다. 우리는 뭐든 설명하고, 의견을 내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구제 불능 언어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림 앞에 서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재잘거린다. 프루스트는 미술관을 둘러보며 그림 속의 인물들이 실제로 누구와 닮았는가 촌평하기를 좋아했다. 아마 그것이 직접적인 심미적 대립을 능숙하게 피하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격이나 설득으로 우리를 침묵 속에 빠뜨리는 그림은 드물다. 그런 그림이 있다 해도 침묵은 잠시뿐, 우리는 바로 그 침묵을 설명하고 이해하기를 원한다. - '서문' 중에서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그림 안내서

 

책의 저자 줄리언 반스<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다. 1946년생인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했고, 1969년부터 3년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다. 이후 유수의 문학잡지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했고, <옵서버> <뉴 스테이트먼츠>지의 TV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1980)로 서머싯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해,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태양을 바라보며>,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내 말 좀 들어봐>, <고슴도치>, <잉글랜드, 잉글랜드>, <용감한 친구들>, <사랑,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시대의 소음> 등 12권의 장편소설과 <레몬 테이블>, <크로스 채널>, <맥박> 등 3권의 소설집,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등의 에세이를 펴냈다. 또한, 1980년대에는 댄 캐바나라는 필명으로 4권의 범죄소설을 쓰기도 했다.

1986년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영국 소설가로서는 유일하게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의 E. M. 포스터상, 1987년 독일 구텐베르크상, 198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프랑스 페미나상 등을 받았으며,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의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하며 유럽 대부분의 문학상을 석권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1988년 슈발리에 문예 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 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 훈장을 받았다.

 

1989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리코의 그림 한 점을 두고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던 저자는 2013년까지 25년간 <현대 화가>,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가디언〉 등 다양한 예술, 문학 잡지에 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이 책은 그의 기고 중 주목할 만한 글을 선별해 엮었다. 주로 화가의 새로운 작품 전시회에 맞춰 발표된 이 일련의 글에서 그는 예술이 어떻게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그리고 모더니즘으로 발전했는지 되짚어간다. 이제, 그의 그림 안내 속으로 들어가보자.

 


제리코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는 낙마落馬 사고로 3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지만 12년 동안의 작품을 통해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최고 명성을 쌓았다. 특히, 재난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 '메두사호의 뗏목'은 낭만주의 운동의 대표작이 되었으며, 말馬 그림을 포함하여 일상적인 사건에서 극적인 요소를 한껏 끌어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 그림은 역사의 닻줄을 풀어 던지고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이 그림은 난파 장면도 아니다. 우리는 그 운명의 뗏목에서 일어난 잔인한 고통을 그저 상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받는 그들이 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 그림의 비밀은 에너지의 패턴에 있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들여다보자. 점처럼 작은 구조선으로 손을 뻗는 저들의 근육질 등을 통해 솟아오르는 격렬한 용오름을 보라. 그 모든 안간힘을 보라.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대부분의 인간적인 감정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듯이, 우리는 이 그림의 모든 게 집중된 저 용오름의 몸부림에도 아무런 형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희망뿐 아니라, 모든 짐스러운 갈망, 그리고 야심과 증오와 사랑(특히 사랑). 이 같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만한 대상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드문가? 우리는 얼마나 절망하여 신호를 보내고, 하늘은 얼마나 컴컴하며, 파도는 얼마나 높은가 말이다. 우리는 모두 바다에서 길을 잃고, 파도에 쓸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고, 우리를 구조하러 오지 않을지도 모를 무엇을 소리쳐 부른다. 재난은 예술이 되었다.


 

쿠르베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는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부르주아 출신으로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농촌의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들은 '사실주의 미술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미술가동맹의 회장이었던 그는 정치 활동에도 열심이었으나, 파리 코뮌이 무너진 후 체포되었고 그 결과 파산하게 되었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낭만주의에 맞지 않는 기질을 지녔다면,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는 참된 낭만주의자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지녔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다. 1855년, 〈화실〉〈오르낭의 매장〉이 만국박람회에 전시되지 못하자 쿠르베는 직접 전시회를 기획해서 데뷔했다.

이에 대해 시인 보들레르('악의 꽃')는 "무장 폭동의 난폭함 그 자체"였다고 기록했다. 그때부터 쿠르베의 인생과 프랑스 미술의 미래는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내 자유를 얻고 있다. 나는 예술의 독립을 지키고 있다" 그는 그렇게 썼는데, 뒤의 말은 마치 그저 앞의 말을 공들여 다시 표현한 것 같다.  

세잔

폴 세잔(1839~1906)은 부유한 은행가의 사생아로 태어났는데,  인상주의와 플랑드르 미술에 영향을 받았다. 세잔의 정물화 가운데 가장 알려진 작품인 '사과와 오렌지'는 무미건조한 주제를 위대한 미술로 끌어올렸다. 말년에는 '목욕하는 사람들'처럼 몽환적으로 채색된 누드화 습작을 주로 그렸다.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머리를 문처럼 그려. 누군가의 머리가 흥미로우면 난 그것을 아주 크게 그리지" 한편, 그의 그림에는 '개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영혼은 그리는 게 아니야" 세잔은 투덜거리곤 했다. "몸을 그려야지. 젠장, 몸을 잘 그리기만 하면, 영혼은-몸에 그런 게 깃들어 있다면-사방에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 단체브가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세잔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실물과 닮았다는 점보다는 인물이 거기 실제로 있다는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데이비드 실베스터는 세잔을 가리켜 "우리가 실제로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밀도의 재현에 있어서는 최고"라고 평했다.  

브라크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1882~1963)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큐비즘)를 창시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에 최초로 그림 속에 알파벳과 숫자를 그려 넣었고,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에는 오려낸 종이 조각들을 캔버스에 붙이는 '파피에 콜레' 기법을 처음 시도했다. 비록 카리스마 넘치는 피카소의 그늘에 가리긴 했지만, 입체파 초기의 혁명적인 실험 정신은 그에게서 나왔다.

피카소가 자신의 인간 동료들을 대한 방식에 관한 글을 읽으면 "인간 동료들"이라는 말이 과연 적합한 용어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질 때가 있다. 피카소는 맹렬한 귀재에 신적 존재로서 고집과 허영심을 겸비한 사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고대 그리스신화의 올림포스산에 거주하면서 인간사에 불쑥불쑥 개입하던, 극히 이기적이고 농간에 능한 장난기 많은 신과 같았다.

상대가 친구나 연인이면 그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더 크기만 할 뿐이었다. 프랑수아즈 질로가 말했듯이 "그의 가장 비열한 장난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따로 예비되어 있었다" 브라크는 질로처럼 피카소에게 저항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호치킨

하워드 호치킨(1932~)은 영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로 캔버스에 풍부한 색채와, 구도와 공간의 환영적 기법, 대담한 붓 터치 구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문인의 화가다. 그는 이야기하고, 묘사하고, 상상하고, 설명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왔다. 1992년 2월 델리, 호치킨(이하 H.H)이 그린 영국 문화원 벽화의 개막식날 저자는 그 현장에 있었다. 저자의 평을 살펴보자.   

나는 H.H.의 작품을 30년 동안 봐왔다. 그런 그의 작품들이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전시회에서 다시 모이는 모습을 보면 여러 나라의 지인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만 같다. 되풀이되는 삶의 기쁨 중 하나다. 몇 년 뒤 낯익은 그림 앞에 다시 설 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 그렇고말고!' 또는 '좋군!' 또는 '맞아!' 또 어떤 때는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는군!' 이 진부한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그의 작품과 맺어온 지속적인 우정, 그의 작품을 흡수하고 또 그 작품에 몰두하는 행위는 조리 있는 논평으로 표현되는 일이 거의 없다. (…) 이 그림들은 내 눈과 가슴과 머리에 말을 건다. 

 

 줄리언 반스의 사적인 시각으로 펼쳐지는 그림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은 반스를 가리켜 "소설 형식의 혁신가"라고 했다.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의 에세이들도 형식 면에서 그런 특징을 갖추고 있다. 재미와 함께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지식. 여기에는 전통적인 비평적 이해에 따른 부분도 있고 사적인 것도 있다. 저자가 펼치는 미술 이야기를 살펴보면 누구든 많은 지식을 얻게 된다. 미술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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