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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한국사 능력 검정 개념완성 고급편 - 한능검 고급(1급, 2급) 시험 대비, 개념 설명 + 이론 + 사료 및 자료 + 기출 문제 및 변형 문제 수록 ㅣ 설민석 한국사 능력 검정 개념완성
설민석 지음 / 단꿈드림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지금껏 두 차례에 걸쳐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중급코스를 교재와 인터넷 강의를 병행하여 공부했다. 이젠 공부에 다소 탄력이 붙어 고급편에 도전해보기로 작정했다. 교재와 인터넷강의 모두 설민석 역사전문가를 선택했다. 설쌤은 아래와 같이 고급편의 수강대상자는 한능검 1,2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교원 준비생들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의 창업을 주도한 세력은 혁명파와 온건파로 나눌 수 있다. 혁명파는 정도전, 권근, 조준 등이며, 온건파는 정몽주, 길재 등이었다. 이후 신흥 무인 세력인 이성계에 의한 역성 혁명의 성공으로 권력을 잡은 혁명파는 개국공신, 즉 훈구파로 대접받고 반면 온건파는 자연히 중앙에서의 벼슬을 못하고 대신에 지방으로 내려가 후학 양성에 힘쓰는 사림파가 되었다. 나중에 사림파의 중앙 진출 시도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훈구파의 배척은 힘겨루기를 계속한다. 이로 인해 4차례의 사화가 발생했다.
조선조의 치적을 국왕별로 검토해보면 태종 이방원의 공이 크다 하겠다. 도덕적으로는 형제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비정함의 대명사로 비춰지지만 왕권강화에 힘쓴 결과 튀어나온 못을 모두 정비한 탓에 다음 보위에 오른 세종이 탄탄대로를 걷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셈이다. 이런 탓에 아마도 세종조에 가장 화려한 업적들이 나타날 수 있었을 것이다.
태종~ 6조 직계제, 사병 혁파, 호패법 실시, 사간원 독립, 종친의 정치 참여 제한
세종~ 의정부 서사제, 집현전 확대, 4군(최윤덕)과 6진(김종서) 개척, 때마도 정벌(이종무)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과 단종은 힘이 약한 군주였던 탓에 결국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이 왕위(세조)에 오름으로써 다시 왕권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조는 다시 6조 직계제를 부활시키고, 나라의 법을 제정하려고 <경국대전>의 편찬을 시작하는 등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넘기는 기반을 탄탄히 했던 것에 견줄 수 있는 나라경영을 했다.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성종은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이어서 설쌤은 반드시 시험에 출제된다는 중요한 내용을 강의했다. 바로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다툼인 사화의 발생이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으로 인한 무오사화, 폐비 윤씨 사건으로 인한 갑자사화 등이다. 이는 모두 폭군 연산군 때의 일이다. 양대 사화로 인해 사간원이 폐지되고 영남 사림이 대거 몰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후 반정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른다. 이 대목에선 개혁정치를 표방한 조광조가 시험출제의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급진적인 개혁을 펼쳐나가면서 '위훈삭제'라는 악수를 둠으로써 '주초위왕走肖爲王'에 몰리면서 사약을 받고 만다.
조선후기로 넘어가서 선조에 이르러 붕당의 형성으로 정치의 전개과정이 난맥상에 빠지고 만다. 무릇 정치란 민생을 위한 노력일진대 붕당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그런 정치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붕당 정치는 아직까지도 이 나라에 지속되고 있으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나라의 근본이요 주인은 국민이자 백성일텐데, 이들 정치판의 붕당들이 자신들의 뱃속만 채우려 들고 있다. 조국의 법무부장관 임명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붕당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다. 이는 이조 정랑직을 서로 자기 족 사람을 앉히려는 다툼이었다. 심의겸이 주축인 서인은 기성 사림이었고, 김효원이 주축인 동인은 신진 사림이었다. 이후 득세하던 동인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리되어 북인(강경파)와 남인(온건파)으로 붕당이 결성된다. 이들의 분화 원인은 정여립이 모반 사건을 일으켜 서인 정철에 의해 동인세력들이 대거 제거되었고, 나중에 광해군을 왕위 후계자로 추천했다가 선조의 미움을 받고 파직을 당한 정철의 처벌 수위를 놓고 파벌이 생겼던 것이다.
동인서인 구별법
나중에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꾼 후금의 두 차례 침입을 겪은 인조, 병자호란 때는 명나라와의 명분을 앞세운 척화파(김상헌, 윤집 등이 주도)와 백성들의 안전이라는 실리를 내세운 주화파(최명길 주도)의 뜨거운 논쟁 끝에 결국 인조는 청나라와 군신 관계를 체결한다. 군사력이 약한 나라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런 아픔을 겪은 효종은 이후 왕위에 올라 북벌정책을 펼친다. 안타깝게도 펼쳐보지도 못하고 요절하고 만다.
효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현종은 치적보다는 오히려 '예송 논쟁'이라는 얄궂은 일로 시험에 자주 출제된다고 한다.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기해예송은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사망한 효종이 차남이므로 1년이면 된다는 것이고, 남인은 3년을 주장햇다. 송시열의 안이 채택되었다. 15년 뒤 발생한 갑인예송에선 사망한 효종비를 위해 자의대비가 시어머니로서 얼마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 논쟁이었다. 1년을 주장한 남인의 안이 채택되었다. 그런데, 현종이 갑자기 죽고 숙종이 즉위하자 서인은 호기를 잡아 남인을 대대적으로 제거했다. 이를 '경신환국'이라고 한다. 설쌤은 출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밑줄을 그으라고 한다.
출제빈도가 높은 정조
인강 사이트 소개 https://pass.dankkum.com/
한능검 기출 강좌 https://pass.dankkum.com/Lecture/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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