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취향을 팝니다 - 콘셉트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까지 취향 저격 ‘공간’ 브랜딩의 모든 것
이경미.정은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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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이다, 저출산이다 하며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고, 상품과 서비스는 무한경쟁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비자들이 공간에 '오고 싶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공간에 오게 하고, 머무르게 하는 것, 공간을 느끼게 하고, 기억에 남게 하고, 다시 찾게 하는 것이 가개를 운영하고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공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고객의 공간 취향을 저격하라

 

이 책의 저자 이경미는 20년간 다수의 패션 브랜드에서 마케터, VMD,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며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왔다. 현재는 코오롱인더스트리 FNC에서 커스텀멜로우 브랜드의 다양하고 유니크한 공간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의류직물학을 전공하고 좀 더 심도 있는 공간 기획의 길을 연구하고 있다.

 

공저자인 정은아는 네티션닷컴, 바바패션,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등 다수의 여성복 브랜드와 캐주얼, 골프웨어 브랜드에서 VMD로 일해 왔고, 최근에는 온오프라인 패션 마케팅까지 업무의 영역을 넓혔으며, 국내 페인트 제조사에서 '공간 컬러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의상학을 전공했으며, '현장' 중심의 스페이스 크리에이터로서 늘 깊이 있는 공간 디자인을 기획하고 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20년 경력의 베테랑 공간 기획자들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를 읽고 콘셉트 설정부터, 디자인, 서비스, 마케팅의 소소한 디테일까지 정교하게 공간에 녹여내는 '공간 브랜딩' 전문가들이다. 단순한 '인테리어' 수준이 아니라, 입지부터 외관, 진열, 조명, 동선, 촉감, 냄새, 소리, 온도, 소품, 포장, 스태프의 에티튜드까지 모든 것에 콘셉트와 메시지를 주입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그곳이 좋아지게' 만드는 공간의 마법을 만들어내고 있다.

 

 

 

 

공간의 콘셉트

 

대체로 공간의 개념 잡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기능적 콘셉트', '디자인 콘셉트', '업사이클링 콘셉트' 등이 바로 그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능적 콘셉트'는 공간 디자인보다 판매 상품에 집중된 콘셉트이다. 이런 경우 상품에 집중하기 위해 단색單色 칼러로 공간을 연출함으로써 고객의 시선 분산을 배제한다.

 

예컨대, 커피를 판매하는 게 목적이라면 흰 색 벽면에, 오직 원두와 커피에 집중된 가구와 요소들로 공간을 구성한다. 이런 공간 콘셉트가 브랜드의 상징이 된 사례도 있다. 즉 푸른 병 모양의 심볼로 유명한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다. 이 매장의 디자인 콘셉트는 바리스타와 고객, 고객과 커피만을 무대 위에 올린다. 다른 방해 요소 없이 말이다. 아래 사진(일본 신주쿠의 블루보틀 매장 내부)을 참고하라.

 

이어서 '디자인 콘셉트'는 차별성 비주얼이 돋보이는 '창조적 콘셉트'와 트렌드의 흐름을 반영하는 '반영적 콘셉트'로 구분할 수 있다. 한국의 '젠틀몬스터'는 안경과 선글라스가 메인 상품인 브랜드임에도 매장 내부는 갤러리인지 아이웨어 매장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실험적인 공간 디자인을 취함으로써 통상적인 '안경매장'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마지막으로 '업사이클링 콘셉트'는 기존의 공간 스토리를 현대적 요소들과 조합해 새롭게 재탄생시킨 개념이다. 즉 기존 공간의 역사와 콘셉트를 유지하되, 일부를 좀 더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1990년대에 유렵에서 시작된 것으로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런던의 현대 미술관 '테이트 모던', 고가의 철로가 공원이 된 뉴욕의 '하이라인'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블루보틀

 

 

 

디테일에 숨어 있는 '의미'와 '취향'

 

비주얼적인 요소들과 디테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디테일 뒤에 숨어 있는 의미와 취향은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강력한 힘이다. 먼저, 매장의 외관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소비자들에 대한 첫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장의 콘셉트를 잘 표현한 외관이 있는가 하면, 아예 외관을 무시하고 내부 콘텐츠에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더욱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케이스는 간판이 없어도, 매장의 입구가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어도 SNS를 통해 소비자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는 '인스타 성지聖地' 같은 경우이다. 서울시 망원동에 소재하고 있는 '자판기 카페'는 입구를 핑크색 자판기로 만들어, 드어가는 입구가 어디인지 한참을 찾아보게 만듬으로써 외국에서 온 관광객까지 이곳을 찾아 기념촬영을 할 정도이다.

 

이처럼 유쾌한 외관 아이디어가 있는가 하면, 아예 기존 곤물의 외관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간판조차 설치하지 않거나 아주 작게 매장명을 표시하고 있는 지도를 갖고서야 겨우 찾아갈 수 있는 공간들도 있다. 영국 런던의 유명 온라인 편집숍 'LN-CC'의 오프라인 매장은 방문 전 예약이 필수이다. 지도가 있어도 입구를 쉽게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 헤매다가 결국 매장을 찾게 되면 성취감이 든다.

 

자판기 카페

 

LN-CC외관

 

 

매장의 조명과 조도

 

조명은 공간에 시각적 리듬을 부여하고 평면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조명의 강약에 따라 주목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역할을 한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밝은 빛에 끌린다. 이런 점을 이용하면 공간 내에서 사람들의 동선을 자연스레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양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백화점의 경우, 1, 2층에 위치한 고가의 명품 매장 조도는 고급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연출해주는 3,000k으로 살짝 노란 빛을 띈다. 반면, 스포츠나 캐주얼 브랜드의 경우에는 4,000k의 아이보리 빛으로 조도를 조정한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공간들도 조도를 조정하여 공간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소비자들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도록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약 10년 전에는 3,000k 정도로 조도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근래에는 4,000k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등 시대에 따라, 혹은 유행하는 인테리어 무드에 따라 선호하는 조명의 색이 달라지기도 한다.

 

  조명의 온도

 

 

전문가 셰프의 레시피 재료를 매대에 진열한다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슈퍼마켓 '빌더 앤 데 클레크'는 한정된 공간에 상품을 큐레이션하는 방식을 참고로 제시한다. 슈퍼마켓이 대체로 품목별로 상품을 진열하는데 반해 이곳은 전문가 셰프가 직접 만든 레시피에 해당하는 재료를 함께 매대에 구성하는 방식으로 상품을 진열한다. 빌더 앤 데 클레크는 1인 가구 비율이 증가하고 있으며 집밥을 선호하는 네덜란드에서 '밀박스'의 인기가 급상승함에 따라,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조리에 필요한 재료를 계량하여 판매하는 공간으로 판매 방식에 변화를 준 매장 형태인 것이다. 상품 판매 방식의 변화는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의 변화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공간의 차별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영상이나 사진 촬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다 

 

공간이라는 오프라인 플랫폼과 크리에이터의 만남은 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롯데백화점은 SNS 인플루언서와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인 '네온'을 오픈하여 오프라인 유통와 온라인 유통을 통합하는 새로운 유통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예전엔 백화점 매장 내에선 어떤 영상물의 촬영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젠 플랫폼의 개발과 더불어 롯데백화점 매장에서는 '촬영 중'이라는 POP를 세워놓고 중국 파워 블로거들을 일컫는 '왕홍網紅'의 촬영을 공식적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현대H몰 역시 인플루언서 전용온라인 매장인 '훗'을 오픈했다. SNS 인플루언서들의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해당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여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껏 영상이나 사진 촬영에 매우 민감했던 백화점이 변화하는 소비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이러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잘 붙인 이름 하나 열 디자인 부럽지 않다

 

일본에는 '원엘디케이1LDK'라는 라이프스타일 숍이 있다. 원엘디케이란 L(Living), D(Dining), K(Kitchen)의 약어로 방, 거실, 부엌을 통합하여 지칭하는 부동산 용어인데, 방이 1개 있는 주택의 구조, 즉 '원룸'을 가르킨다. 이 브랜드명은 처음 오픈한 매장의 원엘디케이 구조에서 우래되었다고 한다. 이후 오픈한 매장의 이름도 특정한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로 지어졌다. 원엘디케이 아파트먼츠, 원엘디케이 아오야마 호텔 등이다.

 

원엘디케이의 매장들은 공간의 이름이 곧 콘셉트이다. 원엘디케이 아파트먼츠는 집과 같은 평면 배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오야마에 위치한 아오야마 호텔은 호텔 콘셉트의 2층짜리 매장으로, 작은 정원과 리셉션, 호텔 객실의 모습을 매장에 그대로 구현했다. 원엘디케이 데포는 말 그대로 창고 콘셉트로, 공간을 구성하는 소재부터 레이아웃이 모두 창고처럼 디자인되어 있다.

 

같은 브랜드의 동일한 상품을 취급하지만 매장의 위치와 규모, 상황에 따라 콘셉트를 다르게 정하고 매장을 디자인한 것이다. 물론 콘셉트에 맞춰 다르게 구성된 상품들이 지점들 간의 차이를 만들고, 공간의 구조와 콘셉트가 상이한 만큼 상품들의 디스플레이도 다르지만, 원엘디케이라는 브랜드가 드러내고자 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는 일부 상품과 집기 등으로 통일된다.

 

 원엘디케이 데포

 

 

테라로사 커피공장

 

2002년, 테라로사는 고급 원두커피를 로스팅해 유명 호텔이나 카페 등에 판매하면서 한국의 명품 커피 시장을 개척했다. 테라로사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문하생들이 강릉에 카페를 창업하면서 강릉은 커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커피 공장이 미술관 같았으면 좋겠다', '맛도 멋진 공간에서 탄생한다'라는 대표의 공간 철학이 반영되면서 테라로사는 현재 전국에 1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매장마다 콘셉트가 다르다는 점이다. 

 

테라로사 수영점이 위치한 'F1963'도 의미 있는 공간이다. 1963년에 만들어진 고려제강 부지를 2016년 부산비엔날레 개최 이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지금의 모습으로 운영하고 있는 F1963은 기존 건물의 형태와 골조는 유지하되 담겨지는 콘텐츠에 따라 재해석하여 리노베이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 안에 위치한 테라로사 수영점은 이전에 이 공간이 와이어 공장이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 공간이다. 공장에서 나온 폐자재와 기계 등을 인테리어 요소로 배치하여 옛 것을 유지하되 현재의 것과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그들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라. 공간 활용에 대한 이들의 감각이 느껴지는가?

 

F1963

 

 합정동 앤트로사이트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혁명

 

경영의 귀재라 불렸던 고故 스티브 잡스의 등장과 함께 디자인은 더욱 중요해지는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젠 디자인이 단순한 산업 미술이 아니라 경영의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경시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됨으로써 '비주얼'이라는 파트가 생겨난 것이다. 책은 우리들에게 콘텐츠로서의 디자인이 고객의 취향을 어떻게 저격하는지를 보여준다.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거나 특히 비주얼 MD라면 책의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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