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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자 - 《화식열전》으로 보는 고전 경제학
이수광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9년 3월
평점 :
경제정책이 혼미하게 되면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개인은 부를 축적하지 못해 파탄에 빠진다. 중국 역사 속의 부자를 살피는 것은 오늘의 중국 부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부에 대한 통찰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중국에 "아름다운 이름은 백년을 가고 더러운 이름은 만년을 간다"라는 말이 있다. 부자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밝힌 중국 부자의 비밀
책의 저자 이수광은 대한민국 팩션의 대가로 불린다.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그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1983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 부문, 미스터리클럽 제2회 독자상,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는데, 그는 방대한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의 지혜를 저술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평소 역사서 외에도 경제 문제, 특히 부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그런 관심을 경제경영 도서로 풀어낸 바 있다. 즉 장사로 성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현재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나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의 의미와 목적을 되새기고 성공하는 장사를 위한 노하우를 전하는 <장사를 잘하는 법(돈 버는 장사의 기술)>과 그밖에 <부자열전>, <선인들에게 배우는 상술>, <성공의 본질>, <흥정의 기술>, <한국 최초의 100세 기업 두산 그룹 거상 박승직>, <부의 얼굴 신용>, <조선부자 16인의 이야기> 등이 있다.
저자는 현재 중국이 추구하는 패권국가는 한국 경제에는 불행한 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미 지나온 과거의 역사를 보더라도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거나 속국 노릇을 해왔었는데, 이와같은 위험에서 탈피하려면 중국을 더 잘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중국의 문화와 경제를 살펴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사실 중극은 대국임에도 하는 짓을 보면 소국小國스럽다.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이를 핑계 삼아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을 막고 롯데쇼핑을 이용하지 말도록 종용하던 그런 나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중국 역사에 이름을 남긴 부자 16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남긴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 속의 '화식열전貨殖列傳'에 실린 부의 지혜를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중국의 부는 광활한 영토와 13억 인구에서 나온다. 현재 지구촌에서 억만장자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부를 축적하고 증식하는 일을 중국에선 화식貨殖이라고 한다. 사마천은 놀랍게도 2천 년 전에 이미 인간의 삶을 통찰했던 것이다. 그는 '화식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병사가 전쟁터에 나아가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용맹하게 성를 공격하는 것은 공을 세워 상을 받기 위한 것이고, 거리의 젊은이들이 강도짓을 하거나 살인을 하는 것, 달리는 말처럼 사지死地로 뛰어드는 행위도 결국은 재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미녀들이 곱게 단장한 뒤 요염하게 눈웃음을 치고, 천 리를 나아가 호객하는 행위도 부를 구하기 위해서다. 돡을 하는 것은 돈을 빼앗기 위한 것이며 관리가 뇌물을 받는 것이나 높은 관직에 오르려하는 것도 부를 얻기 위한 것이다. 농민, 공인, 행상이 저축하여 증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부를 위하고 재화를 늘리기 위해서다"
책은 중국의 부자 16인을 소개하면서 이들은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증식했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데, 부당하게 취한 부富는 진정 올바른 것인지를 우리들에게 묻고 있다. 즉 힘을 가진 관료(공무원)들과 결탁하여 거부가 되었거나, 자신의 권력 덕분에 남보다 쉽게 부자가 되었다면 과연 진정한 부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아름다운 이름은 백년을 가고 더러운 이름은 만년을 간다"
재물의 신 범려范蠡
중국에선 부자를 논할 때 '도주공의돈부 陶朱公依頓富, 만고일부석숭萬古一富石崇'이라고 한다. 이는 도陶 땅 주공과 의依 땅 돈부를 말하는 것이고 만고에 하나뿐인 부자 석승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주공은 월나라의 범려를, 의돈은 한나라의 목축업자로 거부가 되어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범려는 약 2,500년 전 인물이지만 '화식열전'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범려는 스승 계연計然으로부터 부국강병富國强兵에 대해 배웠다. 전쟁이 예상되면 군사를 양성해야 하고 홍수가 생길 것 같으면 미리 수레를 준비해야 하고, 또 수시로 필요한 물자를 조사해서 수요와 공급을 알면 부강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수십년 간의 날씨 통계를 분석, 천문의 법칙을 깨닫고 날씨가 좋을 때 배船와 수레車를 사둔 뒤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이를 비싸게 팔았다. 이처럼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라'는 가치투자법은 이미 중국에서 오래 전에 실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범려는 정치가로서 중국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강대국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핍박을 받던 월나라를 부국강병으로 만들어 중원의 패자로 만들었다. 이후 월왕 구천의 됨됨이가 부족함을 느끼고서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월나라를 탈출한 뒤에는 세 차례나 천금千金을 벌었으며, 두 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부富의 3요소를 축적, 증식, 분배라고 보았을 때 범려는 분배정의까지 실천한 것이다.
범려의 부국강병책
젊은 남자는 늙은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
젊은 여자는 늙은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
여자가 17세, 남자가 20세임에도 비혼이면 부모가 벌을 받게 하라
임산부는 나라에서 극진히 돌봐주고 쌍둥이 출산시엔 나라에서 양육비를 부담하라
중국인이 그를 재신財神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돈을 버는 능력보다 오히려 분배하는 그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를 백성의 것이라 보았기에 몸소 분배정의를 실천했다. 분배라는 개념을 가진 자의 은혜가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일찍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인물이므로 아직까지도 현대 중국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부국강병책 중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인구증가정책이 무척 인상적이다. 오나라로 끌려간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인구증가 계획을 세운 것은 고대 국가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 정부도 이런 점을 크게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리다매 薄利多賣의 이론가 백규白圭
백규는 주周나라 출신으로 제나라, 조나라, 위나라 등을 싱대로 장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선 비록 전쟁 중일지라도 상인들이나 여행객들을 막지 않았다. 그래서 시장은 전시임에도 활기를 띠었고, 춘추전국시대에 유세객들이 중국 전역을 떠돌 수 있었기에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정신 문화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는 이런 시대에 장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이미 주나라는 쇠퇴하여 천자의 지위가 약했으므로 벼슬에 나가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들리면 항상 상인들에게 곡식 시세를 물었다. 물건값의 변동을 계속 살피면서 시장의 시세는 흉년과 같은 변고에 따라 크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상단을 따라다니면서 매일의 날씨를 기록했다.
무릇 장사란 이익을 남겨야 한다. 그는 싸게 팔되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상술, 즉 박리다매 이론을 실전에 활용했다. 곡식의 낟일이 영글 무렵 이를 대량으로 매수했다가 저렴한 가격에 내다팔았다. 통상 수확철이 되면 곡식값은 오르지만 남들과 달리 이에 구애받지 않고 대량으로 싸게 파는 상술로 크게 돈을 벌었다. 이렇게 그는 대상大商이 되었다.
재산을 나라에 바친 복식式
목축으로 한나라의 대부호가 된 복식은 일찌기 부모를 여의고 어린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의돈의 얘기를 듣고 의돈을 찾아가 그로부터 부자가 되는 법을 배웠다. 가난한 부모였기에 그의 형제에게 남겨진 재산은 양 1백 마리 정도였다. 양의 숫자가 많아지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양을 팔지 않고 번식만 시켰다. 이후 1천 마리까지 늘어난 후로는 더욱 빠르게 늘어나서 1만 마리가 되었다.
성인이 된 동생이 성품이 착했지만 가난한 목동이라는 이유로 여자들이 시집오려 하지 않자, 그는 양 1백 마리만 남겨 놓고 모두 동생에게 주고 분가를 시켰다. 이후 또 다시 열심히 관리한 덕분에 그의 양은 계속 번식하며 금새 1만 마리 이상으로 늘어났다. 반면 형에게 큰 도움을 받은 동생은 빈털털이가 되는 실패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그는 동생의 가족을 모두 거두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마을 사람들은 복식 형제를 존경했다.
한무제의 시대에 흉노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장군 위청, 곽거병, 이광 등이 흉노 정벌을 명받았다. 이에 복식은 전쟁을 수행하려면 군비가 많이 들 것으로 판단되어 한나라 도읍을 찾아가 재산 절반을 전쟁 자금으로 내놓겠다고 상주문을 올렸다. 한무제는 처음 듣는 이름인지라 사자를 보내 재산을 바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게 했다. 그의 답변은 의외로 검소했다. "부자는 창고에 쌓아놓은 재산을 내놓아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이다.
정의롭지 못한 부자들
하나뿐인 부자 석숭石崇은 아버지 영향으로 서진의 무제 때 벼슬을 시작해 이후 혜제 때 형주자사까지 벼슬이 올랐다. 그는 고위 관료임에도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기는커영 오로지 부정한 돈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부하들에게는 뇌물을, 돈벌이가 잘되는 품목인 향료의 독점 판매 등을 통해 크게 돈을 벌었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첩을 1백여 명을 거느리고, 하인만 8백여 명을 거느렸다. 하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석숭의 반란을 두려워 한 혜제가 보낸 대장군 손수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소굉蕭宏은 양나라 무제의 동생이다. 황족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재산이 충분함에도 그는 재산을 모으는 일에 열중했다. 매점매석, 고리대금업 등으로 재산을 증식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전충錢蟲(돈벌레)"이라 불렀다. 그는 전쟁 때 전비가 아까워 군사들에게 훈련을 시키지 않아 패전당하고 만다. 그가 활활약하던 시기는 '군벌의 시대'였다. 군사로 권력을 장악, 칼로써 다스리다가 빨리 망하고 말았다.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자
저자는 책의 말미에 올바른 부의 축적에 관해 글을 남긴다. 즉 "부는 정당한 방법으로 취할 수도 있고 부당한 방법으로 취할 수도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취하는 것은 착한 일이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취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석숭, 소굉, 유근 등은 더러운 이름이 만세에 남을 것이고 범려, 복식 등은 아름다운 이름이 만세에 남을 것이다" 황금만능의 시대라 불리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