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딸들 1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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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몇몇 매머드 사냥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아주 대단한 내용은 아니다. 이야기의 끝에 가서 큼직막한 고깃덩어리를 얻는 내용은 더욱 아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결혼 예물은 나오지만 여자들을 훔쳐가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 예물을 놓고 벌이는 말다툼은 나오지만 전쟁 이야기는 아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여자들이 겪는 삶의 일생

 

이 소설의 작가 엘리자베스 M. 토마스논픽션과 소설을 넘나들며 동물과 인간의 문화를 관찰하고 생각하고 쓰는 데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스미스 여자대학과 래드클리프 여자대학에서 영문학과 인류학을 공부했으며, 1950년대 초 문화인류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으로 이주하여 원시 상태에 머물고 있던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연구했고, 그곳 원주민 인 부시먼을 주인공으로 <무해한 사람들(The Harmless People)>을 발표하여 소수인종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그 뒤 문화인류학적 관점에 기초한 여러 권의 논픽션을 출간하다가 부시먼들과 함께 살며 체험한 깨달음을 시베리아 공간 에 투영시켜 소설 <세상의 모든 딸들(원제; Reindeer Moon)>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대표작품으로는 <The Animal Wife>, <The Old Way>, <The Tribe of Tiger>, <Warrior Herdsmen>, <A Million Years with You> 등 다수가 있다.

 

인류가 출현해 지구상에서 정착을 시작하던 구석기시대를 배경으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먼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행로를 거쳐 지금 이곳에 와 있으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시간의 길 위에 어떤 헌신을 통해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를 슬픈 서사로 보여 준다. 즉 2만 년 전에 살다간 주인공 야난의 삶을 후손인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숙명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데, 소설은 여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들, 운명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통, 남몰래 감춰야 하는 눈물과 슬픔 뒤의 행복 등 여자의 삶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여자의 절망을 말하는 비극적 스토리가 아니기에 더욱 감동이 크다.

 

 

 

 

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우리 인간의 선조들은 달의 모양을 보고서 시간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고 이를 기준으로 일생을 살았다. 2만년 전 후기 구석기시대, 현재의 시베리아 지방을 근거지로 삼아 살아가던 사람들은 1년을 13개월로 나누고 있었다. 즉 3월의 봄을 기점으로 '얼음을 녹이는 달', '월귤의 달', '망아지들의 달', '여행의 달', '파리 떼의 달', '매머드의 달', '노란 잎의 달', '순록으 달', '눈보라의 달', '오두막ㅇ의 달', '굶주림의 달', '포효의 달', '버려징 순록 뿔의 달'의 순으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원제목이 '순록의 달'이니 이는 10월 정도에 해당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야난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다. 나중에 그녀의 가족은 모두 죽고 어린 동생 메리와 둘 밖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겪게 되는 삶의 질곡이 바로 여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엄마처럼 살게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야기는 차르 강 북쪽 기슭에서 가정 높은 둔덕에 자리잡은 그레이랙의 오두막집에서 시작된다. 이 집은 다른 곳과는 달리 굴뚝이 2개나 될 정도로 크고 널찍했다. 그레이랙과 그의 형제들이 한창 젊었을 때 이 집을 지은 것인데, 이렇게 규모가 큰 것은 그만큼 세력이 강하다는 걸 의미한다. 즉 오두막 바깥의 초원에 형성된 사냥터를 소유하고 있는 실력자이다. 

 

야난의 아버지 아히그레이랙의 처남이다. 아히의 두 누이(틸, 아이너)는 그레이랙의 아내이다. 아히도 부인이 2명(래프윙, 요이)인데, 주인공인 야난과 동생 메리는 래프윙이 낳은 딸이다. 아무튼 야난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 부족들은 여름 순록을 따라 이동한다. 사냥터는 풀의 강과 더 멀리 떨어진 불의 강 유역이다. 그레이랙은 이번 사냥은 불의 강으로 간다고 지시했다. 그 이유는 결혼할 여자 셋을 얻기 위해서이다. 야난은 궁금했다. 왜냐하면 오두막집에서 아내가 없는 성인은 4명(티무, 엘로, 스틱, 프록)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야난은 엄마로부터 자신은 이미 티무의 정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시 부족의 경우 사람이 동물보다는 한 단계 발전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동물적인 생리적 습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부족의 남자들은 여자의 몸을 탐했다. 오두막집 부족에도 이런 사건이 생겼다. 티무가 요이 이모와 몸을 섞는 일이 생기면서 야난의 아버지는 오두막집의 수장인 그레이랙과 불편한 관계가 발생하자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려고 이동하던 중, 엄마 래프윙이 길에서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핏덩이 동생도 며칠 후 먹지 못해 죽고 만다. 아버지 아히도 손을 다쳐 팔이 썩어가는 상황이라 사냥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을 겪다가 결국 죽는다. 마침내 남겨진 가족은 달랑 야난과 동생 메리 둘 뿐이다. 어머니가 숨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야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랐다.

 

"사람은 이렇게 살고, 이렇게 죽는 거란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처럼 이렇게 살았어. 호랑이를 따르는 까마귀처럼 남편을 따르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사는 법이란다. 야난, 너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너는 티무의 아내로, 메리는 화이트 폭스의..."

 

이후 야난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을 이어간다. 아버지가 남긴 무기로 사냥에 나서고, 풀뿌리를 캐며 동생과 함께 헤어졌던 오두막집 일족들을 찾아 나선다. 이처럼 힘든 삶의 여정을 거치면서 야난은 전보다 훨씬 강인한 여성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한다. 마침내 부족과 만난 야난, 기쁘기만 할 줄 알았던 그녀의 눈에 부족의 남자들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이나 여자들을 너무 쉽게 대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가했기 때문이다.

 

"야난, 너도 언젠가는 자라서 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겠지.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월등히 위대 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단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란다"

 

야난은 어머니의 이 말을 불의 강으로 떠나기 전에 상기했어야 했다.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야말로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알아야 했고, 남자들의 독단을 욕하기 전에 여자의 삶이라 해서 결코 비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옳았다. 남자와의 잠지리도 거부하고, 임신이나 출산은 더 더구나 원치 않았던 야난이었지만 결국 그녀도 자신의 어머니가 걸어왔던 그런 길을 걷고 만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고 외치던 그녀가 말이다.

 

그렇다. 태곳 적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사냥하고, 곡식을 수확하고, 조개나 과일을 채취하면서 말이다. 어디 이뿐이랴? 신석기시대가 도래하면서 부족의 구성원들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오두막집을 너머 도시가 생기고 농업이 발전하면서 더욱 큰 노동력의 투입이 요구되었다. 인간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굴러가면서 여자의 위상과 가치는 점점 변하게 되었다. 딸 야난에게 어머니 레프윙이 남긴 유언은 이렇다.

 

"남자가 고기를 지배하고 오두막을 지배해서 여자보다 위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위대하다면 여자는 거룩하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니까"

 

 

 

 

 

 

여자의 진정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문화인류학자인 작가가 2만년 전에 살았던 야난을 현재로 소환해서 그때의 여성들 삶을 보여주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여자의 진정한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 '세계 여성의 날'이 지나갔다. 먼 옛날에 비하면 여성의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그런 곳들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여성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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