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사람을 말하다 - 인생의 지혜를 담은 고전 강의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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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에 돛단배처럼 모든 일이 뜻대로 된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불운한 일이 닥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모든 일이 극에 달하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경 속에서도 신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순경(順境)일 경우는 어떻게 하는가? 거안사위(居安思危). 매사에 조심하여 신중해야 한다. 이것이 <주역>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첫 번째 의견이다.

 

 

인생의 지혜를 고전에서 찾는다

 

이중톈은 사학자이자 방송학자, 역사학자이다. 샤먼廈門대학교 인문대학원 교수. 1947년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태어나, 1981년 우한武漢대학교를 졸업하고,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샤먼대학 인문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랫동안 문학, 예술, 미학, 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등의 분야를 연구하며 학제간 연구를 통해 탁월한 글을 써왔으며, 다양한 인문학 분야를 통섭한 연구로 중국의 신 '르네상스맨'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중국의 사회상을 반영한 스타작가이다. 2007년 4월까지 그의 책 6권은 1억 위안이 넘는 수입을 창출했고, "이중톈 현상"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역사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였다. 2006년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대중들에게 강의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저서로는 <중국인에 대한 한담閑話中國人>,  <중국의 남자와 여자>, <중국 도시 중국 사람>, <품인록>, <제국의 슬픔> 등이 있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중국인의 일상생활과 문화관습을 다루었다. 저자의 유쾌한 입담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풀어낸 중국인에 관한 해석을 담고 있는데, 차별화된 관점과 중국인 학자의 내부적 시선으로 중국인의 진면목을 탐구한다. 상다리가 부러져도 차린 게 없다는 주인의 허풍부터 뇌물은 혐오해도 받지 못하면 혼자 바보가 된다는 이상한 공평의식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중국인의 사상과 문화를 다룬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주역과 중용으로 세상의 이치를 알아 다가올 어려움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갖고, 병가와 노자를 통해 사람의 본성과 개인의 잠재된 힘을 이해하고, 위진시대의 지식인과 선종 조사의 일화를 살펴보며 인생에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우리들 모두에게 이미 익숙한 고전인 <주역>, <중용>, <손자병법> 등이 인간의 지혜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했으며, 여러 고전을 서로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주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주역>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변하는 것이기도 하고 불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변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현상이나 사물은 변한다. 그러나 사물이나 현상의 배후에 있는 규율, 법칙은 불변한다. 다시 말해 변화하는 것은 현상이고, 불변하는 것은 규율이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현상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역시 규율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원히 변화하며,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이 바로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불변이다. 변화의 규율 역시 불변이다.

 

'변화의 규율이 불변'이라면 마땅히 인식하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역>이 하는 일은 이러한 규율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은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동시에 보편적이고 주도면밀한 진리이다. 이른바 '주역'이란 가장 간단한 부호와 체계로 부단히 변화하는 현상 배후의 영원불변의 본질적 규율을 인식하고 개괄하며 차악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p.27

 

 

모순을 통한 변화, 변화를 통한 발전

태괘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다. 비괘는 반대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럼 비괘의 형태가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역경>은 맞는 것이 아니며,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왜 그런가? 무슨 문제도 없고 어떤 모순도 없는데 왜 좋지 않다는 것인가?

 

관계가 발생되지 않기 때문이다(天地不交). 그리하여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좋은가?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것이 가장 좋다. 왜 그런가? 위치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위치가 맞지 않은데 왜 좋은가? 변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좋은 것은 그것이 '맞지 않기不對' 때문이다. 맞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음, 이것이 바로 비괘이다.

 

"모순이 있어야 충돌이 있고, 충돌이 있어야 변화가 있으며,

변화가 있어야 발전이 있고, 발전이 있어야 전망이 있다"  

 

 

임기응변의 방법

공자의 흥정에는 원칙도 있고 최저 또는 최소 기준이 있다. 일종의 마지노선이 있는 셈이다. '견자'라는 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견'이란 무엇인가? 하지 않는 바가 있음이다有所不爲. 왜 하지 않는가? 도덕적이지 않고 정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열사가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할 수 없다. 단지 소수의 몇 사람이 가능할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

 

말言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당신이 나는 영원히 진실만 말하겠다고 하거나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라고 말하고, 또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가능할까? 혹시 가능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그럴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최소, 또는 최저의 기준을 마련하면 된다. 만약 그것도 할 수 없다면 아예 어떤 일에 대해 말을 하지 않겠다고 최후의 선을 그어버리면 된다. 이 정도는 아마도 많은 이들이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용은 현실적인 처세 기술

중용은 처신의 예술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조의 두 번째 정처인 변부인卞夫人의 예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삼국지, 후비전后妃傳>의 배송지裴松之 주注에 따르면 변부인이 정실이 된 후 조조는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전리품 중에서 장신구를 얻으면 제일 먼저 그녀에게 보여주며 좋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그러나 변부인은 그중에서 중간 정도의 것을 고르곤 했다.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반복되자 조조가 기이하게 여기고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변부인이 말하길, 가장 좋은 것을 고르면 사람들이 탐욕스럽다고 할 것이고, 가장 형편없는 것을 고르면 위선적이라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에 중간 정도의 것을 골랐다고 했다. 그녀는 분명 제대로 처신할 줄 아는 여인이었다. 이처럼 변부인은 중용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과연 중용은 어려운 것인가 아닌가?

 

 

전쟁의 목적은 효용의 극대화 

손자가 전쟁 계획을 수립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利'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오직 이익만을 도모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점을 분명하게 언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전의 전쟁은 언제나 무슨 정의라든지 도덕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자가 말한 전쟁의 목적은 효용의 극대화였다. 참으로 대단한 견해가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시라. 전쟁은 얼마나 많은 본전이 필요한가? 그런데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는가? 설사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할지라도 막상 본격적으로 전쟁 상태에 돌입하게 되면 최소의 대가를 통해 최대의 승리를 추구하지 않겠는가? 아군의 희생은 최소화하고 가능하다면 적군을 완전히 궤멸시키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니 '전쟁의 경제학'이야말로 모든 전쟁에 임하는 용사나 통치자들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승리하는 자와 패배하는 자

 

"이길 수 없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고(不可勝在己),

이길 수 있는 것은 적에게 달렸다(可勝在敵)"

 

손자의 말이다. 이는 패배 여부는 자신에게 달렸고, 승리 여부는 적에게 달렸다는 뜻이다. 패배 여부가 자신에게 달린 것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승리 여부가 적에게 달린 것은 적군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승리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만약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자신이 실패하고, 적군이 잘못을 저지르면 적군이 실패한다. 결론적으로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는 쪽이 실패한다. 잘못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다. 그렇기 때문에 패배는 다른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손자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 사고방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승리와 실패 가운데 실패가 승리보다 더 중요하며, 적군과 아군 중에서 적군이 아군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쟁의 결과는 승리, 패배, 그리고 무승부 중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경우를 얻으려면 적군이 실패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나쁜 경우를 면하려면 자신이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실패가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다.

 

 

노자의 창반조唱反調

 

노자가 가장 존중한 것은 무엇인가? 갓난아이, 여인, 물, 곡(轂), 곡(谷), 박(樸). 이러한 것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나이 어림, 유약, 음성陰性, 허공, 원시原始. 여기서 우리는 노자의 가치관을 볼 수 있다. 아래쪽으로 향하고 부드러운 것을 귀하게 여기며, 양陽보다 음陰을 추구하며 무無를 숭상하고 원시 상태를 좋아한다.

 

이는 전통적, 주류적 또는 유가적이고 대중적인 가치와 다른 길을 간다. 예를 들어 중국인들은 노인을 존중하는데, 이는 노인들이 경험이 많고 그만큼 지혜롭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만약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자는 오히려 갓난아기가 가장 좋다고 말한다. 또 중국 전통사회가 당연시 여기는 남존여비 사상과는 다르게 여지들이 남자보다 총명하고 능력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일부러 상반된 주장을 하고 상반된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노자의 '창반조'이다.

 

 

사람은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모든 이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면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 이들이 있는가? 있다. 강과 바다이다. 알다시피 강과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이 원치 않는 것들, 예를 들어 진흙이나 오수汚水 등 천하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마다하는 일이 없다. 그 결과 강과 바다는 '백곡의 왕百谷王'이 됐다(<노자> 제66장). 사실 강이나 바다가 백곡의 왕이 된 것은 스스로 낮추고 텅 비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더러운 것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강과 바다와 마찬가지이다. 

 

"나라의 굴욕을 떠맡는 이만이 사직을 지키는 군주라고 할 수 있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일을 떠맡는 이만이 천하의 왕이 될 수 있다"

 

 

고고함이 풍기는 외모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것은 지혜를 숭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진시대에 널리 유행한 풍조였다. 이런 분위기는 한말에서 위진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됐다. CCTV에서 <삼국을 품평하다品三國>라는 강연을 할 때 제갈량이나 주유, 손책 등이 미남이라고 말했다가 사람들에게 비난을 들은 적이 있다. 영웅에 대한 논할 때면 당연히 그들의 내심세계라든지 위대한 업적, 또는 민족 대의에 대해 이야기해야지 "용모로 사람을 평가해以貌取人" 얼굴이 잘생겼다는 식으로 말하니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는 것이었다.

 

그분들이 무슨 뜻으로 이야기하는지는 알겠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어떤 시대이든 그 시대의 풍조나 기풍이 있기 마련인데 이 점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역사를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역사적 사실을 중시한다. 물론 이런 가치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이는 별개의 문제이다. 만약 어떤 시대의 풍조가 용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라면 이를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정감을 갈망하다

위진시대에 이르자 유가 사상이 오히려 주변으로 밀려나고 공맹의 도 역시 더 이상 환대를 받지 못했다. 대신 환영을 받은 것은 노자와 장자, <주역>, 그리고 불교와 현학이다. 리쩌허우(李澤厚)는 <미의 역정(美的歷程)>에서 위진 풍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재적 지혜, 특출한 정신, 탈속(脫俗)의 언행, 아름다운 풍모"

 

이제 더 이상 인격에 대해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인정에 대해, 내심의 느낌, 심령의 위안에 대해, 그리고 정감의 교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자유에 대한 동경, 진정한 정감에 대한 갈망, 세속에 대한 멸시, 내심에 대한 복종 등등은 모두 '사람의 정감'과 관련된 표현들이다. 이로부터 중국철학과 예술은 점차 내심세계로, 정감의 세계로 달려갔다. 그래서 그 시기를 중대한 전환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불교의 근본

 

불교의 근본은 무엇인가? '각오覺悟'이다. 생각해보자. 무엇이 불佛인가? 불은 불타佛陀를 말한다. 즉 깨달은 자이다. 물론 '각오'는 불교에서 온 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성불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자각自覺'으로 자신이 깨닫는 것이다. 둘째는 '각타覺他'로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각행원만覺行圓滿'(깨달음과 행함이 원만하게 하나가 됨)이다.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되어야만 부처가 될 수 있다.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범부, 속자俗子일 따름이다. 보살菩薩은 앞에 두 가지는 부합하나 마지막 한 가지가 부족하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부처나 보살과 다른 점은 바로 깨달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부처는 깨달은 자이고,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각오는 성불의 관건이다.

 

 

지식은 지혜가 아니다

 

책은 중국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경전, 지혜, 도덕, 종교 등에 대해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개론서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책은 저자가 중국인들이 진정으로 듣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의도 하에 집필한 것이다. 이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지식을 두루 섭협해서 쌓아놓는다고 해서 곧 지혜가 되는 게 아니다. 단순한 앎이 행함과 어울려 미미를 창조해야한 가능한 것이다. 책 속에서 인생의 지혜를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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