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4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목적은 유한계급이 현대 생활에서 하나의 경제적 요인으로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어떤 지위를 누리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논의 범위를 그와 같은 한계 인에다 엄격하게 국한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유한계급이라는 제도의 기원과 발전 상황, 그 사회적 생활의 특징도 함게 논의될 것인데, 이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경제학의 범위로 분류되지 않는 까닭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유한계급은 어떤 경제적 가치를 기졌을까?

 

이 책의 저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인 사회사상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880년 미네소타의 칼턴 칼리지를 졸업한 후, 존스홉킨스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891년에는 코넬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하여 경제학자 제임스 로플린 밑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베블런은 로플린이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장으로 초빙됐을 때 그를 따라 시카고 대학으로 옮겨갔고, 39세에 전임강사가 되었다.

 

베블런은 시카고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자신의 경제이론을 개발하며, 왕성하게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1899년에 그의 첫 책인 <유한계급론>을 출간했다. 이 책은 1912년에 개정본이 나온 이래,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경제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했다. 상류계급의 과시적 소비를 신랄하게 비평함으로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당시 정통파 경제 이론을 거의 신경 쓰지 않고, 경제학 이론은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탠퍼드 대학(1906)을 거쳐 미주리 대학(1911)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이후 1918년 미주리 대학을 떠나 워싱턴 D.C.에 있는 식량 행정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5개월도 못 되어 그만두고, 뉴욕에서 발간되던 잡지 <다이얼>의 편집자로 이직했다. 1919년에 그는 뉴욕의 <새로운 사회 연구소>에 교수로 참여하여 1926년까지 가르쳤다. 그리고 1926년 교직에서 은퇴하여 산속 오두막에서 살다가 192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유한계급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그 이론과 관련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생존선生存線 이상의 소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는 자금을 유익한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을 좀 더 현명하고, 똑똑하고, 사려 깊게 살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도 남들 못지않게 많은 소득을 가지고 있음을 널리 홍보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남에게 자신이 부자라는 인식을 각인시키려는 충동과 동기를 '과시적 소비'라고 정의 내린다.

 

이 소비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게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돈, 시간, 에너지를 아낌없이 소비한다. 이것은 현대의 산업사회와는 맞지 않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그런 사치성 소비가 문화의 다른 분야에까지도 번져가는 것은 큰일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인류의 미래가 유한계급과 산업계급의 갈등으로 전개되어 결국 산업계급이 승리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가 활동하던 당시의 미국 사회는 자본주의가 성장통을 겪으면서 여러 단점과 결점을 노출했다. 19세기 후반 미국 경제는 독점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새로 탄생한 대기업들의 독점은 철도 부문에서 제일 먼저 나타났다. 즉 1867년 뉴욕 센트랄 철도로부터 시작하여 1894년 펜실베니아 철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도가 몇 개의 회사로 통합되었다. 또 풀pool이라는 기업형태가 등장, 동업자들이 가격, 품질, 시장 등을 결정함으로써 독점을 노리려 했다. 다음엔 트러스트trust인데, 스탠더드 석유회사는 여러 경재사들을 흡수해 9명의 수탁인에게 맡기는 형식으로 석유업계를 독점 지배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이 책이 출간되었음을 먼저 이해하는 게 독서와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된다. 

 

 

과시적 여가, 부富와 권력의 증거

 

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이를 유지한다는 것은 부나 권력을 소유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대체로 사람들은 구체적 증거가 있어야만 존경심을 가진다. 그렇기에 부자의 위상을 타인에게 각인시켜 주고, 이를 생생하게 유지해 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부자들은 자존심을 더욱 높임으로써 스스로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삶의 방식에 '비천한 것''명예로운 것'으로 구분된다.

 

원시사회의 이런 원칙은 오늘날에도 상당 부분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상류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천박한 형태의 노동에 대해선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낀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사고방식은 노동직에 대해 유별나게도 지저분하다는 의례적儀禮的 느낌을 갖고 있다. 즉 어느 정도의 여가와 일상에 있어서 생산 과정으로부터의 면제는 아름답고 흠결 없는 생활을 누리는 필수 조건으로 여겨져왔다.

 

여가의 직접적이고 주관적인 가치와 그밖의 부의 다른 증거들의 가치는 대체로 2차적이면서 파생적이다. 그 가치는 부분적으로 여가가 타인의 존경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유익하다는 사실에서 나오고 심리적 만족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도 나온다. 노동을 한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힘의 열등함을 보여주는 표시였고 그래서 간단히 말하면 본질적으로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여가가 있다는 것은 힘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또 자신이 그런 천박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는 자기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습관적 소비는 포기하기 어렵다

 

어떤 개인이 명예로운 소비의 형태로 경쟁 심리를 표현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면 그런 습관적 소비는 좀처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개인이 금전적 능력이 커지면서 자신의 생활을 확대하려고 한다면 경쟁 심리의 발동과 함께 새로운 인생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런 경쟁 심리는 다양한 관련 형태로 표현됨으로써 소위 과시적 소비라는 형태가 생긴다.

 

자기 보존의 본능을 제외한다면, 경쟁 심리는 경제적 동기들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또 기민하게 활동하는 동기이다. 산업 사회에서 경쟁 심리는 금전적 경쟁으로 그 자신을 표현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서구문명 사회들 관점에서 본다면 경쟁 심리가 과시적 낭비의 형태로 그 자신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신체적 필요가 충족된 다음에는, 과시적 낭비의 필요가 사회의 산업 효율성이나 재화의 생산에서 발생하는 증가분을 즉각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소비의 수준이 생활수준을 결정

과시적 낭비의 요소에 관한 한, 어떤 특정 계급의 생활수준은 그 계급의 소득 능력이 허용하는 한도만큼 높아지고 그 한도는 점점 높아지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이 인간의 진지한 행동에 미치는 효과는 이러하다. 인간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목적에 매달리게 되고 금전적 소득을 가져오지 않는 일은 배제하게 된다. 동시에 소비에 미치는 효과는 이러하다. 소비 행위는 소비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관찰자들의 눈에 잘 띄는 방향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간이나 물질의 명예로운 소비를 동반하지 않는 기질이나 성향은 발휘될 기회가 없으므로 점차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고상한 언어와 평범한 언어

 

글에서나 말에서나 품격 있는 어법은 호평을 얻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특정 주제를 언급하는데 관습적으로 요구되는 의고주의擬古主義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연단演壇에서부터 시장市場에 이르기까지 장소에 맞게 활용되는 어법은 서로 상당히 다르다. 시장에서는 늘 그렇듯 비교적 새롭고 효율적인 단어나 표현 방식을 쓰는 게 허용되며, 까다로운 사람조차 그런 시장의 분위기에 맞게 행동한다. 판단력을 발휘하여 신조어를 피하는 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낡은 언어 습관을 습득하는 데 시간을 낭비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낡은 어법에 친숙한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걸 입증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이 유한계급 사람임을 은근히 드러낼 수 있다. 언어의 순도가 무척 높다는 건 여러 대에 걸쳐 통속적으로 유용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짐작하게 해주는 증거이다. 비록 그 증거가 그런 신분 요소를 전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는 경제학

 

한국 사회에도 고려 말, 조선 초에 '한량閑良'이라 불리는 신분이 있었다. 말 그대로 돈이 있어서 놀고 먹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이런 신분이 베블런이 말하는 유한계급(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베블런이 말하는 문화적 발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약탈적 인간상이다. 이는 부의 축적을 가져오고 또 축적된 부를 자랑하고 지키려는 유한계급을 형성시켰다.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흔드는 모든 운동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산업 사회는 이런 과시적 낭비나 금전적 경쟁을 용납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