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2012년 2월 24일자 <마이니치 신문> 석간 칼럼 '유라쿠초'에 '남편으로 검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남편'을 입력하면 연관 검색어 1위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 인터넷상에서 이슈로 떠오른다는 내용이었다. 칼럼은 '우리 집은 상관없다'는 식의 근거 없는 자신감을 버리고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자신도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글을 맺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남편이 죽어야 문제가 해결된다

 

이 책의 저자 고바야시 미키(小林美希)는 1975년 일본 이바라키(茨城) 현에서 태어났다. 고베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후 주식 신문사, 마이니치 신문사의 〈이코노미스트〉 편집부 기자를 거쳐 현재는 프리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청년 고용, 결혼, 출산 및 육아로 말미암은 부당 해고 등의 사회문제를 주로 취재하며 글을 쓰고 있다. 2013년 빈곤 저널리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르포 아이를 낳지 않게 하는 사회>, <르포 보육 붕괴> 등이 있다.

 

워킹맘, 전업주부, 중년 여성 등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는 아내 14인들의 속마음을 취재한 저자는 아내들의 삶을 찬찬히 되짚으며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피해망상에서 비롯된 비윤리적 희망사항이 아님을 설명하고, 독박 육아 및 독박 가사를 피할 수 없는 일/가정 양립의 현주소를 구석구석 조명한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장(육아라는 시련)부터 제3장(더 이상 남편 따위는 필요 없다)까지는 아내를 분노하게 만드는 남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아내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즉 임신 중인 아내는 안중에도 없이 늘 술만 마시고 귀가하는 남편,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는 남편, 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지만 퇴근 시간을 조정하면서까지 데리러 가지는 않는 남편 등 아내를 폭발하게 만드는 문제점들이다.

 

이어서 제4장(남편이 살아갈 길?)에서는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가 바라는 대로 집안일이나 육아를 맡을 수 없는 노동환경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말하자면 남편의 입장을 편드는 얘기들이다. 마지막으로 제5장(이혼하는 것보다 낫다?)에서는 '남편을 죽이고 싶어하는' 아내의 살의殺意를 사그라뜨리는 방법을 소개한다.

 

 

 

 

거실에 감도는 살기殺氣(45세 회사원)

 

일본 가나가와 현에 살고 있는 가와마타 사토코에게는 중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면 딸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엔 매일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쁜 아침을 보냈다. 아들의 책가방 속을 살피고, 어린이집에 보낼 딸의 옷과 수건을 챙겨야 하는 등 부산을 떨어야만 했다. 겨우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과 함께 나가려 할 때, 남편이 침실에서 거실로 걸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철떡철떡. 맨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면 남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애초에 남편은 전업주부 아내를 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제 사정을 고려한 남편은 태도를 바꿔 계속 회사에 다니길 원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마치자마자 복직을 했다. 게다가 칼퇴근을 하려고 회사내 한직으로 발령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녀가 일이 늘어나자 남편보다 늦게 퇴근하는 일이 생기자 남편은 그녀에게 심술을 부렸다. 앙이들을 빨리 잠재우려고 하자 애들이 그녀에게 이런 사실을 그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나면 그녀는 휴무를 신청했다. 18개월이었던 아들이 폐렴에 걸려 약 한 달 입원했을 때 남편은 겨우 이틀 휴무를 신청했다. 남편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음에도 남편은 그녀에게 "회사에서 아이 얘기는 하지 말라고 상사한테 혼났어"라고 투정을 부리며 앞으론 절대로 아이 때문에 쉬지 않겠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그녀는 상사까지 얄미웠던 것이다. 이후 그녀의 남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았고, 침실도 따로 사용했다.     

 

'이 사회에서는 평생 아내, 엄마, 여자만 불리해. 남자도 부모잖아. 물론 아이 일로 휴무를 신청하기 어려운 회사 분위기인 건 알아. 너무 자주 휴무를 신청해서 해고라도 당하면 곤란하겠지.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야. 그 '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 사회 개혁을 하자고. 이제는 내 남편이 된 것을 불행하게 여겨도 상관없어'

 

 

전업주부를 선택한 34세의 아내

 

음식점에서 일하던 가미노 리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하고 싶어서 결혼 후 25세의 젊은 나이에 일을 그만두었다. 3살 연상인 남편은 술집의 점장이었는데, 심야까지 영업하는 근무환경이라 아침 일찍 출근하고 새벽에나 귀가했다. 게다가 주말에도 회의 때문에 집을 비웠고, 집안일과 육아는 온전히 그녀의 몫이되었다. 이에 남편은 가부장적인 사람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녀는 초등학생 큰아들, 유치원생 둘째, 두 살짜리 막내 읓등 이렇게 세 아들의 엄마였다. 셋째가 태어났을 때는 혼자 아이를 씻기는 게 힘에 부쳤다. 갓난아기를 겨드랑이에 끼고 둘째의 몸을 씻기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큰아들이 퐁당 빠져 익사할 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렇게 심장이 쪼그라드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산책을 가거나 장을 보는 일이 생길 때, "좀 도와줘요!"라고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려도 "당신이 원해서 전업주부가 된 거니까 당신이 해야지. 난 돈 버느라 피곤해"라고 할 뿐이었다. 게다가 집에서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푹 쉬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자는 척했다. 하지만 그녀가 40도의 고열로 고생한 이후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남편의 말로

 

65세의 하나무라 요코'아내에게 빌붙어 사는 남편'과 부부 생활을 이어오는 여성이다. 그녀에게는 쌓이고 쌓인 원한이 많다. 그래서 요즘엔 늙고 기력이 다한 73세의 남편에게 유언장을 작성하라고 명령까지 했다. 남편은 자금껏 실컷 놀고 먹으면서 집 한 채 지을 돈을 탕진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의 명의가 남편 앞으로 되어 있다.

 

미용사였던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며 미래에 자기들 미용실을 갖는다는 꿈을 키웠다. 세상 물정 모르던 스무 살에 그녀는 8살 연상의 현재 남편과 살림을 차렸던 것이다. 신혼 때는 욕실 없는 집에 살았다. 남편에게 월 2만엔을 받아서 식비와 잡비 등 모든 생활비를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 공중목욕탕에도 갈 수 없는 빈곤한 형편이었다. 없는 돈이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한 밥상을 두고 철없는 남편은 맛없는 음식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런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6년만에 그녀는 미용실을 차릴 수 있었다.

 

쉬지 않고 일했던 그녀가 38살에 자궁경부암에 걸렸을 때 의사가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그때 남편은 "자궁을 들어내면 여자가 아니겠네?"라고 평생 그녀가 잊을 수 없는 모욕적인 발언을 함부로 내뱉었던 것이다. 그래고 참고 견디는 그녀에게 한 고객이 그녀를 위로하며 "자신을 바꿔야 해요. 안 그러면 인생을 망칠 거예요"라고 걱정해주었다.

 

또 그녀가 53세 때 대장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을 때에도 남편은 바쁘다면서 불평만 일삼았다. 두 달 동안 그녀는 병원의 천장을 바라보며 고객이 해 주었던 그말을 계속 생각했다. 이제 정신적으로 남편과 결별을 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맹세햇다. 이제 예순이 넘은 남편은 그녀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닌다.

 

최대의 복수는 남편이 죽었을 때 할 생각이었다. "남편의 유골을 예쁜 상자에 넣어서 야마노테 선 안의 선반에 올려놓고 올 거예요!" 그녀가 유골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전철에서 내리면 그 유골은 분실물로 접수되어 JR(일본 철도 회사)이 회수하게 된다. 다른 노선이면 그녀가 했다는 사실을 들키겠지만, 야마노테 선은 계속 순환하니 신원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보관 기간 내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한 후 납골한다. 그녀는 유골을 전철에 놓고 내리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고객에게 듣고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기쁨에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내 아내는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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