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 - 유라시아 대초원에 펼쳐진 북방제국의 역사와 한민족의 기원을 추적하다
김석동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제조업 5위, 수출 6위, 건설업 6위, 외환 보유액 9위인 나라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IT 강국, 한류의 나라로 탈바꿈했습니다. 기적의 원천은 자타가 공인하는 부지런하고 우수한 인적 자산, 세계 정상 수준에 이르게 된 R&D 투자, 과감하게 외국 자본을 활용한 개방경제 체제였습니다. 이 바탕 위에서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는 세계와 승부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한 수출과 중화학공업, 다른 하나는 한민족의 DNA로,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이룬 기적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한반도를 뛰어넘다
책의 저자 김석동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보, 2006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재정경제부 제1차관(2007~8년)을 거쳐 금융위원회 위원장(2011~3년)으로 일했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과 안정을 위해 헌신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1990년 5,8 부동산특별대책, 1993년 금융실명제, 1997년 IMF 사태, 1999년 대우그룹 해체, 2003년 카드대란 사태, 2011년 저축은행 부도 사태 등 국가 경제가 위기에 있을 때마다 금융 현안들을 성공적으로 처리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대책반장', '소방수', '해결사', '구원투수'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현재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고대사를 통해 한민족 DNA를 이해하는 것이 미래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사명감으로 수십 년간 사학자들과 교류를 쌓으며 역사를 연구하고, 그 실체를 보고자 몽골 고원에서 중앙아시아, 유럽 대평원까지 10년간 50차례에 이르는 현장답사를 했다. 이처럼 고대사의 참모습을 밝히려는 꾸준하고 성실한 그의 연구와 경험이 총망라된 이 책은 유라시아 대륙에 제국을 건설한 기마민족의 역사에서 한민족의 DNA를 찾고, 나아가 우리 안의 세계 경쟁력을 제시한다.
한민족 DNA
첫째, 끈질긴 생존 본능
둘째, 승부사의 기질
셋재, 강한 집단의지
넷째, 개척자 근성
기마유목민의 DNA
한국인의 DNA는 지난 2500년간 유라시아 대초원을 무대로 활약해온 기마유목민의 DNA에서 찾을 수 있다. 유라시아 대초원은 동서 8,000km에 걸쳐 끝없이 펼쳐진 평평하지만 삶의 조건이 열악한 극한의 땅이다. 이러한 엄격한 자연 조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용감하고 영리한 독특한 인간 유형을 형성했다. 개개인이 강한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지도자가 등장하면 급속히 통합되었고, 사회 전체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탁월한 지도자를 적지 않게 등장시키는 한편, 집단 위기 등 어려운 시기에는 강력한 결속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했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기마유목민이 주축이 된 기마군단은 가공할 만한 전투력을 발휘하면서 약 2500년간 유라시아 스텝 지역을 중심으로 동·서양에 걸쳐 거대 국가를 끊임없이 건설해왔다. 즉 기원전 8세기부터 등장한 아시아 유목민의 나라 '스키타이', 이후의 흉노, 선비, 유연, 돌궐, 위구르, 거란, 몽골 제국, 티무르-무굴 제국, 셀주크-오스만 투르크 제국, 금나라, 청나라 등을 건설한 주역들이다.
기마유목민의 등장과 한민족 고대사
기마유목민이 건설한 국가들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와 깊은 관계에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는 흉노가 3천 년 전에는 우리와 형제 동족이었고, 여진, 선비, 몽골도 아我의 동족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원전 8세기 무렵부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이들 기마군단 국가들은 지역, 인종, 기질, 문화, 정서, 유물 등을 고려해볼 때 기원전 2333년 건국된 고조선의 분파 과정과 연관하여 이해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유라시아 기마유목민족사의 흐름은 남의 역사로 치부해 버리고 실존했던 고조선이 역사에서 사라진 데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도 않으면서, '동북공정'이라는 해괴망측한 프로젝트로 역사마저 날조하여 중국 공산당이 날로 먹으려는 우리의 고구려사史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쏟지 않는다면 진정한 한민족의 역사와 삶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다.
훈족은 누구인가?
훈족은 4세기 중반에 유럽 동부에 폭풍이 몰아치듯 등장해서 기존의 유럽 지도와 역사, 나아가 세계사를 순식간에 바꿔버렸다. 이렇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유목민들의 정체에 관해서 수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사실 이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유적과 유물 또한 별로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아시아 유목민들의 기마군단이며 서쪽으로 진출한 흉노 세력의 후예라는 사실을 의심할 바 없다. 터키,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 코카서스 지역의 아제르바이젠 등 투르크계 국가에선 훈족을 투르크 유목민이라 부른다.
터키의 국사 교과서엔 흉노를 자신들의 조상이며, 이들의 후예가 유럽에 진출한 것이 바로 훈 제국이라고 실려있다. 몽골 교과서에는 흉노 제국을 세운 흉노인들이 유럽에서 아틸라의 훈 제국(434~453년)을 세워 드네프르강에서 도나우강까지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으며,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공납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잇다. 아틸라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데 큰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벽화나 기록을 토대로 살펴보면, 훈족은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낮은 코, 검은 머리, 납작한 코의 작은 체구를 지닌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이다. 이들의 전쟁 수행방법, 무기, 유물 등을 봐도 틀림 없는 아시아 기마군단이다. 훈족이 사용한 활은 나무와 동물 뿔을 접착해 강도를 극대화한 복합곡궁인데, 이는 바로 고구려의 맥궁과 동일한 활이다.
훈족이 유럽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대는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이 정복 전쟁을 활발히 전개해서 동북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시기이다. 흉노와 우리와의 관계처럼 흉노의 후예인 훈과 우리의 관계 또한 주목의 대상이다. 훈족의 몽고반점, 복합곡궁, 편두와 순장 등의 관습, 이동 경로의 많은 유물 등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민족과의 친연관계를 밝히는 연구들이 있다. 훈족이 파괴한 이탈리아 북부 아퀼레이아 시의 성당에는 훈족 기병이 활 쏘는 모습을 그린 프레스코 벽화가 있는데, 이 벽화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와 흡사하다.
한민족의 여정
유라시아 대초원과 실크로드, 그리고 만주 대륙에서 '기마군단'의 역사가 전게되고, 북방민족인 흉노, 선비, 돌궐, 몽골, 여진 등은 최강의 제국을 건설해 세계사의 중심 무대에서 크게 활약했다. 그러나 이들은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기에 유럽인들은 이들의 평가에 인색했고, 특히 중국은 이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폄하했던 것이다. 기록된 역사는 강자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다. 기록이 거의 없는 기마군단의 역사는 묻히고 만 것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그 땅의 과거를 기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민족의 삶의 흐름을 보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만 바라보아서는 제대로 볼 수 없다. 유라시아 대초원 지역과 실크로드는 우리의 삶의 흐름을 돌아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한민족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곳이다. 또한 홍산 지역의 대발굴은 이 지역이 북방민족 문화의 근거지임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홍산 지역은 그야말로 한민족 고대사와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고대 문화의 보고이다.
대한민국, 열린 무대로 나아가라
세계인으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받던 대한민국 경제가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장 위험하고 풀기 어렵다는 '세계 경제 환경' 그리고 난제가 얽혀있는 '국내 경제 여건' 속에 위치하고 있다. 안팎에 어려운 상황들이 도사리고 있다. 힘든 세계 경제 환경과 구조적인 문제로 역동성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처럼 장기불황의 늪에 빠질 우려까지 있다. 따라서, 지금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다시 도약해 나가기 위한 돌파구를 열어야 할 때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한민족 DNA의 발현과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출을 강조한다. 경제경영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한국인의 성장 DNA가 회복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혁명적으로 생산과정을 결합하는 신 성장 모델이 창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