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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
이기주 지음 / 황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 '서문' 중에서
말이 쌓이면 품격이 된다
이 책의 저자 이기주는 작가 겸 출판인. 글을 쓰고 책을 만들며 살아간다.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주로 쓴다. 활자 중독자를 자처하며 서점을 배회하기 좋아한다. 퇴근길에 종종 꽃을 사서 어머니 화장대에 은밀하게 올려놓는다. 지은 책으로는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여전히 글쓰기가 두려운 당신에게> 등이 있다.
그는 경청, 공감, 반응, 뒷말, 인향, 소음 등 24개의 키워드를 통해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낸다. 고전과 현대를 오가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작가 특유의 감성이 더해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전한다. 말을 소재로 삼은 까닭에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이자 필독서이기도 하다.
잘 듣는 것이 먼저다
옛말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 했다. 즉 귀을 기울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또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크 헤겔은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상대가 스스로 손잡이를 돌려 마음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래야만 마음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이 담긴 말이다.
우리들은 '경청'의 중요성에 관해 자주 얘기 듣는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존중을 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 들어야만 한다.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상대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열쇠를 손에 거머쥘 수 있다. 이는 의사소통 과정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광활한 무대에서도 적잖이 도움이 되는 자세이기도 하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 많은 자, 이로 인해 화禍를 당한다
'말로써 興흥한 자, 말로써 亡망한다'는 말을 우린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세 치 혀를 앞세워 말로써 상대를 기만하고 욕 보이며, 심지어 이로 인해 상대가 자살을 하게 되는 살인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묵의 가치를 높이 칭송해왔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에게도 침묵은 비밀의 병기였다. 그는 병사들 앞에서 연설하기 위해 연단에 오를 때마다 뜸을 들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말이 많으면 화禍를 면치 못한다. 그 말 때문에 근심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언무환寡言無患이라는 말처럼,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말을 줄이면 근심도 줄어든다. 서양 경구 중에도 '웅변은 은銀, 침묵은 금金'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선인들의 생각은 동서양이 그리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나깨나 말조심을 하자.
숙성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말도 귀소본능을 갖고 있다
직장인들은 대개 술자리나 비공식적인 사석에서 특정 인물을 비난하고 헐뜯는 말을 하면서 자신들의 억압된 심리에 누적된 스트레스를 카타르시스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우리들은 '뒷담화'라고 말하는데, 이또한 인터넷 상에 떠돌아다니는 '악플'과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사실상 직장 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웬만하면 내가 이런 얘기 안 하는데"
그런데, 내가 입으로 내뱉은 말은 다시 내개로 돌아온다. 그렇다. 말에는 귀소 본능이라는 게 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서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알을 산란하려는 본능을 지닌 것처럼 언어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뱉어 낸 말이 독을 바른 화살이었다면 나중에 나는 이 독화살로 인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되돌아온다.
함부로 타인을 지적하지 말라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한마디 말의 무게는 천금과 같으며 한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그 아픔은 칼로 베이는 것과 같다" - <명심보감>, '언어편' 중에서
저자는 현재의 우리 사회를 '지적 과잉의 시대'라고 말한다. 하루 종일 불평과 지적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모습이기에 말이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순간 상대를 가리키는 손가락은 검지뿐이다.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한다. 세 손가락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검지를 들어야 한다. 타인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내가 떳떳한지 족히 세 번은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늘 타인을 지적하며 살아가지만, 진짜 지적은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 법을 터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 말에서 향기를 풍겨라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체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人香은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나의 말에서 향기가 난다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몰염치한 망발을 내뱉는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특히, 구설수에 휩싸여 실패를 경험한 이들에게 이 책의 필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