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파인 -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너에게
이가희 지음, 제니곽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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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울증 수기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우울증이 사회적인 낙인이 아니라, 치료하고 돨보야 하는 질병의 일종이라는 시각이 조금은 보편화된 듯 보인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사회적인 시선에서 조금, 아주 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다행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우울증, 감기처럼 치료하면 낫는다

 

이 책의 저자 이가희'책읽찌라'의 운영자이자, 미디어 스타트업 뉴돛의 대표이다. '책읽찌라'는 책을 맛있게 소개하는 채널인 만큼, 그녀는 자타공인 'NO1. 북큐레이터'이자 '도서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 어떤 책도 그녀의 소개로 만나면 새롭고 매력적이다. '책읽찌라'를 통해 발행된 영상은 지난 4년간 500여 편, 누적 조회수는 700만에 달한다.

 

그녀는 '세대'와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와 함께 수십만 독자들과 소통해왔으며 영상, 도서, 스토리펀딩, 북토크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 발행을 위한 채널 '#해시온'을 기획했다. 해시온의 첫 번째 키워드는 '우울증', 즉 그녀는 '우울', '불안', '심리' 분야에 대한 대중의 높은 주목도를 발견하고 그들이 갈증을 느끼는 실체가 바로 거기에 있음을 깨달았다.

 

책은 이렇게 '우울증'이라는 키워드 하나에서 출발했다. 기획자, 디자이너, 영상제작자, 출판편집자 그리고 최고의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약 6개월 동안 영상 20편과 한 권의 책으로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저자는 프로젝트를 기획, 총괄하는 한편, 수십 명의 인터뷰이를 취재하고 발로 뛰며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보고, 듣고, 써 내려갔다.

 

 

 

 

'#해시온'우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다. 사실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증세를 감추려하고, 그래서 숨기면서 무작정 이를 참고 함께 살아간다. 이와 같은 증상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국내 최고의 정신의학 전문가들이 '#해시온'과 손잡고 속시원한 답을 내놓고 있다.

 

피터 크레이머 박사의 <우울증에 반대한다>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의 회고록 속엔 자부심의 흔적이 자주 드러난다. 즉, 우울증을 앓은 경험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음을 말한다. 이는 정신과 의사들에게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통상 의사들은 우울증은 그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는 아주 잔인한 존재라고 여길 뿐이기 때문이다.   

 

 

난 왜 이러고 있지... 나만 못 지내는 걸까?

 

오래 전에 약속이 잡힌 동기들과의 모임 날이 막상 찾아오자 자랑할 게 별로 없는 신세인지라 갈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약속장소에 느지막이 참석했다. 술잔을 치켜들고 반갑다는 거짓 시늉을 하다가 바쁘다면서 서둘러 빠져나와 발길을 집으로 돌린다. 맥주랑 안주를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었는데 이상하게 허기가 진다.

 

'집에 가서 혼자 맥주 한 캔 더 하고 자야 할까?' 싶다가 이내 귀찮은 기분이 들어서 편의점을 그대로 지나쳐 집에 도착했다. 씻지도 않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뒤적인다. 그새 방금 끝난 모임의 단체사진이 타임라인에 올라오고 있다. 사진에 태그된 친구들의 계정을 하나씩 눌러본다. 어째 다들 참 잘 살고 있다. 아무래도 기분이 더 우울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 유독 이 직장인에게만 국한된 증세가 아니다. 직장인의 83.5%가 우울함을 느끼고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다. 사실 한국의 30대는 희망 수치가 너무낮아 집단우울증이 의심되기도 한단다. 이렇게 우울한 기사임에도 사회적 현상 같아 보여 은근히 안도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한 기분이 자주 드는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니라 사회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우울한 사람에게 없는 세 가지

 

평소 우울한 감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집중력이나 기억력이 저하되고 체중에 변화가 생기는 등 그 증상이 다양하다. 만성피로감, 불면증, 지나친 수면증, 두통, 소화불량, 목이나 어깨 결림, 가슴 답답함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나타나는 증세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아예 신체로 드러나는 증상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우울이라는 감정이 시작되는 지점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우울이라는 터널'로 들어서기 전 '너무' 열심히 살고 있었다. 누구보다 열의 있었고, 누구보다 사랑받기를 원했으며, 누구보다 밝게 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었다. 이게 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인 건 아닐까? 조금 대충 살았다면, 우울한 감정에 사무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지금도 삶에 '너무 열심히' 임하고 있는 나, 우리 모두 '우울해지지 않도록' 바짝 경계하고 살면 되는 걸까?"(47쪽)

 

우울함을 겪는 이들의 공통 증상

 

첫째, 힘과 의욕이 없어진다(무기럭함)

둘째, 모든 것에 가치를 잃는다(무가치함)

셋빼, 내일에 대한희망이 없어진다(무망無望함)

 

 

우울과 우울증 사이

"취업이 계속 안 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모든 걸 다 쏟았던 일에 실패했다거나…. 그럴 때는 누구나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불러일으킨 우울감이 지속적인 고통으로 이어지게 되는 지점은, 그 감정에 압도돼 나 자체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사건과 슬픈 감정을 넘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취업이 오랫동안 안 되면 '이렇게 나를 원하는 곳이 없다니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라는 식으로 생각이 흘러간다. 취업을 못하는 이유를 분석해서 거기에 필요한 행동을 해야 하는데, 문제의 원인과 나를 동일시해서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 '나'의 문제로 귀결시킬 때 위험해진다"(58쪽)

 

우울한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루종일 우울한 날이 있는가 하면, 하루 중 출근시간만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감정은 '우울증'과 어떻게 다를까? 또 어제는 우울했는데, 오늘은 아니라면 이건 일시적인 감정일 뿐일까? 기분이나 감정으로서의 '우울함'과 병으로 판명받는 '우울증'과는 어떤 경계선에 놓이는 걸까? 정말 궁금하다.  

 

"다음 날이 되어 우울하지 않다고 해서, 어제의 그 우울함이 없어진 건 아니예요. 우울한 감정을 확실히 해소해주지 않았다면, 그건 어디로 날아가거나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게 되거든요. 그런 감정을 느꼈을 때 되도록 빨리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해요. '시간이 지나니 다시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혼자 있을 때 내가 힘든 마음을 느꼈구나' 라고 그 감정을 인지하는 것이 우울함을 해소하는 출발점입니다"(56쪽)

 

취업이 계속 안 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거나, 모든 걸 쏟았지만 실패했거나 등 이럴 때는 누구나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건이나 슬픈 감정을 넘어 자신을 쓸노없는 사람으로 귀결시킬 때는 위험해진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상담센터나 병원을 찾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병원에 가야 할 수준일까?'라는 고민을 수백 번 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가야 하나?'에 대한 고민에 대해 이혜진 선생님은 이렇게 답해주셨다.

 

"일단 고민이 들었다면, 상담센터나 병원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이 답변은 '내가 우울한 거 맞나? 이 정도면 우울증인 게 맞는 걸까?'에 대해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도 곧바로 툴툴 탈고 혼자 일어나야 훌륭한 사람이라고 교육받았을 정도로 '나약함'은 바로 '악' 그 자체였다. 그래서 아프다고 해도 '나약한 건 안 좋은 거야. 강해야지'라고 위로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우울증은 '특성'이 아니라 '상태'이다.

  

우울증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울증은 정신과적 질환이다. 우울증이 찾아오는 원인은 크게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으로 살펴볼 수 있다. 생물학적 원인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세로토닌 등의 불균형에 기인한다. 심리적으로는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하거나, 계속적인 실패에 따른 '학습된 무기력' 등의 요인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자신이 힘들 때 언제든 도와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찾아올 수 있다.

"우울증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우울한 상태에서는 나가서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면 기분이 개선될 수 있지만 우울증은 이미 그런 걸 할 수 없는 상태인 거죠.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해도 개선이 안 되는 내 자신에게 더욱 상처받고 자책하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의지의 문제는 아니고, 이미 그 정도 수준은 넘어갔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의지와 다르게 계속해서 부정적인 생각만 피어나는 상태, 그게 바로 우울증이기 때문입니다"(149쪽)

 

 

죽고 싶다는 말, 사실은 살고 싶다는 울음이다 

죽고 싶은 사람이 그냥 죽지 않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건 두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 다리에 올라간 사람은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이 51%다. 살고 싶은 마음보다 2% 많은 상태이다. 즉,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살고 싶은 마음이 49%가 있다. 이 때 상담을 통해 죽고 싶은 마음보다 살고 싶은 마음이 딱 2% 더 많아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들은 살아야 겠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살아야겠다는 말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젠 망설이지 말고 "낫 파인"이라고 말하자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한 전문 서적도 아니고, 정통 심리학 또는 정신의학을 토대로 한 논문도 아니다. 단지 시대의 '울음소리' 같은 것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일 뿐이다. 비록 정답이 아닐지언정 자신 잇게 "아임 낫 파인"이라고 말하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 그렇다. 슬그머니 찾아온 마음의 병을 인정하는 것이 괜찮다고, 그저 감기처럼 치료하면 충분히 치유되는 질병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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