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연애 - 늘 버티는 연애를 해온 당신에게
을냥이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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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운 겨울날 우리집 현관문 앞에 고양이가 버려졌다. 전 연인이 키우던 고양이였다. 어릴 땐 귀엽다고 키우다가 조금 크니 귀찮아졌는지 나에게 떠맡기고 다시는 찾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던 나는 나름대로 인터넷을 찾아가며 용품을 샀다. 안 좋게 헤어진 전 연인이 생각나 짜증이 솟구쳤지만 얘는 잘못이 없다. 그냥 버려진 거다. - '프롤로그' 중에서

 

 

싫증나면 버리는 게 갑의 연애인가?

 

어디에서나 을은 서러운 존재다. 연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마구 갑질하는 연인에게 비록 서운해도 차마 입도 뻥긋 못한다. 가슴 속에 넣고 삭이다 보니 다소 과장해서 숯 검정이 한 트럭 분량이다. 왜 그럴까? 소심한 을은 갑을 너무 사랑해서, 혹시 갑을 자극하면 미련없이 떠나버릴까봐 두려워서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항상 지면서 살고, 주고 또 줘도 항상 부족한 것처럼 느껴서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헌신과 희생을 오히려 편하게 여긴다. 을의 연애 방식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갑은 제때 연락 안하고, 친구와의 약속이 우선이며, 다른 이성에게는 엄청난 친절을 베푼다. 정작 잘해줘야 할 을에게는 무관심이 극에 달한다. 결국엔 이런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한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에도 을은 갑을 생각한다. 즉 갑의 스킨십, 말, 웃음, 심지어 실수까지 머릿속에 주마증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비록 지금 헤어질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기다림에 익숙한 게 바로 을의 연애 방식이다.

 

책의 저자 을냥이(필명)는 예고와 예대를 졸업, 만화가의 꿈을 가졌지만 현실적인 삶과 타협, 7년 동안 마케팅 업무에 종사했다. 업계에서 인정받는 마케터였지만 20대 후반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간 굳어버린 손으로, 익숙지 않은 컴퓨터로 자기 자신과 우리들 모두의 이야기를 엮어서 그림으로 그려냈다.

 

저자는 씁쓸한 을의 연애를 32가지 에피소드로, 고양이 그림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을은 분명 갑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다만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뿐… 연락 문제, 잘못에도 당당한 태도, 늘 친구가 1순위인 모습, 뻔뻔한 거짓말, 이런 갑에게 던지는 을의 속 시원한 18가지 '사이다 투척' 에피소드도 담고 있다.

 

 

 

 

연락은 내가 늘 먼저한다

 

사귀는 연인이 있으면 뭐 하나? 늘 먼저 전화하고 연락하는 건 상대방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다고 나누는 통화가 뭐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다. "밥 먹었어?" 또는 "뭐하고 있었어?" 등과 같이 가벼운 일상의 동향을 묻는 정도이다. 이렇게라도 물어봐야 겨우 "친구들이랑 술마시러 가"라고 반응한다. 이런 식의 관계라면 바로 당신은 '을의 연애'를 하는 것이다.

 

상대는 뭘하고 있는지 먼저 말해 주는 법이 없다. 왜 먼저 말해 주지 않고 게다가 왜 맨날 술을 마시러 가는지 묻고 싶지만 감히 그런 행동을 못한다. 왜냐고? 전에 한 번 물어보았더니 그런 나 때문에 상대는 "숨이 막힌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 한다. 아무튼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상대도 연락하지 않는다. 마냥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생각이 교차된다. '헤어질까, 말까' 그런데, 타이밍 한 번 기똥차다. 이 연락 하나에 그 많던 번민이 봄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내일 데이트 할까?"

 

 

항상 대기조

 

상대는 친구들이 더 좋고 술이 더 좋다. 결코 우선순위가 아닌 나는 겨우 상대가 남는 시간에 만나는 사람일 뿐이다. 나 만날 시간이 없냐고 말하면 상대의 반응은 더 냉정하다. 정말 상대는 남는 시간에만 나를 찾는다. 결코 원하지고 않는 나는 대기조가 되고 말았다. 만날 친구도 있고, 술 마시는 것도 좋아 하지만 상대가 언제 나를 만나자고 할지 모르니 항상 기다리기만 한다. 상대는 언제쯤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비워줄까?

 

"우리 일주일에 한번만 봐도 되잖아. 나 과제도 많단 말이야"
"친구들이랑 술을 내내 마시면서 나 볼 시간은 없어?"
"너도 친구 만나서 놀아. 나만 바라보고 사냐? 너 만나고 나중에 친구들 만나러 가야해"

 

 

꿈을 꾸었다

 

"미안했어. 우리 다시 잘해보자"

"응!"

 

꿈마저도 을의 입장이다. 다시는 안보겠다며 떠난 상대가 미안하다며 다시 교제를 시작하자고 말하는 꿈이었다. 이때 난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정말 난 바보같다. 상대가 먼저 다시 시작하자고 연락해주면 바로 이를 받아들이니 말이다. 지금도 떠난 그 사람이 다시 와주기를 간곡히 기다리는 내 심정이 꿈에 나타난 셈이다.

 

 

연인이 이별을 고할 때

 

"니가 너무 착해서 내가 만날 자격 없어.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다른 사람 생겼어)
"나 이제 공부하려고"(너보다 좋은 사람 만날려고)
"일이랑 사랑 동시에 안 되겠어"(니가 일보다 힘들다)
"혼자 있고 싶어"(더 이상 니가 감당 안 돼)
"그냥. 이유 없어. 헤어져"(여태 수도 없이 말해왔어)

 

대부분 연인들이 이별할 때, 그 이유가 뭐냐고 상대에게 물으면 이런 식으로 답한다. 그렇다. 속마음은 그게 분명 아닌데(괄호 안을 보라), 진짜가 아닌 거짓으로 답한다. 그저 상대에게 끝까지 잘 보이려고 사탕발림 소리를 늘어놓는 셈이다. 이런 행동을 그대로 믿고 속을 태우는 사람이라면 바로 '을의 연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싫어졌다면 시시콜콜하게 이별의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깨진 접시 다시 붙일 수 없다

 

접시를 내던지면 그 접시는 당연히 깨질 것이다. 깨진 접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면 다시 원위치가 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게 바로 사람과의 관계이자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한번 깨지고 나면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돌아오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서로의 마음을 잇는 신뢰도 이와 같다. 한번 깨진 사이는 억지로 붙여봤자 살짝만 건드려도 산산조각나기 마련이다. 깨진 조각을 붙들고 후회해봐야 이를 잡은 손에 상처만 날 뿐이다. 상대의 마음과 신뢰를 깨뜨린다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제발 술에 취해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하지 마라.

 

 

싸구려 친절은 필요 없다

 

"피곤할까봐 사왔어~"

 

연인이 나를 챙겨주는 건 분명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하지만 다른 이성에게도 동일한 상황에서 똑같이 이렇게 챙겨준다면 이는 그냥 친절한 행동일 뿐이다. 연인이라면 특별하고 싶기 때문에 당연히 특별한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누구에게나 행동하는 그런 수많은 친절 중 하나를 나에게 하는 것이라면 굳이 계속할 필요 없다. 소위 치마 입은 사람에겐 늘 이런 식인데 말이다. 이런 싸구려 친절은 휴지통에 버려라.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사랑하자

 

을의 자세로 사랑하다 보니 그만큼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기에 나의 마음을 연인에게 모두 말할 수 없고 보여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면을 쓴 채로 연인에게 척하면서 지냈다면 이젠 새롭게 사랑을 해보자. 이제껏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연인에게 모두 맞춰주려던 탈도 벗어버리자. 나의 참모습 그대로 연인과 사랑하자. 지금껏 '을의 연애'를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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