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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
한승원 지음 / 푸르메 / 2008년 10월
평점 :
철학은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의심은 미혹과 탐욕과 오만과 인색함과 옹졸함과 시기 질투 복수심을 그치게 하고, 깨끗하고 넉넉하고 드높은 삶을 보게 하고 그것을 열어가게 한다. 글쓰기는 바로 그 깨달음을 얻어가는 기록이다. - '본문' 중에서
글 쓰는 비법을 배운다
책의 저자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한국 문학에서 독보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데, 그의 작품들은 늘 고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그 바다는 역사적 상처와 개인의 욕망이 만나 꿈틀대는 곳이며, 새 생명을 길어내는 부활의 터전이다. 1995년 서울을 등지고 전남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그는 맨부커 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이다.
이 책은 단순한 글쓰기 기술만을 설명하지 않는다. 글은 갈고 닦은 사유와 진실한 마음, 올곧은 삶 저 곳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놓치기 쉬운 ‘정신’에서부터 시작한다. 글이 대체 무엇인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어떤 마음과 자세로 글을 대해야 글이 자신에게로 오는지를 소개하는 것이다.
시와 소설에서 동화와 수필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끊임없이 글과 마주했던 저자가 얻은 주옥같은 글쓰기 비법이 이 한 권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쓰기란 무엇인가란 질문에서부터 글 쓰는 이의 정신, 글을 쓰는 방법, 글쓰기 실전, 글을 꾸미는 법, 논술 쓰기의 비법 등이 총 6장으로 나눠져 소개된다. 글을 구성하고 쓰는 방법과 글감을 찾는 구체적인 방법, 비유법읠 종류와 용례 등을 담고 있다. 풍부한 예문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법을 체득할 수 있게 한다.
탑처럼 하늘로 솟아오르기
저자는 시를 쓸 때 시어 하나를 가지고 몇 날 며칠 고심한다. 돌담을 쌓은 적이 있다. 돌 하나를 놓을 때, 그 돌은 밑에 놓인 돌과 양옆에 놓이는 돌과 위에 놓이는 돌들이 서로 아귀가 맞아야 한다. 시어도 그러하다.
그는 우주로 뻗은 머리카락 같은 뿌리로 영양분을 얻어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은 시를 향해 날아가고, 그 시는 음악을 향해 날아가고, 그 음악은 무용을 향해 날아가고, 그 무용은 우주의 율동을 향해 날아간다. 그것의 종착점은 우주의 시원이다.
그는 시를 여기餘技로 쓰지 않는다. 시를 위해 우주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자주 씀으로써 사념이나 서정이 물 타기로 인해서 희멀겋게 희석된 것, 그리하여 기다랗게 늘어난 시를 그는 미워한다. 그는 치열한 삶이 보석처럼 앙금진 것을 좋아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면 치열하게 증명받아라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상대에게서 증명받고 싶어하고 상대를 증명해주고 싶어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자기를 증명해줄 사람이 ㅇ럾을 때 또 자기가 증명해줄 만한 사람이 없을 때 우리는 얼마나 슬퍼지는가.
글쓰기도 그러하다. 자기가 살아 있음을 증명받고 싶어 글을 쓰고, 내 삶을 나 스스로에게 증명해주고 싶어 글을 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별로 잘나지도 않은 자기 얼굴과 자기 몸매에 반하여 사는 그 미친 짓이 없다면 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살아 있는 한 글을 쓰고 그를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중에서
내 머리를 탓하라
테니스를 할 때, 내가 보내고자 하는 쪽으로 공이 날아가지 않으면 그때마다 라켓의 그물 여기저기를 살폈다. 손가락 끝으로 죄 없는 그물코 간격을 밀어올리기도 하고 끌어내리거나 옆으로 당겨 젖히기도 했다.
의도한 대로 공이 날아가지 않는 것은 결코 라켓의 잘못이 아니다. 라켓을 잡은 손과 팔과 어깨의 잘못이고, 그것들에게 명령을 내린 머리의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 치는 자들은 자꾸 라켓 탓을 한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은 결코 나의 문장력 탓이 아니다. 그 문장을 그렇게 쓰라고 명령한 내 머리의 탓이다. 문장은 아름답고 고운 포장이면서 동시에 그 속에 숨어 있는 달을 손가락질해주는 방편이다.
글쓰기에 미쳐라
"내 글씨는 비록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70년 동안 먹을 갈아 구멍 난 벼루가 열 개나 되고 몽당붓이 천 자루나 되었소이다"
소설을 쓰겠다고 하는 제자나 후배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화가인 권돈인과 대원군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었던 것이다.
모름지기 글을 잘 쓰려면 마음속에 착함과 진실됨이 담겨 있어야 한다. 다음은 글쓰기에 미쳐야 한다. 미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매진한다는 것이다. 글을 쓰되 그 글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해야 한다. 한번 쓴 것을 고치고, 다시 고치고 또다시 고친다. 그것을 오랫동안 묵혀놓았다가 새 마음으로 고치기를 몇 번이든지 거듭해야 한다. 추사가 얼마나 많은 종이를 없앴겠는가.
향기롭게 써라
글에는 그것을 쓴 사람의 진실이 보석처럼 박혀 있기도 하고 허위의 구린내가 만장처럼 너풀거리기도 한다. 진실한 자는 나서지 않고 침묵할 줄 알고 연금술사처럼 기다릴둘 안다. 진실하지 못한 자는 자기의 진실하지 못함이 드러날까봐 조급해하고, 진실하지 못함을 변명하기 위해 수다나 너스레를 떨고 넉살을 부린다.
진실하지 못한 글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현란한 수사로 치장을 하게 되면, 그것은 고운 헝겊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보자기로 오물을 싸놓은 것처럼 흉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영혼이 순수하고 진실해야 한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혼자서만 잘 먹고 잘 사는 이기利己가 아닌, 세상과 더불어 살려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라
세상과 자기의 일로부터 사랑을 느낀 사람은 삶을 향기로워하고 그것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절망하고 원망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증오하고 숨어서 비관하고 우울해한다. 글도 사랑으로부터 온다.
고지식한 사고방식을 버려라
꿈속의 계단을 실수 없이 정확하게 계속 밟아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자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리하여 다시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데, 잘못 헛디뎌 추락하는 자는 벌떡 깨어나 새로이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기억력이 뛰어나고 늘 정확한 사고만 하는 사람의 머리에서는 문학적인 상상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과일이 썩지 않으면 술이 될 수 없듯이 어떤 생각이 기억 속에서 썩어 없어지지 않으면 문학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