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의 길 - 축적의 시간 두 번째 이야기
이정동 지음 / 지식노마드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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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술혁신'이라는 키워드에 몰두하는 연구자로서 나는 늘 이 타이거 마스크처럼 되는 것이 소망이다. 아이폰과 앱스토어라는 개념이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이게 뭐지?'라는 느낌으로 어안이 벙벙한 채 놀라워 했고, 스티브 잡스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결코 넘볼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사는 창조적 인물로 간주되었다. 마치 상상도 못했던 참신하고 놀라운 마술을 눈앞에서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기술혁신 연구자인 나는 바로 이즈음에 홀연히 나타나서, 그 혁신이 천상계의 주술 덕분이 아니라 사실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과정의 필연적 결과라는 점을 일러주고 싶다. 혁신의 비밀을 듣고 나면 누구라도, '아하, 그렇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게 돕는 것이 소망이다. - '머리말' 중에서

 

 

시행착오를 축적하는 5가지 전략과 4개의 열쇠

 

책의 저자 이정동 교수는 산업공학과와 대학원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 전공 소속이며, 기술경영·기술정책 분야를 전공하고 있다. 한국생산성학회 회장(2011)을 역임하였고, 한국기업경영학회 회장(2017)을 맡고 있다. 크게 화제가 된 <축적의 시간>(2015)을 대표 집필하였다. 국제저널인 TECHNOVATIONEDITORIAL BOARD MEMBER로 활동하면서, ASIA-PACIFIC PRODUCTIVITY CONFERENCE (APPC) 2018 회의 개최를 주관하고 있다.

'효율성 분석이론', '공학기술과 정책' 등 전공서적과 번역서로 '진화경제이론'을 출간하였고, 2권의 영문 편집서를 포함하여 국내외 전문학술지에 100여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기술경영, 기술정책 분야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다양하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 산업발전의 역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개발도상국의 산업발전을 위한 자문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경제가 고도성장을 시작하던 60년대 말에 태어나, 민족중흥이라는 한자의 의미도 모른 채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면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는 초스터를 그리고, '수출만이 살길이다'에 견줄 수 있는 기막힌 표어를 지어 내느라 머리를 쥐어짜면서 방학을 보냈다.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던 때 우리 집이 부자가 된 것처럼 좋아했던 기억도 있다. 그때 이후로도 한국경제는 계속 성장했다.

 

73년 1차 오일쇼크, 79년 2차 오일쇼크, 8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예상치 못한 사태를 맞아 성장이 한두 해 후퇴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보란 듯이 회복했고,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발전을 거듭했다. 그래서 경기가 오래도록 침체상태에 빠져 있는 그림은 지난 50년간 경험해 본 적도, 우리 머릿속에서 그려본 적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다. 얼마 전 방문했던 울산의 한 중소기업에사 만난, 말없이 그저 한숨만 쉬던 사장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책 없이 무너져가는 지방의 경기 침체 상황은 정말 걱정스러울 정도다. 우리 산업과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는 단순히 통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팩트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한숨만 나온다. 이 책은 한국산업이 가진 문제에 천착하여 그 해법을 내놓고 있다.

 

5가지 전략

 

1. 시행착오 경험을 담는 고수를 키워라

2. 스케일업 역량을 키워라

3. 시행착오를 뒷받침할 제조 현장을 키워라

4. 사회적 축적을 꾀하라

5. 중국의 경쟁력 비밀을 이해하고 이용하라

 

 

 

 

1단 엔진 분리 실패, 2단 엔진 점화 실패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켓에 비유해서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산업이 처한 현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공위성이 지구 중력에 이끌려 다시 낙하하지 않으려면 충분한 높이의 궤도까지 로켓이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하나의 엔진만으로는 충분한 고도와 속도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통상 1단 엔진 위에 2단 엔진을 얹은 2단 로켓을 사용한다. 즉 1단 엔진으로 중력이 강한 구간을 힘차게 돌파하고, 이후 어느 정도의 고도에서 2단 엔진을 가동해 원하는 고도와 속도에 도달하는 것이다.

 

로켓의 비유는 한국산업의 문제를 해석하고 처방을 얻기 위해 유용하고, 그래서 생각의 지도로 쓰기에 충분하다. 다음의 세 가지 비유적 질문이 핵심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산업이 처한 현실을 분석하면서 끝까지 견지해야 할 세 가지 핵심적인 질문이다.

'1단 엔진이 왜 잘 작동하였는가?'는 고도성장기의 성공적인 루틴이 무엇인가에 해당
'2단 엔진이 왜 점화가 잘 되지 않는가?'는 기술 선진국이 되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 뭔지에 해당
'쓸모가 다한 1단 엔진을 왜 버리지 못하는가?'는 기술 선진국으로 전환이 어렵다는 것에 해당

 

 

시행착오의 경험이 가장 훌륭한 교과서

 

회사의 시스템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천대교와 영종대교 설계 때 얻었던 시행착오의 경험이 무엇이었고, 그 이후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알고 싶어, 설계에 참여했던 사람을 만나볼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담당자가 두 명의 사원을 소개해 주었는데, 언뜻 보더라도 할아버지인 것에도 놀랐지만, 회사 작업복을 입고 막 근무를 하다 온 상태라서 더 놀랐다. 두 사람의 입사연도가 각각 75년과 76년이니 설계로 경력을 쌓은 햇수만 40년이 넘는다. 공사 경과를 담은 백서를 각각 펴놓고, 두 교량을 설계할 때 겪었던 이런 저런 특이한 공학적인 도전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의 프로젝트에서 어려웠던 점으로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특이하게도 설계기간을 포함한 전체 공기를 단축하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는 했지만, 이미 두 사람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많은 의문들이 풀렸다. 창의적인 개념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량은 매뉴얼이나 교과서, 시스템이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글로벌화된 시대, 연결망의 시대, 구글링 하면 모든 것을 클릭 몇 번으로 알아낼 수 있는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특정한 물리적 위치에 창의적인 사람들이 더 모이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인터넷에서 정보가 많이 공유되면 될수록, 그런 형식지 형태의 지식은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창의적인 시행착오의 경험은 암묵지로서 더욱 희소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바야흐로 거리가 소멸된다고 하는 인터넷 시대일수록 물리적 거리의 의미가 더 중요한 창의적 클러스터의 시대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개념설계 역량은 결국 교과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시행착오의 경험이라는 형태로 생채기처럼 체화된다는 것이다.  

 

 

시행착오의 '양量' 

픽사에서는 주기적으로 수백명에 이르는 감독들의 아이디어와 중간결과물을 평가하기 위한 회의가 곳곳에서 열린다. CEO와 콘텐츠, 기술 등 분야별 최고책임자와 많은 감독들이 함께 참여해서 건설적인 비판을 주고받는 회의다. 단지 말만 하고 끝나는 회의가 아니라, 수많은 프로젝트의 아이디어와 중간 단계 결과물의 생사가 결정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픽사는 1995년 '토이스토리Toy Story'부터 2016년 '도리를 찾아서Finding Dory'까지 17편의 장편 에니메이션을 발표했다.

 

16번 아카데미상을 받고, 7번의 골든글로브상, 11번의 그래미상을 수상했을 만큼, 한편 한편이 이 분야의 새로운 개념설계급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놀라운 성과의 이면에는 각 단계에서 죽어나간 수백 편의 미완성 작품이 있다. 매 작품마다 전설을 써온 픽사의 창의성은 사실 그 어떤 애니메이션 회사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시도했다는 것에 그 비밀이 있다. 창의적인 것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것을 만날 때까지 많이 시도한 것이다.   

 

 

익숙한 것들을 의심하자 

지금 한국의 산업계는 전례 없는 미시감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기존에 하던 대로, 기민하게 선진국과 선진기업, 선진시장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벤치마킹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니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더 열심히 대책을 마련하고, 성장 정체 현상의 돌파를 외치고 있는데, 두 다리는 점점 더 흐르는 모래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에는 위기를 맞아서 조금 더 빨리 발을 움직이면 확실히 더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 더 열심히 달릴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 전개에 당황하고 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처럼 경계를 허무는 융합적 기술혁신이 뿔끝에 횃불을 매단 소처럼 미친듯이 달려들고, 굼뜨고 낡은 화물차인 줄 알았던 중국이라는 거대한 트레일러가 최신 엔진으로 무장한 채 바로 뒤에서 길을 비키라고 빵빵거리고 있다. 그간 너무 익숙해져서 편안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즐기고 있던 운전자가 갑자기 낯선 길과 처음 보는 풍경을 만나 화들짝 놀라 갈팡질팡하는 초보운전자처럼 땀을 흘리는 중이다.

 

뒷골이 서늘한 미시감은 어쩌면 우리를 일깨우는 신호일지 모른다. 이제까지 편안하게 느껴졌던 관행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행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축적의 길을 나서는 우리의 첫걸음은 우리를 눈부신 성공으로 이끈 바로 그 관행과 결별하는 쉽지 않은 일에서 시작된다.

 

 

4개의 열쇠

 

1. 고수의 시대

2. 스몰베팅 스케일업 전략

3. 위험공유 사회

4. 축적지향 리더십

 

 

진리는 상상의 문제다

 

한국의 현재 산업이야말로 독창적인 개념설계를 할 수 있는 진정한 기술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상상과 희망을 간절히 필요로 한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설정한 마음의 유리뚜껑을 걷어내고, 상호 뒷받침하면서 부딪치기로 작정하고 뛰어오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틀을 축적지향蓄積志向으로 바꾸어야 한다. 기술 선진국의 마인드로 전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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