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 - 보통의 행복, 보통의 자유를 향해 달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록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지음, 정미화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0년이 지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생각햇던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내가 진정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움직임이 해방이면서 동시에 변화라는 걸 느꼈다. 두 다리가 튼튼해졌고, 도시 곳곳을 뛰면서 누리는 온갖 즐거움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새로운 풍경이 나를 감쌌다. - '들어가며' 중에서

 

 

마라톤을 즐기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

 

이 책의 저자 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는 온라인 문학 비평 저널 <시드니 리뷰 오브 북스>의 편집장이다.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10년간 몸담고 있으면서 페미니즘, 문화, 정치에 관한 기사와 에세이를 곳곳에 발표했다. 시드니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딴 후 2001년부터 대학생들에게 영화, 문학, 저널리즘, 문화 연구를 가르쳤다. 2008년 처음으로 하프 마라톤에 도전했고, 이후 풀코스 마라톤은 다섯 차례, 하프 마라톤은 수십 차례 참가했다. 지금도 달리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달리는 여성에게 '세상'이 보내왔던 협박과 경고의 메시지를 유쾌하면서도 단호하게 부인하며 여자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즐겁게 달리는지, 직접 온몸으로,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다. 페미니즘 이론과 문학 이론, 문화 비평을 감동적인 개인사와 함께 엮어 달리기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흥미롭고 재치 있게 풀어냄으로써 달리기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규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1988년, 평범한 스무 살을 보내던 그녀에게 비보가 날라든다. 지인들과 여행을 떠난 부모님이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치기로 청춘을 만끽하던 그녀는 어린 동생들과 자신의 미래를 짊어진 채 갑작스럽게 '어른의 세상'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긴 여행을 다녀보기도 하고 미친 듯이 공부에 집중해보기도 했지만 기나긴 우울의 터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10년이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어느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허름한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라는 것을 시작한다. 그렇게 한두 번 가벼운 마라톤에 참가하던 그녀는 1960년대까지 남성들의 영역이었던 장거리 달리기에서 '달리기를 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겪으며 수 세기 동안 억압되어 왔던 여자의 위치에 대해 들여다보게 된다.

 

 

 

 

마라톤에서 처음으로 여자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 전이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 그리스 여성에 대한 세 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떠돌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달리는 여성'을 거부하는 남성들의 모습이다. 1960년대 이전까지 마라톤에 도전장을 내놓았던 여성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짜깁기식으로 기록이 되어 있고, 당시 여성 참가자들은 심한 야유를 받거나 돌 세례를 받기도 했다. 달리는 여성에 대해서는 여자답지 못하다, 보기에 경박하다, 임신과 출산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경멸했고, 그런 여자들을 혐오하는 '숙녀'들도 많았다. 당연히 그녀들이 왜 달리는지,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이키의 '쉬 런 더 나이트'

 

'쉬 런 더 나이트'라는 이번 행사의 타이틀은 '밤을 되찾자'Reclaim the Night(1970년대 영국에서 여성 폭력에 맞서 시작된 운동)' 운동과 미국에서 일어난 비슷한 성격의 '밤을 돌려받자Take Back the Night (1977년 미국에서 밤거리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운동)' 운동과 아주 유사해 보인다. 페미니스트 성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이런 행사에서도 나이에 관계없이 수많은 여성들이 어두워진 뒤 공공장소에 함께 나서지만, 공원 주위를 달리는 대신 여성의 안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거리를 행진한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저자가 참가했던 여러 행사에서는 야광봉이 아닌 촛불을 들었다.

 

 

여자답게 달린다는 것

 

"지난 8월 어느 토요일,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오클랜드 교외 마누레와에 거주하는 밀리 샘슨은 새벽 1시까지 춤을 췄다. 다음 날에는 11인분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중간에 마라톤 경기에 참가해서 3시간 19분 33초에 완주했다"

 

이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에 실린 두 번째 세계 기록 경신 기사의 내용이다. 1964년 여자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은 두 번이나 깨졌다. 실제 밀리 샘슨은 비혼非婚이었고 당연히 자녀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기록을 8분이나 단축했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넘어갔다. 기사의 대부분은 뉴질랜드 중거리 육상선수 피터 스넬이 다가오는 세계 선수권대회 준비 과정을 소개하는 데 할애되었다.

 

 

달리는 여성은 안전한가?

 

가부장 사회를 전혀 해치지 않고 여성들이 마라톤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한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달리는 여성에 대한 견해는 여전히 비뚤어져 있었다. 달리는 여성이 너무 말랐다거나 너무 뚱뚱하다거나 지나치게 남성적이라거나 너무 근육질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또 얼굴이 너무 여의고 몸은 너무 그을린 것 같고, 여성스러움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쉽게 내렸다. 

 

달리기를 하는 대부분의 여성이 '남자들이 강인한 여성한테 위협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달리는 게 아니라고 해도 이런 잣대를 피하기는 힘들다. 도덕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밖에서 저렇게 혼자 있는 겁니까?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겁니까?" 천변지이설(하늘과 땅에서 큰 변동이 몇 차례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생물군이 거의 사라지고 살아남은 종이 번식하여지구상에 분포하게 되었다는 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걱정한다.

 

"자기 자신한테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겁니까?” 바보 멍청이들은 이런 주장을 한다. "왜 뚫어지게 쳐다보지 말아야 하는데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저렇게 나와 있잖아요. 저 여자가 아주 좋아한다니까요"

 

심지어 달리기 하는 여성의 불쌍한 운명에 관해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아직까지도 여러 문화권에 남아 있다. 현대 서구사회에서 달리기 하는 여성이 겪는 생생한 경험과 그 고통을 묘사한 내용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달리기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종착지는 변화와 탈출 그리고 회복이다. 달리기 하는 여성 대다수는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일부는 분노나 상처 또는 절망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달리기를 통해 그 고통은 지속되기보다는 중단된다. 소설가이자 마라토너인 조이스 캐롤 오츠는 이렇게 썼다. "마라톤보다 행복하고, 기분 좋고, 상상력을 키우는 활동이 있을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

 

누군가 말하고 싶은 슬픈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저자는 귀를 기울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없기 때문이다. 풀이 죽어 있는 사람이 조언을 구한다면 달리기가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고 다시 활력을 되찾게 했다고 말할 것이다. 달리기를 할 때 그녀의 인생은 바뀔 수 있고 습관은 깨질 수 있으며, 몸을 움직이는 일은 비유가 될 수 있고 동시에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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