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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 생명의 온기 가득한 우리 숲 풀과 나무 이야기
이유미 지음 / 지오북 / 2004년 3월
평점 :
철철이 피고 지는 식물들. 그리고 그 속에 감추어진 식물들의 이야기를 엮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냥 문화적인 이야기나 식물학적인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늘 곁에 있어 사소하거나 흔하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식물들의 이야기 말입니다.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가 보면 저절로 그 속에 숨어있는 과학과 삶의 진실을 발견하는 이야기. - '시작하며' 중에서
식물의 생존전략을 배운다
광릉 숲 국립수목원의 생물표본연구실장으로 일하는 저자가 진달래 산천이라고 하던 우리 산에 진달래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 키 큰 옥수수가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서는 이유, 호밀의 뿌리털의 표면적이 테니스코트 2개 넓이라는 사실 등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미난 식물의 세계에 관해 쓴 책이다. 또한 이 책은 한국일보에 매주 1회 2년 동안 연재한 95편의 편지글을 모아 다듬고 사진을 보태어 만든 것이다.
저자 이유미박사는 조선 초기부터 지금까지 500여 년 동안 잘 보존되어 생물다양성의 보고라고 알려진 경기도 포천 광릉 숲에 자리한 국립수목원의 연구관으로 산림생물표본관 실장을 맡고 있다. 일제감점기와 6.25동란 이후 십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온 나라의 산이 붉은 민둥산 투성이이던 시절 서울에서 태어났다.
녹화사업과 나무심기운동으로 우리 숲이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갈 무렵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물분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숲은 제 모습을 찾아가지만 일반인의 숲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폭넓지 않았을 때부터 우리나라의 산과 들, 도서벽지를 찾아다니며 나무와 풀에 관해 연구를 했다. 특히 사라져 가는 식물의 보전 같은 식물분류학을 기저로 한 국가 차원의 연구에 주력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많은 글과 책을 써냈다. 또한 봄철 우리 땅에 자라는 키 작은 풀처럼 차분히 겨울을 준비하는 키 큰 나무처럼 나직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강의와 글로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백목련은 왜 북쪽을 향해 필까?
봄은 하얀 꽃이 아름다운 백목련의 계절이다. 그런데 백목련은 왜 북쪽을 향해 꽃이 피었을까? 이는 바로 햇빛 때문이다. 봄 햇살을 잘 받을 수 있는 남쪽 방향으로 향한 겨울눈의 생장호르몬이 더 왕성하게 분비되어 더욱 빨리 자라므로 자연스레 꽃봉우리가 북쪽을 향해 굽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이를 '북향화'라고 불렀으며, 임금님이 계신 북쪽을 바라보는 '충정의 꽃'이라고도 했단다. 이제 봄에 핀 백목련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꽃봉우리의 방향을 점검해보는 재미를 느껴보자.
개나리 열매를 보셨나요?
봄엔 온 거리가 노란 칠을 한 듯 샛노란 개나리의 물결로 넘실거린다. 이에 자연스레 우리들의 마음도 출렁거린다. 특히, 젊은 선남선녀들의 가슴엔 춘흥春興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예로부터 봄엔 꽃구경 나들이가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지천에 널려있던 개나리꽃이 지고 난 후 열매를 맺는 걸 본 사람은 드물다. 왜 그럴까?
우리 주변에 피는 개나리는 주로 암술이 퇴화해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수꽃이기 때문이다. 줄기를 잘라 흙에 꽂아서 뿌리를 내리는 꺾꽂이로 대량 복제를 한탓에 아버지와 똑같은 자식들만 생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열매를 맺을 기회가 점차 사라진 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개나리가 싫증나서 더 이상 심지 않게 된다면 순식간에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스스로 열매를 만들어 씨앗을 퍼뜨리지 않는, 즉 조물주의 법칙을 어긴 댓가치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인간의 복제도 이와 유사할 것이다.
식물이 동물보다 한 수 위다
가을의 명절은 추석이다. 추석하면 떠오르는 게 보름달과 송편 아닐까 싶다. 송편은 바로 소나무와 연관되어 있다. 즉 떡을 찔 때에 솔잎을 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송편'이다. 그렇다면 굳이 왜 솔잎을 깔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옛 선인들은 솔잎을 깔고 찌면 떡이 잘 상하지 않음을 알았던 것이었다. 이는 솔잎에서 나오는 성분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솔잎 성분을 연구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최근에는 천연물질에서 획득한 성분으로 질병을 고치는 약의 개발이 트렌드다. 그런데, 동물에서보다 식물에서 그 원료를 찾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이나 각종 제도가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이를 두고 '식물인간'이니 '식물국회'니 하면서 식물들을 폄하하고 있다. 과학적으로도 스스로 행동하고 조절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관여하는 DNA도 식물에게 훨씬 많다.
열매가 붉은 이유는?
가을이 무르익으면 만산萬山이 홍엽紅葉이다. 이뿐이랴. 단풍이 만들어내는 고운 색깔의 향연만큼이나 고운 빛깔의 열매들도 많다. 백당나무 열매는 이미 오래 전에 색깔을 노출했고 보라색 좀작살나무, 자줏빛과 까만 열매가 멋지게 어우러진 누리장나무 등의 열매 빛깔은 독특하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붉은 열매들이다. 아마도 붉은색이 새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나무 열매들의 빛깔이 고와도 새 외에는 아무도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열매엔 양분과 수분이 적어서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무들은 왜 붉은 열매를 만들어 새들을 유혹할까? 이에 대해 열매를 보기 좋게 하고 맛과 영양가가 있도록 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요되므로, 겉모습만 번듯한 열매를 만들어 눈속임을 하려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좀더 유력한 다른 가설로 생산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맛없는 열매를 만든다는 것이다. 보기도 좋고 맛까지 좋으면 새들은 열매가 익기도 전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먹어치우고, 비슷한 시간과 장소에 많은 양을 배설하게 되므로 열매 속의 씨앗이 골고루 넓게 퍼져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새들의 눈에 잘 띄게 유혹한 다음 새들이 먹어 보고 맛이 없어 기피하다가 먹이가 부족한 겨울까지 두고두고 먹게 해서 씨앗이 널리널리 퍼져나가게 하려는 생존의 전략인 셈이다.
존재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라할지라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식물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오랫동안 이를 관찰하면서 관련된 학술지나 연구 결과 등의 공부를 병행하면서 저자 나름의 결론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냄으로써 우리들은 식물의 삶에 대해 더욱 귀 기울일 수 있고 나아가 존재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다. 풀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