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24시간 살아보기 - 2000년 전 로마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생활 밀착형 문화사 고대 문명에서 24시간 살아보기
필립 마티작 지음, 이정민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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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삶이란 제국의 영광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라, 집세를 구하고 집과 일터에서 맞닥뜨리는 까다로운 지인들과 일상적 문제들에 대처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당시 로마가 아무리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라 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길을 찾고,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시장에서 값싸고 신선한 식료품을 찾기 위해 애써야 했다. - '들어가며' 중에서

 

 

로마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 시절의 로마인들

 

책의 저자 필립 마티작은 옥스퍼드 세인트존스칼리지에서 고대 로마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후반 아직 어렸을 때 부모님께 선물 받은 고대 로마 병사의 모습을 한 작은 인형이 그를 잡아끌었다. 그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지난 40년 동안 이에 대해 읽고, 쓰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로마공화정> 등이 있다.

 

당시의 로마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책에는 24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한번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당시 로마의 이웃이다. 저자는 이들의 일상적 경험을 조합해 '한 사람'의 '한 시간' 형식으로 구성함으로써 시간별로 로마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등장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허구가 아니라, 유물과 문학작품을 비롯해 일화와 농담, 연설, 서신 등 가치 있는 자료들을 통해 학자들에 의해 고증된 고대 로마인의 실제 모습이다.

 

서기 137년 9월 초, 로마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로마제국의 영역이 메소포타미아와 다키아 지역에까지 이르고, 템스강부터 티그리스강에 이르는 광할한 지역에서 거대 제국의 명성을 떨치며 두려움과 존경을 동시에 샀다. 이 책은 서로 다른 24명의 눈을 통해 고대 로마 시대 어떤 하루로 우리를 안내한다.  

 

좀 더 나은 벌이를 위해 군중을 헤치고 좁디좁은 길을 달리던 수레꾼 비비우스
완성된 빵에 자랑스럽게 직인을 찍던 제빵사 미스트라티우스
수업료가 모이지 못하면 길바닥에서 수업을 해야 했던 선생 
공작새, 호랑이, 기린, 온갖 재료로 볼거리까지 제공하던 요리사 카이킬리우스 
취객의 난동에 회초리를 들고 다니던 술집 여주인 코파

토가를 입은 매춘부 마밀라 
체육관, 오락거리, 스낵바까지 갖춘 로마 목욕탕의 종업원 
최고의 권위를 누리다 후견인의 재력 앞에서는 꼭두각시가 되는 상원의원

 

 

 

아침식사를 책임지는 제빵사

 

시인 유베날리스로마의 서민들은 '파넴과 치르첸세스', 즉 '빵과 서커스'를 통해 권력에 예속된다고 지적했었다. 실제 로마인들은 밀을 배급받았지만, 화재에 취약한 주거지에서 누군가 불을 잘못 피우면 이웃들은 이에 분개하고 응징에 나섰다. 그래서 빈곤층은 배급받은 밀을 제빵사에게 가져가 약간의 수고비를 지불하고 빵을 구워온다. 밀 배급량은 가구당 하루에 빵 두 조각 정도이다. 제빵사는 이런 손님들로 인해 온종일 쉴 틈 없이 빵을 구워 내야만 했다. 당시 제빵사 길드는 로마의 상인 계급 중에서도 상당한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 상원에는 제빵사 출신 의원석이 따로 있었다.

 

집에서 만든 빵은 빵집의 빵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는 반죽이 잘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맛있는 빵의 성패는 효모에 달려 있다. 당시 이를 몰랐던 제빵사들은 빵 반죽을 잘 부풀리기 위해 끊임업시 실험을 했다. 빵집 안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조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늘 빵을 굽는 열기로 빵집 안이 후텁지근한데 수레꾼을 기다리던 노예가 얇은 튜닉 한 장만 걸쳤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불빛이라고는 오븐에서 타오르는 장작불이 전부여서 마치 팬터마임 공연이 열리는 지하 극장 같은 분위기다.

 

출입문 양쪽으로는 상판에 단단한 현무암을 덧댄 큰 탁자가 있다. 그 위에는 거대하고 길쭉한 대야가 있는데 여기에 빵 반죽 재료를 붓는다. 그리고 원하는 빵의 크기에 따라 소금과 올리브유를 조절해 넣는다. 올리브유를 많이 넣을수록 빵은 말랑말랑해지고, 톡 쏘는 로즈마리 향이 풍기는 소금은 로마인이 음식에 곁들여 먹기 좋아하는 자극적인 소스와 빵을 서로 잘 어울리게 만든다.

 

 

 

주인마님의 머리를 손질하는 여종  

곱슬머리가 궤도를 벗어나기라도 하면 주인마님은 여종 프세카스에게 곧장 매질을 가할 기세로 가죽 채찍을 손에 꼭 쥔 채 묻는다. "이 머리는 왜 이렇게 뻗친 거야?" 당연한 일을 가지고 죄없는 여종을 탓하는 것일까? 이처럼 주인마님의 못생긴 코가 마님을 불쾌하게 만들어도 그 책임은 억울하게도 여종에게 있다.

 

프세카스의 손질과 동시에 그 왼편에서는 또 다른 여종이 주인마님의 머리채를 끌어당겨 빗은 다음 둥글게 말아 올린다. 마님은 머리 손질 서열 상위에 있는 여종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다. 먼저 서열이 높은 여종의 의견이 반영되고, 나이와 기술에서 서열이 낮은 여종들의 의견이 나중에 반영될 것이다. 헤어스타일은 여종들의 명성,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어서 여종들은 헤어스타일의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길바닥 수업이 싫은 남학생  

푸블리우스 펠리쌈의 선생인 리테라투스는 학생수에 따라 일당을 받는다. 학생수가 스무 명에 못미치면 본전치기도 안 된다. 그래서 수업을 재판이나 회의용으로 사용하는 회당 안에서 진행하지 못하고 야외에서 해야만 했다. 회당은 햇볕과 바람을 막아주고 학생들이 벤치에 앉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수가 적어서 선생은 회당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뇌물을 줄 수가 없으므로 푸블리우스를 포함한 학생들은 길바닥에서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다. 

 

리테라투스는 학생들에게 '오르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오르빌리우스는 시인 호라티우스의 스승으로 '채찍쟁이'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학생들이 보기엔 리테라투스 선생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껴서 붙인 별명이다. 대부분의 선생처럼 오르빌리우스 역시 해방 노예로, 날씨가 따뜻해도 목에 스카프를 둘러 전 주인의 지시로 새겼던 문신을 가린다. 선생 중 상당수가 노예 출신이기 때문에 로마에서는 선생의 지위가 상당히 낮다. 오르빌리우스의 경우 하위 중에서도 최하위인데, 가르치는 과목의 난도로 지위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오르빌리우스는 기본 로마어 선생이다. 가르친 학생이 읽고 쓰고 기본 연산을 하고 고전 작품을 어느 정도 알면 성공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과목의 성실한 선생은 연간 180데나리우스 정도를 벌어들이는데 다른 직종의 숙련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오르빌리우스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수사학 선생도 그보다 약간 더 벌 뿐이다.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법학자  

현재 회당에서 진행중인 재판은 이미 잘 알려진 스캔들로 비상한 관심을 몰고 있다. 한 노예 여성이 주인의 연인을 독살한 사건이다. 노예 여성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주인의 지시를 받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건이다. 즉 그녀는 주인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을 경우 끔찍한 처벌을 받는데 범행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주인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주인은 유명 상인이라 재판장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 들었다. 넓지 않은 회당에서 수업을 받던 학생들도 쫓겨나고 말았다. 집정관과 수행원단, 피고와 그의 친구들, 목격자들과 배심단원, 자백한 노예 여성과 그녀의 경비병 등만으로도 회당 안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구경꾼들은 열린 문 넘어 거리 너머로 몰려들었다. 집정관의 부름을 받은 법학자 가이우스의 마차도 회당으로 느리게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그럼에도 가이우스는 자신의 전임자들 중 무키우스 스카에볼라 같은 부유한 귀족들이 부럽다. 법을 학문적으로 순수하게 대했을 테니 말이다. 그들은 자신처럼 다급한 통보를 받고 학문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진짜 사람들이 연관된 실제 재판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 가이우스는 법을 사랑하지만 법의 적용을 받는 실제 사람들과는 가능한 한 접촉을 피하고 싶다. 서로 팔꿈치로 쳐대고 그가 가진 두루마리를 떨어뜨리려 하는 사람들 사이를 겨우 헤치고 다니는 데 가이우스는 분명 취미가 없다.

 

 

회초리를 든 술집 여주인

미르탈리스는 술집 여주인인데, 대부분 이름 대신에 '코파'라고 부른다. 코파는 '술집 여주인'이란 뜻이다. 코파는 자신의 술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술집은 보통 자정까지 장사하는데, 안찰관의 기분에 따라 더 늦게까지 장사를 하므로 아침식사 시간에는 문을 열 수가 없다. 코파가 내놓는 와인은 향이 진하고 잡내가 없어 인근 와인 술집의 와인들은 상대가 안 된다.

 

이런 코파에겐 '우람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시리스카의 얼굴이 와인으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머리에 그리스풍 헤어밴드를 한 채 춤을 추기 시작하면 손님들이 일제히 주목한다. 뒤편 값비싼 소파 위에 앉아 있는 장미 화관을 쓴 부자 손님들조차 일몰까지 와인을 따라줄 바로 옆의 코파는 안중에도 없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넋을 놓고 시리스카의 춤사위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음흉한 눈빛은 '저 여자 위에 눕고 말겠다'는 의지로 빛난다. 코파의 팔꿈치에는 히코리나무 재질로 만든 회초리가 달려 있다. 시리스카의 춤을 지금의 수직적 형태 에서 수평적 형태로 바꾸려는 남자가 있다면 바로 코파의 손목만 한 굵기의 이 회초리 맛을 기어코 보고 난 뒤 이내 쫓겨나고 말 것이다.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목욕탕 종업원 

목욕탕은 로마 문명의 주요한 산물이다. 로마군은 어딘가에 1년 넘게 주둔해야 할 경우 가장 먼저 짓는 건축물 중 하나가 바로 목욕탕이었다. 그리고 목욕탕을 중심으로 신도시가 형성되기도 했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개척지에서 목욕탕을 볼 수 있다. 다뉴브 강변의 파노니아 평원에 있는 아퀸쿰이나 브리타니아의 아쿠아술리스가 그 예다. 

 

시인 마르티알리스"그 무엇이 네로보다 더 나쁘고, 네로의 목욕탕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네로의 목욕탕은 타락한 독재자의 감각을 반영한다. 빨간 화강암과 하얀 대리석이 기본 배경을 이루며 벽을 따라 이어지는 프레스코화가 에로틱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가능한 한 최고로, 그리고 극단을 추구할 것'이라는 네로의 신조 덕분이다.

 

9월인 어느 날, 목욕탕 종업원은 오늘은 2,000~5,000명 정도의 손님들이 다녀갈 것이라 예상한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면 지름만 6미터가 넘고 분수까지 뿜는 거대한 욕조가 보이는데, 붉은 대리석 하나를 통째로 조각해 만든 것이다. 지금은 손님들이 목욕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일단 오전 영업이 끝나면 탕의 물을 모두 빼내 청소를 하고, 지하에서는 탕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 노예들이 질식하기 직전까지 땀 흘려 가며 용광로에 불을 지핀다. 칼다리움(고온욕탕)은 목욕탕에서 가장 뜨거운 곳으로, 차가운 상태에서 적당한 온도로 데우는 데만 며칠이 걸리기 때문에 불을 완전히 꺼트리는 일은 드물다.

 

 

 

암모니아 냄새에 익숙해진 세탁부 

슬픈 사실은 무두장이의 작업장을 제외하면 세탁소보다 악취가 심한 곳은 몇 군데 없다는 사실이다. 무두장이의 작업장은 티베르강 서쪽 트라스테베레 구역으로 쫓겨났지만, 세탁소는 전문 직종인 데다 옷을 직접 세탁하는 로마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한 구역 건너 하나씩 있다. 결국 그 악취를 피할 방법은 없다.

 

로마인들은 오줌으로 세탁하면 하얀 옷은 더 하얘지고 색깔 옷은 더 선명해지며 심지어 찌든 때까지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옳았다. 모든 안주인들은 남편의 하얀 토가를 더 빛나게 하고 자신의 얇은 잠옷을 더 아찔하게 만드는 데 오줌이라는 마법 같은 재료를 이용했다. 두 번의 밀레니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제에 쓰이는 암모니아가 바로 오줌의 성분이기 때문이다. 인공적으로 생산하기 전에 암모니아를 구하는 최고의 방법은 값싼 자가 동력발전소, 바로 인간의 방광에서 얻는 것이었다.

 

'냄새의 습관화'라는 말이 있다. 대장간 옆에 사는 사람들이 망치로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이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세탁부 타이스의 뇌 역시 암모니아로 무장한 오줌 냄새가 자신의 일상과는 전혀 상관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법을 이미 오래 전에 터득했던 것이다. 흔히 도시인들이 시골 냄새라고 여기는 '인분' 또는 축사의 냄새를 시골에 사는 농부나 목축인들은 심지어 구수한 냄새라고 말한다.

 

 

 

채찍질 당하는 요리사  

네로 황제의 측근 그룹 중 한 명이었던 소설가 페트로니우스가 쓴 가장 오래된 소설 <사티리콘>에도 곤욕을 치르는 요리사의 삶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다. 거대한 돼지를 지탱하는 쟁반이 식탁 위에 올랐다. 요리가 완성된 속도에 감탄하면서 보통의 가금류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구울 수는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이 돼지는 바로 전에 나왔던 멧돼지보다도 거대했기에 훨씬 인상적이었다. 얼마 후 고기를 맛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해방 노예인 졸부 트리말키오가 소리쳤다.

 

"아니, 이런! 내장 제거는 된 거야? 아니잖아! 내장이 그대로 있어. 요리사 데려와!"

 

요리사가 소환되었다. 슬픈 태도로 그는 내장 제거를 까먹었다고 시인했다. 깨끗이 잊어먹었다는 것이다. "까먹었다고?" 트리말키오가 소리쳤다. "한다는 소리하고는! 누가 들으면 후추나 쿠민 따위를 까먹은 줄 알겠군. (채찍질을 위해) 이 자의 옷을 벗겨!" 잠시 후 요리사는 발가벗겨졌다. 트리말키아의 두 심복 사이에 선 그는 극도로 비참해 보였다. 모두가 요리사를 옹호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잖아요.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고 혹시 이런 일이 또 생기면 그땐 저희도 가만있을게요"

 

 

환호 속에 검을 뽐내는 검투사 

세르기우스는 호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싸우는 대부분의 검투사와는 달리, 스스로 원해는 싸우는 검투사이다. 이런 사람을 '아욱토라투스'라고 부른다. 그는 본래 강도죄에 대한 처벌로 경기장에 투입되어 싸우기 시작했다. 15년 전, 콜로세움에서 유명한 상대 검투사를 죽이면서 잠시 큰 명성을 얻었다. 현명하게도 이때 받은 돈으로 목검 루디스를 손에 넣고선 자유민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 자유민이지만 180센티미터가 넘는 근육질에 고도로 숙련된 이 거구는 여전히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세르기우스는 병사의 방패와 팔뚝만 한 길이의 단단한 검을 휘두르는 검투사, 이른바 머르밀로로서 계속 경기에 참여했다. 경기 중 갑옷도 입지만 그의 진정한 자랑이자 기쁨은 트라키아산 철로 만들어진, 넒은 테두리에 소용돌이무늬가 새겨진 황금빛 투구다. 안전망이 얼굴을 보호해주고, 투구 위에는 생선 지느러미 모양의 넓은 문장이 있어 머르밀로의 이름을 알린다. 세르기우스의 문장에는 그가 명성과 자유를 획득한 경기 장면들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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