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버리기 연습 - 한국어판 100만 부 돌파 기념 특별판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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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패하는 원인은 대부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이다. '자, 열심히 하자!'라고 결심을 했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해', 귀찮은데 그만두자'라고 마음이 제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기분 나빴던 일을 잊어버리고 싶은데, 마음이 제멋대로 '오늘은 정말 재수 없는 하루였어!'라며 몇 번이나 그 일을 되새기곤 한다. -'머리말' 중에서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다

 

우리들의 의식에서 생겨나는 '생각'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제멋대로이고 심지어 우리들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기까지 하는 못된 녀석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스스로의 생각으로부터 방해를 받아 마음대로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를 역逆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생각을 멈출 수만 있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수행자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오로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해 내달리는' 특성을 지녔다. 그렇기에 아무리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써봐도 의식 밑바닥에 잠재하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 이유는 부정적인 사고가 우리들의 뇌에 더 강한 전기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생존과 안전이라는 보호 본능을 일깨우려는 인간들이 물려받은 유전자 탓일 것이다.

 

생각과 말, 행동은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면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괴로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이번에 후회를 해 두면 앞으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겠지', '등을 구부리면 긴장이 풀어지겠지' 등과 같은 이치로 스스로의 머릿속을 착각하게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모두 괴로움을 키울 뿐이다. 뇌에서 느끼는 '편하다'는 감정은 종종 몸과 마음의 현실을 무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저자 코이케 류노스케는 현재 야마구치의 쇼겐지와 세카가야구의 쓰키요미지 주지로 일하고 있다. 절과 문화센터 등에서 좌선과 명상 지도, 상담을 하고 있으며, 그의 강좌는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2003년부터 웹사이트 '가출공간'을 열어 직접 그린 선 카툰과 에세이, 상담을 통해 마음 다스리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스님은 불도에 입문하기 전 다양한 일을 하며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경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대사회에서 근로자의 삶, 돈을 버는 것의 의미, 인관관계, 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때문에 그는 저서를 통해 '번뇌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독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통쾌한 방법으로 삶과 일상, 일에서의 스트레스를 치유하게 한다. 저서로는 <생각 버리기 연습>, <화내지 않는 연습>, <버리고 사는 연습>, <침묵 입문>, <부처의 말>, <나를 버리는 연습> 등이 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짧은 순간순간 무수한 잡음들이 끼어들어 우리들의 집중을 방해한다. 이때, 다른 그 무엇보다도 집중을 분산시키는 행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는' 일이다. 우리의 의식이 언어를 이용해 중얼중얼 계속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이 작업에 사로잡혀 다른 기능들은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막상 '이번엔 정말 생각을 멈추자'하고 생걱해봐도, 도 다른 생각이 더 늘어날 뿐이다. 아무리 머리로는 생각을 멈춰야 한다고 작심해도, 실제로는 '생각 버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생각 버리기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실행하기가 어렵다. 에 책에서 제안하는 훈련법은 오감五感을 갈고 닦아 실제적인 감각을 강화시키는 연습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에 대해 '좀 더, 좀 더'라고 갈망하는 심적 충동 에너지를 탐욕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입력되는 정보에 관해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다'라고 반벌하는 에너지는 분노이다. 타인으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고 불쾌해지면, 불쾌한 대상을 밀어내고 배제시키려는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활성화된다.

 

이런 경우의 분노는 일상에서 우리가 말하는 분노보다는 그 의미가 폭넓다. 단순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도,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긴장하는 것도 원인은 모두 하나이다. 바로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연료가 되어 타오르는 충동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반발의 힘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분노라 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이든 일단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 어두운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증폭되어 스트레스의 뿌리가 된다. 

옛날 사람들은 비오는 소리나 물 떨어지는 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흥미를 느끼며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있었다. 현재 머무는 것에서 감각적으로 멋을 느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주위에 격렬한 자극이 넘쳐나고, 그만큼 사람들도 계속 강한 것들을 원하기 때문에, 미세하고 소소한 자극들을 즐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들린다'를 '듣다'로 바꾸고, '보인다'를 '본다'로 바꾸도록 오감을 개발하면, 얼핏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것에서도 충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현실이 지루하고 사소하게 느껴진다고 뇌를 콕콕 찌르는 자극을 찾아 도피하지 않아도 항상 일상의 섬세한 멋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감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다 보면 해야 할 일에 의식을 모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부정적인 생각은 따옴표로 묶어버리자 

막상 분노를 억누려고 해도 분노라는 감정 자체에 대해 '이는 좋지 않아'라고 또 다른 분노를 발산하게 된다. 오히려 더욱 복잡한 감정 상태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분노가 분노를 낳는 동안에, 성격은 점점 더 비뚤어지고 감정은 꼬여만 간다. 이에 대해 불교에서 권하는 대처 방법은 억압과 발산이라는 길이 아닌 제3의 길, 즉 ‘응시’이다. 이때 우리가 응시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다.

 
만일 화가 치민다고 생각되면, 이 '화가 치민다'를 따옴표로 묶어버린다. 그다음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라고 되뇌며 마음속으로 외운다. 그러다 보면 지금 화가 치민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일 뿐이고,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귀를 기울이면 세계가 변한다

 

누군가의 말소리도, 회의에서 듣게 되는 소리도, 새와 바람의 소리도, 그 소리 각각이 독립적이라는 생각은 현명하지 못하다. 불교에서는 사물이 인연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연관되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연기연기'이다. 따라서 애인과 확실히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직장 동료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애인의 말이 정확하게 들리게 된다.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키우려면, 연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주변의 모든 소리는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 중에서 어떤 소리만 골라내 들으려 하지 말고 각각의 소리 모두에 미세한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 앞에는 풍요로운 소리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들리는 그대로, 동요없이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하라. 기분 좋은 소리에 들뜨고, 기분 나쁜 소리에 낙담하고, 지루한 소리는 무시하는 게 인간 심리의 뿌리 깊은 패턴이다. 하지만 들리는 소리를 좋은 소리, 싫은 소리, 좋지도 싫지도 않은 소리로 분석한 뒤 소리 그 자체를 듣는 일에 집중하면 아주 예리하고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또 머릿속에 맴돌던 복잡한 생각은 사라져간다.

 

소리에 즉시 반응하는 패턴에서 빠져나오게 되면, 들려오는 정보가 무엇이든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아’라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칭찬을 들으면 들뜨게 되고, 비난을 들으면 낙심하게 되는 패턴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늘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지고 있으면 누구에게 어떤 소리를 들어도 빨리 대처할 수 있다.

 

 

불상은 대부분 눈을 반쯤 감고 있다

 

명상에는 눈을 완전히 감는 방법과 눈을 반쯤 감아 시야를 좁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무언가를 보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보는 기능을 전부 혹은 반쯤 정지시키면 집중력이 그만큼 더 강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일단 시야를 차단하고 자기 마음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이것은 일반인들도 쉽게 할 수 있는 마음 조절법이다. 마음이 불안해지거나 긴장이 되면 일단 눈을 반쯤 감고,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 예를 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 갑자기 당황해 머릿속이 하얘지면 과감히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한다.

 

 

오감을 갈고 닦아라

 

평상시에 눈, 귀, 코, 혀, 몸의 오감에 집중하며 생활하는 훈련을 거듭 하다 보면, 생각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생각이 제멋대로 달리도록 방치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이런 생각들이 혼란스럽게 만듬으로써 사고가 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 버리기 연습을 통해 충전 시간을 가져야 한다. 충전을 끝내고 나면 예리하고 명철한 사고의 세계로 입문하게 될 것이다. 늘 잡념에 시달리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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