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 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 - 조선 최초의 세계인 문순득 표류기
서미경 지음 / 북스토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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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역사스페셜 평소 즐겨보는 프로다 다른 여타의 프로와는 다르게 역사의 뒷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하는 면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홍어장수 문순득 조선을 깨우다또한 문순득이란 인물이 책속에 뭍혀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을 인물이다.문순득이 표류했던 뱃길을 따라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역사여행은 단지 표류만이 아닌 조선의 숨겨진 이야기를 접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왜 홍어장수에 큰 의미를 주는가에 주목했다 문순득은 조선시대에 감히 꿈꾸기 힘들었던 표류를했고 그가 표류했던 지역의 풍습과 풍물등을 관찰했고 돌아와서 자신의 경험담을 실학자인 정약전을통해 표해시말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표해시말만으로도 대단한데 이후 많은 실학자들을 만나고 자산어보, 운곡선설등 많은 책들의 편찬에 문순득의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문순득은 글을 읽고 쓸줄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기억력이 발달했고 자신이 본걸 멋리속에 오랫동안 저장할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보고 듣고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든 표해시말속의 류큐(오키나와)의 언어와 여송(필리핀)의 언어를 비교했는데 그곳의 학자들도 놀랄정도로 비슷했다. 류큐왕국이 문순득이 떠난후 일본에 복속되고 이후 미군의 주둔으로 자신들의 풍속과 언어를 많이 상실했고 역사적인 자료또한 부족한데 표류시말의 자료가 그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한다.




문순득은 어떻게 표류를하게 된걸까 문순득의 고향은 흑산도의 작은섬 우이도다 흑산도하면 홍어가 유명한데 문순득은 홍어중간상으로 자신의 배를 보유하고 있었고 홍어잡이와 중개상을 겸했고 홍어를 팔기위해 목포로 가던중 큰 풍랑을 맞아 류큐로 표류했고 그곳에서 6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이후 조선으로 귀환중 또다시 큰 풍랑을 맞아 여송으로 떠내려가게되고 이곳에서도 몇 달을 보낸뒤 마카오, 중국을통해 귀환하게된다. 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지리적인 요인과 계절풍때문이었다.

『문순득이 흑산도에서 표류해 류큐로 흘러간 때는 겨울철이니 계절풍과 해류의 방향이 달랐다. 겨울철 음력 10월부터 1월까지는 동아시아 지역에 북풍 계열의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을 활용하면 반대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서는 제주도를 거쳐 오키나와라든가 심지어는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항해가 가능하다.』




표해시말의 중요성 류큐(오키나와어)의 언어 사전과 풍속(장례문화,풍장, 용모, 식습관)등 보존가치가 높다.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의 숨겨진 면모를 확인할수 있다. 표해시말속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양반과 상인의 만남은 파격이다. 정약전은 상인 문순득의 표류여행을 듣고 글로 엮었고 이후 많은 실학자들이 문순득을 통해 실학을 꽃피웠기 때문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때 귀향을통해 학문에 전념할수 있었다는 점에서 귀향이 나쁜것만은 아니였다. 만약 한양의 정치판에 있었다면 그들이 학문에 전념할수 있었을까 더욱이 백성과 밀접한 학문은 더욱 뒷전이 되었을 것이다. 섬이라는 갖힌 공간에서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할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문순득이라는 세계열강의 신문물을 접한이를 만게되니 금상첨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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