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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국보 이야기> 서평단 알림
숨어 있는 국보 이야기
이정주 지음, 유성민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가교출판에서 나온 책,<숨어있는 국보이야기>는 우리문화재중에서 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해서 알기 쉽게 쓰여 진 책이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처음으로 접하는 국보관련서적으로는 손색이 없을 만큼 읽히기 쉽게 쓰여 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문화재’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상 어린 학생들이 자칫 어렵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문화재에 적절한 이야기를 접목해서 엮음으로서 어린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며 그 서두를 시작한다.

책에는 우리의 문화재중 국보로 지정되어있는 서울 숭례문과 영주 부석사등의 건축물이나 불국사 다보탑,성덕대왕 신종에서부터 무위사 극락전의 벽화,또 우리가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하는 해인사 대장경판을 비롯해 우리의 한글 훈민정음 등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여러 종류의 국보에 대해서 쓰여져 있다.

책의 저자‘이정주’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어서 그런지 부드럽게 전개되는 국보이야기는 마치 저자가 아이들을 앉혀놓고 조곤조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고 페이지마다 곁들여진 컬러 삽화 또한 그 읽는 재미를 더욱 쏠쏠하게 해준다.

이 책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내용의 깊이에 관해서 조금 부족한 부분을 느낄 수 있겠지만-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그 점을 아쉬워했지만-나는 오히려 이 책이 저학년용 도서라는 점을 감안해 보았을 때 어쩌면 출판사측의 기획의도와 책의 내용이 적절하게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문화재’라는 주제 자체가 아이들에게 순수하게 흥미를 유발시키는 주제는 아니며 학교과제가 아닌 이상 결코 우리아이들이 스스로 관심을 갖고 쉽게 접하게 되는 주제는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숨어있는 국보이야기>는 우리 문화재 하나하나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어 어린독자들이 전례동화를 읽듯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옛 선조가 남긴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또한,그저 문화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고 각 장마다 <관련국보>라는 첨삭을 통해 문화재의 컬러판 사진과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고, 책 2부의 <국보개념 따라잡기>코너를 통해 이미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로 호기심이 생긴 아이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보다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는 사회변화에 따라 문화라는 것이 시대적 키워드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각종 문화에 대한 욕구를 다양하게 표출하며 살고 있다.

특히 역사나 고유문화유산에 대해선 박물관과 미술관의 기획전시나 또는 행정기관의 각종 문화관련 행사들을 통해 그 존재의 중요성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존재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과 애정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기획전이나 행사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재관련 서적들이 최근 들어 곳곳에서 다양하게 출판되고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아동용 도서이지만 이 책 <숨어있는 국보이야기>를 참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제법 흡족한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다양성’이 아동용도서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남대문의 현판에 쓰여진 숭례문이라는 글씨를 쓴 사람은

세종대왕의 맏형인 양녕대군이었습니다.

양녕대군은 자신의 자질이 동생 충녕에게 못 미친다고 생각해서

왕세자자리를 충녕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글씨를 잘 써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 졌지요.

그런데 남대문의 현판은 다른 문루나 누각에 걸리는 현판과는 달리

세로로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내려옵니다.

그 첫째 이야기는 남대문이 서울의 정문이므로 이문을 통해서 귀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 서서 맞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현판도 세로로 달려고 세로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이야기는 서울의 남쪽에 있는 관악산의 불기운이 너무 강해서

그 기운을 이겨내려면 ‘예(禮)’자를 세워달아야 한다고 해서

현판을 세로로 만들어서 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이야기가 옳으냐는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예의를 숭상하고

풍수지리와 음양오행 사상에 젖어있던

조상의 정신을 엿볼수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국보 제 1호 서울 숭례문中

 

숨어있는 국보이야기 14p

 

딸아이와 이 부분을 함께 읽으며 한마디 한다.

"슬아 넌 좋겠다 엄마가 맨날 남대문 왔다갔다 하면서도 서른 살 넘도록 모르던 얘기를

아홉 살 때 알게 되다니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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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키드의 추억
신윤동욱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했다.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도달하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된다.미쳐야 미친다.미치려면(及)미쳐라(狂). 

-'정민' 미쳐야 미친다 中



살아가면서 마니아적 기질을 갖춘 사람. 즉 뭔가에 제대로 미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반가운 일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제법 흥미롭다.

비록 그가 미쳐있는 분야가 나와는 상관없는,또는 그동안 내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분야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지식과 애정에 열정을 플러스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그만 그가 뿜어내는 어떤 ‘광기’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스포츠에 ‘제대로’ 미쳐있는 [한겨레21]의 기자 신윤동욱이 쓴 <스포츠 키드의 추억>이란 책을 만났다.

저자가 2005년5월부터 2007년 3월까지 [한겨레21]의 [스포츠 일러스트]로 연재했던 칼럼에 <그 후로도 오랫동안>이라는 뒷 담화까지 첨가해서 엮은 책으로‘2007년8월31일 초판1쇄 펴냄’-손끝이 데일만큼 아직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사춘기시절에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내일처럼 치러내고 90년대 농구대잔치에 열광하며 이승환의 덩크슛을 흥얼거리고 마지막승부의 다슬이 심은하를 기억하는 세대.이른바 스포츠키드라고 스스로를 명명하는 저자가 스포츠에 대한 애정하나만으로 스포츠 이상의 ‘읽을꺼리’를 거침없는 글빨로 서슴없이 써내려간 글들이 단연 돋보이는 책.

이 책에서 저자는 허재,이상민등 90년대의 별들에 그치지 않고 김윤아,로저 페러더까지 잘나가는 현역 스포츠선수들까지 또,이름만으로도 그가 개그맨인지 스포츠선수인지 분명히 누구나 알수 있는 나카타나 이치로,베컴과 지단 ,애거시, 설기현, 김병철등의 스포츠스타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스포츠를 통한 세상보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드러내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 때문은 아니더라도 스포츠라는 것이 비록 ‘기록과 결과중심의 게임’일지언정 그 게임의 내면에는 기록과 결과 외에도 수많은 히스토리가 존재하는 것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마다 독서하는 습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책을 읽을 때 노트와 연필을 준비하고 책을 읽는 편이다.

읽으면서 밑줄을 긋기도 하고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면서.

이 책 <스포츠 키드의 추억>을 다 읽고 다시 펼쳐보니 밑줄이 그어진 부분이 꽤 된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스포츠 속으로 찬찬히 발을 들여놓다 보면 삶의 철학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결코 가볍게 풀어내지 못할 진지하고 무거운 문제들이 스포츠라는 놀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주 가볍고 친근하게 접근하며 삶의 다른 이면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스포츠 키드의 추억’이라는 제목만을 보고 내가 과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약간의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비록 저자와는 동시대를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것 하나만으로 함께 공유할 스포츠에 관한 추억이란 게 과연 몇 개나 될까 싶게 나라는 인간이 스포츠를 그다지 즐기는 편에 속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늘 스포츠 보다는 차라리 스포츠‘외’의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내친김에 더 솔직해 지자.-스포츠‘만’ 아니라면 다 좋았다,라고. 끄응..)같은 세대의 저자가 어린 시절 아홉시 뉴스가 끝나고 방송하는 스포츠뉴스를 목이 빠져라 기다릴 때 난 그 스포츠뉴스가 끝나고 하는 드라마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고 ,한술 더 떠서 어떻게 하면 어른들 틈에 낑겨서 드라마를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 뉴스와 드라마사이에서 시간만 잡아먹는 스포츠뉴스가 차라리 왠수 같기만 했다고나 할까.

이렇게 나의 왠수를 그토록 사랑했던 저자의 글이었으니 이 책을 펼치면서 내가 과연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했던 것 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그런 걱정은 반절정도로 줄어들었다. 본문을 읽으면서는 어라?이거봐라..몇 차롄가 끄덕끄덕하기도 했고 또 몇 차례 소리 내서 킥킥거리기기도 했다.

책이 손에 들어오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다 읽어치웠을 만큼 읽는 재미가 톡톡했다.그러고 보면 이책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스포츠 라고는 월드컵 축구가 스포츠의 전부인줄 알고 살 정도로 스포츠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 에게까지도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책이지 싶다.

물론 스포츠에 미친 또 다른 미친분(?)이 읽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는 책이다.게다가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덤으로 2008년의 베이징 올림픽 때는 티브이에서 보내주는 스포츠중계를 책을 읽기 전 보다는 적어도 40프로 이상 나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생각하는 스포츠,그것은 선수들만의 전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스포츠를 보면서 느꼈던 아저씨의 잡생각을 쓰다보니 스포츠 중계에,

스포츠 뉴스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얘기의 묶음이 되었다.

쓰다보니 호불호가 들통났고,내친 김에 좋아하는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앙골라 핸드볼팀에 대한 나의 ‘응원심’을 마음껏 드러내고,

나브라틸로바에대한 ‘존경의 념’을 표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비너스 윌리엄스 같은 흑인선수,나브라틸로바 같은 성 소수자,

앙골라 대표팀 같은 소외받은 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생각해온 아저씨의

스포츠 중계이자 검은 활자로 부르는 마이너리티 응원가이다.

-머리말 中-


아,참!책을 읽으면서 든 쓸데없는 생각.

임오경과 오성옥의 이야기를 김정은과문소리가 연기하고 임순례가 감독한다는 <우리생에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는 2008년에 정말 개봉할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이 아니라 금메달을 목에 걸고 웃는 장미란을 보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이 이루어질까 .

정말 베이징 올림픽에서 앙골라 여자 핸드볼팀이 출전해 선전 할 수 있을까.

정선민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다 안한다,한다에 건다는 신윤동욱이 머니라도 건다면 과연 한다에 걸 수 있을까.

두 번이나 뺀찌를 먹인 승현오빠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추신을 덧붙인 저자는 과연 이 책이 출간한 후에 승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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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실제로 존재하는 두 연인의 일기장 같은 이야기 - <냉정과 정열사이>



冷情と情熱のあいだ(냉정과 정열사이)

일본소설로 국내에서는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연애소설이다.

영화 감독겸 락 뮤지션으로도 잘 알려진 츠지 히토나리와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삼대여류 작가에 속하는 에쿠니 가오리가

함께 써 내려간  [Blu] 와 [Rosso], 두 권의 이야기가 하나가되는 소설로

일본 내에서만 문고판과 단행본을 합쳐 3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있는 베스트셀러 이기도 하다.





1997년 [월간 카도카와(月刊カドカワ)]라는 잡지에 처음 연재되기 시작했던 이 소설은

츠지가 남자 의 시점에서, 에쿠니가 여자의 시점에서 이별 후 팔년의 세월을 각자의 삶을 살고있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이야기를 릴레이 식으로 연재를 했던, 처음부터 독특한 기획으로 시작된 연애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작가가 주인공과 상황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설정만을 한 뒤

두 사람 어느 누구도 결말을 알 수 없는 연애소설을 연재했다는 것이다.

이년여의 연재기간 동안 서로의 원고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리며 연애편지라도 주고 받는 듯

매달 한회한회 연재를 하면서 실제로 연애를 하는 기분에 빠졌다는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



이야기는 과거를 등지고 사는 두 남녀에서 시작된다.

피렌체의 한 공방에서 회화 복원사로서 묵묵히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쥰세이.

그리고 밀라노의 앙티크 보석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빈이라는 부유하고

친절한 미국인 애인을 두고 일상의 여유를 즐기고 사는 아오이.

일본에서 대학시절 한때 연인이었지만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만을 남긴 채 이별을 했던 이 두 남녀는

이별 후 아무 상관없는 각자의 삶을 팔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가슴속에 하나의 희망처럼 약속이란 것이 살아 있음을 모른다.

지난 시절 마치 농담처럼 스치며 했던 하나의 약속.

<약속할수 있니? 내 서른살의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쿠폴라 위에서 만나기로.>

가슴에 정열을 담은 채 냉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한  아오이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 에 대해서 연인 앞에서조차 냉정해 지려 한다.

아오이는 서른 살 생일에 같이 두오모에 오르자는 쥰세이에게<우리가 헤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일이란 모르는 거잖아>라는 말과 함께 정열을 숨긴 채 냉정을 유지하며 약속을 제안한다.

하지만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함을 보여주며 그동안 다소 정열적인 표현을 내세우던 쥰세이는

오히려 그의 냉정으로 인해 결국 이별이란 것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리고 팔년.

그 세월동안 서로의 가슴에서 그 약속은 이미 지워졌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실날 같은 희망하나가 그 둘의 인생의 전부인양 살아가고 있다.



작가일 때는 히토나리(仁成, 훈독), 영화감독과 가수일 때는 진세이(仁成, 음독)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괴짜 예술인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츠지 히토나리.

처음부터 출판사 쪽이 아닌 그의 기획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그가 여성팬이 많은 에쿠니 카오리에게 이 기획을 프로포즈 함으로서

그가 얼마나 독자를 의식하는 작가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아구타가와 수상작가 인 츠지가

여성 패션잡지에 소설을 연재한다거나 하는 것이 조금은 의외라고 느껴 질 수도 있지만

<영상이 젊은이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현시대에서 좀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싶다>라는

평소의 그의 의식에 비추어 본다면

그가 현시대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사랑 받는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간다고 볼 수도 있다.

솔직히 츠지의 [Blu], 에쿠니의 [Rosso] 가 합쳐져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소설이 되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츠지의 글을 만지는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필력에 반해서

에쿠니의 글들이 츠지의 글에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책을 다 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그러한 작은 느낌들이 오히려 츠지의 기획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세상 어딘가 실제로 존재하는 두 남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느낌.

츠지 혼자만으로도 쓸 수 있는 이야기 일순 있겠지만 결코 그의 글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느낌이리라.


<냉정과 열정사이>

이 소설은 도쿄에서 그치지 않고 피렌체와 밀라노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나

회화 복원사와 앙티끄 보석가게의 아르바이트 라는 두 주인공의 직업,

또는 아오이의 미국인 애인 마빈이라든가 아오이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메미를 쥰세이 옆에 등장시킴으로서 젊은 층의 독자들에게 적당한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네 사람이 엮어가는 갈등을 통해 애틋한 마음마저 일게 하는 전형 적인  연애소설이다.

비가 내리는 주말오후에 이층 창가의 커피숍에서 연인을 기다리며 가볍게 읽기에도 좋고

가족들이 다 외출해 버린 텅빈 집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포테이토 칩을 집어먹으며 읽기에도 괜찮은 소설.

하지만 고즈넉한 햇살아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헤어진 옛 애인이 떠올라 책장 사이의 활자에서 막연한 그리움을 건져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틈을 타고 어떤 상념하나가 뇌리에 번뜩하고 스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혹시나 나는 누군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를 어떤 약속을 잊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상념 같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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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 잠시 생각해본 진.짜.인.생

 

s1

 

언젠가 그는 내게 말했었다.'우린 어쩌면 몸 어딘가에 같은 문신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일지도 몰라요.'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감성의 일치. 그것을 그 친구는 그렇게 표현했고 육 년 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나를 만나 그가 가장먼저  입술에 올린 이야기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조금 특별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 였다.

'혹 삼미 슈퍼스타즈라고 알아요?'
그 친구의 반짝이는 눈앞에서 설마 이'삼미 슈퍼스타즈'가 내가 아는 그'삼미 슈퍼스타즈'일까 해서 잠시 갸우뚱했지만 역시 그'삼미 슈퍼스타즈'는 이'삼미 슈퍼스타즈'였다.

아! 그 삼미 슈퍼스타즈.-끄덕끄덕.

1982년, 프로야구가 창단 되던 그 해.나 역시 삼박 사일간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얻어낸 돈 오천원을 들고 사촌동생과 함께 롯데백화점 옥상에서 지겹도록 줄을 서서(물론 그때는 그 긴 줄이 전혀 지겹지가 않았었다.)

리틀 자이언츠회원증과 가방을 들고 의기양양해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비베어스나 삼성라이온스만큼은 못하더라도 끄집어내려고 하면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작은 기억하나쯤은 건져낼 수도 있었다. 물론 그 기억이라는 것이 오비나 삼성이 영화관에서 손에 땀을 쥐고 보았던 만화영화 오로라공주와 손오공을 기억해내는 것처럼 선명하다면 삼미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 누구도 흥미를 두지 않는 대한뉴스정도를 기억해내야 할 만큼의 가물가물한 기억이 되 버리긴 했지만.

박민규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제목은 특이하고 그 소설을 쓴 작가는 생소하다. 사실 요즘이야 이름석자만 들어서 생소한 작가들이 생소하지 않은 작가들보다 더 많기도 하고 하다 못해 귀여니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여질 만큼 소설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맙소사!)-나는 가끔 이 세상에는 소설을 읽는 사람보다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그 친구의 입에서 박민규라는 전혀 낯선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박민규의 소설을 만나고 싶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요. 소설이란 건 어차피 읽히는 재미가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적어도 소설로서의 사명을 다한 소설이죠.'
그 친구는 자기가 정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은 아닌 팬처럼 이 소설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고 결국 통근 사정거리 안에 서점을 발견하지 못한 탓에-귀국 후 출퇴근 외에는 정말 서점을 따로 찾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이주나 지나서 손에 쥐게된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와우! 나 역시'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 팬은 아닌 것 같은 사람에게 전염된 팬이 되어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프로야구 원년 후기 1할2푼5리(5승35패)라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그야말로 엽기적인-기별 최저 승률 기록을 작성했던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모티브로, 인천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주인공 '나'가 성장기와 20대의 청춘,삼십대를 걸치며 깨닫게 되는 삶의 철학에 대해서 상당히 밀도있게 그리고 엄.청.나.게 재미있게 쓰여진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읽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읽는 내내 지루함은커녕 버스의자에 앉아 혼자서 키득거리게 될 만큼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는 박민규의 글발. 물론 가끔 조금은 억지스러운 인상을 자아내기도 했던 문장들이 군데군데 있기도 했지만 그건 어쩌면 키취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던 책표지처럼 작가의 의도적인 문체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재미있는 소설은 단지 재미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소설의 주제는 상당히 진지하다 못해 읽는 내내 잔잔한 슬픔을 동반하는 그윽한 무게감까지 안겨준다.

박민규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성장의 고통과 상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나아가 삶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낸다. 또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통해서 해석해내는 삶의 철학은 재미를 넘어서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마저 일게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그가 던진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라는 메시지처럼 현실의 우리는 모두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 야구도 깨기 어렵다는 16연패의 기록을 냉큼 18연패로 대치했던 만년 최하위 팀 삼미.다른 모든 팀들의 시즌목표가 우승일 때 그들의 목표는 '야구를 통한 인격수양'이었고 작가가 해석한 그들의 야구철학은 아주 간단하며 참으로 명쾌하다.
'치기 싫은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기!'

 박민규는 소설을 통해 인생은 야구다, 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삼미의 목표는 야구를 통한 인격수양이며 그것은 곧 작가가 삼미라는 모티브를 빌어'인생을 통한 인격수양'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본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결국 현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자신은 그의 소설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의 소설처럼 살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치기 싫은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기'.-과연 누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며 살수 있을 것인가.

 삼미는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평범했을 뿐인데 반면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은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삶보다 조금 못하거나 더 떨어진다는 것은 야구로 치자면 방출이고 삶으로 치자면 철거나 죽음이다. 그런 삶은 순위에 낄 자리가 없다',는 그의 말대로 우리의 삶이란 건 방출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평범은 유지해야 하는 현실 속에 놓여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있다. 평범해지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얼마나 치열해져야 하는가를.

 

하지만 내가 박민규의 소설을,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에 대해 한없이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새롭게 접근한 삶의 방식에 대한 최소한의 시도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사는 삶, 내가 믿고있는 삶이 사실 전부는 아니라는 것. 아니,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는 것.
우리는 누구도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며 살수 없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게 살아도 살아지긴 한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살순 없다고 믿는 것과 그렇게 살수도 있다고도 생각하는 것 의 차이는 사실 너무나 다르다. 인생이란 것은 해석에 따라서 삶의 질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7월 한 달은 내게 있어 참으로 힘든 한 달이었다.
육 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발을 디디자마자 한치의 여유도 가져보지 못하고 일은 시작되었고 장마는 계속되고있었다.

줄기차게 비가 내렸고 동인천과 서울역을 오가는 출퇴근길은 늘 막혔으며 아침이든 밤이든 직행 버스 안의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그 피곤 속에서 차츰 지쳐지고 있는 내 자신을 여러 번 발견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건, 내가 더욱 힘들었던 건 내 몸에 가해지는 물리적 피로보다는 내 욕심으로 하여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새로운 삶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이었어,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아도 '무엇을 위한?'이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그 '무엇'들은 나로 인해 상처받고 있었고 행복과는 조금씩 동떨어진 모습으로 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아침. 버스가 멈추는 서울역 광장 한가운데 큰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에 온몸을 맡기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처음 한국에 돌아와 서울역을 지나며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노숙자들 중의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기엔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고 무심코 본 그의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한번쯤 생각해본다.
진짜 인생에 대해서. 내가 잊고있었던 것에 대해서.
우리는 가끔 중요한 것만을 생각하고 소중한 것은 곧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저는 우리가 풀장 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사람들 같이 보여요. 세상이라는 풀장 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거죠. 그런데 모두 버터플라이를 하려는 거예요. 어떻게 모두 버터플라이를 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해서든 떠 있기만 하면 죽지는 않거든요. 저는 버터플라이가 아니라 배영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도 ‘배영을 하자’라고 말하고 싶구요.”
-어딘가에서(?) 읽은 박민규의 인터뷰 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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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비나님, 반가운 소설에 들어와 읽고 글이 참 좋아 인사드립니다.
저도 이 소설을 얼마 전 읽고 너무 좋아 감격했지요. 언제 리뷰 써야지, 하고 미루고만
있는데 님의 글이 참 재미있게 읽힙니다. 박민규의 인터뷰 내용,
그게 딱 이 소설의 즐거운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사비나 2007-09-21 19:33   좋아요 0 | URL
실은 조금 오래된 리뷰인데^^

그래도 글이 좋다는 말씀에 기분이 기분이 좋아져요.

박민규..의 이책 참 좋았는데 그후 카스테라도 그렇고 좀 별로여서 아쉬운감이 있어요.

잉크냄새 2007-09-1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라는 소설의 사명을 다하였다는 말에 공감이 가네요. 재치있는 글과 유년시절을 자극하는 추억, 게다가 삶의 철학까지 담고 있으니 대단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더군요.

사비나 2007-09-21 19:34   좋아요 0 | URL
그쵸? 읽는 재미.작가의 글빨~게다가 쏠쏠한 감동까지.요즘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이랍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학고재신서 1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최순우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열다

 걸음의 보폭을 조절하지 않아도 되는 계절이다.
서두르며 빠르지도 않게 주춤거리며 너무 느리지도 않게,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거리를 걷다보면 여름 내내 체념하듯 스러져있던 모든 것들이 푸드득 날아오르는 새처럼 말을 걸어오는 계절.

더 이상 긴 머리칼을 질끈 동여매지 않아도 축축한 땀방울 대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 자락이 머리칼 틈새를 헤치고 들어와 목덜미를 간질인다.

그러고 보면 이맘때의 바람은 간질이는 것들이 참 많다.
빛을 간질이고 나뭇잎을 간질이고 그걸로도 모자라 빛과 나뭇잎이 만들어낸 그림자까지 간질이며 곧 깊어갈 또 하나의 자연 앞에서 차분한 마음이 되어 두 손을 모으게 해주는 것 같다.

한들한들..코스모스의 흔들림을 표현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수식어가 또 있을까.
어느 오후.. 바람의 간질임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한들한들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한 송이를 탐하고 말았다.

마침 바람이 기억저편에 묻어두었던 추억까지 간질이고 말았으니,학창시절 책을 펼치다가 불현듯 책 밑으로 투욱하니 떨어져버리곤 하던 잘 말린 꽃잎하나가 문득 그리워졌던 것이다.

나는 길가에서 남몰래 범한(?) 그 코스모스를 소중히 모셔오듯 가져와선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최순우선생의 책<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중 신윤복 그림 ‘월하정인’이 실려있는 부분에 잘 펴놓고 책을 덮었다.
마치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는 순간부터 이 책과 함께 ‘월하정인’을 떠올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나로 하여금 이렇게 가을볕 고운 오후에 잘 말려진 코스모스 한송이를 함께 간직하고 싶게 만든 책<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이 책은 1984년 작고하실 때까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셨던 혜곡 최순우 선생이 우리나라의 소소한 공예품에서부터 국보급 문화재까지 ‘한국의 미’를 주제로 우리의 것에 담겨있는 아름다움, 또 그 아름다움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써내려간 책이다.

평생을 박물관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셨던,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심미안을 가지고 계셨던 최순우 선생이 우리나라의 건축,회화,공예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소개한,말하자면 문화유산관련 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가리켜 단순히 문화유산 관련서적,이라고 일축해버리고 만다면 이미 고인이 된 최순우 선생에게 엄청난 결례를 범하게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짜임새나 구성이 그저 학문적 지식만을 전달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문화관련 서적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만약 선생이 생전에 박물관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을 만큼 중간 중간 돋보이는 아름다운 선생의 글.

때로는 그 표현이 너무나 절절하고 애틋해서 선생이 정말 유물들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는데 이처럼 우리유물에 대한 선생의 남다른 애정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금방 느낄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생전에 한사람이라도 더 박물관으로 발길을 끌기위해 애쓰며 우리미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던 최순우 선생.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오랜 시간을 거쳐 이 책을 통해 선생의 바램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네 번째 선정도서로 선정되면서 보급판으로 새롭게 출간되고 본문과 표지도 일반 용지로 바뀌면서 많은 이들에게 읽혀진 책-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책 보급판에 부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미술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미술품을 좋은 선생과 함께 감상하며 그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여는 길’ 이라고 했다.
또 ‘그 선생’이 책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유홍준 교수는 일찍이 그 최고의 스승으로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꼽았다.

불편하지 않은 활자 덕에 가볍게 첫 장을 열고 책 속의 미문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그동안 어렵게만 생각했던 고미술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친근함이 관심을 갖게 하고 어느새 관심이 애정으로 변해가는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애정이야 말로 독자로 하여금 우리의 유물들과 서투르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사랑을 다듬고 아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안목이라는 게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비교적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책속에 흠뻑 젖어들기를 바라며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읽었다.
또 두툼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외출을 할 때 잊고 나서는 일은 없었고 어디에 있던지 늘 곁에 두었다.

매장 일이 한가하면 한가한대로 이 책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았고 바쁘면 바쁜대로 빠르게 손과 발을 놀리면서도 곁에 이 책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던 시간들.
그런데 이렇듯 이 책을 곁에 두고 있자니 책속에 살아있는 문화유산들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져 마음이 바빠져 옴을 감지하게 된다.

선생이 ‘세상에는 진정 잊을 수 없는 연인이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아마 세상에는 정말 못 잊을 집도 다시 있기는 힘들지도 모른다'고 표현했던 창덕궁의 연경당이며 당장이라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가서 지금까지 박물관을 찾아도 그저 관람수준에 그치고 말았던 유물들을 ‘선생의 눈을 빌려 내 눈을 열고 ’다시 한번 만나고 싶어져 좀이 쑤실 지경이다.

또 5월과10월 일 년에 두 번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간송미술관 특별전도 벌써부터 내게 설레임을 안겨주고 있다.지난 5월의 관람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기대와 함께.

‘좋은 그림이란 전체를 보아도 허전한 곳이 없고,어느 부분만 떼어놓고 보아도 하나의 그림이 될 때가 많다’
는 말씀과 함께 혜원 신윤복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까이는 창경궁의 연경당과 국립중앙박물관,간송미술관을 비롯해서 멀게는 불국사까지, ‘가고싶다’로 그치지 않고 ‘가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해주는 책.

‘조용한 시간을 틈타서 이 뜰을 거닐 때면 언제나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손에 안 잡히는 나의 그리운 사람은 차라리 보살부처이기나 했으면 좋겠거니 생각하노라면 나는 금세 눈시울이 더워오곤 했다....,<중략>..소원이 있는 사람이면 마음이 외로울 때 이 뜰이 조용한 틈을 타서 석단 앞에서 석단의 크고 작은 돌들을 바라보고 그리고 범영루 너머로 석가탑을 바라보기를 권하고 싶다.’

불국사를 다시 찾게 된다면 나는 분명 선생의 말씀을 기억하고 불국사의 앞뜰에 서 있을 것이다.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범영루 너머로 석가탑을 바라보며 내가 빌 소원 하나를 생각해본다.


 

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별로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미술의 마음씨이다.-본문中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함께 실려 있는 사진들이 흑백이기 때문에 그 생생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문득 몇 달 전에 사둔 ‘문화유산일기’라는 도감이 생각났다.

아주 생생한 칼라판 사진이 1300여컷이나 담겨져 있는 도감인데 사실 그때는 너무나 사진위주의 이 도감을 보면서 짧은 설명하나 제대로 없는 것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문화유산일기>을 함께 보면서 책 두 권이 지니는 아쉬움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책읽기의 즐거움도 배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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