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 잠시 생각해본 진.짜.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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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는 내게 말했었다.'우린 어쩌면 몸 어딘가에 같은 문신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일지도 몰라요.'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감성의 일치. 그것을 그 친구는 그렇게 표현했고 육 년 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나를 만나 그가 가장먼저  입술에 올린 이야기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조금 특별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 였다.

'혹 삼미 슈퍼스타즈라고 알아요?'
그 친구의 반짝이는 눈앞에서 설마 이'삼미 슈퍼스타즈'가 내가 아는 그'삼미 슈퍼스타즈'일까 해서 잠시 갸우뚱했지만 역시 그'삼미 슈퍼스타즈'는 이'삼미 슈퍼스타즈'였다.

아! 그 삼미 슈퍼스타즈.-끄덕끄덕.

1982년, 프로야구가 창단 되던 그 해.나 역시 삼박 사일간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얻어낸 돈 오천원을 들고 사촌동생과 함께 롯데백화점 옥상에서 지겹도록 줄을 서서(물론 그때는 그 긴 줄이 전혀 지겹지가 않았었다.)

리틀 자이언츠회원증과 가방을 들고 의기양양해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비베어스나 삼성라이온스만큼은 못하더라도 끄집어내려고 하면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한 작은 기억하나쯤은 건져낼 수도 있었다. 물론 그 기억이라는 것이 오비나 삼성이 영화관에서 손에 땀을 쥐고 보았던 만화영화 오로라공주와 손오공을 기억해내는 것처럼 선명하다면 삼미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 누구도 흥미를 두지 않는 대한뉴스정도를 기억해내야 할 만큼의 가물가물한 기억이 되 버리긴 했지만.

박민규의<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제목은 특이하고 그 소설을 쓴 작가는 생소하다. 사실 요즘이야 이름석자만 들어서 생소한 작가들이 생소하지 않은 작가들보다 더 많기도 하고 하다 못해 귀여니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여질 만큼 소설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맙소사!)-나는 가끔 이 세상에는 소설을 읽는 사람보다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그 친구의 입에서 박민규라는 전혀 낯선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박민규의 소설을 만나고 싶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어요. 소설이란 건 어차피 읽히는 재미가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적어도 소설로서의 사명을 다한 소설이죠.'
그 친구는 자기가 정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은 아닌 팬처럼 이 소설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고 결국 통근 사정거리 안에 서점을 발견하지 못한 탓에-귀국 후 출퇴근 외에는 정말 서점을 따로 찾아다닐 시간이 없었다.- 이주나 지나서 손에 쥐게된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와우! 나 역시'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마지막 팬은 아닌 것 같은 사람에게 전염된 팬이 되어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프로야구 원년 후기 1할2푼5리(5승35패)라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그야말로 엽기적인-기별 최저 승률 기록을 작성했던 구단 삼미 슈퍼스타즈를 모티브로, 인천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주인공 '나'가 성장기와 20대의 청춘,삼십대를 걸치며 깨닫게 되는 삶의 철학에 대해서 상당히 밀도있게 그리고 엄.청.나.게 재미있게 쓰여진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읽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읽는 내내 지루함은커녕 버스의자에 앉아 혼자서 키득거리게 될 만큼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는 박민규의 글발. 물론 가끔 조금은 억지스러운 인상을 자아내기도 했던 문장들이 군데군데 있기도 했지만 그건 어쩌면 키취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던 책표지처럼 작가의 의도적인 문체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이 재미있는 소설은 단지 재미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소설의 주제는 상당히 진지하다 못해 읽는 내내 잔잔한 슬픔을 동반하는 그윽한 무게감까지 안겨준다.

박민규는 '삼미 슈퍼스타즈'를 통해 성장의 고통과 상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나아가 삶의 가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낸다. 또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통해서 해석해내는 삶의 철학은 재미를 넘어서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마저 일게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그가 던진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라는 메시지처럼 현실의 우리는 모두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 야구도 깨기 어렵다는 16연패의 기록을 냉큼 18연패로 대치했던 만년 최하위 팀 삼미.다른 모든 팀들의 시즌목표가 우승일 때 그들의 목표는 '야구를 통한 인격수양'이었고 작가가 해석한 그들의 야구철학은 아주 간단하며 참으로 명쾌하다.
'치기 싫은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기!'

 박민규는 소설을 통해 인생은 야구다, 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삼미의 목표는 야구를 통한 인격수양이며 그것은 곧 작가가 삼미라는 모티브를 빌어'인생을 통한 인격수양'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본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결국 현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자신은 그의 소설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누구도 그의 소설처럼 살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치기 싫은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잡지 않기'.-과연 누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며 살수 있을 것인가.

 삼미는 뒤떨어진 것이 아니라 평범했을 뿐인데 반면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은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삶보다 조금 못하거나 더 떨어진다는 것은 야구로 치자면 방출이고 삶으로 치자면 철거나 죽음이다. 그런 삶은 순위에 낄 자리가 없다',는 그의 말대로 우리의 삶이란 건 방출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평범은 유지해야 하는 현실 속에 놓여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있다. 평범해지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얼마나 치열해져야 하는가를.

 

하지만 내가 박민규의 소설을,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에 대해 한없이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새롭게 접근한 삶의 방식에 대한 최소한의 시도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사는 삶, 내가 믿고있는 삶이 사실 전부는 아니라는 것. 아니,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친다는 것.
우리는 누구도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기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며 살수 없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게 살아도 살아지긴 한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살순 없다고 믿는 것과 그렇게 살수도 있다고도 생각하는 것 의 차이는 사실 너무나 다르다. 인생이란 것은 해석에 따라서 삶의 질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7월 한 달은 내게 있어 참으로 힘든 한 달이었다.
육 년간의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발을 디디자마자 한치의 여유도 가져보지 못하고 일은 시작되었고 장마는 계속되고있었다.

줄기차게 비가 내렸고 동인천과 서울역을 오가는 출퇴근길은 늘 막혔으며 아침이든 밤이든 직행 버스 안의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그 피곤 속에서 차츰 지쳐지고 있는 내 자신을 여러 번 발견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건, 내가 더욱 힘들었던 건 내 몸에 가해지는 물리적 피로보다는 내 욕심으로 하여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새로운 삶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이었어,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아도 '무엇을 위한?'이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을 때 그 '무엇'들은 나로 인해 상처받고 있었고 행복과는 조금씩 동떨어진 모습으로 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폭우가 쏟아지는 아침. 버스가 멈추는 서울역 광장 한가운데 큰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그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에 온몸을 맡기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처음 한국에 돌아와 서울역을 지나며 내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던 노숙자들 중의 한사람이었다. 하지만 스쳐 지나기엔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고 무심코 본 그의 손바닥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한번쯤 생각해본다.
진짜 인생에 대해서. 내가 잊고있었던 것에 대해서.
우리는 가끔 중요한 것만을 생각하고 소중한 것은 곧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저는 우리가 풀장 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사람들 같이 보여요. 세상이라는 풀장 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거죠. 그런데 모두 버터플라이를 하려는 거예요. 어떻게 모두 버터플라이를 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해서든 떠 있기만 하면 죽지는 않거든요. 저는 버터플라이가 아니라 배영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에게도 ‘배영을 하자’라고 말하고 싶구요.”
-어딘가에서(?) 읽은 박민규의 인터뷰 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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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비나님, 반가운 소설에 들어와 읽고 글이 참 좋아 인사드립니다.
저도 이 소설을 얼마 전 읽고 너무 좋아 감격했지요. 언제 리뷰 써야지, 하고 미루고만
있는데 님의 글이 참 재미있게 읽힙니다. 박민규의 인터뷰 내용,
그게 딱 이 소설의 즐거운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사비나 2007-09-21 19:33   좋아요 0 | URL
실은 조금 오래된 리뷰인데^^

그래도 글이 좋다는 말씀에 기분이 기분이 좋아져요.

박민규..의 이책 참 좋았는데 그후 카스테라도 그렇고 좀 별로여서 아쉬운감이 있어요.

잉크냄새 2007-09-1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라는 소설의 사명을 다하였다는 말에 공감이 가네요. 재치있는 글과 유년시절을 자극하는 추억, 게다가 삶의 철학까지 담고 있으니 대단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더군요.

사비나 2007-09-21 19:34   좋아요 0 | URL
그쵸? 읽는 재미.작가의 글빨~게다가 쏠쏠한 감동까지.요즘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