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전2권 세트
에쿠니 가오리.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난주.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실제로 존재하는 두 연인의 일기장 같은 이야기 - <냉정과 정열사이>



冷情と情熱のあいだ(냉정과 정열사이)

일본소설로 국내에서는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연애소설이다.

영화 감독겸 락 뮤지션으로도 잘 알려진 츠지 히토나리와

요시모토 바나나,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삼대여류 작가에 속하는 에쿠니 가오리가

함께 써 내려간  [Blu] 와 [Rosso], 두 권의 이야기가 하나가되는 소설로

일본 내에서만 문고판과 단행본을 합쳐 3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있는 베스트셀러 이기도 하다.





1997년 [월간 카도카와(月刊カドカワ)]라는 잡지에 처음 연재되기 시작했던 이 소설은

츠지가 남자 의 시점에서, 에쿠니가 여자의 시점에서 이별 후 팔년의 세월을 각자의 삶을 살고있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이야기를 릴레이 식으로 연재를 했던, 처음부터 독특한 기획으로 시작된 연애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작가가 주인공과 상황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설정만을 한 뒤

두 사람 어느 누구도 결말을 알 수 없는 연애소설을 연재했다는 것이다.

이년여의 연재기간 동안 서로의 원고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리며 연애편지라도 주고 받는 듯

매달 한회한회 연재를 하면서 실제로 연애를 하는 기분에 빠졌다는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



이야기는 과거를 등지고 사는 두 남녀에서 시작된다.

피렌체의 한 공방에서 회화 복원사로서 묵묵히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쥰세이.

그리고 밀라노의 앙티크 보석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빈이라는 부유하고

친절한 미국인 애인을 두고 일상의 여유를 즐기고 사는 아오이.

일본에서 대학시절 한때 연인이었지만 서로에게 지독한 상처만을 남긴 채 이별을 했던 이 두 남녀는

이별 후 아무 상관없는 각자의 삶을 팔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가슴속에 하나의 희망처럼 약속이란 것이 살아 있음을 모른다.

지난 시절 마치 농담처럼 스치며 했던 하나의 약속.

<약속할수 있니? 내 서른살의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쿠폴라 위에서 만나기로.>

가슴에 정열을 담은 채 냉정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한  아오이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 에 대해서 연인 앞에서조차 냉정해 지려 한다.

아오이는 서른 살 생일에 같이 두오모에 오르자는 쥰세이에게<우리가 헤어지지 않는다면>,

<사람일이란 모르는 거잖아>라는 말과 함께 정열을 숨긴 채 냉정을 유지하며 약속을 제안한다.

하지만 헤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호함을 보여주며 그동안 다소 정열적인 표현을 내세우던 쥰세이는

오히려 그의 냉정으로 인해 결국 이별이란 것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리고 팔년.

그 세월동안 서로의 가슴에서 그 약속은 이미 지워졌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실날 같은 희망하나가 그 둘의 인생의 전부인양 살아가고 있다.



작가일 때는 히토나리(仁成, 훈독), 영화감독과 가수일 때는 진세이(仁成, 음독)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괴짜 예술인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츠지 히토나리.

처음부터 출판사 쪽이 아닌 그의 기획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그가 여성팬이 많은 에쿠니 카오리에게 이 기획을 프로포즈 함으로서

그가 얼마나 독자를 의식하는 작가인지를 드러내고 있다.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아구타가와 수상작가 인 츠지가

여성 패션잡지에 소설을 연재한다거나 하는 것이 조금은 의외라고 느껴 질 수도 있지만

<영상이 젊은이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현시대에서 좀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싶다>라는

평소의 그의 의식에 비추어 본다면

그가 현시대의 일본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사랑 받는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간다고 볼 수도 있다.

솔직히 츠지의 [Blu], 에쿠니의 [Rosso] 가 합쳐져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소설이 되는 이 작품을 접하면서

츠지의 글을 만지는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필력에 반해서

에쿠니의 글들이 츠지의 글에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책을 다 읽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그러한 작은 느낌들이 오히려 츠지의 기획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세상 어딘가 실제로 존재하는 두 남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느낌.

츠지 혼자만으로도 쓸 수 있는 이야기 일순 있겠지만 결코 그의 글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느낌이리라.


<냉정과 열정사이>

이 소설은 도쿄에서 그치지 않고 피렌체와 밀라노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나

회화 복원사와 앙티끄 보석가게의 아르바이트 라는 두 주인공의 직업,

또는 아오이의 미국인 애인 마빈이라든가 아오이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메미를 쥰세이 옆에 등장시킴으로서 젊은 층의 독자들에게 적당한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네 사람이 엮어가는 갈등을 통해 애틋한 마음마저 일게 하는 전형 적인  연애소설이다.

비가 내리는 주말오후에 이층 창가의 커피숍에서 연인을 기다리며 가볍게 읽기에도 좋고

가족들이 다 외출해 버린 텅빈 집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포테이토 칩을 집어먹으며 읽기에도 괜찮은 소설.

하지만 고즈넉한 햇살아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헤어진 옛 애인이 떠올라 책장 사이의 활자에서 막연한 그리움을 건져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틈을 타고 어떤 상념하나가 뇌리에 번뜩하고 스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혹시나 나는 누군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를 어떤 약속을 잊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상념 같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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