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로켓 야타가라스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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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케이도 준의 <변두리 로켓>의 네 번째 이야기 <야타가라스>를 읽었단다. <변두리 로켓> 4권까지 출간되었는데, <야타가라스>를 읽음으로 일단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변두리 로켓>은 다 읽은 거지. 5권도 나올지 모르겠구나. 4권의 제목 야타가라스는 일본 고대 신화에 나오는 길을 안내해주는 까마귀로 다리가 세 개가 있다고 하는구나. , 다리가 세 개인 까마귀는 우리나라도 삼족오로 전설 속의 까마귀가 있는데 일본에도 있구나. 아무튼 <변두리 로켓> 시리즈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쓰쿠다를  중심으로 회사원, 특히 연구원들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그렸단다.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골리앗 같은 대기업을 상대하며 살아남은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도 알게 해주는 소설이었지.

주인공 쓰쿠다는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아 쓰쿠다 제작소를 경영하는 사장이었잖아. 돈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제품의 품질을 더 중요시하는 정체성이 확고한 사람. 그리고 인간미도 물씬 풍기는 그런 사람이었지. <변두리 로켓> 3권에서 기어고스트라는 중소기업을 도와주었는데, 그 기어고스트가 쓰쿠다제작소를 배신했었지. 그 기어고스트라는 회사도 4권에 또 나온단다. 4권의 주제는 인공지능으로 자율 주행하는 농업 로봇에 대한 이야기란다.


1.

, 그럼 4권의 이야기를 해볼게. 1권부터 쓰쿠다제작소와 일을 같이 해왔던 대기업 데이코쿠중공업. 데이코쿠중공업의 자이젠이라는 사람이 쓰쿠다를 잘 이해해주고 도와주었지. 자이젠은 이번에 보직을 바꾸면서 농업 로봇에 대한 신제품을 기획하게 되었어. 자이젠은 인공 로봇의 주요 기술 중 하나인 트랜스미션과 소형 엔진을 쓰쿠다제작소에 맡기고자 찾아 왔단다. 그리고 한가지 더 부탁이 있었어. 농업로봇의 핵심기술인 자율주행 기술을 가지고 있는 노기 교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쓰쿠다의 옛친구였거든. 그 사람에게 같이 하자고 부탁 좀 해달라는 것이었어.

쓰쿠다는 옛친구도 오랜만에 볼 겸, 농업 로봇은 침체된 농업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도와주겠다고 했어. 자이젠과 쓰쿠다는 함께 노기 교수를 찾아갔단다. 그런데 노기 교수는 기업체와 함께 일하는 것을 꺼려했어. 왜냐하면 예전에 산학협업을 했다가 사기 당하고, 자신의 기술만 쏙 빼앗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업체와 다시는 일을 안 하려고 했단다. 쓰쿠다의 계속된 설득으로 결국 함께 하기로 했단다. 친구인 쓰쿠다도 참여하니까 믿을만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데이코쿠중공업 내부에 사정이 생겼어. 늘 남의 업적을 가로채는 마토바 이사가 이번에도 자이젠이 기획했던 농업 로봇 프로젝트를 가로채 자신이 총책임자가 된 거야. 그리고 트랜스미션과 엔진을 자체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단다. 원래 쓰쿠다제작소에서 하기로 했던 것인데 말이야. 트랜스미션과 엔진을 자체개발을 하게 되니 쓰쿠다제작소는 그 프로젝트에서 할 일이 없어지게 된 거야. 자이젠은 난처한 입장이 되었고, 쓰쿠다가 빠지니까 노기 교수도 안 한다고 했어. 자이젠의 부탁으로 쓰쿠다가 노기 교수를 다시 한번 설득해서 일단 참여하기로 했단다.


2.

그렇게 데이코쿠중공업에서 농업 로봇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침 방송에 중소기업들이 모여서 다윈 프로젝트라는 연합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무인 농업 로봇을 출시한다는 소식이 나왔단다. 데이코쿠중공업으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지. 다윈 프로젝트에 참여한 회사는 쓰쿠다제작소를 배신했던 기어코스트, 쓰쿠다제작소의 경쟁업체이자 기어고스트와 손을 잡은 다이달로스, 그리고 키신이라는 회사인데, 이 키신이라는 회사로 바로 앞서 노기 교수의 기술을 빼간 그 회사야. 뭔가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비양심적인 회사들이 모여 있구나. 그런 회사들이 모였으니 결과는 뻔해 보이는구나.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다윈 프로젝트의 제품이 데이코쿠중공업의 것보다 앞서 있었단다.

데이코쿠중공업이 엔진을 자체 개발하긴 하는데, 데이코쿠중공업은 대형 엔진만 만들었지, 소형 엔진은 경험이 없었단다. 다윈 프로젝트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소형 엔진을 새로 개발해야 하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들이 계속 해오던 대형엔진을 적용하기로 했어. 그러다 보니 농기계가 커지게 되었단다. 표면적인 이유는 다윈 프로젝트와 다른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미였는데, 대형 농기계의 시장이 많지 않아서 농민들을 도와주겠다는 처음 취지와 많이 달라졌단다.

얼마 후 열린 농업 축제에서 무인 농업 로봇의 첫 시범운전이 있었어. 다윈 프로젝트에서 개발한 무인 농업 로봇인 무난하게 성공했단다. 일반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겠지만, 전문가들 눈에는 여러 허점들이 있었단다. 그래도 무난하게 시범운전은 성공적이었지. 그에 반해 데이코쿠중공업은 허수아비를 들이박고, 도랑에 빠지는 등 완전 실패였단다. 회사 이미지만 잔뜩 안 좋아지고 말았지.

이 소식을 데이코쿠중공업의 도마 사장도 알고 격분했단다. 자신은 농업 로봇의 기획이 소형인줄 알았는데 왜 대형으로 바뀌었냐고 화를 냈어. 이것은 다 그 얄미운 마토바가 그랬던 거지. 도마 사장의 지시로 다시 소형 농업 로봇을 만들게 되었고, 사장의 지시로 트랜스미션과 엔진은 쓰쿠다제작소에서 맡게 되었어.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다시 원 궤도를 찾은 것 같구나. 쓰쿠다제작소는 고민이 하나 있었어. 엔진은 그들의 주력제품이라서 자신 있었지만, 트랜스미션은 경험이 부족했거든. 그래서 기어고스트의 창업멤버였지만 배신당한 후 현재는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시마즈 유를 설득하여 영입했단다. 노기 교수도 참여를 했어. 이 정도면 변두리 로켓 시리즈에서 나오는 인력들 중에는 베스트멤버였어.


3.

얼마 후 시제품이 나왔어. 시운전을 해볼 제격인 사람이 있었지. 얼마 전까지 쓰쿠다제작소에 다니다가 아버지의 농업을 물려받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 도노무라. 도노무라는 흔쾌히 오케이하고 자신의 논에서 무인 농업 로봇을 시험 운행하게 했단다. 이렇게 데이코쿠중공업의 무인 농업 로봇을 진척을 보일 때, 다윈 프로젝트는 더 앞서 달리고 있었어. 이미 수십 농가에 제품을 주고 제품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가끔 멈추는 현상이 있었어. 전원을 껐다 켜야 다시 동작을 했어. 그러다가 어떤 한 시료는 전원을 껐다 켜도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 불량품을 가지고 와서 확인해 보니, 트랜스미션의 변형이 되어 있었어. 그런데 그것이 프로그램 버그라고 연락이 프로그램을 업데이트를 했단다. 뭔가 찜찜하고 불안한 일들이구나.

무인 농업 로봇이 개발되면서, 일본의 총리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윈 프로젝트 제품과 데이코쿠중공업 제품 모두 총리 앞에서 시연을 하기로 했어. 그런데 정작 총리는 다윈 프로젝트 제품의 시연만 보고 시간이 없다고 자리를 떴단다. 총리는 정치적으로 봤을 때, 중소기업들이 연합해서 만든 제품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야, 자신의 지지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대기업인 데이코쿠중공업 제품의 시연은 보지도 않고 자리를 뜬 것이란다.

그렇게 다윈 프로젝트의 무인 농업 로봇이 데이코쿠중공업의 것보다 앞서 갔단다. 시장 출시도 먼저 하고 홍보도 잘되어 매출이 급증했단다. 그에 반해 랜드크로우라는 이름으로 출시한 데이코쿠중공업의 무인 농업 로봇은 매출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단다. 대기업이긴 했지만 무인 농업 로봇에 있어서는 후발주자였으니그렇게 되자 데이코쿠중공업의 비인간적인 캐릭터 마토바가 이번에도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어. 데이코쿠중공업의 하청업체 중에 다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업체들도 있었는데, 그런 하청업체에 압력을 가해서 다윈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원자재도 공급하지 못하게 했단다. 그래서 다윈프로젝트는 생산 중단까지 이어지게 되었어.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마토바는 하도법 위반으로 고소당하고, 데이코쿠중공업은 그 일이 마토바의 독단적인 일이라고 판단되어 마토바를 자르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단다. 아빠가 보기에 마토바는 이미 이전 시리즈부터 계속 하도법을 어겼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서야 재판을 받고 회사에서 잘리게 되었구나. 그렇게 다윈 프로젝트의 원자재 수급 문제는 해결되나 싶었는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단다. 그들의 출시한 무인 농업 로봇이 현장에서 계속 고장이 나는 것이었어. 불량품들을 확인해 보니 모두 트랜스미션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어.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이코쿠중공업에서 개발한 랜드크로우의 트랜스미션이 필요했어.

그 트랜스미션은 바로 시마즈 유의 작품이었잖니. 기어고스트에서 배신당해 잘리고 쓰쿠다제작소에 스카우트된 시마즈 유. 기어고스트는 그런 인재를 자르고,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회사를 배신하더니 큰 곤욕에 빠지게 되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겠다고 쓰쿠다제작소에 찾아와 트랜스미션의 특허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당연히 거절했지. 자신들을 배신한 회사에 무엇이 이쁘다고

그런데 고장 난 무인 농업 로봇 때문에 봉변을 당한 농민들을 보고, 어떤 것이 과연 농민을 위한 것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 쓰쿠다. 결국 데이코쿠중공업에도 진심을 이야기하여 설득하고, 시마주 유와도 이야기를 해서 트랜스미션의 특허를 다윈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게 했단다. 그렇게 훈훈하게 이야기를 끝이 났단다.

<변두리 로켓> 시리즈의 결말은 늘 훈훈하게 끝이 나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 예상을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나 훈훈하게 끝나는구나. 현실감마저 떨어질 정도 훈훈했어. 5권이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4권에서 마무리해도 깔끔하게 잘 끝난 것 같구나. 소설 <변두리 로켓>이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어디서 봐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회 되면 한번 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역으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시마즈 유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이타미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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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무세이온은 일종의 연구소 같은 곳으로, 지중해 방방곡곡과 중동 등지에서 모인 다양한 학자, 물리학자나 수학자 들이 각종 시인, 문인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학술 활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거기서 살았지만, 공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던 때에 유클리드에게서 배웠다고도 합니다.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굉장히 많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클리드라는 인물이 실제 존재했는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기는 어렵겠지요. 당대 수많은 학자가 교류했던 무세이온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는 현대 도서관이 2002년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98)

이런 원리는 학교 교육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수학의 기본 개념을 조심해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생각 없이 효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해진 형식을 따라 저절로 푸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니까요. 수학의 학습은 피아노 연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기초 기술을 습득하면 반복 훈련을 해야 하고, 그게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말입니다. 흔히 수학 공부에서 암기가 중요한가 원리 파악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에 제가 늘 둘 다 중요하다고 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명료한 사고가 반드시 원리를 아는 사고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124-125)

규칙의 기계적인 적용만 이용해서 하는 작업을 보통 알고리즙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을 거의 동일시하죠. 알고리즘은 아주 단순한 단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명령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 보는 것들이 아주 오래전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원전 2500년경 바빌로니아에 원시적인 나눗셈 알고리즘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곱셈 알고리즘, 최대공약수 알고리즘, 소인수분해 알고리즘 등을 생각할 수 있죠. 알고리즘이라는 말 자체는 중세 이후 16시기경까지 유럽 대학에서 수학 교재로 널리 사용되던 책 <복원과 대비의 계산>을 쓴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185)

세상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 일에는 명제를 분석하는 것과 생성하는 것 모두 필요합니다. 여기서의 생성은 앞서 이야기한 명제의 합성과 논법의 적용을 둘 다 포함합니다. 이론가들이 원하는 완벽한 이론이란 분해와 생성 과정이 어디선가 만나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이론은 없고, 궁극적으로 가능한지도 불분명합니다.


(323)

그런데 이런 화학적 작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보면 희미한 빛을 시간을 들여 관철하면서 그 구성 성분을 분석해 이 분포도를 만들면, 그 빛이 별에서 나온 건지 은하계에서 나온 건지 금방 구분이 되겠죠. 또 각 원소가 발하는 빛의 파장이 서로 다르므로 별 안에 원소가 어떻게 배합되어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멀리서 오는 굉장히 다양한 빛의 정보를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테크닉은 성분 분석입니다. 파장의 분포도를 세밀하게 분류하다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분포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겁니다. 모르는 물체가 등장한 것이니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주에 사는 새로운 시스템의 발견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353)

크세나키스는 작곡할 때 확률론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피아노 곡을 쓸 때 먼저 88개의 음 가운데 이 곡에서 이 88개의 음을 다음과 같은 분포로 사용하겠다정한 뒤 작곡을 하는 겁니다. 가령 는 전체 음의 12%가 나오고, ‘ 14%, ‘ 37% 나오게 하는 식으로 분포를 정한 다음 작곡을 하는 거죠. 음뿐 아니라 박자, 화음, 시간 등의 음악적 요소들을 물리적인 입자와 유사하게 여기는 작곡철학과 관계 있습니다. <확률의 작용>이라는 곡에서는 맥스웰 볼츠만 분포를 많이 사용했는데요, 이는 이상 기체 안에 있는 입자들의 속도 분포를 말합니다. 이를 작품에서 선율의 속도 분포에 사용한 것이죠.


(406)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지만 핵과 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광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광자의 압력 때문에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적당한 설명인 듯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손으로 만지는 것이 귀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물체가 손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빛 때문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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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 나남창작선 118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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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어른이 되나 나서는 역사를 참 좋아하는데, 학창 시절에는 역사 과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 아빠가 어른이 되어 역사의 재미를 알게 되고 나서, 학창 시절에도 그런 재미를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어. 학창 시절의 기억력은 어른 때의 기억력보다 오래 가고, 역사 성적도 좋았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런 아빠의 DNA를 물려받았는지 너희들도 역사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더구나. 그래서 역사에 관심을 끌게 하려고 재미있는 유튜브도 찾아보고, 재미있는 책도 찾아보고심지어 아빠가 이야기를 해 줘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에, 올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태종 이방원>이라는 드라마를 같이 보기로 했잖아. 우리가 3회까지 봤는데, 아직 고려 말이었지. 이성계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그 중에는 정몽주라는 사람도 있었단다. 그 또한 이성계와 개혁을 함께 하려고 했지만, 큰 그림이 달라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었지. 그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집에 사두고 읽지 않은 이병주 님의 <정몽주>라는 책이 생각이 났단다. 이왕 읽을 것, 드라마와 연관 지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단다.

이병주라는 분은 아빠가 알기에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많이 쓰신 분으로 알고 있어. 하지만 아빠가 한창 책을 좋아하기 시작하던 때는 이미 고인이 되셔서 그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단다. 이번이 처음이었어. 이 책이 맨처음 출간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우리말과 한자어들이 많이 나왔단다. 하나하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서 읽기에는 힘에 부쳐, 앞뒤 문맥을 보고 뜻을 유추하면서 읽거나, 한자어 같은 경우는 한자가 같이 써 있어서, 어설픈 한자 실력으로 뜻을 해석하면서 읽어나갔단다. 어려운 한자어나 생소한 우리말의 경우는 출판사에서 주석을 달아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1.

정몽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전기나 평전 등은 읽은 적이 없어. 이번에 읽은 이병주 님의 <정몽주>는 소설이지만, 그의 삶을 좀더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단다.

….

고려 공민왕 9. 정몽주는 장원급제로 벼슬의 길을 시작했단다. 하지만 순탄하지는 않았어. 당시에도 권력 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단다. 당시 권력은 김용이라는 사람이 잡고 있었는데, 정몽주의 스승인 김득배도 김용의 반대세력이었어. 김용은 반대세력을 가차없이 죽였는데, 거기에는 김득배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김용은 점점 욕심이 심해지고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고 말았단다. 고려말의 정세는 혼란 그 자체였단다. 공민왕이 개혁 정책을 써서 나라를 바로 잡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고, 그 또한 나중에는 손을 놓아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어. 정몽주는 자기보다 아홉 살 많은 목은 이색과 뜻이 맞아 자주 어울렸단다. 정몽주가 주로 일한 곳은 성균관이었단다.

당시 국경 너머에서는 여진족이 침략하였는데 이때 군사(軍師)로 전투에 참여했다가 이성계와 최영을 만나게 되었단다.

...

정몽주는 사신으로 명나라를 가기도 했단다. 당시 명나라는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막 나라를 세운 시기였어. 정몽주는 명나라의 학자들과 교유를 통해 친목을 다졌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어. 배가 다 부서지고 사람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무인도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10일간 지내다가 지나가는 해적의 도움으로 다시 중국 대륙으로 가게 되었단다. 정몽주는 고향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지. 그곳에서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지내다가 한참 뒤에 고려로 돌아왔단다.


2.

정몽주가 돌아온 고려는 더 엉망이었어. 공민왕은 미소년들의 모임인 자제위를 만드는 등 향응에 빠졌어. 그렇게 매일 향응에 빠져 살다가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단다. 공민왕이 죽고 10살 밖에 안된 우왕이 왕위에 올랐단다. 우왕은 고려 33대 왕이란다. 이때 정몽주는 성균관 대사성을 맡고 있었어. 당시 신하들은 외교 정책에 있어 둘로 갈렸단다. 먼저 이인임을 중심으로 원나라를 지지하는 친원 세력이 있었고, 새로 개국한 명나라를 지지하는 친명 세력이 있었어. 그런데 권력을 잡고 있는 이는 친원파였고, 이인임은 반대파인 친명파를 유배 보냈는데, 거기에는 정몽주, 정도전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다행히 유배는 오래 있지는 않고 금방 풀려났단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계속 친원파와 친명파가 대립했단다. 왕은 뭐 하는 것이 있냐? 없었단다. 무능한 왕이었어.

그리고 또 하나의 골칫거리 왜구들이 있었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몽주는 이번에는 일본에 가게 되었단다. 그곳에서 환대를 받으며 1년간 머물러 왜구 문제에 대해서 협의를 하고 돌아왔지만, 그 이후에도 왜구는 끊임없이 조선 백성을 괴롭혔단다. 그런 것을 보면 일본에서 보낸 1년의 성과는 실패라고 할 수 있겠구나.

친원파 이원임이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 친원정책을 계속 펼치고 반대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몽주는 사직하고 벼슬에서 물러났단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어. 민심을 잃은 무능한 왕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 친원정책의 주요 정책은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란다. 그 당시 원나라는 이제 몰락해 가는 나라이고, 명나라는 세력을 키워나가는 신흥국가인데, 원나라에 줄을 선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지. 그렇다고 명나라도 관대한 나라는 아니었단다. 우리나라한테 무리한 조공을 요청했어. 가뜩이나 명나라와 적대정책을 펴고 있는데, 조공을 요청했으니 점점 사이는 안 좋아졌단다. 정몽주는 고려와 명나라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명나라에 갔지만 명나라 황제는 만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단다.


3.

개경에서 정변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진압하면서 신하들이 싹 물갈이를 하게 되었단다. 수상격인 문하시중에 최영, 부수상격인 수문하시중에 이성계가 앉게 되었어. 명나라와 관계가 좀 좋아지나 했으나, 명나라에서 다시 호랑이의 코털, 아니 고양이의 코털을 건드렸단다. (차마 당시 고려를 호랑이에 비유할 수 없겠더구나.) 명나라에서 원라나가 차지했던 고려의 땅을 차지하겠다고 했어. 우왕과 최영은 안될 말이라고 하면서 명나라와 전쟁을 하겠다고 했단다. 최영이 우수한 장군이지만, 외세 흐름을 읽는 눈은 밝지 못했나 보구나. 정몽주는 이색과 함께 전쟁을 막을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 결국 최영은 이성계와 조민수에게 명령을 내려 명나라를 공격하라고 지시했어.

우군도통사 이성계, 좌군도통사 조민수는 요동정벌이라는 명을 받고 출정했단다. 정몽주만 명과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야. 이성계도 그렇게 생각했어.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출정은 했지만, 이성계는 시간을 끌었단다. 출정도 늦게 하고, 평양에서 위화도까지 가는데도 20일이나 걸렸어. 그리고 위화도에서 장마라는 핑계로 한참 머물렀어. 명령이 거둬지길 기다린 걸까? 아니면 또 다른 결정을 위한 숨고르기였을까? 겉으로는 비 때문에 출동을 하지 못한다고 최영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그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결국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회군을 결정했어. 개성에는 이성계의 군대를 막을 군사가 없었지. 그렇게 개성에 입성한 이성계는 권력을 잡게 되었어. 우왕은 왕이랍시고, 군사들을 데리고 회군 세력을 처단하겠다고 그들 집을 찾았지만 아무도 만나지도 못했어. 우왕은 헛걸음을 하고 이색과 정몽주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어. 정몽주는 그런 우왕을 내치지 못하고 조언을 했단다. 하지만, 우왕이 힘이 있는가. 권력을 잡은 이성계가 왕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면 내려와야지, 우왕은 왕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의 아들 창왕이 왕위에 올랐단다. 이미 고려는 이성계의 나라가 된 듯 했어.

그 당시 목자득국(木子得國)이라는 말과 함께 역성혁명의 소문이 돌았어. 목자득국(木子得國)에서 목자(木子)라는 말은 이성계의 성씨인 이()를 풀어쓴 말로 이성계가 나라를 얻게 된다는 뜻이란다. 정몽주와 이색은 왕이 무능하지만, 고려라는 나라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이성계의 오른팔인 정도전은 이미 역성혁명을 꿈꾸고 있었고 뜻을 달리하는 정몽주를 탄핵하자고 했지만 이성계가 반대했단다.


4.

당시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닌,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단다.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면 우왕의 아들 창왕도 신돈의 핏줄이 되는 거야. 정도전의 조언으로 이성계는 이 소문을 진실로 규정하고 창왕을 폐위시키게 된단다. 그리고 왕씨 친척 중에 한 명을 골라 왕위에 세우게 되는데 그가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란다. 그러니까 공양왕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왕이 된 거야. 우왕과 창왕은 공민왕의 자손이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라고 했으니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어. 결국 우왕과 창왕도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공양왕이 그냥 허수아비 왕은 아니었던 것 같아. 이성계와 뜻이 달랐던 정몽주를 찾아왔단다. 그리고 정몽주도 고려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이성계를 척을 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는 이성계 반대파 세력을 끌어 모아 힘을 키웠단다. 정몽주는 이성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개각을 주도했는데, 이때 이색을 비롯하여 그의 측근을 조정에 배치하고 정도전 등은 지방으로 발령냈단다. 정몽주의 뜻은 명확했단다. 고려라는 나라 유지하고 왕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 정몽주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자 이방원이 정몽주를 술자리에 초대하여 그를 설득하였는데, 이때 지은 시조가 그 유명한 하여가(何如歌)라는 시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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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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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왕조가 무슨 상관 있냐, 우리 같이 새 왕조에서 잘 살아보자고 한 것이야. 하지만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답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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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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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필요 없는 문장이구나. 이로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설듯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설득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

….

정몽주도 강하게 나갔어. 이성계가 낙마하여 부상당하고 있는 동안, 이성계파를 탄핵시키려고 했어. 이 소식을 듣던 이성계가 부상한 몸을 이끌고 개경으로 급히 돌아왔고, 정몽주는 이성계를 병문안 겸 협상을 하려고 갔다가 서로의 뜻만 확인하였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사주한 이들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정몽주라는 걸림돌이 사라진 이성계는 3달 뒤 공양왕마저 추방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새로운 왕이 되었단다.

그렇게 이 소설은 끝이 났단다. 많은 부분을 알고 있던 내용이라서 신선함은 떨어졌지만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고려말 정세를 이해하게 되어 좋았단다. 우리가 이제 보기 시작한 <태종 이방원>에서는 정몽주가 조연이지만 어떻게 그려지는지 유심히 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화려한 등장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런데 이 비광이 춘추를 거듭하는 동안 민족을 광피(光被)하는 영특한 빛으로 되는 것이니 역사의 요묘함이 역연(歷然)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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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4)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56)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난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거에는 푸른 쪽지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는 실제로는 그 편지가 시적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맑은 11월의 하늘에 다시 나타난 태양이 그 순간 그녀의 방을 따뜻한 빛과 음영으로 채웠던 것이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106-107)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라고 대답하며 그는 요란하게 절하는 시늉을 했다.


(133)

알다시피 나는 경솔한 사람이 아냐. 나는 스물다섯 살이야.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 인생의 여인이고,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나는 알아. 당신이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

난 서른아홉 살이야.” 그녀가 말했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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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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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 때문에 예전부터 눈 여겨보던 책이란다. 명랑한 은둔자라니은둔을 하면서 명랑할 수 있는 사람. 이 책 제목처럼 아빠도 이걸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혼자서 놀기.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혼자서 할 것들이 정말 많아서, 지루하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물론 방안에 책들도 많고 스마트폰도 있고, 컴퓨터도 하나 있어야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집의 서재 같은 공간이라면 명랑한 은둔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이 책은 안타깝게도 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유고작이라고 하는구나. 마흔둘에 적은 나이로 불치병으로 세상을 등진 지은이 캐럴라인 냅. 아빠는 이 사람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어 본 것인데,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책도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에서 책 겉표지만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였구나. 옮긴이의 말에서 지은이 캐럴라인 냅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는데 캘럴라인 냅이 엄청난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그걸 이겨내는 과정을 쓴 책이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고 했단다.

아빠가 이번에 읽은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이 너무 좋았단다. MBTI에서 첫 번째 인자가 강한 “I”인 아빠가 공감하는 내용도 많았지만, 글들이 재미있고 유머도 있으면서 생각거리도 많이 던져 주었단다. <명랑한 은둔자>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도 읽어볼 생각이다. 리스트 추가.


1.

<명랑한 은둔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캐럴라인 냅의 유고작으로, 그가 생전에 남긴 에세이들 중에 좋은 것만 추려낸 에세이 베스트 모음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구나. 이 책을 통해서 캐럴라인 냅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그려지더구나. 어떤 일이나 사물, 생각, 행동 등에 한번 꽂히면 중독될 만큼 빠져드는 사람? 앞서 이야기했지만 술에 중독되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 책에도 술에 관한 이야기들이 여럿 나온단다. 술 중독을 이겨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도 젊은 시절에는 술을 어느 정도 마실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지만, 나이를 좀더 먹고 나서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단다. 술이 뭔가 해결해 준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머리만 아프게 하거든. 요즘은 가끔 시원한 맥주 한 두잔 마시는 정도? 아무튼 캐럴라인의 술의 중독을 이겨내서 쓴 글들이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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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술은 그토록 알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우리가 술에 절어 있을 때는 술이 유일한 해결책인 듯, 술이 자신을 산산조각 나지 않게 붙잡아주는 접착제인 듯 느껴지죠. 하지만 사실은 술이 문제의 근원이죠. 술은 우리가 꼼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발바닥을 바닥에 붙여놓는 접착제죠. 그날 아침, 저는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어쩌면 퍼뜩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의 생각이 점차 자라서 결국 저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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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술은 재미나 친밀감 같은 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줄 순 있을지라도 그런 감정들은 진짜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화학물질 덕분에 변한 나는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김에 흉금을 터놓는 대화를 오래 나누었다. 하지만 술을 마셨을 때 진짜 나는-어떤 면에서는 자신감 있고 다른 면에서는 겁 많은 나, 강한 동시에 약한 나-마음속에서 뒷전으로 물러났고, 그래서 안전해졌을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혼자였다. 술을 끊는 것은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 혹은 망가진 TV 안테나를 고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시야가 더 밝아졌고, 다른 사람들하고는 세상하고든 접촉이 더 또렷하고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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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은 먹지 않는 것에도 중독되어 거식증에도 걸렸었다고 하는구나. 몸무게가 38킬로그램까지 빠졌다가 나중에 회복을 했다고 했어. 그뿐만 아니라 담배에도 심하게 중독되었는데, 옮긴이의 말처럼 안타깝게 일찍 세상을 등지지 않았다면 나중에 담배도 끊고 나서 그것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 책이 세상에 없어서 안타깝구나. 그리고 또 하나의 중독. 이 책을 관통하는 은둔, 고립, 고독에도 중독된 사람 같아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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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우리는 고립을 지리와 상황의 결과로 여기곤 한다. 혼자가 된 과부, 남편은 죽고 아이들은 다 자란 여자, 그는 고립된 사람이다. 늙고 쇠약한 사람, 아예 물리적으로 바깥세상에 나갈 수 없는 사람, 그들은 고립된 사람이다. 하지만 고립은 또한 마음의 상태일 수 있고, 실제로 종종 그렇다. 칩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선택을 결정짓는 상태인 것이다. 마치 당신이 심연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나는 고립으로 추락한다. 어둡고 비자발적인 추락은 가속이 붙어, 내가 저지하기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나는 혼자 있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을 연속 열 번이나 열다섯 번이나 스무 번쯤 하고 나면,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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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캐럴라인이 말하길 고독은 차분하지만 고립은 무섭다고 했어. 그리고 고립에 빠지기도 하지만 고독을 즐기려는 노력도 했고, 사교적인 생활도 노력한 것 같았어. 고독을 즐기면서 사교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쌍둥이 기술이라고 했고, 자신은 이제 막 시작했다고 했거든그것이 완성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여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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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

혼자 있다는 것, 그 모든 다양한 형태는-혼자 살거나, 싱글이거나, 배우자나 가족이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갖거나-연습이 필요한 기술이다. 고독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교적인 생활을 가꾸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한다. 캐럴린 하일브런이 그 쌍둥이 기술을 터득하는 데는 60년이 걸렸다. 내 친구 그레이스는 40대 중반인 지금 그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 20년 동안 혼자 살아온 그는 이제 프라이버시와 교유의 균형을 예전보다 더 자주 달성할 줄 안다. 나로 말하면,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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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독과 고립을 오가던 캐럴라인 냅이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 진했단다. 비록 자신의 아이는 없었지만 조카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단다. 캐럴라인 냅은 이란성 쌍둥이 언니가 있었는데, 둘은 전혀 다른 성격과 외모를 가졌다고 했어. 늘 고독했던 캐럴라인과 달리 언니는 사교적이면서 활달했거든. 그 언니의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그런 조카를 보면서 자신의 아이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사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고,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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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내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작은 인간 발전기 같은 록산이라는 이름의 두 살 조카를 볼 때면 나는 모성애 덩어리가 된다. 아이를 붙잡아서 껴안고 싶고, 그 자그만 얼굴과 손에 뽀뽀하고 싶다. 두 살 아기들이 즐기는 무한 반복 게임을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쫓아서 30번 빙글빙글 돌고, 아이가 나를 쫓아서 30번 빙글빙글 돌고) 아이가 특히나 아이답고 사랑스러운 행동을 할 때면-낮잠을 자려고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거나, 잠시 낯가림하며 제 아빠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있을 때-심장이 녹아내린다. 홀딱 반하겠네, 나도 아이가 있으면 좋겠어.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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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글들도 많이 실려 있었단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고 드는 생각을 적은 글은 아빠도 많이 했던 생각들이라 공감이 많이 갔단다. 점점 늙고 쇠약해 가는 부모님들. 두 분 중에 먼저 한 분이 돌아가신다면 나머지 한 분께서 잘 생활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그리고는 잘 못해드린 지난 시절들의 생각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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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최근에 부모님 댁을 방문했을 때 부모님이 전보다 더 늙고 약해지신 듯 보인 적 있는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 적 있는가? 젠장,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 혼자 남으면 어쩌지? 아니면 이런 생각.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어쩌지? 아버지가 혼자 생활하실 줄이나 아나?

사람들이 흔히 부모님에게 느끼는 죄책감, 그러니까 당신이 부모에게 좋은 자식이 아니었다는 걱정이 들 때가 있나? 혹은 만약 부모님이 아프실 경우에 당신이 좋은 자식 노릇을 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이?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고?

나와 같은 입장이 된 것을 환영한다. 당신이 그동안 누리던 부모님 은혜의 시기가 이제 끝난 것이다. 부모님 은혜의 시기란 당신이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부모를 걱정할 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은 시기, 그 짧은 기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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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캐럴라인 냅의 부모님들은 일년을 두고 돌아가셨단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이 캐럴라인의 글들에 애절하게 담겨 있었단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일 년 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부모님이 떠난 빈 집을 비우는 것에 대해 적은 글은 아빠나 언젠가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울컥 하더구나. 사람의 삶이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힘든 일을 겪게 되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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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45)

화가였던 어머니의 화실을 비우는 일이 가장 힘든 부분이었던 듯싶다. 화실은 갑자기 끝난 어머니의 인생을 생생히 떠올리게 하는 물리적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죽기 직전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탁자와 붓과 페인트는 늘 그랬던 모습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진행 중인 작은 작품들, 스케치와 메모, 콜라주 재료, 색칠된 종이 무더기가 여기저기 있었다. 나는 그 방이 텅 빈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그것은 잔인하고 부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고, 그래서 나는 겨우 일 분도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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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작가의 에세이는 그들의 문화와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 읽기 어렵거나 읽더라도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캐럴라인 냅의 글들은 많은 부분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 많아 좋았단다. 아무래도 아빠가 “I”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야. 이 책을 추천할 때는 추천 받을 사람의 성향을 연구해보고 추천해야 할 것 같구나.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속삭임은 두 주째, 혹은 세 주째 쯤에 시작된다.

책의 끝 문장: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 P19

해석. 물론 이것이 핵심이고, 착각에 이르는 문이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과묵함의 망토 뒤에 숨은 채 상대가 스스로 관계에 대해서 품는 두려움이나 편견이나 자기 인식을 투사하는 빈 화면으로 기능한다. 만약 그 상대가(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타인에게 호감을 사고 싶다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그 상태가 자신이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혹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불편함이나 과묵함이 그에게는 자신이 주루해서 그러는 거라고 보일 수 있다. 수줍음은 오해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수줍음을 타는 내 친구 하나는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한다. "침묵은 로르샤흐 테스트야." - P34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의 애정이란 내가 얻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사랑받으려면 시험을 통과하고, 지적 후프를 뛰어넘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여겼어. 그러니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이것이 네가 내게 준 선물이란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란다. - P94

이것이 삶임을 깨닫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들수록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더 쉬워진다는 신화를 믿으며 자라는데(그리고 이것은 진짜 신화일 뿐이다), 나이 드는 부모의 모습만큼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것은 많지 않다. 실제로는 우리가 아니 들수록 잃은 것이 많아진다. 점점 더 크고 버거운 과제가 나타난다. 실수를 되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 P123

화를 터뜨리는 편이 언제나 효과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화를 내면 반드시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상처가 낫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나쁜 상황이 열을 내면 더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싸움을 잘 고르는 것 못지않게 대상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정신적으로 치고받을 의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화내는 것이 효과가 있으려면-어느 쪽에게든 생산적이거나 유익하려면-관련된 두 사람이 기본적으로 서로 신뢰해야 한다.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시기를 견뎌보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관계를 중시해야 한다. 이상한 일이지만, 분노라는 동전의 뒷면은 친밀함일 때가 많다.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겁나면서도 때로 가치 있는 일인 것은 그 때문이리라.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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