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 나남창작선 118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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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어른이 되나 나서는 역사를 참 좋아하는데, 학창 시절에는 역사 과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 아빠가 어른이 되어 역사의 재미를 알게 되고 나서, 학창 시절에도 그런 재미를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어. 학창 시절의 기억력은 어른 때의 기억력보다 오래 가고, 역사 성적도 좋았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런 아빠의 DNA를 물려받았는지 너희들도 역사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더구나. 그래서 역사에 관심을 끌게 하려고 재미있는 유튜브도 찾아보고, 재미있는 책도 찾아보고심지어 아빠가 이야기를 해 줘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에, 올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태종 이방원>이라는 드라마를 같이 보기로 했잖아. 우리가 3회까지 봤는데, 아직 고려 말이었지. 이성계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그 중에는 정몽주라는 사람도 있었단다. 그 또한 이성계와 개혁을 함께 하려고 했지만, 큰 그림이 달라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었지. 그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집에 사두고 읽지 않은 이병주 님의 <정몽주>라는 책이 생각이 났단다. 이왕 읽을 것, 드라마와 연관 지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단다.

이병주라는 분은 아빠가 알기에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많이 쓰신 분으로 알고 있어. 하지만 아빠가 한창 책을 좋아하기 시작하던 때는 이미 고인이 되셔서 그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단다. 이번이 처음이었어. 이 책이 맨처음 출간된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우리말과 한자어들이 많이 나왔단다. 하나하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서 읽기에는 힘에 부쳐, 앞뒤 문맥을 보고 뜻을 유추하면서 읽거나, 한자어 같은 경우는 한자가 같이 써 있어서, 어설픈 한자 실력으로 뜻을 해석하면서 읽어나갔단다. 어려운 한자어나 생소한 우리말의 경우는 출판사에서 주석을 달아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1.

정몽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전기나 평전 등은 읽은 적이 없어. 이번에 읽은 이병주 님의 <정몽주>는 소설이지만, 그의 삶을 좀더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되었단다.

….

고려 공민왕 9. 정몽주는 장원급제로 벼슬의 길을 시작했단다. 하지만 순탄하지는 않았어. 당시에도 권력 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단다. 당시 권력은 김용이라는 사람이 잡고 있었는데, 정몽주의 스승인 김득배도 김용의 반대세력이었어. 김용은 반대세력을 가차없이 죽였는데, 거기에는 김득배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김용은 점점 욕심이 심해지고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가 죽고 말았단다. 고려말의 정세는 혼란 그 자체였단다. 공민왕이 개혁 정책을 써서 나라를 바로 잡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고, 그 또한 나중에는 손을 놓아버리는 지경에 이르렀어. 정몽주는 자기보다 아홉 살 많은 목은 이색과 뜻이 맞아 자주 어울렸단다. 정몽주가 주로 일한 곳은 성균관이었단다.

당시 국경 너머에서는 여진족이 침략하였는데 이때 군사(軍師)로 전투에 참여했다가 이성계와 최영을 만나게 되었단다.

...

정몽주는 사신으로 명나라를 가기도 했단다. 당시 명나라는 주원장이라는 사람이 막 나라를 세운 시기였어. 정몽주는 명나라의 학자들과 교유를 통해 친목을 다졌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에서 폭풍을 만났어. 배가 다 부서지고 사람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혼자 무인도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10일간 지내다가 지나가는 해적의 도움으로 다시 중국 대륙으로 가게 되었단다. 정몽주는 고향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했지. 그곳에서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지내다가 한참 뒤에 고려로 돌아왔단다.


2.

정몽주가 돌아온 고려는 더 엉망이었어. 공민왕은 미소년들의 모임인 자제위를 만드는 등 향응에 빠졌어. 그렇게 매일 향응에 빠져 살다가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단다. 공민왕이 죽고 10살 밖에 안된 우왕이 왕위에 올랐단다. 우왕은 고려 33대 왕이란다. 이때 정몽주는 성균관 대사성을 맡고 있었어. 당시 신하들은 외교 정책에 있어 둘로 갈렸단다. 먼저 이인임을 중심으로 원나라를 지지하는 친원 세력이 있었고, 새로 개국한 명나라를 지지하는 친명 세력이 있었어. 그런데 권력을 잡고 있는 이는 친원파였고, 이인임은 반대파인 친명파를 유배 보냈는데, 거기에는 정몽주, 정도전도 포함되어 있었단다. 다행히 유배는 오래 있지는 않고 금방 풀려났단다. 하지만 고려 조정은 계속 친원파와 친명파가 대립했단다. 왕은 뭐 하는 것이 있냐? 없었단다. 무능한 왕이었어.

그리고 또 하나의 골칫거리 왜구들이 있었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몽주는 이번에는 일본에 가게 되었단다. 그곳에서 환대를 받으며 1년간 머물러 왜구 문제에 대해서 협의를 하고 돌아왔지만, 그 이후에도 왜구는 끊임없이 조선 백성을 괴롭혔단다. 그런 것을 보면 일본에서 보낸 1년의 성과는 실패라고 할 수 있겠구나.

친원파 이원임이 권력을 잡고 있으면서 친원정책을 계속 펼치고 반대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몽주는 사직하고 벼슬에서 물러났단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어. 민심을 잃은 무능한 왕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 친원정책의 주요 정책은 명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이란다. 그 당시 원나라는 이제 몰락해 가는 나라이고, 명나라는 세력을 키워나가는 신흥국가인데, 원나라에 줄을 선다는 것은 상식적인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지. 그렇다고 명나라도 관대한 나라는 아니었단다. 우리나라한테 무리한 조공을 요청했어. 가뜩이나 명나라와 적대정책을 펴고 있는데, 조공을 요청했으니 점점 사이는 안 좋아졌단다. 정몽주는 고려와 명나라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명나라에 갔지만 명나라 황제는 만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단다.


3.

개경에서 정변이 일어났는데, 그것을 진압하면서 신하들이 싹 물갈이를 하게 되었단다. 수상격인 문하시중에 최영, 부수상격인 수문하시중에 이성계가 앉게 되었어. 명나라와 관계가 좀 좋아지나 했으나, 명나라에서 다시 호랑이의 코털, 아니 고양이의 코털을 건드렸단다. (차마 당시 고려를 호랑이에 비유할 수 없겠더구나.) 명나라에서 원라나가 차지했던 고려의 땅을 차지하겠다고 했어. 우왕과 최영은 안될 말이라고 하면서 명나라와 전쟁을 하겠다고 했단다. 최영이 우수한 장군이지만, 외세 흐름을 읽는 눈은 밝지 못했나 보구나. 정몽주는 이색과 함께 전쟁을 막을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 결국 최영은 이성계와 조민수에게 명령을 내려 명나라를 공격하라고 지시했어.

우군도통사 이성계, 좌군도통사 조민수는 요동정벌이라는 명을 받고 출정했단다. 정몽주만 명과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야. 이성계도 그렇게 생각했어.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이 출정은 했지만, 이성계는 시간을 끌었단다. 출정도 늦게 하고, 평양에서 위화도까지 가는데도 20일이나 걸렸어. 그리고 위화도에서 장마라는 핑계로 한참 머물렀어. 명령이 거둬지길 기다린 걸까? 아니면 또 다른 결정을 위한 숨고르기였을까? 겉으로는 비 때문에 출동을 하지 못한다고 최영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지만, 그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결국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회군을 결정했어. 개성에는 이성계의 군대를 막을 군사가 없었지. 그렇게 개성에 입성한 이성계는 권력을 잡게 되었어. 우왕은 왕이랍시고, 군사들을 데리고 회군 세력을 처단하겠다고 그들 집을 찾았지만 아무도 만나지도 못했어. 우왕은 헛걸음을 하고 이색과 정몽주를 찾아와 하소연을 했어. 정몽주는 그런 우왕을 내치지 못하고 조언을 했단다. 하지만, 우왕이 힘이 있는가. 권력을 잡은 이성계가 왕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면 내려와야지, 우왕은 왕 자리에서 내려왔고, 그의 아들 창왕이 왕위에 올랐단다. 이미 고려는 이성계의 나라가 된 듯 했어.

그 당시 목자득국(木子得國)이라는 말과 함께 역성혁명의 소문이 돌았어. 목자득국(木子得國)에서 목자(木子)라는 말은 이성계의 성씨인 이()를 풀어쓴 말로 이성계가 나라를 얻게 된다는 뜻이란다. 정몽주와 이색은 왕이 무능하지만, 고려라는 나라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이성계의 오른팔인 정도전은 이미 역성혁명을 꿈꾸고 있었고 뜻을 달리하는 정몽주를 탄핵하자고 했지만 이성계가 반대했단다.


4.

당시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닌, 신돈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단다.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면 우왕의 아들 창왕도 신돈의 핏줄이 되는 거야. 정도전의 조언으로 이성계는 이 소문을 진실로 규정하고 창왕을 폐위시키게 된단다. 그리고 왕씨 친척 중에 한 명을 골라 왕위에 세우게 되는데 그가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이란다. 그러니까 공양왕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왕이 된 거야. 우왕과 창왕은 공민왕의 자손이 아니라 신돈의 자손이라고 했으니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어. 결국 우왕과 창왕도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공양왕이 그냥 허수아비 왕은 아니었던 것 같아. 이성계와 뜻이 달랐던 정몽주를 찾아왔단다. 그리고 정몽주도 고려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이성계를 척을 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는 이성계 반대파 세력을 끌어 모아 힘을 키웠단다. 정몽주는 이성계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개각을 주도했는데, 이때 이색을 비롯하여 그의 측근을 조정에 배치하고 정도전 등은 지방으로 발령냈단다. 정몽주의 뜻은 명확했단다. 고려라는 나라 유지하고 왕을 중심으로 한 개혁을 추진하는 것. 정몽주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자 이방원이 정몽주를 술자리에 초대하여 그를 설득하였는데, 이때 지은 시조가 그 유명한 하여가(何如歌)라는 시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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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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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왕조가 무슨 상관 있냐, 우리 같이 새 왕조에서 잘 살아보자고 한 것이야. 하지만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답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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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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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필요 없는 문장이구나. 이로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설듯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설득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한 가지뿐.

….

정몽주도 강하게 나갔어. 이성계가 낙마하여 부상당하고 있는 동안, 이성계파를 탄핵시키려고 했어. 이 소식을 듣던 이성계가 부상한 몸을 이끌고 개경으로 급히 돌아왔고, 정몽주는 이성계를 병문안 겸 협상을 하려고 갔다가 서로의 뜻만 확인하였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사주한 이들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정몽주라는 걸림돌이 사라진 이성계는 3달 뒤 공양왕마저 추방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 새로운 왕이 되었단다.

그렇게 이 소설은 끝이 났단다. 많은 부분을 알고 있던 내용이라서 신선함은 떨어졌지만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고려말 정세를 이해하게 되어 좋았단다. 우리가 이제 보기 시작한 <태종 이방원>에서는 정몽주가 조연이지만 어떻게 그려지는지 유심히 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화려한 등장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런데 이 비광이 춘추를 거듭하는 동안 민족을 광피(光被)하는 영특한 빛으로 되는 것이니 역사의 요묘함이 역연(歷然)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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