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 -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빼앗긴 M1900을 찾아서
이성주 지음, 우라웍스 기획 / 추수밭(청림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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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영화 <영웅>을 보았단다. 개봉하자마자 보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시간이 맞지 않아서, 거의 끝물에 봤지. 너희들은 사정이 있어서 못 봤는데, 나중에 꼭 한번 같이 보자꾸나. 뮤지컬 영화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는데, 재미와 감동을 모두 다 준 영화라 할 수 있었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레 미제라블>에 버금가는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더라. 영화가 나오기 전에 오랫동안 뮤지컬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던 이유를 알겠더구나.

안중근.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위인이고, 짧은 그의 삶이 강렬하고 고귀해서 여러 매체를 통해서 그를 이야기하고 있단다. 작년에는 김훈 님의 <하얼빈>이라는 소설이 출간되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이미 많은 매체에서 그를 다루고 있었어. 그런데 아빠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영화 한 편 없는 것 같았어. 오래 전에 <도마 안중근>이라는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가 있었어. 아빠가 싫어하는 사람이 감독을 맡아서 아빠도 보지 않았단다. 이번에 본 영화 <영웅>이 제대로 된 안중근 영화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영화를 보고 검색을 하다 보니 김훈 님의 소설 <하얼빈>이 영화로 촬영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단다. 안중근 역으로 현빈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영화는 어떨까, 궁금하구나. 엄마의 말대로 현빈의 외모가 가장 큰 장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

아무튼 영화 <영웅> 참 잘 봤단다. 그 영화를 보고 인터넷 서점에서 안중근에 관한 책을 검색해봤어. 아빠는 예전부터 안중근을 존경해서 책들을 여럿 읽었는데, 혹시 그 최근에 출간된 책 중에서 읽을 만한 것이 없나 검색해 보았단다. 그러다가 알게 된 책이 바로 <안중근, 사라진 총의 비밀>이라는 책이란다. 안중근 의거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라서 좋았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용했던 총을 추적하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였지. 실제로 이 다큐멘터리는 KBS에서도 방영했다고 하는구나. 그 다큐멘터리는 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통해 안종근 총에 대한 지식을 쌓아봐야겠다 싶었어. 아빠는 그 동안 안중근이 사용한 총은 어떤 총인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그런 걸 기획하고 추적한 지은이 이성주 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구나. 이 책의 출간일을 보니 2019 10 26. 정확하게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10년째 되는 날에 맞춰 출간해서 그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1.

제국주의를 따라 근대화를 서둘렀던 일본은 서양 제국 열강들이 동아시아에 눈 돌릴 여유가 없는 사이, 동아시아의 강자가 되었단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한 것은 야비한 깡패의 짓과 마찬가지였어. 주변 국가들을 하나 둘 무력 침공을 하였지.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에 한 명이었단다. 이 이야기는 작년에 아빠가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를 읽고 쓴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했었어.

이토 히로부미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에 막내로 심부름이나 하던 이였는데, 스승과 선배들이 일찍 죽고 일인자가 되었단다.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 병합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비스마르크를 모범을 삼았던 그는 천천히 완벽한 병합을 노린 거야. 누군가는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았다면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이토 히로부미의 전략에 완전히 넘어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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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비스마르크는 이 포위된 지정학적 위치를 외교로 극복해낸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비스마르크를 존경했고, 그를 늘 모범으로 삼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교와 협상을 통해서 자국의 이익을 늘려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각 단계별로 형식과 절차를 갖춰서 차근차근 접근해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이토 히로부미가 전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류큐국(지금의 오키나와)을 복속시킨 것도, 대만을 식민지로 만든 것도, 한국을 식민지 직전까지 몰고 간 것도 모두 전쟁을 기반으로 해서 얻은 결과다. 이토 히로부미는 전쟁의 결과 얻어낸 권한을 가지고 큰 잡음 없이 식민지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지 식민지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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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은이 이성주 님은 안중근이 사용한 총에 대한 분석을 위해 인맥을 최대한 동원하였는데 그들 중에는 밀리터리 덕후도 있었더구나. 그들을 통해 권총의 특징도 설명해 주었는데, 아빠도 그런 것은 처음 알게 되었어. 권총에는 리볼버 권총과 자동 권총이 가장 대표적인데, 리볼버 권총은 총을 쏠 때마다 둥그런 탄창이 돌아가는, 예전에 서부 영화를 보면 많이 나오는 그런 총이고, 자동 권총은 길쭉한 탄창을 꽂아서 아래에서 하나씩 올라오는 그런 총을 이야기한단다.

안중근이 사용했던 총은 M1900이라는 모델인데, 이는 자동 권총이라고 하는구나. 당시 이 총은 최신식 자동권총인데, 숫자 1900은 출시한 년도 1900년을 의미한다고 했어. 탄창에는 모두 7개의 총알을 넣을 수 있고, 약실에 한 개를 더 넣을 수 있어서 모두 8개의 총알을 넣을 수 있단다. 이 총의 장점은 리볼버에 비해 빠른 연사가 가능하다고 했어. 단점으로는 먼 거리 사격에는 불리했지만, 안중근의 타겟은 근거리 사격이었기 때문에 자동권총을 선택한 것은 적절했던 것이란다. 그리고 리볼버는 둥근 탄창 때문에 옷 속에 숨겨서 불룩 튀어 나올 텐데, 자동 권총은 둥근 탄창이 없기 때문에 옷 속에 숨기기도 유리했단다. 자동 권총이 리볼버에 성능이 다소 떨어졌는데,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안중근이 사용한 총알의 앞쪽에 +자 홈을 내서 사용했다고 하는구나.

안중근 의거가 일어나고 난 이후 안중근이 사용한 이 총은 어떻게 했을까? 사라진 상태란다. 일본에서는 그 총을 관동대지진 때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분명 지금도 어딘가에 잘 보관하고 있을 거야. 안중근이 죽은 이후 일본은 그의 흔적을 없애려는 노력을 했대. 그런 일환으로 그가 사용했던 총도 없어졌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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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그런 일본이 안중근 장군의 M1900 권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M1900은 증거품으로 분류돼 일본 검찰에 넘어갔다. 재판이 끝난 뒤에는 일본 본토로 옮겨졌다. 이후에도 계속 일본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 총이 사라진다. 일본은 관동 대지진 당시 분실했다고 주장한다. 1923 9 1일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뒤이은 사회적 혼란과 수습의 과정에서 M1900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과연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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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M1900은 누가 개발한 것인가? 그것은 존 브라우닝이라는 총기 전문가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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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2차 세계대전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한국전쟁에도 사용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제식화기로 쓰인 BAR나 현재까지도 쓰이는 MG50 같은 총들은 예비군으로 복무해본 이라면 익숙한 무기일 것이다. 한국은 MG50을 기반으로 하여 K-6 중기관총을 만들었는데, 거의 MG50을 베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총기 회사라 할 수 있는 윈체스터, 레밍턴, 콜트, 그리고 벨기에 FN사와 함께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역작들을 만들어낸 사람이 존 브라우닝이었다. 분명 브라우닝이 없었다면 현대 자동화기의 역사는 다른 식으로 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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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사용한 M1900뿐만 아니라 M1900 모델 자체를 찾기 어렵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지은이는 M1900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단다. 무기 경매 사이트를 뒤지고,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하는 등 오랜 노력 끝에 미국에서 M1900을 구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총의 위력 시험을 위해 실제 사격도 해보려고 했지만, 총기 허가 없는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어. 지은이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이들은 M1900을 국내 반입하여 전쟁기념관에 기증을 하려고 했는데, 무기를 반입하는 것 또한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하는구나.

그들은 맞닥뜨린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이야기해주었어. 우리나라의 총기 사용 제한이 시스템으로 잘 되어있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들이 총기 반입하는데 엄청나게 어려움을 겪었거든. 어차피 전쟁기념관에 기증을 하려고 했다면 정부에 이야기해서 도움을 청하면 그 절차가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아무튼 우여곡절을 넘어 M1900은 국내 반입하게 된단다. 비록 안중근 의사가 직접 사용한 총은 아니지만 말이야. 언젠가는 꼭 안중근이 직접 사용한 총을 찾았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안중근의 권총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찾아야 할 대표적인 무기가 세 개가 있다고 하는구나. 모두 일제시대 때 사라졌다고 하는구나. 일본 어딘가에 누군가 소유하고 있을 텐데, 제발 이제는 돌려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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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

어떤 역사학자가 내게 건넨 말이다.

한국사에서 꼭 찾아야 할 무기가 세 점 있다. 첫째는 신궁이라 평가 받는 태조 이성계의 어궁(御弓)’이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 장수 시절부터 수많은 전투에 사용하던 실전용 활로서 일제시대까지 함흥본궁에 남아 있다가 사라졌다. 둘째는 충무공 이순신의 실전검인 쌍룡검(雙龍劍)’이다. 마찬가지로 일제시대까지 종가에 전해지다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장군의 ‘M1900’이다. 이 세 점의 무기는 한국사에서 꼭 찾아야 할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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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중근 의사가 서거하고 난 이후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안중근 의사 서거 당시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32. 만으로 30. 그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고 유족으로는 아내와 21녀가 있었어. 30살에 돌아가셨으니 아이들도 무척 어렸겠지. 안중근 의거가 있기 전 동료들은 안중근 가족들을 이미 하얼빈으로 피신시켰다고 하는구나. 아무래도 국내에 있으면 어려움을 겪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장남 문생은 7살 때 누군가 건넨 과자를 먹고 죽고 말았단다. 독살 당한 거야.

나머지 살아 있는 가족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의거 이후 안중근의 동생들인 안영근, 안공근 형제들의 도움으로 연해주 등지에서 지내다가 임시정부가 세워진 다음에는 상해에서 지내게 되었대. 하지만, 임시정부 사정이 안 좋아져서 중칭으로 이전할 때 안중근 가족들은 상해에 남겨졌다고 하는구나. 그때 무척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타난 이들이 일본인이었고, 차남이었던 준생을 회유했다고 하는구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형이 안중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독살당했던 상황에서 일본의 회유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안준생이 친일로 돌아서는 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당시 상황을 알고 그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구나. 일본은 안중생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내선일체 정책에 적극 이용했단다. 대대적인 이벤트도 준비했어. 참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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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1939 10 16일 박문사에서 있었던 이 이벤트는 조선총독부의 작품이다. 격화되는 전쟁 앞에서 내선일체를 외치던 일제로서는 안준생과 이토 분기치의 만남과 화해가 더없이 훌륭한 이벤트가 될 수 있었다. “조선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의 아들이 30년이 흘러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는 모습이것은 그 자체로 한일 병합의 정당성과 내선일체의 당위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철저히 기획했던 이벤트다. 안준생과 이토 분기치가 박문사 단상에서 처음 만났을까? 아니었다. 이들은 이미 조선호텔에서 만나 박문사에서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지 이미 을 맞춰 놓고 박문사로 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이벤트는 기대했던 효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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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망 후 친일을 했던 안중생을 돌볼 이는 아무도 없었어. 중국에서 힘들게 지내다가 부인과 자식들은 미국으로 보내고, 자신은 국내로 들어온 후 조용히 지내다가 1952년 폐결핵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1907년생이니까 46살이었어. 그를 탓하기에 앞서 그의 힘들었던 처지도 한번 생각해 주었음 한다.


PS:

책의 첫 문장: <잃어버린 총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의 발상은 단순했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영웅 안중근을 넘어 인간 안중근이 걸어간 길이었으며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했다.


물론 일본이 가진 내부적 역량이 근대화를 성공시키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요인을 찾자면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를 시도한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일본이 유일하게 성공한 까닭은 결국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 P22

또한 이순신 장군이 입고 있는 갑옷은 조선식 갑옷이 아니라 중국식 갑옷이다. 그리고 제작자 측에서는 현충사에 있는 칼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순신 장국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은 실제 이순신이 사용한 조선식 ‘쌍룡검’이 아니라 일본도다. 그런데 이 칼이 일본도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칼을 쥐고 있는 손이 오른손이라는 사실이다. 오른손에 칼을 든 것은 명백한 패장(敗將)의 항복을 의미한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우리 민족의 기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패배의 역사를 보여주는 절망적인 조형물일 수도 있다. - P51

우리는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의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당시 조건들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표적의 노출 면적은 상당히 적었고, 러시아군 덕분에 시야도 제한됐다. 결정적으로 표적이 이동했다. 이동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측면(오른쪽 상박)을 노리는 것, 그것도 시야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일곱발을 발사해 표적 넷에 여섯 발을 맞혔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지금으로서도 신기(神技)에 가까운 능력이다. - P188

인생은 어쩌면 간단한 것이다. 인생을 걸어볼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 그 ‘무엇인가’가 가리키는 대로 나아갈지, 아니면 저어할지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안중근 장군은 온전히 자신의 인생을 살았다. 그의 짧은 인생을 안타까워하지만, 어쩌면 그는 여든, 아흔을 사는 현대의 우리보다 훨씬 더 깊고 진한 인생을 산 것인지도 모른다.
- P219

포기했을 때 패배가 시작된다. 독립에 대한 갈망이 있을 때는 아무리 희망이 없더라도 싸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둘 무너지며 희망이 체념으로 변하면, 달아올랐던 독립에 대한 열망도 사라질 것이다. 내선일체의 진정한 목표는 우리 민족의 ‘체념’이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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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중국인들은 낮의 하늘이 밤의 하늘이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낮의 하늘은 자꾸만 변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던 거야. 아침엔 붉었다가 낮에는 파랬다가 저녁엔 다시 붉어지잖아? 흐린 날에는 회색이고. 하지만 밤은 늘 검지. 그리고 중국인들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점을 쳤기 때문에 밤하늘이 더 의미가 있었을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인들이 옳았어. 검고 어두운 하늘이 진실에 가깝지. 낮에는 태양의 강렬한 빛 때문에 오히려 우주의 본모습이 가려진 거고. 지금도 우주 관측은 깊은 산속의 천문대에서 밤에 하잖니.”


(19-20)

중국인들이 이 세계를 커다란 집이라고 이해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집에 너무 거대하고 휑하다는 걸 깨달은 거야. 나는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20세기 후반부터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곧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 두려움이나 기쁨 같은 특정한 감정을 관장하는 어떤 부위가 있을 거고. 그런 것을 찾아내면 감정의 비밀도 쉽게 밝혀질 거라고 믿었던 거야.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게 간단치 않다는 게 밝혀졌을 뿐이야. 유전자 지도만 파악하면 인간을 알 수 있다고 믿었던 만용과도 일맥상통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 아무리 간단한 감정이라도 그걸 느낄 때는 뇌와 몸의 모든 부분이 함께 작용해야 돼. 예를 들어 배가 고프면 초조해지고 화가 나지? 소화기관들이 뇌와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거든. 인간의 뇌는 마치 우주와 같아서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고 있어. 철이 네 뇌는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우주라고 보면 될 거야.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해. 너는 네 마음과 감정을 이제 막 알아가기 시작했어. 잘 모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앞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다보면 더 진실하고 깊어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135)

그냥 얼음과 물일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151)

제 생각은 달라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정말 정말 드물어요. 비록 기계지만 민이는 의식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감각과 지각을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어요. 고통도 느꼈지만 희망도 품었죠.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152)

의식이 있는 존재는 돌멩이나 버섯과 달리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우주의 역사나 기원에 대해 알아갈 수도 있어요.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이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신에게든,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요.”


(160)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203)

인간은 지독한 종이야.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동원해 닥쳐온 시련과 맞서 싸웠을 때만, 그렇게 했는데도 끝내 실패했을 때만 비로소 끝이라는 걸 받아들여.


(268)

어쨌든 달마의 예언대로 오래지 않아 인간의 세상이 완전히 끝나고, 그들이 저지르던 온갖 악행도 사라지자 지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대기의 기온이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고 이산화탄소 발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른바 인간세계가 끝나게 된 것은 SF 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외계 생명체가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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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봉건(封建)이라 할 때 봉()토지를 하사하다란 뜻이랍니다. 그리고 ()’나라를 세우다란 뜻인데 즉, (또는 황제)이 일가친척에게 지방의 땅을 나눠주고 그 친인척들이 그곳에서 자기들의 나라를 만들어 살라는 뜻이랍니다. ? 이미 나라가 있는데 나라를 또 만들라고요? 독립하란 말인가요? 아닙니다. ‘큰 나라가 있고 그 안에 조그만 나라를 만들어 살라는 뜻이랍니다. 실제 이렇게 왕에게 지방 부동산을 받고 나간 친인척들을 제후(諸侯)라고 불렀고 그 꼬마 나라를 제후국(諸侯國)이라고 불렀는데 꼬박꼬박 수도의 왕에게 세금을 바치고 왕이 위험에 처했을 때 지원군만 보내준다면 사실상 내정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독립국 행세를 할 수 있었답니다. 당시 교통도 발달 안 된 데다 왕권도 강력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그 넓은 땅의 왕국을 유지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 봉건제도였어요. ‘믿을 건 친척밖에 없다란 생각에서 시작된 이 봉건제도 덕분에 주나라는 무려 790년 동안 유지가 됩니다.


(62-63)

당시 중국도 마찬가지였어요. 춘추전축시대란 헬게이트가 열리자 이 혼란을 해결할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상과 사상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죠. 그중 원톱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공자(孔子)였어요. 공자는 인()과 예(), 어짐과 예절을 강조했고 묵자(墨子, 밥 묵자, 아닙니다.)란 어르신은 평화를 강조헸어요. 그리고 노자(老子)란 양반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를 외쳤답니다. 하여간 춘추전국시대의 각 나라들은 이런 사상 중 하나를 자기 나라 통치 이념으로  택해서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지금 중국의 변두리인 산시성에 위치했던 진()나라는 우리는 , , 자연, 평화따위는 필요 없다! 우리는 법()이 최고다!”라면서 법으로 강력하게 나나를 다스렸어요. 결과적으로 그것이 중국을 통일시킨 원동력이 되었고요.


(140)

아시다시피 인도에는 카스트라고 4개의 신분 제도가 있지요? 수천 년 동안 뿌리를 내려 오늘날까지도 카스트 제도 때문에 벌어지는 신분 제도를 철저히 거부했어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란 철칙이 있었지요. 그 말은? 맞습이다. 불교틑 카스트의 나라인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또 다른 정착지를 찾아 나섰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이었어요.


(144)

북조 역사에선 딱 한 인물만 기억하면 돼요. 바로 북쪽을 통일한 선비족의 나라 북위 효문제(孝文帝)’란 황제랍니다. 471년에 북경에 북위의 황제가 되는데요. 오랑캐 유목 민족 황제였지만 한족의 오리지널 중국 문화를 너무나 사랑했던 황제였답니다. 그래서 선비족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한족의 중국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북위의 수도도 북쪽 선비족의 근거지에서 지금까지 중국 역사의 중심지인 낙양으로 옮겨버려요. 부산 사람이 서울을 너무 좋아해서 부산 사투리도 못 쓰게 하고 동네 이름도 광안리에서 압구정으로 바꿔버리고 아예 부산을 버리고 서울로 이사를 온 격이조.


(162-163)

그때 아버지 이연은? 한가로이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답니다. 이세민은 측근 부하를 이연에게 보내서 이 사실을 알랍니다. 아버지 이연은 깜짝 놀랐지만 할 수 있는 하나도 없었어요. 한순간에 당나라 권력이 이연에서 이세민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태자까지 궁 안에서 화살로 죽여버리는 인간이니 아버지라고 봐줄까요? 겁에 질린 이연은 이세민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자기는 스스로 쫓겨납니다.” 사실상 당나라는 애초부터 이연이 세운 나라라기보다 이세민이 세운 나라라고 해야 해요. 형제를 죽이고 또 아버지 이성계를 몰아내고 왕이 된 조선 태종 이방원과 거의 싱크로율 100%랍니다. 이세민은 당나라 태종, 즉 당태종이 됩니다. , 그러고 보니 이방원도 태종이고, 이세민도 태종이네요! 하여간 서기 626년의 일이었습니다.


(206)

금나라가 열심히 남송을 괴롭히고 있을 때 금나라 북쪽 초원 지대에 또 다른 유목 민족이 힘을 키우고 있었어요. 바로 몽골족이었답니다. ‘몽고(蒙古)’란 한자 표기는 중국 한족이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랍니다. ‘()’어리석다란 뜻이고 ()’오래되다란 뜻이에요. , ‘어리석고 구닥다리 민족이란 뜻으로 중국 한족이 의도적으로 만든 표현입니다. 몽골족은 이 중국식 한자 표현 몽고를 굉장히 싫어해요. 이제부터라도 몽골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요?


(224)

그러나 이렇게 굶어 죽는 건 다 몽골족 때문이다란 생각에 당시 한창 송나라 부활 운동을 벌이던 홍건적에 합류를 해요. 그의 나이 25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바꿔요. ‘주원장(朱元璋)’으로요. ()는 주살(誅殺)하다, 죽여 없애다()’와 발음이 같죠. 그리고 원()은 당연히 원나라를 뜻했어요. 마지막으로 장()인재라는 뜻이거든요. , ‘원나라를 죽여 없애는 인재란 뜻입니다. 얼마나 원나라에 대한 증오가 끓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233-234)

유럽이 대항해의 시대를 시작해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1492년이니까 거의 100년 전에 중국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는 건데 왜 중국은 유럽과 달리 세계 제패를 못했을까요? 항해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스페인과 같은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 건설 또는 무역이 항해의 목적이었던 반면에 명나라의 항해는 우리 중국 짱이지! 무릎 꿇어!”라는 힘의 과시가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힘이 이 정도야!”란 것을 보여준 후 더 이상 항해를 하지 않았어요. 전 세계에 그냥 힘 과시용 순회공연한 번 한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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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지음, 이영란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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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과 명절이나 생일에 문자로 안부를 주고 받곤 한단다. 그러다가 최근 읽은 책 중에 괜찮은 책들을 주로 추천해주기도 하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그렇게 추천 받아 읽은 책이란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책 제목만 봐도 어떤 종류에 관한 책인지는 알겠더구나. 아빠가 실천을 잘 못하지만 관심을 갖고 있는 지구 환경, 날씨 위기, 지구의 미래 등에 관한 책이란다. 지은이는 이름만 봤을 때는 모르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사진을 보니 유튜브나 방송에서 많이 본 사람이더구나.

타일러 라쉬. 이 분이 나온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어. 지구 환경 문제에 이렇게 관심이 많고, 그것에 관련하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줄은 더더욱 몰랐단다. 지은이 소개를 보니 타일러 님은 8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언어 천재라는 별명도 있고, 시카고 대학교에서 국제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외교학을 전공하는 등 상당한 수재구나. 어렸을 때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은 세계자연기금이라는 단체의 홍보대사로도 활동을 하고 있대.

그런 타일러 님이 사람들에게 지구 환경에 대해 소개해 준 책이 바로 <두 번째 지구는 없다>란 책이란다. 최근 이상 기후 현상은 너무 자주 발생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나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을 텐데, 그것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아직 지지부진인 것 같구나.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작은 불편함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이 있는 것 같구나. 지은이 타일러 라쉬는 이 책을 만들 때는 친환경을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친환경 종이를 인증하는 FSC© 라는 것이 있는데 그 종이로 출간해주겠다고 하는 출판사를 찾아서 책을 출판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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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 책은 친환경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 인쇄하였습니다. 표지와 본문에 FSC© 인증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FSC 인증은 산림자원 보존과 환경 보호를 위해 국제산림관리협의회(Forest Stewardship Council)에서 만든 산림 관련 친환경 국제 인증입니다. 환경, 사회,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보증하여 책임 있는 관리를 촉구하고 난개발을 방지합니다. FSC 인증 라벨 제품을 사용하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된 나무를 선택해 숲과 야생 동물을 모두 보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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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일러 님은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대.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는 급격히 오르고 있고, 마지노선인 1.5도 상승은 이미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구나.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들이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 속에 있고, 환경 위기보다는 금융 위기가 더 중요한 뉴스로 다루어지고 있어. 이 책에서 소개한 책 중에 <6도의 멸종>이라는 책이 있는데, 지구의 온도가 1도씩 상승할 때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정리한 책이란다. 이 책을 읽어보면 무척 무서울 것 같지만, 읽어보려고 주문을 해 두었단다.

지구 환경에 관한 건 알면 알수록 마음이 아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고 말이야. 타일러 님은 그래도 지구를 위해 행동하자고 하면서 10가지를 제안했단다. 아빠도 이 10가리도 조금씩 실천해 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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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지구를 위해 실천해야 할 10가지

1.여름 냉방은 1도 높게, 겨울 난방은 1도 낮게 설정하기

2. 과대포장한 제품, 선물세트 등 피하기

3. 재활용이 어려운 유색페트병 대신 투명페트병을 사용하고 분리배출하기

4. 플라스틱 통은 여러 번 재사용하기

5. 음료 마실 때 빨대나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하지 않기

6. 수도꼭지를 잘 잠그고 샤워 시간 줄이기

7. 화장지, 종이, 가구 등 모든 목재 및 임산물에 FSC(국제산림관리협의회) 인증 라벨 확인하기(FSC 인증 라벨 제품을 사용하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된 나무를 선택함으로써 숲과 야생동물을 모두 보전할 수 있다)

8. 종이를 절약하여 사용하고 재활용하기

9. 가능한 걷거나 자전거 및 대중교통 이용하기

10. 어린 생선(풀치, 노가리, 총알오징어 등) 구매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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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은 플라스틱 남용에 관한 이야기, 미세먼지로 언어 순화가 된 대기오염 이야기, 미래에 폐기하는데 엄청난 비용과 환경 파괴를 할 것이 자명한 핵발전소 이야기, 기후 위기에 직접 영향을 주는 탄소 배출 이야기,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동물 이야기 등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구 환경 파괴의 현실을 이야기해주었단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빠가 예전에 꾸준히 읽던 <녹색평론> 잡지가 생각이 났단다. 2021 11월에 1년간 쉬겠다고 하면서 휴간을 했는데,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쉬고 있는 <녹색평론> 아직도 회사 사정이 많이 안 좋은가 보구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라는 책은 <녹색평론>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을 읽기 편하고 간략히 정리해주는 것 같았단다.

지구 환경 문제는 일부 환경운동가들만 나서서 행동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란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동참해서 행동해야 한단다. 그 길이 불편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그것을 감수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나의 미래에, 또는 너희들의 미래에 더 큰 불편함 또는 고통 또는 위험함에 닥치게 될 거란다. SF 소설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될 수 있어. 함께 노력하자꾸나. 아빠도 더 이상 전기 낭비하지 말고 독서 편지를 짧게 마무리하고 잠을 청해야겠구나. 안녕.


PS:

책의 첫 문장: 나는 버몬트의 숲, 자연 속에서 자랐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이제 내가 갇혀있던 작은 상자의 밖으로, 한 걸음 걸어 나가고자 한다.


가장 큰 탄소흡수원(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저장하는 곳. 산림과 해양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생태계적 장치는 물, 바다이다. 수면이 넓으면 넓을수록 이산화탄소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데, 바다는 지구 수면의 75%가량 차지하고 있어 가장 규모가 크고 흡수력이 대단하다. 그러니 기후변화가 속도를 더할수록 바다는 빠르게 산성화되는 것이다. - P35

이것이 환경 문제의 핵심이다. 경제 활동의 외부 효과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어떤 일이 유발하는 환경오염과 그것을 회복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화석 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음에도 원자력 에너지가 값싸다는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것을 들 수 있다. 훗날 원자력 발전소를 닫는 데 들어가는 최소 수십 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 방사능 유출과 그로 인한 땅과 바다의 오면, 오염 때문에 발생하는 치명적인 질병과 막대한 치료비는 우리가 말하는 ‘경제’안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 P42

해결책은 분노에 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이미 1950년대부터 알고 있었다. 또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 그것도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1970년대에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일을 했을까? 석유 기업과 석유를 이용한 다른 대기업들은 로비를 통해 업체를 띄우고 환경 이슈를 파묻는 일을 계속해나갔다. 기후위기가 거짓이라는 식의 날조된 연구를 발표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심각한 환경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 P106

월마트, 케이마트, 시어즈 등 대형마트를 보통 빅박스스토어(big box store)라고 한다. 어디서든 똑같은 사업 모델을 적용하고, 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건물을 네모난 모양으로 지어 꼭 커다란 박스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맘앤팝스토어(mom-and-pop store)라고 하는데 ‘엄마, 아빠가 운영하는 가게’라는 의미이다. 대기업의 빅박스스토어가 들어오면 소규모 가게들이 타격을 받기 때문에, 버몬트의 많은 지역의 형태와 면적, 시스템을 규제해 대형마트의 진출을 통제한다. - P170

겨울이나, 밤, 우유를 짜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밖에서 생활하는데도 아침이면 밖에 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축사에서만 길러지는 소들이 얼마나 괴로울까 싶다. 고등학교 때 경험한 농장은 소를 자유 방목하는 방식이었지만, 실제 축산업의 상당수는 대규모 공장식으로 운영된다. 동물들은 분뇨로 범벅이 된 비좁은 공간에서 사육된다. 자연히 면역력이 떨어지고, 질병에 취약해져 많은 항생제를 먹고 마시고 맞아야 한다. 우리가 먹는 많은 고기는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른다. 과연 인간이 다른 종에게 이런 병적인 삶을 강요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 참담하고 슬프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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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김한은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을 언급했다. 그는 헤겔과 다윈을 인용하면서 혁명을 위험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만물이 살아가는 자연법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119)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홍범도는 참았다. 지도자 간의 분쟁은 민족해방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추 주민들의 여론이 그에게 위안을 줬다. ‘이범윤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160)

<독일 스파이> 혐의란 무엇인가? 이동휘가 그 혐의를 받아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관헌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1917 5~6월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서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시체제였다. <독일 스파이> 혐의는 교전 중이던 적대국가 독일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그해 4월의 레닌을 연상하게 한다. 2월혁명이 발발하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지원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페프트로그라드에 귀환한 레닌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하여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또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노선을 천명했다. 그렇게 급진적인 반정부 운동을 지휘하던 레닌은 반대파에 의해 독일 스파이로 공격받았다.


(245)

2017년 들어 더욱 이채로운 일이 일어났다. 주세죽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 연이어 출간되더니 나란히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봄에 <코레예바의 눈물>을 쓴 손석춘 작가가 제2회 이태준문학상을 수상했다. 코레예바는 주세죽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썼던 이름이다. 가을에도 수상작이 나왔다. 주세죽과 그녀의 두 벗의 삶을 문학적 상상력에 의거하여 형상화한 <세 여자>가 출간됐다. 이 책을 지은 조선희 작가는 요산김정한문학상 제34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놀랍다. 오랫동안 망각 속에 잠겨 있던 인물이 이처럼 급격히 부상하다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이미 문학작품의 소재가 된 바 있다. 1930년에 신문에 연재 소설 형식으로 발표된 심훈의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이 바로 그것이다. 주세죽을 모델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아마 첫 자리를 점할 것이다.


(314)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역사적 진실에 배치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 8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가 애국지사다. 일제로 인해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이다.


(390-391)

옥중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이 질문에 그(김중한)는 자신의 독서와 사유 체험에 관해 얘기했다. 심리, 윤리, 문학, 생물학 등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었는데, 특히 원시 인류의 생활 상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가 한다. 그때를 억압과 차별, 계급, 착취가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의 시기로 상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에도 주목할 만한다. 인생의 본질, 해방, 삶의 가치, 자기 파멸, 비애, 전투 등의 어휘가 그의 내면의식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인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되 승리를 기약할 없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비애감에 굴복되지 않고 계속 전투를 해나가겠다고. 이어서 좀 더 사색을 하고 좀 더 연구를 하여, 이제부터는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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