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김한은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을 언급했다. 그는 헤겔과 다윈을 인용하면서 혁명을 위험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만물이 살아가는 자연법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119)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홍범도는 참았다. 지도자 간의 분쟁은 민족해방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추 주민들의 여론이 그에게 위안을 줬다. ‘이범윤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160)

<독일 스파이> 혐의란 무엇인가? 이동휘가 그 혐의를 받아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관헌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1917 5~6월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서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시체제였다. <독일 스파이> 혐의는 교전 중이던 적대국가 독일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그해 4월의 레닌을 연상하게 한다. 2월혁명이 발발하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지원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페프트로그라드에 귀환한 레닌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하여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또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노선을 천명했다. 그렇게 급진적인 반정부 운동을 지휘하던 레닌은 반대파에 의해 독일 스파이로 공격받았다.


(245)

2017년 들어 더욱 이채로운 일이 일어났다. 주세죽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 연이어 출간되더니 나란히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봄에 <코레예바의 눈물>을 쓴 손석춘 작가가 제2회 이태준문학상을 수상했다. 코레예바는 주세죽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썼던 이름이다. 가을에도 수상작이 나왔다. 주세죽과 그녀의 두 벗의 삶을 문학적 상상력에 의거하여 형상화한 <세 여자>가 출간됐다. 이 책을 지은 조선희 작가는 요산김정한문학상 제34회 수상자로 선정됐다.

놀랍다. 오랫동안 망각 속에 잠겨 있던 인물이 이처럼 급격히 부상하다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이미 문학작품의 소재가 된 바 있다. 1930년에 신문에 연재 소설 형식으로 발표된 심훈의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이 바로 그것이다. 주세죽을 모델로 한 문학작품으로는 아마 첫 자리를 점할 것이다.


(314)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역사적 진실에 배치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 8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가 애국지사다. 일제로 인해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이다.


(390-391)

옥중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이 질문에 그(김중한)는 자신의 독서와 사유 체험에 관해 얘기했다. 심리, 윤리, 문학, 생물학 등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었는데, 특히 원시 인류의 생활 상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가 한다. 그때를 억압과 차별, 계급, 착취가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의 시기로 상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에도 주목할 만한다. 인생의 본질, 해방, 삶의 가치, 자기 파멸, 비애, 전투 등의 어휘가 그의 내면의식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인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되 승리를 기약할 없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비애감에 굴복되지 않고 계속 전투를 해나가겠다고. 이어서 좀 더 사색을 하고 좀 더 연구를 하여, 이제부터는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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