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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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피에르 르메르트의 <화재의 색>이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피에르 르메르트는 콩쿠르 상을 받은 <오르부아르>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어. 아빠도 그 소설을 읽기는 했지만, 피에르 르메르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알렉스>라는 추리 소설이었어. 정통 스릴러 추리 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었지. 보통 어떤 소설가의 소설을 읽을 때 보통 대표작을 가장 먼저 읽고, 그 다음 그 소설가의 다른 소설들을 찾아 읽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 보니, 맨 처음 읽은 소설보다 두 번째 세 번째 읽은 소설들이 별로인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피에르 르메르트의 소설들은 읽을수록 더 좋아지더구나.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빠한테는 그랬어. 마치 대표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 더 괜찮은 작품들을 써내는구나. 이번에 읽은 <화재의 색>은 통쾌한 복수극에 관한 이야기란다. 시대적 배경은 1920~30년대 이야기야..


1.

지금부터 줄거리를 이야기해 줄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책을 읽고 싶다면 편지를 읽기를 중단하려구마.

1927년 프랑스 경제계 거물 마르셀 페리쿠르의 장례식으로 소설은 시작된단다. 얼마나 거물이냐면 프랑스 대통령이 장례식이 참석할 정도였어. 돈도 엄청 많았어. 그런 엄청난 부자가 죽고 나면 상속 문제로 시끄럽게 된단다.

그의 가족들을 한번 보자꾸나. 먼저 마르셀의 동생 샤를. 현재 국회의원인데, 그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형 마르셀이 돈으로 막강하게 지원해 주었기 때문이야. 샤를은 그리 착하거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야, 문제도 많이 일으키고 성격도 별로인 그런 사람인데 형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거지. 마르셀에게는 아들 에두아르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7년전 자살을 했단다. 그에게는 딸만 남았어. 마들렌이라고 하는 36살의 이혼녀인데 일곱 살짜리 아들 폴이 함께 마르셀이 죽기 전까지 함께 살고 있었어. 엄청난 부자의 외동딸, 아무래도 노리는 이들이 많겠지.

마르셀이 죽기 전에 마르셀은 자신의 오른팔인 귀스타브 주베르를 자신의 딸과 맺어주려고 했어. 귀스타브 주베르는 마르셀의 기업을 도맡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르셀이 마들렌과 연을 맺게 해주려는 것에 내심 좋아했어. 하지만, 마들렌이 거절했어.. 귀스타브는 마들렌에게 심한 배신감을 가졌지. 마들렌은 사실, 폴의 가정교사인 앙드레와 썸씽이 있었거든. 앙드레는 기자 지망생의 스물여섯 살 젊은이였는데, 폴의 가정교사로 있었어. 나중에 마들렌의 도움으로 신문사에 취직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또 중요 인물로는 하녀로 일하고 있는 레옹스가 있었어. 레옹스는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며, 마들렌이 가장 신뢰하는 하녀였으며, 때론 친구이기도 했어. 레옹스가 돈을 몰래 빼돌린 것이 발각된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레옹스를 용서해주고, 오히려 월급을 올려주었어. ,, 이 정도면 마르셀 주변 인물에 다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마르셀의 장례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엄숙하게 진행되던 마르셀의 장례식에서 충격적인 사고가 일어났단다. 마들렌의 아들 폴이 3층에서 뛰어내려 마르셀 관으로 떨어진 것이야. 바로 응급실로 갔어.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척추를 크게 다쳐서 평생 휠체어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했어.

….


2.

마르셀의 유언장. 대부분의 돈은 딸 마들렌과 손자 폴에게 가게 되었단다. 이에 마르셀의 동생 샤를과 마르셀의 오른팔 주베르는 분노를 했단다. 돈이 많으면 뭐하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불구가 되었는데마르셀은 절망 속에 폴만 간호했어. 회사 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 주베르에 맡겼어. 마르셀은 레옹스의 조언으로 폴의 간호사를 고용하기로 했는데, 계속 마음 들지 않다가 폴란드 출신 블라디라는 간호사를 고용했어. 블라디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성격이 강하지만 착했어. 블라디가 폴을 보살펴주기 시작하면서, 폴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휠체어에 아무 것도 하지 않던 폴이 오페라와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특히 솔랑주라는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의 광팬이 되어, 팬레터도 꾸준히 보내곤 했어. 그리고 답장을 받기도 하고, 공연장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단다. 그의 초대로 밀라노에 초대되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 비록 몸은 회복할 수 없지만, 정신은 점차 회복해가고 있었어.

마들렌이 이렇게 폴에게 올인하고 있는 동안에, 샤를과 주베르는 못된 계략을 꾸미고 있었단다. 교묘하게 마들렌을 속여서, 가능성 없는 루마니아 석유에 투자를 하게 했어. 마들렌은 거의 모든 재산을 거기에 투자를 했어. 결과는 어떻겠니. 얼마 못 가 루마니아 석유는 파산을 하고 마들렌은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어. 마들렌은 하루아침에 파산하고 말았단다. 샤를과 주베르에 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 집도 팔고 블라디만 남겨 두고 하녀들도 모두 내보내고, 남은 돈으로 아파트 두 채를 겨우 사서 하나는 그들이 살고 하나는 임대를 해서, 그 돈으로 겨우 살아가야 했어. 그에 반해 주베르는 큰 돈을 벌게 되었고, 마들렌이 내놓은 마르셀의 저택을 사서 그 집의 주인이 되었단다. 그리고, 또 한 명. 친구라고 생각했던 하녀 레옹스도 그녀를 배신하고, 주베르와 결혼하였단다.

….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마들렌결정타가 기다리고 있었어. 활기를 되찾은 아들 폴의 고백. 자신이 할아버지 때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이유를 이야기했어. 그의 가정교사였던 앙드레의 가혹행위와 성폭행에 괴로워했었대. 당시 폴의 유일한 위안처는 할아버지였다는구나.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자신을 보살펴 줄이 이가 없다는 생각에 죽으려고 했다는 거야. 앙드레의 괴롭힘을 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 이 이야기를 들은 마들렌의 분노 레벨은 극에 달했어. 도대체 몇 명이나 복수를 해야 하는 거야.


3.

시간이 흐르고 1933. 비록 돈은 별로 없지만 마들렌은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어. 아들 폴도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하지만 잘 지내고 있고, 블라디 역시 폴을 꾸준히 잘 보살펴 주고 있었어. 이제 시간이 된 거야. 복수의 시간. 소설이니…. 마들렌의 복수가 성공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리고 마들렌의 복수를 읽으면서, 같이 기뻐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책을 읽어나갔지.

그녀가 복수한 방법은 짧게 이야기할게. 먼저 주베르 귀스타브. 제트기 사업을 하다가 안전 사고를 일어나게 했어. 아주 은밀하게그래서 쫄딱 망했지. 그것뿐만 아니라, 그 제트기 기술을 적국인 독일에 파는 것처럼 꾸며서, 국가반역죄로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단다. 어떻게 주베르를 이렇게 쉽게 망하게 할 수 있었냐면, 레옹스의 약점을 쥐고 레옹스를 협박했거든. 주베르와 결혼했던 레옹스. 마들렌은 레옹스가 중혼, 그러니까 주베르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결혼한 몸이라는 것으로 알아냈어. 그 약점을 잡고 레옹스로부터 주베르의 정보를 캤고, 레옹스의 첫 번째 남편 로베르(이 사람은 좀 덜 떨어진 사람으로 나옴)를 행동대장으로 이용했어.

그리고 샤를. 삼촌이 어떻게 조카를 그렇게 망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국회의원을 망하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 법을 어긴 것을 찾거나 법을 어긴 것처럼 꾸미거나샤를이 탈세를 한 것처럼 위조를 해서 그 또한 가옥으로 보내드렸어. 앙드레…. 이 나쁜 놈은…. 마들렌이 취직시켜준 이후 기자로 아주 잘 나가고 있었지. 마들렌은 앙드레를 살인죄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드렸지. 나중에 진짜 살인범이 나타나서, 풀려났지만 오래 못 가 의문사로 세상을 떴단다.

이렇듯, 이어지는 마들렌의 통쾌한 복수. 칼에는 칼로 맞대응하는 것이 맞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빠도 그렇게 큰 배신을 당했으면, 저렇게 복수를 하지 못하면, 제 명에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충분히 마들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아빠가 간단히 이야기해서 복수를 아주 쉽게 한 것 같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어. 그 이야기들이 이 두꺼운 소설에 자세히 그려지고 있어. 책이 두꺼운 만큼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마들렌의 복수 위주로 짧게 이야기하고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마르셀 페리쿠르의 장례식은 어수선하게 진행되다가 완전히 혼란스럽게 끝났지만, 적어도 시작만큼은 정시에 이루어졌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준 파스칼린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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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겐테 박사는 서울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서울의 로케이션은 아주 독특하다. 사방에 뾰족하고 높고 힘찬 산들이 민가가 들어선 곳까지 뻗어 내려오면서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 서울의 모습이다. 이런 전망(view)을 가진 서울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도 꼽는 군주국 도시 명단에 들어가야 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을 페르시아 수도 테헤란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서울에는 (…) 잘츠부르크처럼 웅장하고 엄숙한 기사의 성채가 없고, 테헤란의 (…) 위엄 넘치는 다만반드(Damavand) 산처럼 거대한 산도 없다. 그러나 서울보다 고도가 약 300미터 높을 뿐인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44-45)

성종 19(1488)에 명나라에서 온 동월이라는 사신은 <조선부>에서 서북쪽에서 들어오며 한양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찬미했다.

임진강 나루를 건너 파주에 이르러 한성을 바라보니 저 높이 서기(瑞氣)가 어리었다. 벽제관을 지나 홍제원에 당도하니 여기가 조선의 서울인데 동편으로 우뚝하다. 높은 삼각산에 받쳐 있고 울창한 푸른 소나무 그늘에 덮여 있다. 북쪽은 천 길로 이어져 내려서 그 기세는 진정 천군(千軍)을 누를 만하고 서쪽을 바라보니 한 관문(關門)이 있는데 오직 말 한 필 드나들 만하다. 산은 성 밖을 둘렀는데 날쌘 봉황이 날아가며 번뜩이는 것 같고 소나무 아래에 흰모래는 마치 쌓인 눈에 햇볕이 내리쬐는 듯하다.”


(48)

단적으로 말해 한양도성은 전란을 대비해 쌓은 성곽이 아니라 수도 한양의 권위와 품위를 위해 두른 울타리다. 집에 담장이 있고, 읍에 읍성이 있듯이 수도 서울에 두른 도성이다. 영어로 말해서 포트리스(fortress)가 아니라 시티 월(city wall)이다. 만약에 전쟁을 대비해 성곽을 축조했다면 석벽을 사다리꼴로 높이 쌓고 성곽 둘레에 해자를 깊게 파서 두르는 등 겹겹의 방어시설을 구축했어야 했다. 도성이 울타리이기 때문에 숭례문을 비롯한 관문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행문 이상의 기능을 하지 않았다. 동대문을 옹성처럼 두른 것은 전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풍수상 허하다는 서울의 동쪽 지세를 보완한다는 의미였을 뿐이다.


(64)

풍경 뻬레스트로이까 북악산 개방에 부쳐(황지우)


뉴욕에도 도쿄에도 베이징에도 베를린,

모스끄바에도 없는 산()

단 하루도 산을 못 보면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산이 목숨이고 산이 종교인 나라에

오늘

싱싱한 산 한 채가

방금 채색한 각황전(覺皇殿)처럼

사월 초순 첫 초록 재치고

솟아올랐네.


저 권부의 푸른 기와집 그늘에 가려

지난 반세기 마음의 위도에서 사라졌던 자리에서

오늘 이제는 육성으로 이름 불러도 될

그대 백악이여,

금지된 빗금을 넘어 그대가

사람 만나러 내려올 때

솟아난 것은 한낱 돌덩어리가 아닌

우리네 마음의 넉넉한 포물선이었구나.


이렇게 풀어버리니 별것도 아니었던 두려움이,

홍련사에서 숙정문 지나

창의문에 이른 길 따라,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아름다움이 되었으니

아무나 그 문들 활짝 열어

그대 슬하에 감추인 말바위며 촛대바위를

순우리말로 되찾아오네.

하여 차출된 팔도 머슴애들의 사투리를

잘 짜 맞춘 성곽이

산허리를 재봉틀질한 것 같은

역사의 긴 문장이 되고

그 쉼표마다 돌아서 내쉰 한숨이

이렇듯 위업이 되었음에랴, 하지만.

이렇듯 풀과 꽃과 나미가 되돌아온 자리에

제 빛깔과 향기가 이름을 되물려 주는 것만으로도

이보다 더 한 위업이 있을까!


, 이제 가물면 북문(北門)을 열어주고

물 넘치면 그 문 닫아둘 수 있는 산,

동네 처자들 숙정문 세 번 가면

안 되는 사랑도 이루어진다는 그 소문난 산,

파리에도 런던에도 하노이, 시드니에도 없는 산,

봄비 그치고 송진처럼 물방울 맺힌 나뭇가지 사이로

마침내 사람 눈을 만난 북악산

그 언저리 허공 어디쯤

붉은 낙관(落款) 한 점 꾸욱 눌러두고 싶네.


(125)

인조반정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연산군 때 탕춘대 절벽 밑 좌우로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돌기둥을 세워 옆으로 긴 누각을 지었다.”고 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성종 때 문신인 성현(成俔) <용재총화>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도성 밖에 놀 만한 곳으로는 장의사 앞 시내가 가장 아름답다. 시냇물이 삼각산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나오고 골짜기 안에는 여제단(厲祭壇)이 있으며 그 남쪽에는 무이정사(武夷精舍, 무계정사를 말한 듯함)의 옛터가 있는데 길 앞에는 돌을 수십 길이나 쌓아올린 수각이 있다. 또 절 앞 수십 보 앞에는 차일암(遮日巖)이 있는데, 바위가 절벽을 이루어 시내를 베고 있는 것과 같으며 그 바위 위에는 장막을 칠 만한 우묵한 곳이 있는데 바위는 층층으로 포개져 계단과 같다. 흐르는 물소리가 맑은 하늘 아래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해 귀가 따갑다. 물이 맑고 돌이 희어서 선경(仙境)이 완연하다.”


(151)

석파(이하응)는 난초 그림뿐만 아니라 시도 잘 지었고, 글씨도 잘 썼고 독서도 많이 했다. 그가 즐겨 사용한 문자도장에는 이런 멋진 문구가 있다.

讀未見書 如逢良士

讀己見書 如遇故士

아직 보지 못한 책을 읽을 때는 어진 선비를 만나듯 하고

이미 본 때를 읽을 때는 옛 벗을 만나듯 한다.”


(152)

유주학선 무주학불(有酒學仙 無酒學佛)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

인생의 여유와 허허로움을 느끼게 하는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석파정에서 동쪽으로 건너다보이는 북악산 아래에는 추시가 지내던 백석동천 별서가 있다. 이제 백석동천으로 발을 옮기자니 사제지간에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왠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쩌면 별서의 팔자였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168)

현진권은 자신이 역사소설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문장> 1939 12월호에 <역사소설문제>를 기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오.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상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둥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절로 그 과녁을 잃을 것입니다.”


(176-177)

나는 이 집의 돌기와 지붕을 얹은 긴 콩떡 담장에서 우리나라 한옥 담장의 미학을 본다. 중국의 담처럼 바깥과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비탈을 오르는 돌담의 기와 지붕이 계속 높이를 달리하는 것도 즐겁다. 이 돌담이 있음으로 해서 이 동네 거리가 얼마나 고상해지고 품격이 높아지는가 생각하면 내 주장에 수긍할 것이다. 돌담도 사괴석(四塊石)으로 권위 있게 쌓은 것이 아니라 막돌을 얼기설기 쌓고 흰 강회로 마감한 콩떡 담장인지라 더 정감이 간다.


(196)

그런 경운궁이 다시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한 것은 1897 2월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1895)을 겪은 고종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지 1년 뒤에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 조선왕조의 마지막 법궁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해 10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경운궁은 황궁이 되었다.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뒤를 이은 순종황제가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경운궁에 상황(上皇)으로 남은 아버지께서 덕에 의지해 장수하시라는 뜻으로 덕 덕() , 목숨 수() , 덕수(德壽)라는 이름을 지어 바쳤고 이후 덕수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283-284)

그런가 하면 대한문의 한() 자를 중국의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중국을 숭상하는 뜻이 있다는 주장, 혹은 조선도 중국처럼 큰 나라라는 뜻이라는 설도 나왔다. 반대로 이 글자를 놈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이토 히로부미가 큰 놈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으로 바꾸도록 강요했다는 주장도 생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낭설이다. 1907년에 편찬된 <경운궁 중건도감 의궤>에 실려 있는 이근명(李根命) <대한문 상량문>에 그 내력이 소상히 밝혀져 있는바, 대한은 큰 하늘이라는 뜻으로 새로 태어난 대한제국이 하늘과 함께 영원히 창대하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381)

성균이란 음악에서 음을 고르게 주율하는 것을 뜻하며 <주례(周禮)> <대사악(大司樂)>에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성균의 법을 관장하여 국가의 학정(學政)을 다스리고 나라의 자제들을 모아 교육한다.”

그리고 주소(注疏, 각주)에서는 그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이란 그 행동의 이지러진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이란 습속의 치우침을 균형 있게 하는 것이다.”


(387-389)

모든 선비들이 학문에 힘쓰고 품행을 깨끗이 해 세상에 나오면 왕조의 존경 대상이 되고, 들어앉아서 유림(儒林)의 표상과 기준이 된다면 국가적으로는 그것이 큰 디딤돌이 되어 굳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법은 엄해질 것이요, 비단결같이 꾸미지 않아도 문장은 유려할 것이며, 노래와 춤이 아니어도 백성들은 즐길 것이고, 사냥 연습이 아니고도 병력은 강해질 것이며, 100년이 안 되어도 예악(禮樂)이 흥성해질 것이다.”

이렇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두를 시작한 정조는 나라에서 학생들을 예우하는 뜻을 이렇게 말했다.

요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지금 선비들의 처신이 예만 못하고, 학문도 지금 선비들은 예만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껄이는 소리에 불과하다. 지껄이는 자 역시 지금의 선비가 아니란 말인가.

선비를 만들고 뛰어난 인물을 장려하는 것이 왜 괜한 일이 일이겠는가. 선비로서 자신을 아끼는 것과 남들이 아껴주는 것 모두가 국가에서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에 임할 것을 부탁하는데 그것은 의례적인 훈시가 아니라 술잔을 내려주며 하는 격려였다.

이제 먹을 것과 함께 은술잔을 내린다. 제생(諸生)들은 술잔 속에 아유가빈(我有嘉賓)’이라 새겨져 있는 것을 아는가? ‘나에게 아름다운 손님이 있다는 이 말은 <시경> ‘녹명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빈객과 자리를 함께하는 것이란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밤새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갖옷 없이도 추위를 느끼지 않으며 또 피곤도 느끼지 않는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영재를 육성하는 데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새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부탁하는 말로 끝맺는데 그 비유의 뜻이 자못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 제생들아! 그대들은 나의 이 말로 하여 혹 느슨하게 생각하지들 말고 한 치 한 푼이라도 오르고 또 올라 마치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이 항상 90리를 절반쯤으로 생각하듯이 하라. 그리하면 자만하고 싶어도 자만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계속해야 할 것이 학업이고 무궁무진한 것이 덕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바라는 것은 제생들이 그렇게 계속 노력하여 무궁한 발전을 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제생들이여! 감히 노력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정조의 ‘100리 길을 갈 때 90리를 절반쯤으로 생각하라는 말에 나는 그간 80리만 가도 다 간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아 조금 뜨끔했다.


(409)

먼 옛날로 돌아가서 600여 년 전, 수도 한양의 도시계획 마스터플랜을 설계한 삼봉(三峯) 정도전은 동네마다 이름을 지으면서 성균관 일대는 가르침을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교방(崇敎坊)이라고 했다. 오늘날 대학로가 있는 성균관 옆 동네가 동숭동(東崇洞)인 것은 숭교방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448)

성균관이 강학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향사공간인 대성전(大成殿)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교()와 학()이 분리되지 않아 유학(儒學)이면서 동시에 유교(儒敎)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그 때문에 불교와 마찬가지로 유교의 성현을 모시고 예를 올리는 종교공간을 갖고 있는데 이를 문묘(文廟)라 한다. 불교에 사찰이 있듯이 유교엔 문묘가 있고, 사찰에 대웅전이 있듯이 문묘엔 대성전이 있고, 사찰에 관음전, 지장전이 있어 보살을 모시듯이 문묘엔 동무(東廡), 서무(西廡)가 있어 역대 성현들을 모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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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철 2020-08-17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고 쓰고 잊는다...
황지우님의 시 잘 읽고 복사해 갑니다.
감사합니다.

읽고 복사하고 저장해두고 잊는다.
 

군대이야기는 지루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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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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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최태성이라는 분이 쓴 <역사의 쓸모>라는 책을 읽었단다. 이 책은 우연히 알게 되었어. 이 책이 출간할 때쯤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이벤트로 이 책의 맛보기 형식의 책자를 준 적이 있었단다. 그것을 읽은 것은 아니야. 그저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 시간이 좀 지나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이 책이 있길래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던 때가 떠올라 책을 펼쳐 보았단다. 역사학자의 교양 역사쯤으로 생각했는데, 역사서보다 에세이에 가까웠단다. 읽기도 편했고, 역사 속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한 소개도 좋았단다.

책날개에 있는 지은이 약력과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이 사람 또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을 오랫동안 하면서, EBS에서 강의도 하셨대. 그러면서 학생들의 후기를 받기도 했는데, 형편이 안되어 제대로 된 강의를 받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내용도 있었대. 그리고 그는 결심했지. 무료로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무료 인터넷 강의 사이트를 개설해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20년이나 되었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 그 꾸준함과 성실함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그 뿐만 아니라 여러 강연도 많이 하고 방송출현도 많이 하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 사실 아빠는 지은이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이거든. 책을 읽고, 유튜브에서 그의 강연을 한번 봤단다. 역사 강의아주 액티브하고 에너지 넘치는 강의를 하고 계시더구나. 책도 재미있어서, 너희들 고모 생일 선물에 이 책도 포함을 시켰어.


1.

많은 역사서에서 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단다. 오랫동안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지은이 최태성님도 그런 질문을 던져보았단다. 여럿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을 만나 그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어. 다소 뻔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아빠도 많이 공감하고 그렇게 만나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아빠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도 많이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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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0)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공부입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긴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가슴이 뜁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선택과 행동에 깊이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고민,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될 테죠.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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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역사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 중에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좋겠구나. 그 중에 정약용도 있단다. 천재여서 부럽고, 자식 사랑함에 남달라 본받을 만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 그리고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생각의 소유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또 다르게 평가를 하겠지만, 아빠는 위에서 이야기한 모습으로 정약용을 보았고, 그의 그런 모습을 배우려고 한단다. 정약용의 호 중에 하나 여유당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한글로만 보면 여유로워 보이지만, 이는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단다. 아빠도 본받고 싶은 마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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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그가 조정에서 물러난 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요. 자신의 생가에 걸어 놓은 현판이죠. ‘여유당(與猶堂)’이라고 쓰인 현판인데, 얼핏 들으면 이제 좀 여유를 갖고 편하게 살겠다는 뜻인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실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

이 글귀는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경계하라는 의미예요. 안 그래도 눈엣가시인데 무엇 하나라도 트집을 잡아보려는 무리가 눈에 불을 켜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방을 경계하고 신중하게 하루를 보내라는 의미로 그런 글자를 써둔 거예요. 정약용은 매일 현판을 쳐다보면서 오늘 하루도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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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정약용이 자식에 대한 사랑도 깊다고 이야기했잖아. 그가 아이들에게 당부한 말도 좋아서,  가슴에 새겨 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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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마지막으로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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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사서를 읽다 보면 모르고 있던 새로운 인물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어.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몰랐던 김육. 그는 대동법을 통해 백성들을 편의를 도모해 주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박상진이라는 분. 이 분은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분이란다. 1910년대 독립운동가였어. 그의 직업은 판사였어. 그가 그냥 판사를 했다면 호위호식하며 잘 살았을 거야. 하지만 그의 선택은 의열투쟁이었단다. 친일파를 처단하는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하던 그는, 그만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다고 하는구나. 인터넷 찾아보니 1884년에 태어나셨고, 1921년에 돌아가셨으니 채 사십이 되지 않았단다. 앞으로 그의 이름을 꼭 가슴속에 기억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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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8)

박상진이 판사를 꿈꾼 사람이라면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거예요. 판사라는 꿈을 드디어 이룬 셈인데 그걸 내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하지만 박상진의 꿈은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다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이게 그의 꿈이었어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판사라는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진짜 꿈이었으니까요. 그 꿈을 향해 나아간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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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를 읽다 보면 우리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에 이런 자랑스러운 일이 있었다니힘들고 어려운 시절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 극적인 일들도 많았고, 훌륭한 분들도 많았고 말이야. 그런 극적인 일들을 찾아서 일반인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도 역사가들이 할 일이 아닌가 싶구나. 이 책에서 여러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 중에 1919 9 1일 프랑스 파리에서 날아온 전보 한 통. 수신인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 위원부. 발신인은 리첸코. 러시아의 항구도시 무르만스크에 떠밀려간 우리 노동자 500여명. 영국 소속 철도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소련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영국 철도회사가 철수를 한 거야. 우리 노동자 500여명이 갈 곳을 잃게 된 것이지. 임시정부에서 구제를 요청했지만, 강대국들이 그들을 보살펴줄 리 없었단다. 우여곡절 끝에 30여 명이 프랑스로 올 수 있었어. 파리에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있었는데 그들의 노력으로 구제할 수 있었어. 프랑스의 쉬프 지역에 정착을 했는데, 그들은 아주 열심히 일을 했다는구나. 그리고 돈 번을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했대. 또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프랑스에서 노동헌신상을 타기도 했다는구나.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보았어. 일제 침략으로 고향을 버리고 만주로, 연해주로 피신 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러시아 서북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우여곡절 끝에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프랑스로울컥해지는 감정

….

마지막으로 역사를 배우면 좋은 점 하나 더 소개하고 마칠게. 결론은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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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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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책의 끝 문장 : 저의 삶에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삼국유사>에도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가 시험을 위한 공부로 <삼국유사>를 접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죠.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비교하며 차이점을 표로 그리면서 외우느라 정작 그 이야기에는 소홀했던 겁니다. 기전체의 관찬 사서, 기사본말체의 사찬 사서 등 형식적인 내용을 공부하느라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놓친 것이죠. - P21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 P104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상대와 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출신 학교를 묻고, 지역을 묻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역사적 사실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어요? 역사는 꽤 유용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서 상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된다면 역사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분명 같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 P164

이원익은 스물두 살에 과거에 급제해서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네 임금 밑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한 번 되기도 힘든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했다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싶지요? 그런데 그는 오두막에서 일반 백성들과 다름없이 살았습니다. 영의정은커녕 양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 P235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는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 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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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4-24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읽고 싶어지네여~~

bookholic 2020-04-25 00:15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추천해 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13)

평생 죽음을 의식했던 뭉크는 예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87)

색을 표현해야 하는 화가가 색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저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 고흐는 그것을 영삼의 원천으로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순도 높은 고음의 노랑을 찾아냅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이 말을 알코올 중독 수준이 너무 심각하다며 자신을 나무란 의사에게 했다고 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노랑을 보기 위해 자신을 속이며 압생트를 계속 마셔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던 반 고흐가 생명을 활활 태우며 꽃피운 대표작이 바로 <해바라지>입니다.

(116-117)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미술 천재 클림트. 고전주의 양식을 따라 그리기만 해도 마음 편히 먹고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타협하지 않고, 시대의 반항아로 살았습니다. 예술가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빈에도 꽃피우기 위해, 스스로 황금빛 창을 들고 아테나 여신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반발과 저항을 이겨내고, 결국 새로운 예술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의 분리주의 정신은 곧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라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또 다른 거장들을 탄생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되었습니다.

(130)

자기신뢰야말로 용기의 초석이고, 자기신뢰는 위험이란 요소와 친하게 되어 있습니다. (중략) 용기란 고뇌하며 위험에 맞서는 정신을 의미합니다. (중략) 삶은 거센 물결과 고통을 헤치고 나아가는 투쟁이자, 끝없이 밀려드는 적들과의 투쟁이라고 했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이 각자에게 선사한 것을 즐기기 위해 홀로 투쟁해야 합니다.”

이것이 열아홉 살 에곤 실레의 정신입니다. 자신이 자연에게 준 것을 삶에서 즐기기 위해 스스로를 믿고, 용기를 내, 위험을 기꺼이 껴안으며 투쟁하는 것. 그 의지는 끝내 그만의 솔직하고 뜨거운 예술 세계로 실체를 드러냅니다.

(163)

예술가의 삶은 기나긴 고난의 길이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런 길이리라. 정열은 생명의 원천이고, 더 이상 정열이 솟아나지 않을 때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시덤불이 가득한 길로 떠나자. 그 길은 야생의 시를 간직하고 있다.” – 폴 고갱

(288)

삶에서처럼 예술에서도 사랑에 뿌리를 두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 마르크 샤갈

(326)

예술가만이 유일하게 창조 행위를 완성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을 외부세계와 연결시켜주는 것은 관객이기 때문입니다. 관객은 작품이 지닌 심오한 특성을 해독하고 해석함으로써 창조적 프로세스에 고유한 공헌을 합니다.”

뒤샹은 작품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객의 역할을 간파했고, 작품은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객을 관찰자가 아닌 창조자로 보았죠. 과거의 어떤 예술가가 관객을 이렇게 보았던가요? 그는 작품에 어떤 의미를 의도적으로 담기보다 의미를 열어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자유롭게 해석하며 의미를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전시장은 작품을 중심으로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하는 생각의 놀이터가 됩니다. 관객이 작품을 보며 자유롭게 생각의 놀이를 펼치는 창조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333)

어느덧 거장의 칭호를 받는 79세 뒤샹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예술가로 살며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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