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4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20주년 개정판)
J.K. 롤링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마지막 4권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꾸나. 혼혈왕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4권은 후다닥 읽었단다. .. 혼혈왕자가 누구냐면 말이지?

혼혈왕자의 책으로 해리가 많은 도움을 받았잖아. 그 책의 혼혈왕자가 써 놓은 메모, ‘섹툼셈프라라는 마법이 있는데, 적에게 사용하라고 써 있었어. 해리는 말포이를 뒤쫓다가 싸움이 붙었고, 해리는 그 마법 섹툼셈프라라는 마법을 썼어. 그 마법을 맞은 말포이는 칼에 베인 듯했고 피를 철철 흘리고 쓰러졌단다. 해리도 깜짝 놀랐어. 그렇게 위험한 마법인줄 몰랐던 것이지스네이프 교수가 와서 말포이에게 응급처치를 하지 않았다면 말포이는 죽었을지도 몰라. 그만큼 위험한 마법이었단다. 그 일로 해리는 토요일마다 징계를 받게 되었단다.

해리와 스네이프 교수의 사이는 점점 안 좋아졌단다. 해리와 볼드모트 사이에 엮인 예언그러니까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그 예언을 오래 전에 볼드모트에게 전달한 것도 스네이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해리는 이 사실을 덤블도어에게 이야기했더니, 덤블도어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어. 스네이프가 그 일을 무척 후회했고, 그 일을 계기로 볼드모트를 배신하고 자신의 사람이 되었다고 했어. 덤블도어가 계속 스네이프를 감싸는 것이 해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스네이프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쪽 사람인 것 같았거든.


1.

덤블도어가 또 하나의 호크룩스를 찾은 것 같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어. 그 호크룩스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단다. 바다 멀리 절벽 아래로 이어진 길을 따로 음침한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섬. 죽은 영혼들이 호수 속에서 그들을 노리고 있고그 호크룩스는 로켓이라는 장신구였는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상한 마법약을 모두 마셔야만 했어. 그 마법약을 먹으면 기력이 없어지고, 환상을 보는 등 고통이 뒤따랐어. 그것을 덤블도어가 다 먹었단다. 그렇게 가지고 온 호크룩스로켓을 열어보았는데, 진짜가 아니었어. 진짜는 다른 곳에 있다는 쪽지만 남겨져 있었단다. 그 쪽지에는 R.A.B.라는 이름 약자가 적혀 있었어. , 덤블도어는 힘을 잃고, 호크룩스는 찾지도 못하고

해리와 덤블도어가 호그와트에 돌아왔어. 호그와트 성 위에 커다란 죽음의 표식이 떠 있는 것을 보니, 그들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죽음을 먹는 자들 말이야, 또는 볼드모트? 호그와트가 큰 위험에 빠진 거야. 기력을 잃은 덤블도어를 부축해서 간신히 호그와트에 도착해 보니, 이미 죽음을 먹는 자들과 불사조 기사단들이 전투를 하고 있었어덤블도어는 해리가 너무 나섰다가 위험에 빠질까 봐 해리에게 몸이 굳는 마법을 건 다음 투명망토로 숨겼단다..

덤블도어가 혼자 기력을 잃고 있었을 때, 말포이가 찾아왔어. 말포이는 자신이 마법을 부려서 죽음을 먹는 자들을 호그와트로 소환시켰다고 했어. 호그와트는 원래 순간이동이 할 수 없는 곳인데, 말포이가 그걸 풀 수 있는 방법을 풀었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했단다. 말포이가 그 동안 가끔씩 사라졌던 것도 필요의 방에 숨어서 그걸 연습했던 거야. 말포이는 이제 덤블도어와 일대일에 맞섰단다. 말포이는 자신이 덤블도어를 죽이겠다면서 한편 망설였단다. 덤블도어도 말포이를 설득했어너는 죽이지 못하니 지팡이를 거두라고말포이는 계속 망설였어. 말포이가 아무리 나쁜 놈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학교 교장 선생님을 어찌 죽이겠니그렇게 망설이는 동안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하나 둘 그곳에 도착했단다.


2.

그리고 그곳에 뜻밖의, 또는 예상했던 인물, 스네이프가 왔어. 스네이프는 곧바로 아바다 카데브라라는 죽음의 마법으로 덤블도어를 죽였단다. , 이게 뭔가? 스네이프가 덤블도어를 죽이다니덤블도어가 그렇게 믿었던 스네이프가 죽음을 먹는 자였단 말인가. 아빠는 분명 무엇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덤블도어가 죽지 않고, 덤블도어와 스네이프가 연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어.또는 덤블도어가 마법을 써사 자신의 가짜 몸둥이를 그곳에 둔 것이라고 생각했어. 주인공들이 이렇게 자주 죽을 순 없다고 생각했어. 마지막 <죽음의 성물>에서는 그 궁금증을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덤블도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우리집에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을 줄이야. 영화를 먼저 본 엄마가 덤블도어가 천국에 갔다고아빠의 상상력을 짓밟는 발언을 하셨어…)

마법이 풀린 해리는 미친 듯이 스네이프 교수를 따라갔어. 스네이프와 대결을 했지만, 스네이프에게 역부족이었어. ‘섹툼셈프라라는 마법을 써도 소용이 없었어. 스네이프는 그것을 막는 마법을 알고 있었어. 왜냐면왜냐면…. 스네이프가 바로 혼혈왕자였거든또 한번의 충격자신에서 많은 비법을 알려준 혼혈왕자가 바로 스네이프였다니스네이프가 왜 왕자라는 별명을 붙였냐면스네이프의 엄마의 성이 왕자(prince)’였다고 했어헤르미온느가 이런 추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맞혔네.

스네이프는 덤블도어를 죽이고 호그와트를 떠났단다. 진정 자신이 모시는 볼드모트에게 갔겠지. 이 사건은 호그와트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단다. 특히 선생님들은 스네이프를 철썩 같이 믿었는데 말이야. <해리포터와 혼혈왕자>는 덤블도어의 장례식으로 끝을 맺었단다.

….

이 책을 읽고 영화도 봤잖아. 스네이프 교수가 아바다 케다브라를 덤블도어에게 날릴 때, 떨리는 눈동자미안하다는 표정…. 그걸 보고 분명 뭔가 있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단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또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열심히 달려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해리는 기진맥진하긴 했지만 밤사이 자기가 해낸 일에 기뻐하는 마음으로, 다음 날 아침 일반 마법 수업 시간에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모두 알려주었다.

책의 끝 문장 : 하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어둡고 험난한 길에도 불구하고, 한 달이 될지 아니면 1년 후 혹은 10년 후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볼드모트와의 마지막 만남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론, 헤르미온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찬란하고 평화로운 날이 마지막으로 하루 남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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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곤충의 성공은 너무나 위대해서, 문자 그대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알량한 자존심이 우리로 하여금 지구와 도시와 기술과 문명을 지배한다고 착각하게 하지만, 우리는 지구의 상태를 개선하기보다는 파괴하는 데 골몰하고 있는 듯하다. 인류는 지구상에서 패악질이나 일삼는 악종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만약 인류가 멸종한다면, 대부분 종들의 생활 여건이 대폭 개선되러 것이다(머릿니, 몸니, 사면발이와 같은 몇 가지 종만이 예외다). 이와 반대로, 지구에서 모든 곤충이 멸종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곤충학자 에드워드 O. 윌슨에 의하면, 그럴 경우 육상 환경이 붕괴되어 혼돈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한다. 인류의 문명은 고작해야 최근 수천 년 동안 형성된 것이지만, 곤충은 무려 4억 년 동안 육상 생태환경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성공적으로 공진화해 왔다. 곤충은 생태계의 필수 구성원으로서, 쓰레기를 청소하고 영양소를 순환시키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사실상 모든 유기물을 섭취 활용한다. 다리가 여섯 개 달린 퇴적물 섭식자는 죽은 식물, 죽은 동물, 동물의 배설물을 소비하여 생분해 속도를 크게 상승시킨다. 곤충은 포식자인 동시에 포식기생자로서, 다른 곤충들(초식곤충, 청소부곤충)을 먹어 개체수를 감소시키기도 한다. 곤충의 가장 강력한 천적은 역시 곤충이어서, 대부분의 곤충집단은 다른 곤충집단에게 잡아먹힘으로써 개체수가 조절된다.


(28)

이 같은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에 대해 고생물학자인 데이빗 라우프는 언젠가 이렇게 비꼰 바 있다. “하나의 종이 탄생하려면, 영향력 있는 분류학자가 그렇다고 우기면 된다.”


(46-47)

만약에 외계의 관찰자가 지구의 생물학사를 다시 쓴다면 좀 더 간단명료하게 기술할 것이다. “처음 약 30억 년 정도의 시기는 세균의 시대였고, 그 나머지 시기(캄브리아기부터 현재까지는)절지동물의 시대였다.”라고 말이다. 다세포동물이 등장한 이래 다양성으로 보나 개체수로 보나 가장 성공적인 집단은 단연코 절지동물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곤충은 유구한 다양성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지난 3억 년의 시기는 곤충의 시대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에 비해 인간이 문화를 건설한 역사는 겨우 1만 년이다. 세균과 절치동물(특히 곤충)이 지구를 지배해 왔던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78)

동물의 육지 상륙은 인간의 달 착륙보다 훨씬 더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왜냐하면 최초의 동물들이 바다에서 나왔을 때, 건조한 육지에서는 매우 열악하고 험난한 환경이 줄지어 나왔을 때, 건조한 육지에서는 매우 열악하고 험난한 환경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 생활하려면 많은 도구들이 필요했다. 첫째, 육상환경의 스트레스를 견뎌내기 위한 골격계와 자유로운 이동을 위한 운동계가 필요했다. 둘째로, 자외선, 더위와 추위, 탈수로부터 몸을 지켜줄 표피계와 물과 공기 중에서 모두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호흡계가 필요했다. 셋째로, 무엇보다도 동기였다. 오랫동안 안락한 보금자리였던 바다를 뒤로하고 적대적 환경으로 진출하려면 뭔가 결정적인 동기가 필요했다.


(88-89)

지금까지 전갈에 대한 온갖 험담을 늘어놓았으니, 그들에게 사죄하는 뜻에서 이제 전갈의 매력을 하나 알려드리고자 한다 암컷 전갈은 매우 훌륭한 어머니다. 사실 암컷 전갈은 가장 오래된 자녀양육의 모범사례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암컷 절지동물들이 알을 낳은 다음 새끼들에게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하는 것과는 달리 암컷 전갈은 수정란을 몸 안에 품고 다닌다. 암컷은 여러 달 후에 6~90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어미의 축소판처럼 생긴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등 위에 올라타 일주일 이상 머문다. 새끼들은 첫 번째 탈바꿈을 마칠 때까지 어미의 보호를 받다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살길을 찾는다.


(141)

데본기 후기와 석탄기에 특별히 많은 식물자원이 축적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막대한 양의 석탄을 선사할 수 있었던 것은 습한 기후 조건 때문만도, 고농도의 이산화탄소로 인한 엄청난 식물 성장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런 요인에 더하여, 초식동물의 소화력을 능가하는 바이오매스가 수백만 년에 걸쳐 생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초의 중요한 나무 소비자인 갑옷바퀴가 등장한 것은 석탄기 후기 이후였고, 뒤를 이어 깍지벌레가 나타났다. 마루를 갉아먹는 딱정벌레들이 다양하고 출현한 것은 페름기에 이르러서였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욱 복잡한 나무 소비자 집단이 진화했고, 이에 따라 석탄기에 이루어졌던 식물 자원의 전 지구적 대량 생산을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다.


(199)

마지막 남은 삼엽충 한 마리가 얕은 조수 웅덩이에서 먹잇감을 찾다가 맥없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잠시 후 그의 시신은 물 위로 떠올랐고, 다른 삼엽충 시신들과 함께 조수에 휩쓸려 해변 한 구석에 나동그라졌다. 잠시 후 조그만 다리를 가진 곤충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아마도 최초의 바퀴벌레쯤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해변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삼엽충의 시신을 발견하고 우르르 달려들어 갉아먹기 시작했다. 때마침 근처의 고목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더듬이를 고르던 딱정벌레 한 마리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잽싸게 날아와 잔칫상에 끼어들었다. 식사를 마친 딱정벌레는 날개를 펼치더니 숲 속으로 되돌아왔다.


(252)

첫 번째 특징은 성충기가 길어서 적어도 두 세대 이상의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비사회적 곤충들은 성충이 알을 낳고 죽어 버리므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생전에 유충들을 공동으로 양육한다는 것이다. 즉 성충들은 다음 세대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해 주며, 포식자와 기생충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성충들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은 유충들은 무럭무럭 자라 사회의 노동력을 구성하게 된다. 세 번째 특징은 구성원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역할 분담은 엄격한 신분제로 이어진다.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생식능력이 없는 노동자들은 둥지를 짓고,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자라나는 유충을 먹여 살린다. 한편 둥지를 지키는 일은 병정들의 몫이다. 병정들은 커다란 머리와 구기의 소유자로, 둥지를 지키는 일에 전념하고 먹이는 노동자들에게 의존한다. 병정들 역시 생식능력이 없다. 마지막으로 흰개미 사회에서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개체는 극소수의 왕과 여왕들뿐이다. 이들은 지구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왕족으로, 일단 왕국을 건설하여 1세대 노동자들을 양성해 놓은 다음, 평생 동안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297-298)

적응방산은 신생대에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생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연선책이 적응방산을 추동한 사례와, 새로운 생명체들이 생태적 틈새를 차지하여 다양화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선캄브리아기의 경우, 영양분이 풍부한 바다에서 미생물들이 크게 증가했다. 산소가 풍부한 캄브리아기에는 호흡을 하는 다세포생물들이 번성하여, 다양한 외골격 동물들이 바다를 메웠다. 실루리아기에는 풍부해진 오존이 유해한 태양 광선을 여과해준 덕분에 동식물들이 육지로 진출했다. 실루리아기의 동식물들은 해안지대의 틈새로 이주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해, 최초의 육상생태계를 건설했다. 데본기에는 육상식물들이 내륙과 고지대로 영역을 넓혔고, 식물과 곤충이 서로 상대방의 다양화를 촉진했다. 석탄기에는 날개 달린 곤충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공중으로 진출했다. 페름기에는 완전변태를 하는 곤충들이 증가하여, 그때까지 아무도 밟아 보지 않았던 생태적 틈새를 개척했다. 페름기 말에는 최악의 대멸종 사건이 일어났지만 생명체, 특히 곤충들은 위기를 잘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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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3 (무선) 해리 포터 시리즈 (20주년 개정판)
J.K. 롤링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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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3권을 이야기해보자꾸나. 해리 포터는 론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다시 호그와트로 왔어.. 다시 덤블도어 교수님과 개인 교습을 받았지. 전과 마찬가지로 펜시브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어. 이번에는 슬러그혼 교수의 기억.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톰 리들을 만날 수 있었지.

톰 리들과 슬러그혼 교수님의 대화. 톰 리들은 호크룩스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슬러그혼이 모른다는 답을 했는데, 덤블도어 교수가 이야기하기를, 이것은 기억이 조작된 것이라고 했어. 해리에게 숙제를 해주었어. 슬로그혼 교수에게 조작된 기억이 아닌, 원래 기억을 받아오라고 말이야. 덤블도어가 슬로그혼을 호그와트 교수로 초빙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단다. 호크룩스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야.

론의 생일. 론은 아침에 일어나 침실에 있는 초콜릿을 먹었는데, 그건 해리를 짝사랑하는 어떤 여학생이 갖다 놓은 사랑의 묘약이야. 그걸 론이 먹어서, 큐피트의 화살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단다. 론은 사랑의 묘약으로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여 해리는 론을 데리고 슬러그혼 교수님한테 도움을 청하러 갔어. 슬러그혼은 론을 치료하고 하고, 포도주 한잔을 건넸는데, 그 안에 독약이 들어 있었어. 해리가 재빨리 해독제를 만들어 론의 목숨을 살려냈단다. 하지만 후유증으로 일주일 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어.

도대체 왜 포도주 병에 독약이 들어 있었을까. 누군가의 목숨을 노리려고 했던 것일까. 나중에 알아보니, 슬러그혼은 그 포도주를 처음 열었다고 했어. 자신도 선물 받은 포도주였는데 그 포도주를 덤블도어 교수에게 선물을 주려고 했대. 누군가 덤블도어를 노리고 벌인 범죄란 말인가.

론이 병원 신세를 지자, 어쩔 수 없이 퀴디치의 파수꾼이 다른 선수가 뛰었는데, 이 친구가 말이지, 연습 때부터 호들갑을 떨더니, 실수로 해리를 공격하여 해리가 실신하고, 팀은 대패하고 말았단다. ㅎㅎ


1.

해리는 말포이가 죽음을 먹는 자가 되었다고 확신을 했기 때문에, 가끔 도둑지도를 이용하여 그를 감시를 하곤 했어. 그런데 도둑지도에 있던 가끔 말포이가 호그와트에서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어. 너무 이상해서 해리는 집요정 크리처와 도비에게 말포이를 미행하라고 시켰단다.

다시 덤블도어와 개인 교습 시간. 펜시브를 이용하여 덤블도어의 기억 속으로톰 리들이 호그와트를 수석으로 졸업했어. 그런데 유망한 직종을 놔두고 녹턴 앨리의 보긴앤버크라는 가게에 취업을 한 거야.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톰 리들에게는 계획이 있었던 거야.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한 보물을 손에 넣고 사라졌단다. 그는 이제 어둠의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었지. 볼드모트가 되기 위한 준비그는 사람들을 죽이고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등 악한 일도 많이 했단다.

….

덤블도어 교수가 내준 숙제인 슬러그혼 교수의 제대로 된 기억도 받아내지 못하고, 말포이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진전이 없었어. 그래서 해리는 행운의 약물인 펠릭스 펠리시스를 사용하기로 했어. 그걸 먹었더니, 정말 일이 술술 풀렸단다. 슬러그혼의 제대로 된 기억을 유리병에 담아 주었어. 그 기억을 덤블도어에게 가져다 주고, 펜시브를 이용해서 보았단다.


2.

슬러그혼의 기억을 보고 호크룩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단다. 호크룩스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도 톰 리들에게 알려준 것도 슬러그혼이었어. 호크룩스는 자신의 영혼을 쪼개어 다른 사물이나 생물에 보관하는 것을 이야기해. 그 영혼이 다 죽어야 하니, 자신이 죽지 않는 이가 될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호크룩스를 만드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어. 살인을 해야만 사진의 영혼을 쪼갤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톰 리들, 그러니까 볼드모트는 호크룩스를 만들기 위해서 살인을 서슴지 않게 한 것이었단다. 그런 방법을 슬러그혼 교수가 알려주었으니, 슬로그혼도 무척 괴로웠겠지. 그 기억을 조작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그는 어린 톰 리들이 실제로 그런 일을 벌일 줄 몰랐었을 거야.

아무튼,  호크룩스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볼드모트는 일곱 개의 호크룩스를 만들었어. 덤블도어 교수는 그 호크룩스를 찾아 다닌다고 했어. 그래서 자주 호그와트를 비우는 것이라고 했고지금까지 볼드모트의 호크룩스는 두 개를 찾아 파괴되었단다.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가 비실리스크의 송곳니로 파괴한 톰 리들의 일기장이 첫 번째이고, 얼마 전에 덤블도어가 찾아 파괴한 반지가 두 번째였단다. 덤들도어는 그 반지를 어렵게 파괴했는지 오른 손이 썩은 것같이 색깔이 검게 변해 있었단다.

, 이제 남아 있는 호크룩스는 다섯 개. 그 다섯 개를 모두 찾아 파괴해야만 볼드모트가 죽게 되는 것이란다. 남은 해리 포터의 이야기는 볼드모트와 직접 대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호크룩스를 찾는 이야기가 될 것 같구나. 여기까지가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 3권의 이야기란다. 아직 혼혈왕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구나. 도대체 누가 혼혈왕자일까. 4권에서는 나오겠지?

한가위 명절이 시작되었구나. 여느 한가위와 다른 한가위 명절코로나가 지배한 이후 첫 번째 한가위오리 모두 다같이 조심조심 명절을 즐겁게 지내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새해가 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늦은 오후였다.

책의 끝 문장 :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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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또 읽었단다. 정작 그가 쓴 저서들은 감히 도전을 하지 못하고, 그에 관한 책들과 해설서들만 읽는구나. 몇 년 전에도 이사야 벌린이 쓴 마르크스 전기를 읽었는데, 이번에 또 마르크스 전기를 읽었단다. 아빠가 예전에 읽은 이사야 벌린이 쓴 마르크스 전기와 이번에 읽은 자크 아탈리가 쓴 마르크스 평전을 서로 비교해 가면서 이야기를 해 주면 참 좋을 텐데, 그런 정리 능력이 없고, 예전에 읽은 이사야 벌린의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둘째치고, 이번에 읽은 자크 아탈리의 책도 벌써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구나.

그냥 자크 아탈리가 쓴 <마크르스 평전>을 읽으면서 긁적여 놓은 메모로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줄게. 책 제목이 그냥 마르크스 평전이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단다. 자크 아탈리가 누구지?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데공학, 정치학, 경제학 등 다양하게 공부를 하고 경제학 박사가 되었고, 프랑스에서 정치도 하고,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보좌관으로도 일했다고 하는구나. .. 프랑스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겠구나. 그런 그가 20세기에 들어서 19세기의 뛰어난 천재 마르크스를 재해석을 하겠다고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란다.


1.

마르크스의 선조들은 대부분은 트리어 지방의 유대인 제사장이었다고 하는구나. 트리어가 지금은 독일 땅이지만, 과거 한때 프랑스 땅이기도 해서, 프랑스와 독일의 스타일이 공존하는 그런 곳이란다. 아무튼 마르크스 선조들은 다들 제사장이었는데, 마르크스의 아버지 하이셸은 변호사가 되고 싶어했단다. 하지만 식구들을 생각해서 유대교를 버리지 못했단다. 유대교를 버리지 못했다는 의미는 변호사를 할 수 없었다는 의미야. 유대교는 직업 제한이 많았는데, 변호사는 할 수 없었거든. 하지만,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다음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변호사가 되었단다. , 유대인들의 변호를 많이 해주었대. 그리고 이름도 하인리히 마르크스로 바꾸고 변호사를 하다 보니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아버지의 아들로 카를 마르크스가 1818년 태어났단다. 그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마르크스가 그 소설을 좋아했다고 하는구나. 이 평전의 특징 중에 하나는 마르크스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중요한 역사 사건이나 문학 작품, 예술 작품도 같이 이야기해주는 것이란다.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함인 것 같은데, 정작 아빠는 그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 작품을 거의 모르고 있어서 큰 도움은 안 되었단다. ㅠㅠ

마르크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를 본받으려고 한단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이웃 아저씨 베스트팔렌 남작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는단다. 나중에 베스트팔렌의 딸 예니와 사랑에 빠지고 평생 반려자가 된단다. 마르크스는 1853년 본 대학의 법학 공부를 하게 되는데, 이때 젊은 혈기가 넘쳐서인지 방탕한 생활로 빚을 지기도 했대. 아버지가 그 빚을 다 갚아주었다고 하고그 젊은 시절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헤겔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나중에는 헤겔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고 하는구나. 마르크스가 한때 지지하던 이들도 나중에는 비판과 비난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 때문이 등 진 이들도 많단다.

….

베를린으로 옮겨서 계속 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변호사였기 때문에 법을 공부한 것 같았어. 하지만, 마르크스가 하고 싶은 공부는 따로 있었단다. 철학. 그는 장문의 편지로 아버지에게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한참 뒤에 아버지는 오케이를 했단다. 하지만 바로 바꾸지는 않았어. 아버지가 편찮으셨거든. 19세기의 보건 상황은 무척 열악했단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많이 죽고, 젊은 이들도 어느날 갑자기 시름시름 앓다가 죽곤 했어. 마르크스의 아버지도 폐렴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마르크스는 철학으로 진로를 바꿨단다. 당시 예니와 약혼 한 사이였는데, 예니는 트리어에 있고, 마르크스는 베를린에 있어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자주 만나지 못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니

베를린에서 마르크스는 상류층 사람과 교류를 많이 했는데, 이때 베를린에서 군 복무 중인 엥겔스를 처음 만났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더구나. 마크르스와 엥겔스는 실과 바늘보다 더 심한 사이로써, 평생을 함께한 정신적 동지였단다. 1841년 마르크스는 베를린 대학 졸업장을 받고, 그해 4월에 예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단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논문을 그냥 일기 쓰듯 하는구나.


2.

마르크스는 바우어라는 사람과 함께 퀼른으로 향했단다. 그곳에서 <라인 신문>에 편집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라인 신문>은 진보 성향이 강한 신문이었어. 그렇다 보니 오래 못 가 강제폐간이 되었고, 마르크스도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단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키워온 예니와 결혼을 하게 되고, 예니는 마르크스 공부를 도와주었어. 그들은 퀼른에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당시 망명객들의 도시인 파리로 떠났어. 유럽 각지의 좌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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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그러니까 파리는 제네바, 브뤼셀, 런던과 더불어 중부 유럽 전체, 특히 독일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망명객들의 피난처였다. 망명객들은 정치적인 검열이나 경찰의 박해를 피해 파리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재단사 빌헬름 바이틀링처럼 스위스를 거쳐 파리로 온 은행가의 아들인 루트비히 베르나이스와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있었고, 당시 유명한 독일 시인이었던 게오르크 헤르베그처럼 프로이센에서 직접 온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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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좀 더 자유롭게 잡지고 만들고, 많은 책들도 보고 많은 철학자들, 사상가들과 교류도 했어. 그리고 딸도 출산하게 되었어. 그는 예니의 몸조리를 위해서 에니를 딸과 함께 고향인 트리어로 보냈단다. 그리고 혼자 남아서 실컷 공부를 했어. 이때 열심히 공부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정립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그가 완벽주의자라고 알 수 있단다. 그런 완벽주의 때문에 책을 쓰더라도 제대로 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대.

그의 행복한 파리에서 생활도 시간이 갈수록 좌파에 대한 통제가 심해졌어. 결국 벨기에 브뤼셀로 갔단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완전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어. 정치 활동을 안 한다는 조건을 달고 그를 받아주었거든. 하지만, 그는 브뤼셀에서 정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였단다. 공산주의자 관련된 모임을 만들고, 열심히 활동했어. 이 즈음이 엥겔스와 함께 일을 시작한 때였어. 트리어에 연락해서 아내 예니와 딸도 오라고 해서 그들은 브뤼셀에서 함께 지냈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벨기에 내의 공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영국의 공산주의 단체와 교류하였고,  공산주의자 동맹이라는 연합체를 만들었어. <공산주의자 동맹>의 선언문으로 쓴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공산당 선언>이었단다. 이것에 대한 설명은 얼마 전에 읽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의 독서편지로 대신할게.


3.

1849 8 26일 마르크스와 식구들은 영국에 도착했단다. 영국은 당시 대륙보다 정치적으로 안정했고, 언론의 자유도 어느 정도 보장해 주었어.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은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어. 주 근무 시간이 64시간이나 되었대. 아이들도 이제 셋이나 되었고, 예니는 넷째 아이를 임신했어. 그렇다고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집세마저 없어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그나마 엥겔스가 집도 좀 갚아주고 생활비도 좀 주고마르크스는 잡지를 출간했지만 집안 경제에 도움을 주지는 못했어.

예니의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 남동생은 마르크스와 예니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할 정도로 마르크스를 안 좋아했어. 그런 예니의 남동생이 프로이센의 내무장관이 되어서, 영국 정부에 마르크스를 경계하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는구나. 다행히 영국 정부는 그의 편지를 무시했대.

마르크스는 영어를 하지 못했는데, 런던 생활이 길어지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 예니도 아이들 영어 공부에 신경을 썼는데, 아이들 네 살부터 셰익스피어를 외우라고 했대. , 무슨 뜻이나 알고 외우라고 시켜야 되는 건 아닌지밀린 집세로 결국 더 안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둘째 아들이 죽고 말았단다. 당시 유아 사망률이 높긴 한데, 돈이라도 넉넉히 있었으면 치료라도 할 텐데, 치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가난이 아이를 죽인 것이니라. 부모로써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졌어. 하녀로 같이 살고 있던 헬레나가 임신을 한 거야. 그런데 헬레나는 아버지가 누군인지 끝내 이야기를 하지 않았대. 엥겔스는 자신의 아버지라고 이야기했다가 죽기 전에 사실은 마르크스가 아이 아버지라고 했다는구나. 마르크스는 묵묵부답이었고, 정황상 마르크스가 아이의 아버지였던 것 같구나.

….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마르크스는 글만 열심히 썼단다. 돈이 되지는 않았어. 그러다가 <뉴욕 데일리 트리뷴>으로부터 기사 제안을 받았어. 고민을 살짝 하긴 했지만, 기고하기로 했어. 얼마만의 고정적인 수입인가. 기사를 쓸 때는 예니와 토론하여 쓰고 악필인 마르크스 대신에 예니가 글을 베껴서 신문사에 보냈다고 하는구나. 이 기고뿐만 아니라 그는 간만에 수임이 어느 정도 생겨서 경제적인 안정을 찾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아이들은 몇이 더 죽었단다.


4.

특별한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대영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었단다. 하루 종일그곳에서 책들을 썼어. 하지만 그의 책을 출간해주려고 하는 출판사들이 없었어.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거든출판사를 찾지 못하다가 독일의 라살이라는 자산가가 책을 내주겠다고 하여 출간한 책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시론>라는 책이란다. 책을 내준다고 하면 원고를 독일까지 보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보내지 못하고 하는구나. 정말 가난했나 보구나. 결국 엥겔스한테 또 부탁을 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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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그 보잘것없는 원고가 끝이 났네. 하지만 보내지를 못했네. 우송을 하고 보험을 들 파딩(1961년에 폐지된 영국 화폐로서 4분의 1 페니에 해당했다-옮긴이)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보험은 꼭 들어야 하네. 왜냐하면 다른 복사본이 없거든. 그러니 월요일까지 약간의 돈을 보내주었으면 하네. 부탁하네.”

그러고 나서 그는 후에 아주 유명해진 다음 문장을 냉랭하게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돈이 없으면서도 돈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네! 돈에 관해 쓴 작가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연구 주제와 사이좋게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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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아버지와 어렸을 때 깊은 정을 쌓았는데, 일찍 돌아가셨어. 하지만 어머니와는 연을 끊고 살았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마르크스에게 상속될 재산도 어머니가 안 주셨어.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단다. 정말 오랜 만에 고향 트리어에 가서 장례식에 참석했어. 장례식을 마치고 곧바로 런던으로 돌아왔는데, 많은 유산과 함께 왔단다. 갑자기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그는 큰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어. 아껴 쓸 만도 한데, 그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이 미안해서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하는구나. 엥겔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의 아버지는 큰 회사를 가지고 있었어. 그 회사를 고스란히 엥겔스가 물려받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엥겔스도 돈이 많아져서 마르크스에게 보내는 돈도 많아졌지. 이 때가 마르크스 삶에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시절이었던 것 같구나. 마르크스는 예니와 엥겔스가 걱정할 정도로 돈을 많이 썼대.


5.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좌파 세력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모임이 인터내셔널이 생겨나게 되는데, 마르크스는 독일 통신서기장으로 활동하게 된단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자본론>을 쓰기 시작한단다. 아직 그는 집으로 많은 인사들을 초대해서 교류를 나누었어. <자본론> 1권을 출간했지만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유명세는 점점 높아졌고, 그가 이십대에 쓴 <공산당 선언> <자본론>이 외국어로 번역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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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마르크스는 목표에 도달한 듯 싶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코뮌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언론에 의해 절대 권력자로 여겨지면서 그는 유일한 다국적 정치조직의 정상에 자리했고, 그의 이름을 내세운 정당과 비밀집단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에서 생겨났다. 코뮌의 마지막 무렵에 쓴 그의 마지막 <인터네셔널에 보내는 담화>는 서방의 모든 언론이 언급했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그와 인터뷰하려고 몰려들었다. 독일의 수십만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읽은 <공산당 선언>은 이제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자본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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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 멤버들은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각 나라의 요직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어. 그들의 활동이 넓어지는 것이 오히려 현정권의 반감을 사게 하여, 여러 나라들, 특히 프랑스에서 인터내셔널을 불법으로 규정했단다. 인터내셔널에는 큰 타격이었어. 추방뿐만 아니라 처형당하는 이들도 있었어. 마르크스는 이런 혼란의 시기에 노동자들이 결집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단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인터내셔널을 불법으로 규정하니 많은 사람들이 영국으로 망명해 봤단다.


6.

마르크스와 예니는 아이를 여섯 명을 낳았으나 셋은 일찍 죽고 딸 셋만 어른까지 성장을 했어. 딸의 이름은 첫째가 예니헨, 둘째는 라우라, 셋째는 엘레아노르였어. 딸들 모두 아버지의 영향으로 커서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단다. 아버지의 일도 도와주고 그랬어. 마르크스를 찾아오는 좌파 청년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데, 마르크스의 눈에 차지 않았나 보더구나. 특히 셋째 엘레아노르는 17살 연상이랑 결혼하겠다고 하니 극구 말렸지. 그 남자 또한 사회주의자였지만, 바람둥이로 소문난 사람이었거든. 떼어 놓으려고 별 짓을 다했지만, 엘레아노르는 우울증까지 걸려 자살까지 생각하는 것을 안 마르크스는 마음을 돌렸어. 하지만 예니는 끝까지 반대를 했다고 하는구나. 결국 엘레나오르는 그 남자와 맺어지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

세월은 흘러 흘러 예니가 죽었어. 평생을 마르크스 뒷바라지를 하면 살았던 예니. 부잣집 딸로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가난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의 남편이 되어 평생 가난과 싸우면서도 남편을 끝까지 지지해준, 그이 또한 위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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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4)

몇몇 친지들이 예니를 묘지까지 동반했다. 엥겔스가 추도사를 했다. 라우라와 엘레아노르, 예니헨과 샤를롱게 등과 함께 있던 라파르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그녀의 평등의식은 그 누구보다 철저했다. 그녀에게 사회적인 차이와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집과 식탁에 노동복 차림의 노동자들을 맞이할 때면, 왕족에게 대할 때와 똑 같은 예의와 배려를 보이며 맞이했다. …… 그녀는 마르크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극도로 헐벗은 날들에도 자신이 선택한 것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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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도 이후 오래지 않아 삶을 마감한단다. 엥겔스가 추도사를 썼어. 마르크스의 영원한 친구인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마지막 길도 함께 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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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3)

3 14일 오후 3 15,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그를 혼자 둔 것은 겨우 10분이었는데, 돌아와보니 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안락의자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죽음은 유럽과 미국 프롤레타리아의 투사들을 위해, 그리고 역사과학을 위해 측량할 길 없는 손실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정신이 떠나면서 남긴 공백을 곧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다윈이 자연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인간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 게다가 마르크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움직임과 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르주아 사회를 이끄는 법칙도 발견했습니다. …… 이 두 발견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 둘 중 하나만 이룩한 사람일지라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모든 영역들을 아주 많이 연구했고, 그 모든 영역들 중에서 피상적으로 연구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다못해 수학에 대해서까지 그는 발견의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그는 과학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이룬 업적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역사의 원동력, 혁명의 힘이었습니다. 힘들게 예측한 결과를 담은 이론적 법칙을 발견하는 기쁨을 넘어서서 그는 산업에서의 혁명적 변화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 왜냐하면 그는 우선 무엇보다도 혁명가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필생의 사명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국가 제도를 무너뜨려서, 현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될 수 있는 조건을 처음으로 정의 내린 사람은 마르크스였습니다. 투쟁은 그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끈질기게,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투쟁했습니다. …… 마르크스는 당대에 가장 미움받고 모략을 가장 많이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주의 정부들도 공화주의 정부들도 그를 유배시켰습니다. 부르주아들, 보수주의자들 또한 민주주의들이 모두 그에 대항하려고 단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광산부터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미국에서 수백만 혁명 동지들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눈물 흘리는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반대파가 있기는 했어도 개인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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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갔고 그의 많은 글들이 남았단다. 그 글을 정리하는 몫도 엥겔스였어. 워낙 마르크스가 악필이다 보니 그의 글을 제대로 알아보는 이가 몇 안되었거든. 둘째 둘 라우라와 엘레아노르도 아버지의 글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했어. 그렇게 정리해서 <자본론> 2권과 3권을 내놓았대. 정말 엥겔스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마르크스와 함께 하면서 마르크스보다 뛰어나려고 하지 않았고, 늘 그를 지지해주면서 사회주의 운동도 변함없이 했지. 엥겔스만 다른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엥겔스의 추종자들이 엥겔스를 마르크스와 동급으로 올려 놓으려고 했지만, 엥겔스는 그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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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엥겔스 추종자들이 후에 두 사람을 동등한 반열에 올려 놓으려 애썼지만 엥겔스는 자신이 마르크스 천재적인 지적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엥겔스가 그토록 싫어한 공장의 사장 역할을 떠맡기 위해 런던을 떠나면서 포기한 것 중에는 저자가 되는 것도 포함되었다. 요컨대 엥겔스의 결단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유일한 저자인 마르크스에게 돈을 대주기 위해서였다. 자본주의의 요새에서 트로이 목마가 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자신의 이론적 연구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르크스와 함께 토론하기 위해 빈번히 런던에 왔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교환했고, 그것은 20년 간 지속되었다. 사상사에서 그와 같은 희생의 예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때문에 아무리 힘든 처지에 놓여도 그는 결코 마르크스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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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딸 엘레아노르가 결국 우울증에 다시 걸려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둘째 딸 라우라마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하늘에 있던 마르크스와 예니 또한 많이 아파했겠지.

마르크스는 자신이 죽은 이후 그를 따르려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의 사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해석하여 권력을 누리는 자들도 있었는데, 그런 이들을 보면 마르크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빠가 메모를 띄엄띄엄 해서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준 마르크스의 삶도 띄엄띄엄 같구나. 카를 마르크스는 무엇이 그를 그런 삶을 살게 만들었을까. 평생을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새로운 사상을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빠가 그와 같은 두뇌를 가졌더라도 가족들이 눈에 밟혀 그와 같은 삶은 못살았을 것 같구나. 그의 삶은 한번 읽어볼 만한 삶이고, 선택적으로 배워볼 만한 삶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 카를 마르크스의 족보를 죽 거슬러 올라가면, 아버지와 어머니 쪽 모두 유대교 제사장들에 이른다.

책의 끝 문장 : ‘인간은 기대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마르크스는 자기 책과 서류 들을 아무도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겉보기에는 무질서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으며, 그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이나 공책을 언제나 힘들이지 않고 찾아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도 그는 종종 자기가 막 인용한 글귀나 숫자를 책에서 찾아 보여주려고 말을 멈추곤 했다. 그는 자기 작업실과 일체를 이루었고, 책과 서류는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복종했다." - P59

마르크스는 머리말을 썼다.
"사고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류와 핍박당하며 사고하는 인류는 사고할 줄 모르고 소극적으로 즐기기만 하는 속물들의 동물적 세계에서는 당연히 참을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고하는 인류로 하여금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의식을 갖게 하고 고통받는 인류와 결합할 수 있게 할수록, 자기 뱃속에 품고 있는 결실은 더욱 완벽하게 태어날 것이다."
- P128

"그의 노동은 분리되고, 바깥에 존재하며, 그와 독립하여 낯선 존재가 되며, 하나의 자율적인 힘으로 그에 맞선다. 그가 사물에 투여한 생명은 그에게 맞서며, 적대적이고 낯설게 된다. 노동은 고단함이며, 그의 정신을 황폐화게 만들고 몸에 상해를 입히는 고통이며, 그의 활동은 고뇌처럼 보이고, 그의 생활은 인생의 희생처럼 여겨진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모든 노동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 P142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전년도에 나열한 열두 조항을 열 조항으로 압축하고, 역사적 유물론에 관하여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빈곤화로 내몰린 계층, 당시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근본적으로 환상이 없는 계층으로 나타나 있는 최초의 글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었다. 나이는 서른이 채 안 되었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브뤼셀에 망명해 사는 젊은 독일 철학자가 쓴 이 글은 비종교적인 글 가운데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유포된 글이다. - P196

런던에서는 마르크스의 이중 생활이 계속됐다. 낮에는 공식적으로 인터내셔널의 독일 통신 서기장으로, 유럽 전역의 수십만 노동자와 피고용인, 지식인을 곧 집결시키게 될 정치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 활동했다. 밤에는 20년 전에 시작해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아직 1장밖에 출간하지 못한 대작을 집필했다. 그는 <자본론>으로 명명할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할 생각이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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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진보운동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 얘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분들이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 받거든요. 구체적인 인간이 아니고 그냥 약자, 민중, 이런 말들이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려요. (김종철) 선생님이 일리치 모임 시간에 말씀하셨던 이야기 중에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가, 전쟁을 할 때 하늘 위에서 비행기를 타고 있는 사람은 지상의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폭탄을 퍼부을 수 있다는 거죠. 위로부터 보는 관점의 위험성을 말씀하신 거죠. 사람이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표적물로 추상화되어서 보일 때의 위험성을 경고하였어요. 선생님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인간을 보는 감수성을 갖고 계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이념이나 자기 생각에 매몰되면 바로 그런 것을 놓치기가 쉬운 것 같아요.


(24)

또하나 선생님의 혜안이 돋보였던 것은, 우리가 학내 직선제를 민주화의 상징처럼 이야기하는데, 김종철 선생님은 직선제가 꼭 좋은 게 아니라고 하셨어요. 특히 대학이 이미 자본과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데 직선제는 욕망을 키워나가는 것을 부추긴다고 보셨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보면 그 말씀도 맞았어요.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총장들의 면면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형편없는 인물이 총장으로 많이 당선이 됐거든요. 구성원들이 돈 들어가는 일을 요구하고, 돈 잘 끌어오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총장이 되니까요.


(40)

그리고 창당(녹색당)하면서 제기했던 탈핵이라는 안건은 이제 다른 정치세력들도 많이 받아들였고, 기본소득도 그렇습니다. 이재명 지사를 좌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녹색당, <녹색평론>이 먼저 제기한 기본소득 이슈를 자기가 잘 써먹고 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하시더군요. 이렇게 저는 몇몇 의제들을 정치의제로 만든 데 녹색당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는데요, 지금 다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성 평등이나 소수자 인권은 외국의 녹색당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의제이고, 한국의 녹색당도 기본으로 가져갈 가치입니다. 그러나 녹색당의 정체성을 한 줄로 말한다면, “생태위기의 시대를 맞아 문명의 전환을 이루기 위한 정치를 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당만이 아니라 녹색가치를 지향하는 운동단체들도 그런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54)

그런데 거기서 김종철 선생님이 진정한 평화는 자발적 가난을 통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을 설파하신 거죠. 경제성장과 강력한 무기체계가 뒷받침될 때만 평화가 성취된다는 일반론을 믿고 있는 다수 참석자들로서야 이 의외의 발언에 당혹하고 의아해했겠죠. 그 자리에 있던 꽤 유명한 어느 참석자가 선생님의 사상적 뿌리가 어디입니까하고 물어보더래요. 그래서 김종철 선생님이 우리 외할머니입니다.” 하고 답하셨다는 거잖아요. 저는 이 일화가 선생님의 사상이 선생님의 표현을 쓰면 비근대적농경사회의 토착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고 봅니다.


(65)

(김종철) 선생님이 진정 전하고 싶어 했던 말은 바로 이 희망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생태학적 사유와 실천에 부단한 최선을 다한다면, 마른 나뭇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기적을 우리는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세계적 한국적 차원을 두루 고려한, 이 땅에서 찾기 드문 진정한 생태사상가였다. 나를 포함한 후학들이 이제는 선생님의 생태사상을 이어가야 할 책무를 다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삼가 머리 숙여 선생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72~73)

비겁한 마음이 폭력을 불러들이는 것처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의 쇠퇴는 죽음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안팎의 자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인간 상호 간에도 폭력이 난폭하게 행사되는 것이 당연한 삶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합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나 진정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가 훨씬 더 성숙한 것으로 바뀔 수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시의 마음과 생명 공동체> 김종철 선생님 강연 중에서


(121)

게다가 기후변화라는 건 점진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꾸준하게 점진적으로 변해서 악화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될 수 있습니다. 금년에 태풍이 몇 개 왔습니까. 그저께인가는 미국 뉴욕에 대설이 왔다죠. 스웨덴은 북극권인데 작년에 산불이 났잖아요. 지구사회 곳곳에서 혹심한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풍, 대규모 산불 등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후재앙은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가 해수면에 잠겨서 수도를 옮긴다고 그러죠? 미국 플로리다에 마이애미라는 도시가 있잖아요. 부자들이 많이 사는 휴양지죠. 마이애미에서 부자들이 사는 지역은 전통적으로 저지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이 흑인들을 몰아내고 고지대로 이사를 가고 있다고 합니다.


(123)

저는 근대문명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근대문명이라는 게 결국은 자본주의 문명이고 산업문명이죠. 그리고 달리 이야기하면 석유문명입니다. 19세기에는 주로 석탄을 썼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탄소문명입니다. 탄소문명 시대에서 생태문명 시대로 빨리 넘어가야 되고, 그래서 생태, 생명사상이 100년 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무슨 일이든지 결국 사상이 뒷받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가 경제를 전환해야 되고 문명을 전환해야 되고, 우리 생활을 전환해야 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무턱대고 열심히 한다고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해요. 우리의 행동을 뒷받침해주는 게 말하자면 사상적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 후기의 동학사상으로 이어져오는 우리의 전통, 이것을 한마디로 생명사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이 생명사상이 지금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138)

이명박이 4대강을 파괴한 과정을 보세요. 그 밑의 공무원들, 건설업자들 등등 숱한 사람들이 그저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다가 보니까 우리나라 아까운 생태계 보고(寶庫)가 작살이 난 거 아닙니까.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꼭 무슨 큰 사건이나 예외적인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래요.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다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순응해서 살 뿐입니다. 자기가 자주적으로 판단해서 생각하고 할 공간이 전혀 없어요. 아렌트가 그렇게 말했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아이히만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질문을 못 하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없어요. 그렇게 멍청하게 있다가 보면 결과적으로 가공할 악행을 번하게 되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게 이 시스템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근대의 본질이다, 라고 이반 일리치는 환대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185)

지구온난화를 1.5℃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몇 달, 몇 해가 결정적입니다. 시간은 가고 있습니다. 이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기후위기를 무시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들-당신의 자손들에게 그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입니다. 현재 어린아이들이 안전한 환경 속에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곳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시대의 현실입니다. 우리들은 정치지도자들에게 기후 비상사태에 대응할 것을 요청합니다.


(196)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우리 교육을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은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이 코로나와 같은 비상한 사태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무한 성장주의를 부추기고 인간과 지구의 생태위기를 방관한 우리 교육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이들을 인간자원으로 바라보고 그들을 효용과 쓸모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온 지난날의 교육은 반드시 다른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 전환은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지는 길에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도를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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