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여행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빛소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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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또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란다.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늦게 알게 되어 아직 읽을 그의 책들이 많다는 것이 행복하구나.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출판사에서 꾸준히 출판해주는 것도 고맙고.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하다 보니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도 아빠는 같은 책을 사지 않는 정도의 기억력은 가지고 있거든. 그런데 같은 책인데 우리나라에서 출간하면서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제목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있단다.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누르다 보니 이런 경우 같은 작품의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한 두 권의 책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구나. 특히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그런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 아빠가 읽은 <과거로의 여행>이란 책도 그런 책이란다.

이 책에는 <과거로의 여행>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이란 두 작품이 실려 있단다. <과거로의 여행>을 한참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두 사람이 이별을 하기 위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빠가 사 둔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별 여행>과 혹시 같은 작품 아닌가? 하는 생각이 선뜻 들더구나. 그래서 그 책을 찾아 확인해 보니, 역시나 같은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 다른 제목을 달고 나온 것이더구나. 동일 작품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가 다르더라도 하나의 제목으로 출간하는 법을 마련하면 좋겠구나. 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좀 아니지 않니? 그래서 아빠가 이 소설의 원제목을 찾아봤어. 그런데 왜 원제도 다르게 나와 있지? <과거로의 여행>이라는 책의 원제는 “Widerstand der Wirklichkeit”로 적혀 있었고,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번역되었어. <이별여행>이라는 책의 원제는 “Die Reise in die Vergangenheit”로 적혀 있었고,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과거로의 여정이라고 번역되었단다. 둘 중 하나의 출판사의 실수인가? 책 내용이 똑같은데, 두 출판사가 원제가 다르게 적혀 있다니어찌된 일인가.

<과거로의 여행>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제목과 같은 <과거로의 여행>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이 실려 있고, <이별이행>이라는 책에는 책제목과 같은 <이별여행> <당연한 의심>이 실려 있단다. 다행히 같이 실려 있는 작품은 서로 다르더구나. 가만, 그냥 제목이 다르니까 다르겠거니 생각했는데 혹시 이 경우도 제목만 다른 거 아냐? 다시 책 소개를 자세히 읽어보니 다행히 다른 소설인 것 같구나. 서두가 길긴 했는데, 그러면 이번에 읽은 책 <과거로의 여행>을 이야기할게.

 

1.

그럼 먼저 <과거로의 여행>을 이야기해줄게. 집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화학박사가 된 루트비히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그는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사장의 신임을 얻어서 사장이 병에 걸려 출근을 하지 못할 때 사장의 집에서 개인 비서 겸 연구를 했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여자를 만났으니 사장의 부인이었어. 하지만 사모님이니 속으로만 짝사랑을 했어. 그런데 사모님도 루트비히에게 남몰래 호감을 가지고 있었단다. 2년이 흐르고, 사장은 루트비히를 더욱 믿게 되었고 높은 연봉을 주면서 멕시코에서 2년간 출장을 다녀오라고 했어. 루트비히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장님의 부인이었지. 멕시코로 떠나고 나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할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루트비히는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부인도 그 마음을 받아주었단다. 10일 후면 멕시코로 떠나는데, 10일 동안 그들은 비밀 연애를 했단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아주 위험하게….

멕시코에 가서는 편지를 주고 받긴 했지만 머릿속에는 늘 부인 생각뿐이었어. 부인을 잊기 위해 열심히 일에 몰두를 하였단다. 그리고 2년이 흘러 기쁜 마음으로 귀환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유럽에서는 전쟁이 발발했단다. 이 책이 1929년에 쓰여진 것이므로 이 전쟁은 1차세계대전일 듯 싶구나. 그렇게 전쟁이 일어나자 루트비히의 귀환은 무기한 미뤄지고, 멕시코에 남아 더 일하라는 사장님의 지시가 내려졌어. 전쟁 때문인지 부인의 소식도 끊기고, 루트비히도 부인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져 갔어 그리고 멕시코에서 어떤 사업가의 딸과 결혼을 하였고 또 4~5년이 지났어.

그리고 종전 소식이 전해졌단다. 그러자 다시 부인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편지를 보냈어. 두 달 뒤 답장이 왔는데, 남편은 전쟁이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죽고 자신은 아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하면서 결혼도 축하한다고 했어. 그 이후 다시 편지로 서로 안부를 주고 받았단다.

….

사업차 출장으로 베를린에 가게 되었을 때 부인에게 전화를 했단다. 그래서 그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9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란다. 9년이라는 세월 동안 세상도 변하고 그들의 몸도 많이 변했겠지만, 9년 전 서로에게 느꼈던 그 마음은 그대로였단다. 하지만 루트비히는 결혼을 한 몸이니 둘은 서로 본심을 숨기고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만났단다. 루트비히는 자신의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부인에게 접근했지만, 부인은 루트비히의 마음을 알지만 그를 밀어냈단다. 집에는 하인들의 시선들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둘은 하이텔베르크로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어쩌면 그들 생에 있어 둘이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어. 과거를 떠오르게 하는 여행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은 <과거로의 여행>인가 보구나. 그리고 다른 출판사에서 제목으로 뽑은 <이별여행>도 이해가 가는구나. 이 여행을 끝으로 둘은 각자의 삶을 살아갈 테니 말이야.

그들은 하이델베르크 행 기차를 탔는데, 하필 군인들이 잔뜩 탄 기차여서 둘 만의 은밀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단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그들은 조심스럽게 호텔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빈방이 하나 있어서 들어갔는데 방은 지저분하고 사용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런 방이었어. 그들이 원했던 여행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기차에서는 둘 만의 오붓한 대화를 나누고, 깨끗한 호텔에서 행복한 시간을 기대했을 텐데그런 방에 있기 보다 산책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산책을 했단다. 둘은 과거 속을 거닐 듯 산책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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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저 그림자는 길 위에 늘어뜨린 그들의 그림자였다. 그것은 그들만의 고유한 말을 다루면서 그 이상의 뭔가를 일깨워 주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몸을 떨면서 그 인식의 두렵고 참된 뜻을 깨달았다. 시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두 그림자는 과거를 찾아 헤매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더는 현실이 아닌 과거를 향해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지던 그림자, 살아남으려고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는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그녀와 그는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지만,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발아래 드리워진 저 검은 유령처럼 그들은 헛된 노력에 힘을 탕진하며, 달아나고 멈추는 유희를 계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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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그 이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으로 막으려고 해서 길을 찾아 오는 것인데, 나약한 사람의 의지로 사랑을 잊고 각자의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2.

두 번째 작품은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이라는 소설이란다. 이 소설은 참고로 1925년에 출간한 소설이란다. 주인공 가 지중해 연안 휴양지 리비에라 펜션에서 머물 때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란다. 그 펜션에는 일곱 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청년 한 명이 이 펜션으로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그 프랑스 청년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용모도 잘 생긴 청년이었어.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어. 프랑스 청년은 해박한 지식에 말솜씨가 좋았어. 그날 밤 11시 해변에 갔던 한 부인이 돌아오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 나중에 그 부인의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남편만 두고 그곳을 떠난 거야. 그 부인은 앙리에트 부인이었는데 그날 온 프랑스 청년과 함께 펜션을 두고 떠난 거야.

사람들은 식탁에 모여서 이 일을 두고 백분토론이 벌어졌어. 대부분이 부인을 흉보았지만, ‘는 앙리에트 부인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어. 그러자 사람들은 에게 큰소리로 반박을 했고 식탁은 큰 소리가 오가며 시끄러워졌단다. 이때 백발의 C부인이 중재를 하면서 식탁은 조용해졌단다. 이후에는 다른 손님들은 에게 앙금이 있는 것 같았는데, C부인만 에게 관심을 가졌단다.

가 펜션을 떠나기 이틀 전 C부인이 에게 20여년 전 있었던 사건(?)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냈단다. 그 사건에 대한 의 의견이 어떤지 궁금하다면서 말이야. ‘는 정성을 들여 답장을 썼단다. 부인은 에게 만나자고 했고 부인은 20년 전 자신의 24시간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어.

C부인의 현재 나이는 67살이고, 그 사건이 있었던 것은 42살 때라고 했어. C부인은 그보다 2년 전인 40살 때 남편이 죽어 홀로 되었다고 했어. C부인은 18살에 결혼을 해서 아들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외지에서 지내고 있어서 C부인은 홀로 지내야 했어.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했어. 몬테카를로에 갔다가 카지노에 가게 되었어. 남편이 생전 카지노의 전술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나서 C부인은 남편의 조언대로 사람들의 손만 유심히 봤어.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거야. 손 꺾는 소리가 나는데 마치 손이 말을 하는 것처럼 카드 게임의 향방을 알 수 있는 듯한 손의 놀림과 우드득 소리어쩔 수 없이 그 손 주인의 얼굴을 봤는데, 얼굴은 24살 정도의 젊은이인데 얼굴에도 자신의 패가 다 드러나는 그런 얼굴이었어. 그야말로 포커페이스가 안되는 카지노에서는 최악의 얼굴이었지. 결국 그 젊은이는 돈을 다 잃고 자리를 뜨는데 얼굴 표정은 더 안 좋았어.

혹시 바쁜 짓은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지. 그래서 C부인은 그를 따라 나섰고, 삶을 좌절한 듯한 그를 보게 되어 그를 도와주려고 말을 걸었어. 그러자 그 젊은이는 C부인을 창녀로 오해했어. 그리도 C부인은 그 젊은이를 호텔로 데려다주고 돈도 주었단다. 시간이 늦어 C부인도 그 호텔방에서 묵었어.

다음날 그 젊은이가 일어나기 전에 호텔을 빠져 나오려고 했지. 문득 젊은이의 얼굴을 봤는데, 어제의 좌절과 탐욕이 드리워진 얼굴이 아닌 명랑하고 평화로운 얼굴이었어. C부인은 자신이 한 젊은이를 구해주었다는 생각에 흐뭇하고 자랑스러워했단다. 잠에서 깬 젊은이는 C부인에게 카지노에서 정오에 만나기로 약속했단다.

다시 만난 젊은이는 C부인에게 고마워했어. 그러면서 젊은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단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데, 학창 시절 이런 소설을 액자식 구성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아무튼 이번에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해줄게. 젊은이는 외교관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고 했어. 그래서 아버지가 축하금을 주었는데 그 돈으로 도박을 하게 되었고, 순식간에 도박에 빠지게 된 것이란다. 그 이후에는 빚도 많아지고 도박을 끊을 수 없는 도박 중독이 되었어. 숙모의 귀고리까지 훔쳐서 도박을 했다고 했어. C부인은 이야기를 듣고는 젊은이에게 몬테카를로를 떠나야 한다고 권유했어. C부인이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저당잡힌 귀고리까지 찾아주겠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 젊은이와 함께 해변도 거닐고, 일종의 데이트를 했단다. 어느덧 C부인은 그 젊은이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 같았어. 펜션에서 프랑스 청년과 도망간 앙리에트 부인처럼 말이야. 앙리에트 부인을 옹호하던 에게 C부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지 알겠지?

C부인은 그 젊은이를 성당에 데리고 가서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했어. 그 젊은이는 진심으로 참회하고 기도를 올렸어. C부인은 다시 한번 그를 구원했다고 생각하여 기뻐했단다. C부인도 그 젊은이게 여행 비용과 전당포에서 찾은 귀고리를 찾아 돌려주었어. 그 젊은이는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했지. C부인은 그러면 영수증을 써주고 나중에 갚는 것으로 하자면서 돈을 건네주었단다. 젊은이는 가고 홀로 남은 C부인은 왠지 모를 고통을 느끼게 되었단다. 그 고통의 원인을 생각해 보니 젊은이가 한 번에 가버린 것에 대한 실망감 때문인 것 같았어.

그 젊은이가 그렇게 가버리지 않고 C부인 곁에 남았다면 타락의 길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 젊은이에게 실망한 것은 실망한 것이었어. 그 젊은이가 떠나는 기차역에 가려고 했는데, 하필 남편의 사촌누이가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기차 시간을 놓치고 그 젊은이를 보지 못했단다. 아쉬운 마음에 그 젊은이와 함께 했던 장소들을 따라가보았어. 그런데 카지노에서 그 젊은이를 다시 보았단다. 자신이 완벽하게 구원한 줄 알았던 그 젊은이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신이 준 돈으로 다시 도박을 하고 있었어. 그의 얼굴에는 예의 탐욕과 광기의 표정이 다시 드러났어. 이번에는 돈도 많이 벌었는데 여전이 손은 벌벌 떨고 있었지.

C부인은 이런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 젊은이는 C부인을 알아보지 못했어. 그의 어깨를 잡아서 아는 척을 했더니 그 젊은이는 엄청 당황했단다. 그는 한 번만 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지켜질 리가 있는가. 그는 심지어 화를 내면서 C부인가 준 돈을 돌려주면서 내쫓으려고 했어. 그런 소란으로 다른 카지노 손님들이 그들을 보게 되었고, 그들 중에는 시누이도 있었단다. C부인은 화가 나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어. 이것이 24년 전 그녀의 한 평생 중 24시간 이었던 일이었어.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 중에 24시간을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지만 그 24시간은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했단다. 당시 그 일을 겪고 몬테카를로를 떠난 것은 그 젊은이가 아니고 C부인이었어. C부인은 무작정 몬케카를로를 떠나 아들이 머물고 있는 런던으로 갔단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그 젊은이의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10년 전 권총 자살을 했다고 했단다. 그렇게 C부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를 끝냈단다. 고작 24시간이 나머지 시간을 지배하여 고통스럽게 했던 C부인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그 고통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소설은 그렇게 끝이 났단다. 이 소설은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인데, 아빠가 좀 길게 이야기한 것 같구나. 그만큼 재미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니.

이 책에 실린 두 작품 모두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한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아빠는 두 번째 <어느 여인의 삶에서 24시간>을 작은 차이로 고르겠다. 누구나 과거의 어떤 안 좋은 기억이 머릿속에 자리를 차지하여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 먹는 일들이 있을 거야. 그것을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그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풀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소설인 것 같구나. 혹시 너희들과 과거의 어떤 일이 현재를 집어 삼키는 일이 생긴다면 아빠나 엄마에게 이야기해주면 좋겠구나. 그 고통들이 입을 통해 몸 밖으로 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릴 수 있게 도와줄게.

오늘은 그럼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오셨군요.”

책의 끝 문장: 그녀의 손은 가을철의 낙엽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가 문득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바람은 말로 꺼내기도 전에 이루어졌다. 그것도 아주 세심하고 눈에 띄지 않게 이루어져서 고마움을 표현할 기회조차 없었다. 가령 어느 날 그는 귀중한 판화 작품집을 훑어보며 램브란트 판화에 경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이미 그 판화 복사본이 그의 책상 위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또한 친구에게 어떤 책을 추천받았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기만 해도, 며칠 뒤 그 책이 책장이 꽂혀 있었다. 무의식중에 그는 방이 마음에 들며 편안해졌다. - P21

그는 스스로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지내다 보니 그의 내부에 있는 치밀한 열정의 그물이 서서히 풀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 살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색이 바래지 않고 꽃이 시들지 않으려면 땅의 영양분은 물론, 하늘의 새로운 빛이 늘 필요하다. 식물이나 모든 구성물이 그렇듯, 우리가 꾸는 꿈도 마찬가지이다.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꿈조차도 모종의 감각적 양분의 필요하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감각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본연의 특징과 광채도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 P42

그러나 그날 밤, 낯선 호텔 방에 홀로 있게 된 그는 가슴속 심장이 옆에서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보다 더 격렬하게 뛰는 바람에 전혀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그러고는 다시 끄고 자리에 누웠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만 떠올랐다. 그 입술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친밀함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자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 둘 사이에 이렇게 느긋하게 담소만 나누는 것은 거짓이라는 걸. 그들 사이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결국 그는 예민함과 산만함, 불안과 열정으로 혼란스러운 얼굴 위에 우정이라는 가면이 가식적으로 씌워져 있었음을 깨달았다. - P50

둘은 말없이 언덕길을 올라갔다. 벌써 그들 아래 보이는 집들이 희미한 빛 속에 잠겨버렸고, 황혼의 빛을 받아 가물거리는 계곡의 출렁이는 강물은 둥글게 휘어져 흐르며 점점 더 밝아졌다. 그러는 사이 언덕 위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윙윙 소리를 냈다. 두 사람 머리 어둠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들과 마주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림자만이 말없이 그들을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가로등이 그들을 비스듬히 비출 때면 언제나 앞서가던 그림자는 마치 서로 포옹이라도 하듯이 합쳐졌다. 길어진 그림자는 서로를 바라보고, 하나로 합쳐졌다가 떨어지고는 또다시 포옹하려 했다. 한편 그 옆에 선 그녀는 힘없이 긴 숨을 내쉬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 P71

나는 그녀의 명료하고 쾌활한 말투에 매우 호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녀의 사무적인 어조를 따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국가의 사법기관은 이 사태를 저보다는 당연히 더 엄격하게 결정하지요. 사법기관은 동정심에 흔들리지 않고 보편적인 윤리와 관습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따라서 용서하는 대신에 판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으로서 검사의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고는 개인적으로 인간을 판단하기보다 이해하는 것이 제 마음에 더 들기 때문입니다." - P90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잘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은 법입니다. 고마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니까요. 그들은 당황해하며 침묵하거나 부끄러워하고, 때로는 이런 감정을 숨기려 무뚝뚝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비로운 조작가와도 같은 신은 감정의 모든 동작을 감각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조형적으로 빚어냈나 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사람의 감사함의 표현은 마치 열정적인 몸짓처럼 육체의 깊은 곳에서부터 환한 빛을 냈습니다. 그는 제 손등 위로 고개를 속였습니다. 그러더니 소년처럼 갸름한 머리를 겸손하게 낮춘 후, 거의 1분 동안이나 그렇게 있다가 제 손가락에 정중히 가벼운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다시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제 안부를 묻고는, 감동 어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 P140

폭풍우가 요란하게 퍼붓는 사나운 밤이 지난 후 이런 감동적인 날이 밝아왔습니다. 깨끗하게 씻긴 거리와 파란 하늘이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수액을 머금은 눈부시게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수액을 머금은 초록 덤불이 횃불처럼 붉은 꽃송이를 빨갛게 피워내고, 햇살에 습기가 날아가 가벼워진 대기 속에서 먼 곳의 산들이 갑자기 우리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산들이 깨끗이 씻겨 반짝이는 도시를 향해 사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 둘러보는 곳곳마다 자연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북돋우며 다가와서는, 슬며시 그들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저는 그에게 "마차를 타고 코르니시 해변을 달려볼까요?"라고 말했습니다. - P147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느 모임에서 저는 오스트리아 공사관의 주재원인 폴란드 청년을 만나게 되어 그의 가족에 대해 물은 적이 있습니다. 청년은 자기 친척의 아들인 한 남자가 10년 전 몬테카를로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듣고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거의 고통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의 이기주의가 작용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를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간직한 기억 외에 제게 불리한 증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더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늙어간다는 과거에 대해 더는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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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픽처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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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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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인 것 같구나. 신간 소개에서 겉표지가 끌리는 <블라인드 웨딩>이라는 책을 봤어. 평이 좋아서 읽어볼까 하다가 그 책을 쓴 지은이 제이슨 르쿨락의 책들을 살펴보니, 낯익은 책 한 권이 보이더구나. <블라인드 웨딩>의 겉표지과 대표적인 겉표지를 가지고 있는 <히든 픽처스>라는 책이었어. <블라인드 웨딩>을 읽기 전에 제이슨 르쿨락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히든 픽처스>를 먼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히든 픽처스>이란다 이런 소설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하지추리 소설과 미스터리 소설이 믹스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 소설에는 초현실적인 내용도 나오거든이 책을 읽다 보면 오래된 영화이긴 하지만 <식스 센스> <더 아더스>가 떠올랐단다. 너희들은 위 영화를 안 봤겠지만 말이야. 최근에 이런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있나 모르겠구나. 최근에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아서그럼 바로 책 이야기를 해줄게.

 

1.

21살의 맬러리 퀸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이야. 장거리 육상 선수였으나 한때 약물에 빠지기도 했어. 하지만 지금은 18개월째 약물을 하지 않고 약물치료센터에서 재활 중이었단다. 어느 정도 정상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센터의 코치 러셀이 추천하여 맥스웰 부부의 다섯 살 아들 테디를 돌보는 베이비시터을 하게 되었어. 테디의 엄마 캐럴라인과 처음 만났는데, 캐럴라인은 맬러리의 약물 이력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약물을 극복한 맬러리를 좋게 봐 주었단다. 그러면서 테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어. 테디가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그림에는 실재하지 않는 사람을 그린다고 했어. 테디의 상상 속 친구 애냐가 그 주인공인데, 애냐는 침대 밑에서 잔다고 했어. 애냐를 그릴 때는 흉측하게 그리는데 이 책의 표지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바로 애냐 그림이란다. 테디는 맬러리를 만나보더니 잘 따르고 좋아했단다. 테디의 아빠 테드는 엄청 깐깐하면서 유능한 엔지니어인데, 캐럴라인과 달리 맬러리의 약물 이력을 꺼려하는 느낌이었단다. 맬러리는 별채에서 생활하면서, 아침에 본채로 출근하여 테디를 봐주는 일을 시작했단다.

이웃집 사람들과도 인사를 했는데, 이웃집 미치라는 부인이 이야기하길, 70여년 전 별채 자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애니라는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어. 애니? 테디의 상상 속 친구 애냐와 이름이 비슷하잖아? 테디가 이제 고작 다섯 살이라서 이름을 잘못 듣고 애냐라고 부르는 것 아니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맬러리는 별채에 혼자 있다 보면 불안하고 이상한 생각들이 들었어.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

어느날 테디가 분명 방에 혼자 있었는데, 방문 밖에서는 테디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테디의 그림은 점점 이상해져 갔단다. 다섯 살 아이가 그리기에는 너무 기괴하고 무서웠어. 어떤 남자가 애냐를 숲으로 끌고 가는 그림, 어떤 남자가 애냐를 구덩이에 넣는 그림. 애냐의 목을 조르는 그림맬러리는 이 그림들을 캐럴라인에게 보여주고 테디를 병원에 데려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 그러자 그동안 친절했던 캐럴라인은 크게 화를 냈어. 다음날 맬러리와 캐럴라인은 화해를 하긴 했지만 앙금이 남아 있었을 거야. 자신의 그림 때문에 엄마와 맬러리가 싸운 것을 알게 된 테디는 그림을 안 그리는 척 했단다. 하지만 맬러리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그림을 봤는데, 이번 그림도 어둡고 음침한 그림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섯 살 아이가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잘 그렸다는 거야. 마치 어떤 혼령이 테디의 몸 속으로 들어와 그린 것처럼 말이야.

 

2.

이런 장르에서 사랑 이야기가 빠지면 섭하지. 방학이라고 이웃에 에이드리언이라는 젊은이가 와서 지내면서 정원사 일을 했어. 테디의 집도 에이드리언이 와서 잔디를 깎아주었는데, 그 때 맬러리와 에이드리언이 알게 되었단다. 그 이후 친해져서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되었지. 그런 에이드리언에게 자신이 약물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했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아. 어차피 지금은 거의 다 극복한 상태이니 말이야.

앞서 이야기했던 이웃집 부인 미치는 알고 보니 심령술사였단다. 맬러리는 테디의 상상 속 친구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미치의 도움을 받아 유령을 불러내려 했지만, 이상한 글씨만 쓰게 하여 실패하였어. 미치는 그 실패를 맬러리 탓으로 돌렸단다.

앞서 이야기한 테디가 정밀하게 그림 같은 것들이 맬러리가 머무는 별채에서도 나타났단다. 내용은 여전히 음침하고 무서운 그림이었어. 그림으로 무엇인가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어. 집에서는 점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단다. 부부가 외출하고 맬러리와 테디만 둘이 집에 있었어. 맬러리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네 시간이나 자고 일어난 거야. 그런데 거실 벽에 온통 그 이사한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고, 자신의 손에는 그 그림을 그린 듯한 까만 먹탄 자국이 잔뜩 묻어 있었단다. 이제 애니 유령은 맬러리에게 빙의되어 들어와 그림을 그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

외출에서 돌아온 맥스웰 부부는 깜짝 놀랐고, 맬러리는 자신의 몸에 애니가 들어와서 그렸다고 이야기를 했지. 미신을 믿지 않는 맥스웰 부부는 맬러리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맬러리가 다시 약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단다. 그래서 약물 검사도 실시해보았는데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어. 이런 일이 있다 보니 맥스웰 부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맬러리를 해고했단다.

맬러리는 에이드리언과 함께 그림들의 순서를 짜맞추면서 내막을 알아보려고 했어. 그런데 있잖니이 일은 결말부에 가서 이상하게 급반전된단다. 캐럴라인이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어. 충격적인 숨겨진 진실이 있었어. 이것까지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겠구나. 그 마지막 진실이 그동안의 떡밥들을 설명할 수 있어. 마지막 결론만 이야기하자만 권선징악이라는 것. 소설은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같이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권선징악의 잔잔함으로 끝이 났단다.

이 책은 있잖니, 한 편의 심령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단다. 이제 지은이 제이슨 르쿨락의 <블라인드 웨딩>도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몇 년 전, 나는 돈에 쪼들려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한 연구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책의 끝 문장: 나도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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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왜 파시스트는 폭력을 원할까요?” 에설은 수사적 질문을 했다. “바깥 힐스 로드에 있는 저들은 그저 소동꾼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저들을 조종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전략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날 경우 그들은 공공질서가 무너졌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법률에 의한 지배를 회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할 겁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상조치에는 노동당 같은 민주적인 정당을 금하고, 노조활동을 금지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구금하는 내용이 포함합니다. 바로 우리처럼 죄라고는 정부와 뜻을 달리하는 것 말고는 없는 평화적인 남녀를 말입니다. 제 말이 터무니없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것으로 들리십니까? , 독일에서 저들이 사용한 전략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어요.”


(285)

어머니는 같은 경로를 통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애썼잖아요.” 로이드가 말했다. “그리고 실패했죠.” 바로 지난 4월 노동당 여성 의원들은 남성 동료와 동일한 업무를 하는 여성 공무원들에게 동등한 임금을 보장하는 의회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했다. 법안은 남성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투표에서 질 때마다 민주주의를 포기해선 한 돼.” 에설은 단호하게 말했다.


(289)

그들은 영국 국기를 들고 있었다. 로이드는 궁금했다. 조국의 좋은 것을 모조리 파괴하고 싶어하는 자들은 왜 가장 먼저 국기부터 흔들어 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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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
서정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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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책을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몇 년 전에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읽고 프라다 칼로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안타까운 그의 삶과 독특한 미술세계로 인해 아빠의 뇌리에 각인된 그런 화가였단다. 그래서 언젠가는 프라다 칼로에 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당시에는 프리다 칼로에 관한 적당한 책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단다. 얼마 전에 다시 문득 프리다 칼로가 생각이 나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니, 아빠 취향에 맞는 책이 한 권 검색되더구나.

그 책이 바로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 줄 서정욱 님의 <프리다 칼로, 붓으로 전하는 위로>였단다. 간단히 책 소개를 읽어보고 괜찮을 것 같아서 구매하긴 했는데, 혹시 책이 어려우면 어쩌나 걱정을 했단다. 아무래도 아빠와 거리가 먼 미술과 화가에 관한 이야기잖니. 그런데 책은 자세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쓰여 있었어. 문장도 높임말로 말하듯 쓰여 있어서 마치 지은이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단다. 이 책을 통해서 프리다 칼로의 삶과 그림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여전히 프리다 칼로의 안타까운 사고와 그로 인해 고통을 점철된 삶은 여전히 안타깝구나.

 

1.

프리다 칼로는 1907 7 6 4녀중 셋째 딸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독일계, 어머니는 멕시코계였어.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라던 프라다 칼로는 의사를 꿈꾸며 공부하던 어느날. 그 어느날은 1925 9 17일이었어. 프리다가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프리다가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하는 끔찍한 중상을 입고 말았단다. 당시 병원에서는 프리다에 대해서 어렵다고 판단하여 치료도 하지 않았는데, 프리다의 남자친구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는 병원에 간절히 부탁을 해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극적으로 살아났다고 했어.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프리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없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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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순간과 사람이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 역시 그랬습니다. 그녀의 경우는 좀 독특합니다.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그 순간을 함께했던 유일한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프리다 칼로 하면 떠오르는 그 사고의 순간에 그 사람이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던 그 사고에서 프리다 칼로를 처음 목격한 의사는 그녀의 치명적인 부상을 보고 그녀를 포기하려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말렸던 사람도 그 사람입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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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가 극적으로 살아나기는 했지만, 자신도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자신의 꿈인 의사도 포기하고, 병상에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알레한드로의 부모는 프리다와 자신의 아들을 떨어뜨려놓기 위해 아들을 멀리 유럽으로 유학을 보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어. 프리다는 알레한드로를 붙잡기 위해 <벨벳 드레스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프리다가 그린 여러 자화상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그림 그림이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오늘 독서 편지에서 소개한 그림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들쳐보던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서 확인해 보렴.

프리다 칼로는 자화상도 많이 그렸고, 주변 인물들도 많이 그렸는데 자신의 남자 친구였던 알레한드로를 그린 <알레한드로 고메스 아리아스의 초상>이란 그림을 그렸어.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928년인데, 1952년이 되어서야 알레한드로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쭉 개인 소장으로 있다가 1994년 알레한드로가 죽은 이후 그의 집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하더구나. 프리다 칼로의 여러 작품들이 그렇게 나중에 공개되는 경우가 꽤 있었어.

 

2.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있으니,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멕시코에서는 국민화가로 알려져 있는 디에고 리베라라는 사람이란다. 프리가 칼로보다 21살이나 많고 이미 두 번이나 이혼을 했고, 바람둥이로 소문이 난 디에고 리베라. 주변에서 만류를 했음에도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을 한단다.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로부터 그림도 배울 수 있고, 치료비로 거금이 나가는 것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프리다 칼로는 디에고를 진심으로 사랑했단다.

==================

(126-127)

이런 모든 상황에도 프리다 칼로는 남편을 비하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참으면서 묵묵히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디에고 리베라. 시작

           디에고 리베라. 창조자

           디에고 리베라. 내 아이

           디에고 리베라. 내 남자 친구

           디에고 리베라. 화가

           디에고 리베라. 내 연인

           디에고 리베라. 내 남편

           디에고 리베라. 내 친구

           디에고 리베라. 내 어머니

           디에고 리베라. 내 아들

           디에고 리베라.

           디에고 리베라. 우주

           통합의 다양성

           왜 나는 그를 디에고 리베라라고 부르는가?

           그는 결코 내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자신의 것이다.

==================

….

디에고와 결혼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을 원했지만, 바람 피우기를 밥 먹듯이 하는 디에고와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안정된 삶이었을 거야. 심지어 디에고는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도 바람을 피웠어. 프리다는 디에고와 동생에 대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추억(심장)> 1937년에 그렸단다. 이 그림은 심장이 몸 밖에 나와 있는 그림으로 프리다 그림은 초현실주의와 보기 불편한 그림으로 화풍에 변해갔단다. <두 명의 프리다>라는 작품도 심장에 몸 밖으로 나와 있는데, 이 또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이었어.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한 남편의 계속된 이혼 요구로 1939년 이혼을 하게 되었고, 마음의 고통을 <숲 속의 두 누드>로 표현하였단다. (1939년 작)

프리다 칼로는 이런 마음의 고통을 위로 받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만났고 위로가 된다면 여자도 상관없었어. 한 때 동성 연애도 했다고 했어, 그리고 얼마 후 프리다 칼로는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은 다시 디에고 리베라였단다. 다시 합쳤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 이후에도 자주 별거를 했다는구나. 1940년 이후 본격적인 개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프리다 칼로의 걸작들이 나오기 시작했대. <가시목걸이와 벌새가 나오는 자화상> (1940년 작)도 이 즈음 그렸어. <디에고와 프리다>(1944년 작)는 프리다와 디에고가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림이래. 이 책에서는 각 그림들을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풀어주는 느낌으로 아주 좋았단다.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대부분 휘발되었구나.

1949년 디에고는 영화배우 마리아 펠릭스와 바람을 피웠는데, 프리다는 이를 <디에고와 나>라는 그림으로 대응을 했단다. 프리다 칼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유명한 미국의 팝가수 마돈나도 프리나 칼로의 대표적인 광팬이라고 하는구나. 마돈나가 보유한 프리다의 그림이 있는데 <나의 탄생>(1932)이라는 그림인데, 아빠가 생각하기에 프리다의 그림들 중에 가장 기괴한 그림인 것 같구나.

프리다 칼로는 한때 트로츠키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대. 트로츠키? 아빠가 알고 있는 러시아의 그 트로츠키 맞단다. 레닌이 죽고 나서 스탈린이 반대파를 거침없이 숙청할 때 해외로 쫓겨난 트로츠키. 당시 갈 곳이 없던 트로츠키를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던 이가 바로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였단다. 그런 트로츠키와 프리다 사이에 썸씽이 있었으니, 디에고 리베라도 아차 싶었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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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205)

트로츠키가 일반인이었다면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연인의 작품을 걸어놓을 수 없었겠죠. 하지만 그는 러시아의 국민 영웅이며, 블라디미르 레닌, 이오시프 스탈린과 더불어 소련 공산주의 혁명의 3대 거물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걸어놓는다면 비난할 사람이 없었죠. 추종자들이 워낙 많았으니까요. 프리다 칼로가 이 그림을 준 것은 어쩌면 그를 존경하던 디에고 리베라를 향한 보복 심리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배신했던 남편 디에고 리베라가 가장 존경하던 인물을 자신이 차버림으로써 남편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죠. 남편은 트로츠키를 대단한 혁명가로 평가했고, 그가 소련에서 축출당해 갈 곳이 없을 때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큰 힘을 쏟았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도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부인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부인의 불륜 상대가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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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리다는 트로츠키와 사랑은 금방 끝내고 헤어지면서 <레온 트로츠키에 바치는 자화상>(1937년 작)을 그려서 트로츠키에게 주었대. 이 그림은 보기 드물게 큰 그림으로 61x76cm나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나이차이가 28살이나 난다고 하는구나. 트로츠키는 헤어진 다음에도 끝까지 구애를 했지만 프리다는 끝내 받아주지 않았대. 아빠가 트로츠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좀 구차해 보이는구나.

 

3.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 이후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았고, 그 후유증으로 임신도 몇 번을 실패하고 결국은 아이를 갖지 못했대. 프리다 칼로는 아기를 엄청 갖고 싶었다고 하는데, 참 불쌍하구나. 유산을 하고 나서 <헨리포드 병원>(1932년 작)을 그렸는데, 사연을 모르고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림이지만, 프리다 칼로의 사연을 알고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는 그림이란다. <나와 나의 인형>(1937년 작)은 세 번 유산을 하고 절망과 좌절의 시기에 그림이래. 세 번의 유산을 하고 인형을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 인형과 함께 있는 자신을 그림 그림이란다. 인형이 아니라 아기와 함께 있는 그림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크고 작은 수술들을 계속 해왔어. 1950년 건강이 또 악화되면서 다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 수술은 오히려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대. 그러다가 파릴 박사라는 사람의 수술로 몸이 좀 회복되었대. 그래서 그 고마움을 전달하기 위해 <파릴 박사의 초상화가 있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그렸단다. 이 그림을 보면 좀 독특하단다. 파릴 박사의 초상화를 그리는 프리다 칼로의 모습이 있는데, 평범한 자화상은 아니었어.

프리다 칼로의 그림 몇 작품을 간단히 이야기를 해볼게. 자세한 설명은 책을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구나. <작은 칼자국 몇 개>(1935년 작)이라는 그림도 그냥 보면 공포스럽고 기괴한 그림이란다. 이 그림은 남자가 여자를 칼로 죽인 사건을 신문 기사에서 보고 그린 그림이래. 아무래도 그 여자가 프리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해서 공감하고 그린 그림일 거라고 했어. <>(1940년 작)은 늘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보니 달콤한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이었던 프리다 칼로가 그린 그림이란다.

죽을 때만이라도 자다가 평온히 죽는 것을 희망하는 그림. <생명의 꽃>(1944년 작)은 꽃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꽃을 상상하지만, 프리다 칼로의 꽃은 붉고 기괴한 꽃이었단다. 자기만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는 그림으로 그림 속의 꽃이 남녀 생식기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단다. <모세>(1945년 작)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모세와 일신교>를 읽고 감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야. 복잡하고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그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초현실주의 작품이야. <마르크스는 병자를 건강하게 하리라>(1954년 작)은 공산주의자였던 프리다 칼로가 마르크스를 추앙하고, 미국 자본주의를 멸시하는 그림이란다.

<인생이여 만세>(1954년 작)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으로 죽기 8일 전에 완성했다는구나. 프리다의 그림에서 보기 드문 정물화로 먹음직스러운 수박들을 그린 그림으로 프리다의 작품들 중에 가장 보기 편한 그림이 아닌가 싶구나. 평생 자신의 고통을 그림에 담은 것 같은 그림들을 그리다가 원래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 같은 마지막 그림. 그림 제목도 찬란한 <인생이여 만세> 예전에 민태기 님의 <판타레이>라는 책에서 영국의 락그룹 콜드플레이가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작품에서 자신들의 노래 제목을 따왔다고 했는데 그 그림이 바로 <인생이여 만세>이고 스페인어로 <비바 라 비다(Viva la Vada)>이다.

오늘 독서 편지는 프리다 칼로는 죽기 얼마 전 남긴 일기로 맺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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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죽기 얼마 전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난 건강하게 잘 탈출했다. 나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절대 어기지 않을 생각이다. 디에고 리베라에게 감사하고, 나의 테레에게 감사하고, 그라시 엘리타, 그리고 딸에게 감사하고, 주디스에게 감사하고, 이사우아 미노에게 감사하고, 루피타 주니에게 감사하고, 파릴 박사와 폴로 박사와 아르만도 나바로 박사와 바르가스 박사에게 감사한다. 나 자신에게도 감사한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모든 이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를 위해 삶을 지탱하려는 나의 엄청난 의지에도 감사한다.

기쁨, 인생 만세. 디에고 리베라 만세. 테레 만세. 나의 주디스 그리고 내게 놀라우리만치 잘해주었던 모든 간호사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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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하는 일마다 너무 잘 풀려 세상 걱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책의 끝 문장: 유언은 그녀의 생전 이루지 못한 소원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프릴다 칼로는 다다이즘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927년이라면 새로운 미술 사조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때였고, 장래에 화가가 되기로 한 프리다 칼로는 그런 것들을 유심히 보고 따라 하려 했죠. 그중 하나가 이 실험 작품(미구엘 리라의 초상)입니다.
먼저 다다이즘이 무엇인지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다이즘은 설명하기가 까다로운 미술 사조입니다. 설명을 확실히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다다이즘이 아닙니다. 알쏭달쏭하시죠? 다다이스트들이 한 말을 보시죠.
"우리가 다다라고 부르는 것은 공허에서 비롯된 엉뚱한 짓거리다." – 후고 발
"다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 리하르트 웰젠베크
- P40

프리다 칼로는 평생 엄청난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아파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남자든 여자든 육체적 관계를 통해 고통을 위로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더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합니다. - P102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를 무척 자랑스러워했고, 상상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사랑도 그 이상이었고요. 그것은 둘의 행동이나 편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이런 생각까지 한 것입니다. 자신과 디에고 리베라를 아예 반씩 잘라 붙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죠. 한순간도 떨어지지 못하게 말입니다. - P119

<도르시 헤일의 자살>이 이렇게 그려진 것은 프리다 칼로 입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녀에게 고통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을 잊기 위해서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시간을 두고 희석시키는 것이죠.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프리다 칼로의 방식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양편에 오해를 낳았던 이 그림은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가 현재는 익명으로 기증되어 피닉스 아트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 P211

조금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받는 것이죠. 또 한 번의 수술로 모든 증상이 해결된다면 다시 받을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자꾸 받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프리다 칼로는 사고 이후 32번 이상 수술을 받았습니다. 39살이 되던 1945년에도 프리다 칼로는 또 한 차례 척추 수술을 받게 됩니다. ‘혹시나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물론 잘못 되면 지금보다 더 나빠질 위험도 있었지만, 이전 수술 이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았고, 아직은 젊으니 기대를 해본 것이죠. - P281

1944년 프리다 칼로는 한 평론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 가지 이유로 나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어린 시절 사고 당시 몸에 흐르던 피를 보았던 생생한 기억이고, 또 하나는 탄생, 죽음, 그리고 생명을 이끄는 끈에 관한 나름의 생각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엄마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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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뒤쪽으로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폭풍>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하고 셰익스피어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616년 몸져누웠다. 그의 생애와 함께 흘러왔던 모든 것, 그가 이룩했던 모든 것이 절대적 단절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먼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한번 쓰고 고치는 법이 없었던 창작과 달리, 고칠 때마다 새로 작성한 유서가 무려 134통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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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이 배스를 건설한 것은 기원후 60년이었으니, 그들의 열정은 거의 2천 년의 세월을 건너와 나를 불가항력적인 감탄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대략 기원전 50년부터 5세기 동안 브리튼을 지배했다. 그들이 로마의 군대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산과 들과 강을 피로 물들였다. 브리튼인들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로마제국은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샘의 족장들은 제각기 왕국을 건설하여, 브리튼에 일곱 개의 왕국이 생겨났다. 이른바 앵글로 색슨 7왕국이다. 브리튼 사람들이 로마에 구원을 요청한 것을 보면, 그들은 로마제국에 대해 공포와 존경이 뒤섞인 양가적 감정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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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적 특성, 즉 외적 감각에 호소하기보다는 내적 감각에 호소하는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셰익스피어는 언제나 우리의 내적 감각을 향해 말한다. 이것을 통해, 상상의 그림 세계가 활성화되며, 완벽한 효과가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떠한 생각도 덧붙일 수 없다. 정확하게 여기에 모든 것이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환상의 바탕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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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는 자신을 순례자로, 줄리엣을 성자로 비유하며 손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그가 사용하는 종교적 이미지들은 말 그대로 베일일 뿐이고, 이들의 행동과 말에는 자연적 세계관이 더 깊이 침투해 있다. 이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그들의 욕망은 자연의 의지 또는 본성일 뿐이다.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시대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던 이 세계관은 심리적 층위와 제도 및 관습적 층위 사이의 충돌을 조장하며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역설과 모순을 주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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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의 사랑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또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두 남녀의 사랑을 참담한 역사적 현실 속에 던져두고 냉정하게 관찰했다. 이러한 태도는 비극이라는 미학적 전형까지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투철한 현실주의와 빛나는 실험 정신이 런던의 극장가에서 환영받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난파될 수밖에 없는 사랑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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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말을 들어보자.

셰익스피어의 대담한 말장난, 비유와 생략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큼 위협적이다. 사회적 안정에 대한 그의 신념은 발화되는 바로 그 언어에 의해 위협받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에게는 글쓰기의 행위 자체가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불화하는 인식론(또는 지식이론)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몹시 당혹스러운 딜레마이며,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다수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들을 이해하는 데 바쳐졌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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