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민주화하는 흉내라도 내야 유신 잔당도 희망이 있지. 18년 동안 지반을 뚫을 만큼 깊은 뿌리를 내렸겠지만 역사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야. 오늘 공화당이 계엄령 철폐안 통과에 동의하기로 한 것만 봐도 역사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알 수 있어. 계엄령이 철폐되고 자유선거가 실시되면 이제 군인들의 천하도 끝이라. 온 나라를 핫둘핫둘 구령에 맞춰 움직이려던 군인들은 이제 산중 막사로 돌아가고, 이제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민간인이 민간인을 지도자로 뽑는 진정한 민주의 시대가 열리는 거지. 그동안 거적때기로 엉성하게 가려놓은 죄상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 아마 이 땅에 발붙이고 살기는 어려울걸. 그걸 김종필이 모르지 않을 텐데도 울며 겨자 먹기로 저렇게 신민당이 제안한 법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니 얼마나 통쾌한가? 이것이 바로 역사의 힘이라. 해일을 수도꼭지로 막을 수 있겠나? 아무리 간교하고 뿌리가 깊어도 이번에는 버티기 어려울 거라. 비록 거리로 뛰쳐나가지는 않지만 최루탄 냄새도 꽃 내음 같고 시위의 함성이 사랑 노래로 들리는 것이 내 심경이다.”


(255)

쿠데타가 또 일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 그동안 권력은 군부의 손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어. 권력자에게나 국민에게나 독재는 지겹도록 신은 낡은 구두 같은 거란 말이야. 반면 민주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새 구두지. 언제까지나 낡은 구두를 신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장은 새 구두보다 편안해. 군부는, 우리에게 다시 헌 구두를 내밀면서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신으라고 말할 거야. 지금 민주의 희망을 꺾고 다시 군부독재의 시절로 돌아가도록 강압한다면 사람들은 새 구두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새 구두를 신고 발뒤꿈치가 쓸리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할 테지.


(259)

선배의 눈빛을 보자마자 못마땅해하는 거 알 수 있었어요. 사실 나, 선배의 그런 눈빛 때문에 선생님이 되려는 꿈도 접고, 평생 구겨진 바지만 입고 살겠다고 결심했던 적도 있었어요. 기억나요? 영등포의 인쇄소에 선전 문건 초안을 받아 들고 갔던 날, 내가 면바지를 다려 입고 왔다고 선배는 화를 냈잖아요. ‘도대체 정신이 있는 얘야? 아까 다섯 시 전에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지금 도대체 몇 시야? 다들 양치질도 못하고 며칠씩 날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는데 너는 집에 가서 바지나 다려 입고 왔구나!’ 하고 소리를 질렀었지요.”


(262)

지금도 나는 가끔 그런 질문을 해요. 사람들의 피가 담벼락을 적시고 하수구로 흐르는 그날이 온다면, 나는 과연 거리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이제는 주변에 동지들도 없으니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더욱 내밀한 나 자신의 응답에 귀 기울일 수 있지요. 나는 교사다. 교사가 교단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거리의 핏물을 외면한들 아무도 나를 욕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 놓고 대답해보아라, 하지만 나의 내면은 벙어리가 되었는지 대답을 하지 않네요. 눈을 꾹 감고 붉은 땀만 흘리는 돌부처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네요. 하루라도 나의 갈 길을 확신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심 없이, 두려움 없이, 흔들림 없이, 광화문 앞의 해치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온몸에 휘감고 담대하게 내가 걸어야 할 길을 갈 수 있다면 말이에요.


(337)

문득, 지금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들도 아버지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버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절대적인 권위가 오늘날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애써 생각해낸 위로의 말이 엄마의 병을 낫게 하지도 못하고,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믿었던 할머니가 저렇게 한심한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책임지지 못하고, 아버지가 한 번도 그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끔찍한 무력함일 것 같았다.


(349-350)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단다. 네 힘으로 당장 고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네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잘하는 거야. 언젠가 박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지금 해답이 될 수 없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만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내가 커서 할 일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벌써 중요한 시간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 네 식구가 한 가족의 울타리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손수건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곳에 선생님이 영상이 맺히기를 기도하며 멀리 있는 선생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선생님과 나의 영혼이 어디론가 서로 통하고 있으리라고 믿는 것, 먼 곳에서라도 나의 외침을 들은 선생님이 답을 가르쳐주실 것이라는 믿는 것,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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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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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고전 소설 하나 이야기할게. 너무나 유명한 작가 찰스 디킨스의 너무나 유명한 작품 <위대한 유산>이라는 책이란다. 고전 소설들은 너무나 유명해서 작가와 제목들은 알고 있는데, 정작 읽어본 것은 많지 않는 것 같아. 아빠도 가끔씩 고전 소설을 읽고는 하지만 읽지 않은 책들이 훨씬 많단다. 예전에는 고전 소설이라고 하면 시대도 다르고 공간도 달라서 진입장벽이 높다고만 생각했거든. 그런데, 하나둘 찾아 읽다 보니 의외로 재미있는 고전 소설들이 많더구나. 하기야 지금은 고전 소설이지만 당대에는 베스트셀러였을 테니 재미없지 않고서야 베스트셀러가 되기 어려웠겠지. 그래서 예전보다는 고전소설에 대한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진 것 같다.

찰스 디킨스는 참 많은 소설들을 쓰고, 그의 소설들을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단다. 대표작이라고 손꼽을 만한 작품들이 많은데, 아빠는 이번에 <위대한 유산>이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위대한 유산>아라고 하면 오랜 전에 기네스 펠트로우와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했는데, 아빠는 그 영화는 보지 못했단다. 그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줄거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해서 더 좋았단다. 그래서 반전을 즐길 수 있었지. <위대한 유산>은 유명한 작품답게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했단다. 아빠는 열린책들에서 두 권으로 출간한 책으로 읽었어. 오늘은 먼저 <위대한 유산> --권을 이야기해줄게.

 

1.

주인공인 필립 피립. 어렸을 때부터 핍이라고 불렀어. 핍은 어렸을 때 부모님과 다섯 형제를 잃고 20살 차이가 나는 누나와 매형 조 가저리가 키우다시피 했어. 누나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일찍 잃고 어린 동생 핍을 키워서 그런지 생활력 좋은 여장부 스타일이었단다. 매형 조 가저리는 대장장이로 덩치는 엄청 크지만, 순박하고 착한 성품의 사람으로 핍을 친자식처럼 잘 대해주었단다. 어렸을 때 핍은 어느날 족쇄를 차고 감옥을 도망친 탈옥수를 만났는데, 그 탈옥수가 겁을 주면서 아무도 몰래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협박을 했단다. 어린 핍은 무서워서 아무도 몰래 먹을 것을 몰래 숨겨서 그 탈옥수를 가져다 주었어.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도 않았는데, 누나 몰래 먹을 것을 몰래 훔쳐서 탈옥수에 갖다 준 것에 대해 어린 핍은 죄책감을 갖고 누나한테 들통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지. 더욱이 그 음식들을 누나가 초대한 사람들의 오찬에 쓰일 음식이었거든..

그런데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왔어. 탈옥수들을 잡으러 가는데 수갑이 고장이 나서 수리를 요청했어. 대장장이 조 가저리가 그 수갑을 수리해 주었고, 사람들은 점심식사보다 탈옥수 잡는 것이 더 궁금해서 군인들을 쫓아갔단다. 다행히 핍이 음식을 빼간 것은 들통나지 않게 되었어군인들이 탈옥수들을 발견했을 때, 탈옥수 둘은 서로 싸우고 있었단다. 서로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가 싸우다가 쫓아온 군인들에게 잡히고 만 거야.. 덤 앰 더머 같기도 하구나.

1년이 지나고 조 가저리의 숙부 펌블추크의 소개로 핍은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 일이라고 하지만 미스 해비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그런 일이었단다. 미스 해비셤의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미스 해비셤이라고 하지만 나이는 지극한 노인이었고, 물려받은 저택에서 혼자 지냈어. 저택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지저분했어. 미스 해비셤은 오래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거실도 결혼식장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되어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어. 어떤 사연이 있던 것일까. 그건 좀 있다 이야기해줄게.

미스 해비셤의 저택 이름은 새티스 하우스였단다. 새티스 하우스에 도착하니 핍과 같은 또래의 에스텔라라는 소녀가 핍을 안내해 주었단다. 에스텔라는 핍을 무시하는 듯 했고 약간 쌀쌀하게 대했어. 미스 해비셤의 첫인상은 병색이 완연해 보였고 마치 시체 같은 모습이었어. 미스 해비셤은 핍에게 이야기하기를 자기가 보는 앞에서 놀라고 했는데, 혼자 할만한 것이 없다고 하니 에스텔라를 불러 함께 놀라고 했어. 그래서 핍과 에스텔라는 카드 놀이를 했단다. 에스텔라와 미스 해비셤은 무슨 사이인지 잘 몰랐단다. 핍은 6일 뒤에 또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집에 오자 펌블추크와 누나의 질문 공세를 했고 핍은 대부분 거짓으로 대답했단다. 나중에 조 가저리에게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상세히 해주었어.

두 번째 방문세티스 하우스에는 낯선 손님들이 많았어. 핍은 미스 해비셤이 방안을 걷는 것을 도와주었어. 얼마 후 에스텔라는 손님들을 방으로 데리고 왔는데, 손님들은 모두 미스 해리셤의 친척들이었어. 그날은 미스 해비셤의 생일이었는데, 친척들은 생일 축하보다 미스 해비셤의 재산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이었어. 나중에 해비셤이 죽고 나면 그의 재산들을 상속받을 생각으로 왔던 거야. 친척들은 모두 가고, 저택을 둘러보면 핍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낯선 어린 신사를 만났어. 그런데 그 낯선 어린 신사가 핍에게 결투를 걸어와 싸웠는데, 핍이 이겼고, 어린 신사는 상처를 있었어. 소심했던 핍은 또 이것 때문에 한참을 걱정했단다. 핍에 대충 어떤 성격인지 알겠지?

세 번째 방문. 이번에는 어린 신사는 보이지 않았어.. 미스 해비셤은 조 가저리와 함께 오라고 했는데, 미스 해비셤은 그 동안 핍의 보수로 25달러를 주면서 이제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25달러는 가저리 부부에게는 엄청 큰 돈이었단다. 이후 핍은 조의 대장간에서 도제로 일하게 되었어. 그래도 핍은 가끔 미스 해비셤의 안부를 물으러 새티스 하우스에 갔는데, 아마 핍이 짝사랑하는 에스텔라를 보러 간 것 같았지. 그런데 어느날 에스텔라가 보이질 않았는데, 알아보니 에스텔라는 외국에 있는 숙녀학교에 갔고, 지금은 다른 친척인 세라 포켓이라는 사람이 미스 해비셤을 보살피고 있었단다.

 

2.

어느날 괴한의 공격으로 누나가 머리를 크게 다쳤어.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어. 비디라는 사람이 보살펴주게 되었어. 그래서 핍은 비디와 친구가 되었고, 자신의 비밀이었던 에스텔라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비디에게 이야기를 했어.

4년이 흘렀단다. 어느날 변호사 재거스 씨가 찾아왔어. 어떤 익명의 후원자가 핍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겨 주기로 했다면서 말이야. 그리고 유산뿐만 아니라 생활비나 신사 수업에 필요한 경비도 지원해 준다고 했어. 그런데 누가 주는지 물어보지도 말고 짐작 가는 사람이 있어도 겉으로 말하지 말고 신사 수업을 받으라고 했단다. 핍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변호가 재거스 씨가 후견인을 맡기로 했어. 익명이라고 했지만, 주변에 알고 있는 부자라고는 미스 해비셤뿐이고, 미스 해비셤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익명의 후원자는 당연히 미스 해비셤이라고 생각했어.

핍은 조의 도제 생활을 그만두고 신사수업을 위해서 런던으로 가게 되었단다. 핍은 런던으로 가기 전에 미스 해비셤을 찾아가 런던으로 떠난다고 인사를 했어. 그녀가 후원자이기 때문에 인사를 하러 갔던 것이지만 모른 척하라는 약속 때문에 미스 해비셤에게 인사만 하고 나왔단다. 런던에서 재거스 변호사를 만나서 런던의 임시 거처를 소개받았어. 그곳은 허버트 포켓이라는 미스 해비셤의 친적집이었는데, 알고 보니 허버트 포켓은 몇 년 전 새티스 하우스에서 자신과 결투를 했던 어린 신사였어. 둘은 그 결투를 잊은 듯 금방 친해졌단다. 그리고 허버트를 통해서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미스 해비셤의 아버지는 엄청 부자였는데 미스 해비셤은 무남독녀였단다. 미스 해비셤의 어버지가 바람 피워 낳은 혼외자가 있었는데, 말썽만 부리고 해서 그에게는 유산을 거의 주지 않고, 미스 해비셤이 재산 대부분을 상속 받은 거야. 미스 해비셤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결혼식 당일 신랑은 나타나지 않았단다. 사기꾼이었던 거야. 하지만 미스 해비셤은 그 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 결혼식날 장식했던 그대로 손대지 않고 두었고, 시계도 그날 멈춰진 채 오늘날까지 이어졌단다. 미스 해비셤도 그날 이후 외출도 안하고 집에서만 지냈던 거야. 그리고 에스텔라는 입양아로 들이게 된 거지.

핍은 해머스미스에 있는 미스 해비셤의 친척인 메슈 포켓의 집에서 머물면서 메슈 포켓에게 신사 수업을 받았단다. 이렇듯 런던에서 생활이나 신사 수업을 모두 미스 해비셤의 친척들과 연루되다 보니, 익명의 후원자는 미스 해비셤이 확실했다고 생각했지. 후견인인 재거스 씨의 사무실에 자주 들렀는데, 그곳 사무실 직원들과도 친하게 지냈고, 허버트 등 새로 사귄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단다. 어느날 조 가저리가 방문했는데, 핍의 마음 속에 어느덧 자신은 다른 신분의 사람이라는 생각의 뿌리가 내리고 있었어. 조의 방문을 그리 반기지 않았어. 조도 핍에게 거리를 두고 핍에게 신사분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어. 그리고 에스텔라가 돌아왔다는 소식도 전해주었어. 핍은 얼마 후 미스 해비셤의 새티스 하우스를 방문했단다. 안부 인사차 들렀다고 했지만, 사실은 에스텔라를 보러 온 것이었지. 에스텔라는 더 성숙해졌고, 더 예뻐졌단다. 하지만 에스텔라는 여전히 핍을 좀 차갑게 대했지.

여기까지가 <위대한 유산> --권의 대략적인 이야기란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고전이지만 술술 재미있게 잘 읽혔단다. –-권에서는 핍에 과연 에스텔라와 잘 될지 궁금하고, 이 소설의 제목을 왜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으로 지었는지 단서가 나오는지 궁금해하면서 -권 책을 덮었단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 아버지의 성은 피립이고 내 이름은 필립인데, 유아 시절 내 혀는 둘 다 핍이라고 발음했지 그보다 더 길거나 더 분명하게 발음할 수 없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로 간에 속내를 터놓았다는 사실로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으며, 촛불을 끄고 난롯불을 보충하고 문을 잠근 뒤 웝슬 씨와 덴마크를 찾아 길을 나섰다.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항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던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라.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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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이제 힘든 일은 다 끝냈다고 제 몫을 다 해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한 가지 대답만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보내야 한다. ‘앞으로 살면서 무얼 해 먹고 살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는 데 그 아까운 학창시절을 다 보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인생의 초반에는 부모님의 선택으로 내 모든 인생이 돌아간다. 공립유치원으로 보낼까, 영어유치원으로 보낼까? 학교는 발레를 보낼까? 아니면 중국어나 영어학원다 우리에게 좋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선택들이다. 우리는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하나도 모른 채.

 

(21-22)

나는 계속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이유로,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역사상 교육을 가장 많이 받았지만 역사상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역사상 가장 많은 카페인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불안정하고 우울하고 콤플렉스가 많은 세대라는 이유로, 살짝 정신이 나간 채로 새벽 3 27분이 되면 이력서를 여기저기 보내기 시작했다.

 

(95)

사랑이 우리의 인격을 강화시키듯 증오도 우리를 강인하게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더 나쁜 사람이 된다. 모든 감각이 살아나면서 사소한 부분들을 감지하는 재능도 예리해지고, 감정도 솟구친다. 일종의 활홀경인 셈이다. 증오 덕분에 나는 악에 대한 무한한 재능을 발견했다. 나의 관찰력은 날이 갈수록 더 날카로워졌으며, 나의 말은 대량 살상 무기로 둔갑했다. 원하지 않아도 증오심은 사람을 변하게 했다. 예전에는 내 감정 제어기가 어떤 상황에서든 돌아갔지만 이제는 먹통이 되어버렸다. 비난이나 트집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옥상에 숨어서 홀로 바나나를 먹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대꾸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꾸 참고 넘기다보면 안에서 뒤틀린 것들이 살갗 밑에서 욱신거리게 된다. 하지만 계속 대응하지 않기로 한다. 그 사람과 똑 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사실 될 수도 있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223)

그렇기는 하지만, 누구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스물여섯 살이 되어 있으면 자신이 젊음을 잃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스물여섯 살부터는 카나리아제도 주민 전용 승차권을 살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카나리아 주민이 될 수 없다는 뜻인가? 젊음과 주민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인가? 나는 아직 28유로로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를 타고 다니지만, 스물여섯 살이 되는 순간 35유로를 내야 한다. 하여간 왜 청년할인은 있는데 성인 할인은 없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 또래들 대부분이 갈 곳이 없어 부모님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 빌어먹을 경제적 상황에 사회적인 젊음은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끝난다니, 말이 되는가? 하긴 휘발유 가격이 올라도 자기는 항상 20유로어치만 넓으니 상관없다는 멍청이도 있으니까.

 

(229-230)

우리는 정말 거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어.” 나는 청중 두 명을 향해 말을 쏟아냈다. “누가 깔리든 말든 바퀴는 절대 멈추지 않아. 나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어. 내가 바퀴에 깔리면 누군가 나를 대체하겠지. 우리가 미쳐버릴 때까지, 심지어 자본주의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우리를 세뇌할 때까지 자본주의는 우리를 피폐하고 만들고 우리의 생명까지 빨아먹는 아주 병든 시스템이라고.”

 

(246)

할머니집의 벽은 내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초반의 많은 이야기를 간직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몇몇 기억들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흑역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에피소드, 사춘기 때의 경멸과 오만함을 떨쳐버리는 잊는 방법을 익혔다. 손님이 올 때마다 축 처지던 내 어깨도 지워버렸다. 문제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할머니가 머리를 어떻게 빗었는지, 할머니 몸에서 어떤 향이 났는지, 옷차림은 어땠는지까지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뚜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할머니하면 얼굴 생김새,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많이 우시던 모습, , 커피를 무척 좋아하시던 모습만 생각난다.

 

(309-310)

어느 날 스스로를 하나의 회사라고 간주해버린다. 당신의 인생 드라마에선 당신이 최고경영책임자이자 최고운영책임자이자 최고재무책임자다. 그러니 당신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항상 느끼며 인생에서 단 1분이라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면 안 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돈을 아끼고, 당신의 재능을 더 잘 이용하고, 업무를 다양화하고, 모든 면에서 결과를 최적화해야 한다. 이 모든 게 의미하는지, 당신이 인생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당신을 내쫓겠다고 위협할 직원도 없으니까. 그저 당신은 샤워를 마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그 나이에 마땅히 이루었어야 할 모든 것들, 친구들과 달리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씩 갉아먹게 될 뿐이다. 그러다 귀에서 시계가 재깍재깍 소리를 내는 게 느껴지겠지.

 

(361)

어김없이 돌아온 쓰레기 같은 월요일, 이메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는 거지 같은 아침 미팅. 회사생활은 이 두 가지의 반복이었다. 그 와중에 복숭아색 정장을 입은 마카레나는 내 머리를 드럼세탁기처럼 핑핑 돌게 했고, 내가 거짓말할 걸 알면서도 멍청한 질문만 던졌다. 모두가 진실을 요구하면서, 막상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면 그 진실을 넘기지 못해 캑캑대는 꼴이 우스꽝스러웠다. “이건 너무 쓰고, 너무 짜잖아. 설탕을 한번 넣어봐하며 진실을 가장한 거짓을 원했다. 여기서 계속 일하려면 내가 얼마나 더 당신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하느냐고 마카레나에게 묻고 싶었다. 이제 눈에 뵈는 것도 없으니까.

 

(392-393)

예전에 셀리아 비얄로보스가 텔레비전에서 젊은이들은 지금 당장 노후를 위해 저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세대가 공적연금을 제대로 받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적어도 한 달에 2유로, 즉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갑 살 돈을 아껴 저축하라는 얘기였다. 그 충고를 듣자마자 그녀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진정한 재테크의 천재이자 캔디크러시 게임의 달인이시여, 왜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 했던 걸까요? 제가 지금부터 매달 2유로씩 저축하면, 65세나 68세가 되었을 때 엄청난 갑부가 되어 연금이 아예 필요 없겠죠?”라고. 언제 은퇴할지 누가 알겠는가. 몇 달 후엔 은퇴 연령이 70세로 늘어날 수도 있는데. 어쨌든 은퇴한다고 해도 완전히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슈퍼마켓 계산원이나 주방 보조, 배달앱 기사 일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셀리아와 함께 토크쇼에 참석한 이들 중 단 한 명도 그녀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로 우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왜 집을 사고 가정을 이루지 않으냐고 비아냥거리는 꼰대들이다. 베이비 붐세대 놈들, 너네랑 사정이 다르다고.

 

(402-403)

단골 바에 갔다가 술 취한 놈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나가고 싶으니 비켜달라고 말하지 못했을 뿐인데, 그런 일 때문에 그 가게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뿐인데, 왜 내가 여자들은 꼭 단체로 화장실에 가더라하는 같잖은 농담을 들어야 할까?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 자기 욕망을 채우고는 나를 우물이나 도랑 혹은 그가 나를 발견했던 곳에 버릴까봐 불안해하지 않고, 이른아침에 음악을 들으며 조깅할 권리는 나한테는 없는 걸까? “엄마, 걱정 마. 지금 집이야하며 엄마를 안심시키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412-413)

좋은 남자들은 여자 말에 토를 달거나 여자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가 거실의 소파와 테이블 사이를 빗자루로 쓸 때 발을 들어준다. 식기세척기 안에 있는 접시를 정리하기도 한다. 가끔 저녁식사를 준비할 때도 있다. 그들은 여자를 자기들 밑에 있는 존재를 여기지 않는다. 결코 여자를 해치지 않을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회사 임원 열 한 명 중 아홉 명이 남자인 이유를 숙고하진 않는다. 그들은 인생에서 얻은 모든 기회가 자기가 필사적으로 일한 결과고, 여자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한 건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그들을 싫어하진 않는다. 그냥 그런 남자들을 보면 지긋지긋하다. 선의가 반드시 미덕과 장점이 되지는 않으니까.

 

(447)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 예를 들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촌이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내가 심한 우울증에 걸리더라도, 몸이 아프더라도, 계속 일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의 삶은 무슨 일이 있어도 노동만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듯이 흘러간다. 사람보다, 다른 것들보다 일이 더 중요한 셈이다. 가장 두려운 점은 내가 다른 것들을 우선시하며 노동을 그만둘 경우, 나를 대체할 사람은 차고 넘친다는 것이며, 나 또한 그걸 알고 주저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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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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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칠레 작가 중에 한 명인 루이스 세풀베다의 짧은 소설을 한 편 이야기해줄게.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라는 책인데 동화와 소설 중간쯤 되는 그런 이야기란다. 제목을 보면 고래를 통해 바다를 보호하자는 내용의 책으로 예상되는데,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달빛 고래란다. 오래 전 고래들은 사람들과 어울려 도와가며 지냈단다. 칠레 해변에서 지내는 라프켄체라는 부족도 그런 부족들이었어. 그들은 바다와 바다에 사는 생명체들이 그들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어. 라프켄체의 전설 중에 사람이 죽으면 트렘풀카웨라는 고래들이 나타나서 죽은 이들을 수평선 너머의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런 라프켄체와 함께 지내던 달빛 고래는 새로운 인간들을 보는데 그 인간들은 라프켄체 부족과 달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았어. 오직 인간들만 자기들까지 싸우는 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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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

인간들이 바다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만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은 정어리도 다른 정어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느림보 거북이도 다른 거북이도 공격하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상어도 다른 상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자기와 비슷한 이들을 공격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는 것 같다. 인간들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니 영 기분이 언짢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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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고래 이야기로 가득해서 읽다 보면 소설 <모비 딕>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자주 떠올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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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7)

꿈속에 나타난 장소는 우리 고래들이 모두 라프켄체 사람들을 따라가게 될 바로 그곳이었다. 해님의 보금자리를 둘러싼 바다는 언제나 투명할 정도로 맑고 고요했다. 오징어들이 새까맣게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데다, 거센 파도로 일지 않아 짝짓기하기에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게다가 주변에 어떤 위협도 없어서 참고래, 향우고래, 그리고 남방긴수염고래가 아주 작은 밍크고래 옆에서 자신의 웅장한 몸을 한껏 과시하기에 딱 좋았다. 그리고 바다에는 작은 생물체들이 풍부해서 대왕고래와 혹등고래, 그리고 모든 종류의 수염고래들이 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고래들이 입만 벌리고 있으면 엄청난 양의 물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물을 다시 뿜어낼 때 수염이 맛있는 크릴새우만 걸러 내 목구멍에 남겨 주기 때문이다. 등이 은빛인 돌고래와 일각돌고래는 바다 밑 모래 속에 숨어사는 넙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였지만, 볼썽사납게 싸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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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달빛 고래는 고래잡이 배와 만나게 되는데, 그 고래잡이 배가 암컷 고래와 새끼 고래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돼. 이에 화가 난 달빛 고래는 그 고래잡이 배를 전복시키고 사람들을 물에 빠뜨렸어. 이것은 마치 소설 <모비 딕>의 모비 딕처럼 말이야. 이 소설에서도 사람들은 모비 딕의 이름을 본 따 달빛 고래를 모차 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단다. 달빛 고래를 잡으면 거금의 포상금도 걸렸어.

어느날 달빛 고래는 고래잡이 배들을 다시 만나서, 이번에는 옆구리에 작살을 맞는 중상을 입었어. 하지만 달빛 고래도 질 수 없었지. 지느러미로 고래잡이 배를 두 동강 내고 사람들을 공격했단다. 한번 꽂힌 작살은 뺄 수 없었기 때문에 작살은 이제 달빛 고래의 몸이 되었단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줄 텐데,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그보다 이제 그 작살 때문에 사람들이 달빛 고래를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어. 하지만 달빛 고래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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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그래서 나는 등에 아홉 개의 작살이 꽂힌 채, 다른 고래잡이배를 찾으러 넓은 바다를 나갔다. 인간들이 무서워 벌벌 떨며 모차 딕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달빛 향유고래인 나의 임무는 그들을 쫓아 바다에서 몰아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인간들을 계속 쫓아다녀야 할 저주받은 운명.

,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의 힘.

, 바다의 가차 없는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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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고래잡이의 공격으로 달빛 고래의 몸에는 작살이 하나둘 늘어났단다. 그가 20년이 지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의 몸에 백 개 이상의 작살이 꽂혀 있었다는 하더구나. 그렇게 이야기를 끝이 났단다. 인간으로써 이 책을 읽으면서 고래들에게, 많은 생명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단다.

고래는 지능이 상당히 높은 동물들로 알려져 있단다.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지 않는 인간들을

고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능이 높은 고래의 입장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자신들의 이기심에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어리석은 종이라고 생각할 것 같구나. 그리고 그들은 이미 기후 변화에 대한 대비책도 다 마련해두어 결국 인간이 멸종한 후에도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

이 책 뒤편에는 옮긴이의 말이 실려 있는데, 나중에 너희들이 이 책을 읽게 되면 옮긴이의 말도 꼭 읽어보길 바란단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과 지은이 루이스 세풀베다가 이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잘 분석하신 것 같더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2014년 남반구의 어느 여름날, 고래 한 마리가 칠레 푸에르토몬트 부근의 한 자갈 해변으로 떠밀려 올라와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세계의 남쪽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인간은 나의 덩치를 보고 언제나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를 차지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저렇게 커다란 동물을 무엇에다 쓸까? 태초부터 인간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인간이 처음 바다로 다가왔을 때부터 쭉 그를 관찰해 왔다. 그 결과 인간의 몸은 깊은 바다 밑을 알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물에 뜨는 것을 이용해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와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P19

내 이야기가 믿기지 않니? 할아버지 향유고래는 눈으로 계속 말했다. 너는 까마득히 먼 옛날 고래들과 라프켄체 사람들이 바다에서 약속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해. 우리 고래들은 크고 강한 반면, 인간들은 작고 연약하지. 우리 고래들은 먼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지만 인간들은 우리가 안전하게 머물게 될 그 장소에 이르는 길만 알고 있어. - P60

인간들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거야.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그들의 탐욕과 야망을 막을 수 없어. 그들은 우리가 본 적도 없고 보지도 못할 지역에서 오는 거야. 그들은 오르노스곶이라고 부르는 곳에 오기 위해 여기처럼 엄청나게 큰 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거지. 거기에 가면 배와 난파선의 잔해들이 해안에 잔뜩 쌓여 있단다. 그것들은 말은 못 하지만 인간들이 얼마나 무모한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지, 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셈이지.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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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 나의 두 번째 교과서
나민애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페이지2(page2)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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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학창 시절 중요 과목 중에 가장 자신 없던 과목이 바로 국어였단다. 시험을 봐도 컨디션이 좋은 날은 성적이 좀 잘 나오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성적이 잘 안 나오고일단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어. 그냥 우리말인데 말이지.. 어떤 문제는 아빠가 고른 답이 정답인 것 같은데 틀렸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지. 설명을 읽어봐도 아빠가 고른 것이 왜 틀렸는지 잘 모르겠고 말이야. 아무튼 국어는 공부하기 힘든 과목으로 기억되는구나. 그런데 요즘 너희들은 아빠 때보다 더 힘들게 국어 공부를 하는 것 같구나. 문법도 상당히 심도 있게 배우는 것 같고 말이야. 아빠 때는 국어 문법에 대해서는 너희들처럼 심도 있게 배우지 않았거든. 그래서 너희들 국어 교과서를 보면 낯선 용어들이 많이 나오더구나. 너희들이 어렵다면서 국어 문제를 물어볼 때면 아빠도 바짝 긴장하면서 진땀 흘리는 경우가 많단다. 그래서 좀 도움이 되는 책이 없을까, 검색하다가 좀 쉽게 설명이 되어 있을 것 같은 책을 찾은 것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라는 책이란다.

지은이 나민애 님은 서울대학교 교수이자 평론가로 활동하시는 분이더구나. 아빠는 처음 보는 분 같은데,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현하는 등 유명하신 분인 것 같았어.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민애 님의 아버지가 시인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내용이 있어서 나민애 님을 다시 검색해 보니, 나민애 님의 아버지가 유명한 시인이신 나태주 시인이시더구나.

1.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나민애의 다시 만난 국어>EBS에서 기획한 <나의 두 번째 교과서>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국어 과목을 책으로 엮은 책이라고 했어. 이 시리즈는 국어 이외에 과학, 미술, 경제 과목이 더 있단다. 국어라는 과목에 다시 감각을 익히고, 최근 변화된 국어 교과서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책을 폈단다. 차례를 훑어 보면 국어 교과서에서 주로 다루는 구분이 눈에 들어왔단다. 일단 차례로만 봤을 때는 다시 만난 국어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단다.

국어를 공부함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읽기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주었어. 가뜩이나 떨어지고 있는 독서량이 스마트폰의 역습으로 더 떨어지고 있단다. 1장에서 독서와 책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약간은 평범한 내용으로 아빠의 머리나 가슴을 치는 그런 마른 없었단다. 2장부터는 본격적인 장르별 강의가 시작된단다. , 소설, 고전시가, 동화, 에세이와 읽기 이외에 듣기, 글쓰기 순으로 이루어져 있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었는지 모르겠구나. 다시 만난 국어라고 해서 예전에 알고 있던 국어와는 다른 시각으로 국어를 대하자는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만난 그 국어인 것 같다는 느낌이었단다.

()는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것이고, 소설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즉 간접 체험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등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들이었단다. 이 책에는 국어 수업이다 보니, 문학 작품들 일부를 소개해주고 했어. 그 발췌해 준 글들이 짧긴 하지만 아빠의 마음에 와 닿았단다. 아빠가 모르고 있던 문학 작품들도 많이 발췌해 주었는데, 책 추천을 받기 좋아하는 아빠로서는 그것이 참 좋았단다. 그 중에 나이 들어가는 아빠에게 인상 갚은 작품이 하나 있어 소개해줄게. 이상국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시인의 시인데, 읽다 보면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딸을 향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느껴지더구나. 이런 시야말로 정말 좋은 시라는 것이 느껴졌어.

======================

(224-225)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서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대로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나의 마지막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_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전문

======================

….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자신의 생각과 생활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그냥 글로 써보라고 했어.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힐링이 된다고 말이야. 아빠도 가끔씩 일기를 쓰긴 하지만, 시간을 내서 무엇인가 쓰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아서 잘 쓰지는 않는단다. 그런데 이 책의 지은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글쓰기가 힐링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힘든 일이나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잠시 치우고 다이어리를 꺼내서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글을 써 보았단다. 그러니 그 스트레스와 짜증이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거야. 그 대신 쓸데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채워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심박수를 편안히 하는 것 같았단다. 앞으로는 손글씨를 더욱 자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긁적이는 것이지좀더 예쁜 글씨체를 써보려고 노력하거나 나만의 요상한 글씨체로 만들어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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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그런데 일단 써보시면 아실 겁니다. 과정 자체가 힐링이 된다는 사실을요. 에세이를 쓰는 시간은 감정의 디톡스 시간이 됩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어야만 글입니까. 가장 소중한 내가 볼 건데요. 그러나 쓰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기쁨을 느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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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너희들이 질문하는 국어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구나. 그래도 계속 물어봐 주면, 아빠도 최선을 대해서 문제를 풀어보도록 할게. 역시 국어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아.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안녕하세요.

책의 끝 문장: 결국 국어는 그 제목 하나를 위해 배우는 거 아닐까요.


어느 시대가 더 행복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때도 행복한 사람, 불행한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다만, 이런 맥락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는 현재 소설을 읽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소설은 갈등을 겪으면서 시작해요. 문제적 자아가 집을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을 하면서 ‘나는 누구?’라는 답변을 찾는 거예요. 답을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찾았다고 생각한 답이 오답일 수도 있고, 나중에 바뀔 수도 있죠. - P113

여기서 말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인생, 그러니까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야말로 에세이 쓰기가 밀접하게 접목되어 있습니다. 에세이는 나의 기억을 갖고 내가 쓰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에서 중요한 사물, 인물, 사건 등을 떠올리면서 잘 표현되지 않았던 내 감정이나 포착되지 않았던 내 생각을 다시 잡아서 쓰는 거예요. 즉,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합심해서 만드는 일종의 ‘자아 찾기’, 이것이 바로 에세이입니다. 우선 자아를 찾아야지만 쓸 수 있냐고요? 아뇨, 쓰면서 찾을 수 있습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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