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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사람의 길 - 下 - 맹자 한글역주 특별보급판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2년 6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김용옥 님의 <맹자
사람의 길 下>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 맹자
사람의 길 上> 이야기하면서 맹자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맹자는 이야기한 것처럼 중국 전국 시대 사람이란다. 너희들이 나중에
학교에서 중국역사를 배우게 되면, 춘추전국시대라는 말을 듣게 될 거야.
많은 나라들이 생기고, 사라지던 혼란의 시기.. 그래서
많은 사상가들과 소위 말하는 영웅들이 출현했던 시기…
아빠도 그 시대를 자세히는 몰라. 공원국이라는 분이 그 시대를 11권에 걸쳐 쓴 <춘추전국이야기>라는 책이 있단다. 그 책을 일 년에 한 권씩 읽겠다고 마음 적이 있는데, 3권에서
멈추고 말았어. 문득 김용옥 님의 < 맹자 사람의 길>을 읽다가 그 책을 끝까지 읽었더라면 좀 더 이해를 잘 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맹자>를 설명하면서 당시 전국 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거든… 나중에라도 다시 <춘추전국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맹자>에서 나오는 역사 부분은 잘 모르니까 그냥 흐릿한
눈으로 봐야겠구나. 삶의 가르침에 관한 부분에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말이야.
1.
<맹자 사람의 길 下>에도 깊이 새겨 두었으면 하는 글들이
많이 있단다. < 맹자 사람의 길 上>의 책에서
발췌를 할 때는 되도록, 김용옥 님의 생각이 담긴 부분을 발췌하려고 했어. 이 책의 지은이는 김용옥 님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 맹자 사람의 길 下>에서는 <맹자> 원문에 나와 있는 좋은 글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더구나. 그래서 <맹자> 원문을 해석한 부분에 대한 발췌가 많았어. <맹자>의 핵심은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지만, 仁과 義란다.
공자와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맹자가 공자의 제자라고 알고 있는 이들도 그런 사상 때문이 아닌가 싶구나. 그리고
맹자도 스스로 공자를 사숙이라고 했고, 자신이 공자의 적통임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여럿 나온단다. 공자의 仁이라는 것에, 義를 추가하여 발전시킨 것이 맹자의 핵심이라고
아빠는 이해했단다. 仁과의 義의 차이는 “인(仁)이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란 사람의 길이다.”라는
문장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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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
맹자가 말씀하시었다: “한 나라의 최고통치자가 인(仁)하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인(仁)하지 않을 수가 없고,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의(義)로우면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의(義)롭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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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638)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인(仁)이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란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려두고 그곳으로 걸어갈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아버리고 다시 구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 얼마나 슬픈 일인가! 사람들이 집에서 기르던 닭이나 개가 없어지는 일이 있으면 부지런히 쏘아다니며 그것을 되찾아오려고 열심이나, 자신의 마음이 사라진 것은 되찾아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학문(學問, 우리가 쓰는 “학문”이라는 말의 한 유래)의 길이란 별것이 아니다. 그 놓아버린 마음(放心)을 되찾아오는 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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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義만 강조한 것은 아니야. 仁과 중요하게 생각하고 仁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있단다. 맹자가
살던 시절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 시대이다 보니, 仁이 있는 사람은 다른 이의 땅을 빼앗는 전쟁을 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욕심에 눈이 먼 당시 군주들이 그의 말을 들었겠니… 맹자가 이야기한 것은 오늘날 각 국가의 지도자들도 들어야 할 말 같구나. 특히
여전히 전쟁을 하고, 이웃 나라에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나라의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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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전쟁에 의존하지 않고
그냥 한 나라의 땅을 빼앗아 다른 나라에 줄 수 있는 역량이 누군가에게 있을 수 있다 해도 그가 진실로 인자(仁者)라고 한다면 그러한 짓은 하지 아니 할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을 죽여서
토지의 확대를 꾀한다는 것이 과연 사람이 할 짓입니까? 군자가 군주를 섬긴다고 하는 것은 그 군주로
하여금 정당한 길을 걸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힘쓰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군주가 인(仁)을 향하여 전력투구하도록 만드는 것밖에 딴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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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왕이 될 수 있도록 왕 옆에 있는 신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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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4)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오늘날 군주를 잘 섬긴다 하는 자들은 모두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나의 군주를 위하여 토지를 개산하여 조세를 잘 거두어들여 국고를 충실하게 할 수 있도다’. (여기 가장
포인트가 되는 말은 “위군(爲君)”이라는 말이다. “위민(爲民)”이 아닌
군(君) 개인을 위하여 복무한다는 뜻이다). 아~ 진실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위대한 양신(良臣)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옛 성왕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모두 백성을
등쳐먹는 민적(民賊)들이다.
군주가 바른 정도의 도덕을 지향하지 아니하고, 인(仁)의 실현에 근본적으로 뜻을 두지 않고 있는데 그런 불선한 군주를 부강하게 만들기를 꾀한다는 것은 곧 폭군 잡놈
걸(桀)을 부강하게 만드는 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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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맹자>는 맹자가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실어 놓았단다. 그 중에 <맹자 사람의 길 下>에는 만장이라고 하는 맹자의 가장 나이 많은 제자와 나눈 대화도 있단다.
만장이 묻고, 맹자가 답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 만장은
날카로운 질문을 계속 맹자에게 맹자는 더 날카로운 답변을 한단다. 그러면서 맹자의 사상을 정리하는 것이야. 그 옛날에도 사람 사귈 때 어떤 사람을 사귀어야 하는지 궁금했나 보구나. 만장은
친구 사귀는 원칙을 맹자에게 물었단다. 이 때 한 맹자의 답변은 너희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구나. 너희들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게 될 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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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571)
만장이 여쭈어 말하였다: “감히 친구를 사귀는 원칙에 관하여 한 말씀 듣고자 하나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참으로 좋은 질문이로다. 친구 사귀는 데도 중요한 원칙이 있으니, 친구 사귐의 사이에는 장유의 나이의식이 끼어들면 아니 되고, 귀천의
신분의식이 끼어들면 아니 되고, 연줄이나 패거리의식이 끼어들면 아니 된다(沃案 : 천하의 명언이라 할 것이다.
세 번째 “불협형제(不挾兄弟)”를 주희는 해설치
않았고, 조기는 사귀는 사람의 형제 중에 부귀한 인간이 있기 때문에 사귀어서는 아니 된다는 식으로 해석했으나, 그 주제는 이미 앞에서 말한 “귀(貴)” 포함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형제”를 “등이(等夷)”로 보아 같은 한 동아리라는 의식, 타 인간 패거리와는 다르다는 의식, 혹은 대형교회 나가서 형제자매
찾는 연줄의식으로 보았다. 여기 맹자의 언급은 오륜에 얽매여 예의절차에만 충실한 듯이 보이는 동방문화에, 전혀 다른 인간관계(human relationship)가 상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래디컬한 언급이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 덕(德)을
벗하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덕과 실력 이외의 어느 것도 끼어들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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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자의 사상 중에 또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 ‘성선설’이란다. 순자의
‘성악설’과 함께 학창 시절 때 배운 기억이 있구나. 성선설(性善說)은 사람은
태어날 때 착하게 태어난다는 주장으로, 나중에 자라면서 악한 성품도 갖게 된다는 것이야… <맹자 사람의 길 上>에서 이야기했던 사단도 성선설을
뒷받침하는 사상이야. 이번 <맹자 사람의 길 下>에서는 물을 비유하여 성선설을 이야기하더구나.
물이라는 것은 원래 위에서 아래부터 흐르는 것이 당연하듯, 인성(人性)은 본래부터
善하다는 거야. 물을 거꾸로 가게 하려면 인위적인 외부의 힘이 필요한 것처럼, 불선(不善)도 외부의
힘이 가해진 결과라면서… 예전에 어디선가 성선설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너희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것을 보면, 아빠는 성선설이 맞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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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603)
맹자께서 이를 반박하여
말씀하시었다: “선생의 말씀은 매우 명료하오. 물은 진실로
선생의 말씀대로 동서를 가리지 않는다 할 것이요. 그러나 과연 상하의 분별조차 없다고 할 수 있으오리이까? 물은 본시 그 자체로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성질을 가지고 있소. 인성(人性)이 본시 선(善)하다고 하는 것은 물이 항상 아래로 흐르는 것과도 같소. 인성은 선하지
아니 함이 없고, 수성(水性)은 아래로 흐르지 아니 함이 없소이다. 지금 대저 물이라는 것은 손가락으로
튕겨 튀어오르게 하면 사람의 이마를 훌쩍 넘어갈 수도 있고,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역류시키면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게도 할 수 있소. 그러나 어찌 이런 현상을 물 그 자체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겠소이까? 그것은 외부적인 힘에 의하여 그렇게 될 뿐이오이다. 사람 또한 불선(不善)을 행하도록 만들 수는 있으나 그것은 그 본래적 성(性)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물이
본성에 어긋나게 격발되듯 잘못 격발되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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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나이를 하나 둘 먹으면서, 공부를 비롯하여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아빠도 사실 안타깝구나.
그렇다고 그런 것들을 하지 말라는 용기도 없고 말이야. 이 사회 시스템을 벗어날 용기도
없으니 말이야. 무언인가 할 때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맹자도 이야기하는구나. 하지만 사실 아빠는 어떤 일을 하다가 중단하기도 하고, 읽던 책도
중간에 덮는 경우가 많아서 너희들에게 무조건 중간에 그만두지 말라는 이야기는 못하겠구나.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끝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보거든… 어쩌면 아빠의 끈기 부족에 대한 핑계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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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761)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어떠한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비유컨대 우물을 파는 것과도 같다. 우물을
판다는 것은 반드시 끝까지 지하수에 도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물 파기를 구인(九軔, 조기는 1인(軔)은 8척(尺)이라고 했다. 혹자는 7척이라고 한다. 9인이면
상당한 깊이를 나타낸다)이나 했어도 지하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중단해버리는 것은 우물 파기를 처음부터
포기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결국 우물을 안 판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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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공부하든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꾸준하게
하는 것은 중요할 것 같구나. 마치 산에 난 길이 잡초로 뒤덮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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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맹자께서 방황하는 그의
제자 고자(高子)를 타일러 말씀하시었다: “산봉우리의 작은 길도 당분가 사람들이 열심히 그 길로 다니면 탄탄한 좋은 길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길로 당분간 사람들이 다니지만 않아도 금새 억새 같은 잡초로 길이 막혀 버리고 만다. 학문이란 이와 같이 끊임없이 쉬지 않고 정진해야 하는 것인데 지금 너의 마음은 억새로 덮여 길이 보이질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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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책의 끝 문장
: 14의 이지형의 역주는 다산 <맹자요의>의 충실한 번역이다. 많은 참고가 되었다..
맹자가 제선왕에게 고하여 말씀하시었다: "군주가 신하를 보기를 자기 자신의 팔 다리와 같이 여긴다면, 신하 또한 군부를 보기를 자기의 생명 같이 여길 것입니다(복심 腹心 : 뱃속과 심장이라는 뜻인데 옛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의 중추를 뇌로 보지 않고 복심, 즉 오장육부로 보았다). 군주가 신하를 보기를 자기가 기르는 개나 말 정도로 여긴다면, 신호 또한 군주를 보기를 성내를 걸어다니는 보통사람의 하나로 여길 것입니다. 군주가 신하를 보기를 토개(土芥, 짓밟는 흙과 쓰레기. 아주 천한 것)처럼 여긴다면, 신하 또한 군주를 보기를 죽여야 할 원수나 적수로 여길 것입니다. - P454
맹자가 말씀하시었다: "사람을 감복시키기 위한 동기를 가지고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진실로 사람을 감복시켜 존 적이 없다. 그러한 동기가 없이 스스로 선을 행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고 저절로 그들이 교화되도록 한 연후에나 비로소 천하사람들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있다. 천하사람들이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와 감복되지 않고서 천하를 통일하는 왕자가 된다는 것은 여태까지 있어본 적이 없다. - P468
맹자는 민중의 평등사상을 존중하지만, 왕도의 실현을 위하여 문명의 번영을 동시에 주장한다. 무조건의 하향분배는 국가문명의 수준저하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묵가의 사상과 대비되는 맹자의 인문주의사상이다. 문명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긍정되어야 하며, 그 긍정의 대전제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보편주의적 가치일 뿐이다. 따라서 세율이 과중하면 측정이 되지만 세율이 과하게 불급해도 야만의 정치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의 "중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세금이 문명의 번영을 이룩하여 그것이 다시 서민의 교육과 문화생활로 환원되는 피드백 시스템을 맹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699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소목장, 대목수, 수레바퀴공, 수레거푸집 장인과 같은 최고의 기술자들도 후학들에게 콤파스와 곡척의 원칙을 가르쳐줄 수는 있으나, 후학들로 하여금 명인의 솜씨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것은 오로지 자득하는 것이다." - P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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