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2)

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네 외모는 사랑 넘치는 할아버지면서 동시에 대량 학살범이 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네가 그 두 가지 역할을 너무나 잘 해냈기 때문에 난 네게서 눈을 뗄 수 없어. 변호사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싶을지 몰라도, 네가 미국에서 감탄이 나올 만큼 하찮은 삶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네가 최악의 변호다. 네가 오하이오에서 소박하고 지루한 삶을 그토록 훌륭하게 살아냈다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너는 여기서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거야. 넌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삶을 차례로 살아냈을 뿐이다. 나치라면 이렇다 할 부담감 없이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그 두 삶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지. 그러니 결국 그게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독일인들은 서로 크게 다른 성격, 그러니까 아주 착한 성격과 그리 착하지 못한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사이코패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온 세상에 확고하게 증명해 보였다. 트레블랑카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낸 네가 미국에서 상냥하고 근면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건 수수께끼가 아니야. 너의 명령으로 시체를 치웠던 사람들, 여기서 널 고발한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들한테 그런 일을 당한 뒤 평범한 삶과 조금이라도 닮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수수께끼.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게 믿기 힘든 일이라고!

 

(114-115)

홀로코스트의 현실은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었습니다. 만약 내가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면,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나보다 아주 조금 나이가 위인 여자아이를 선택하는 순간, 기억의 힘센 순아귀에서 내 인생 스토리를 빼내 창조적인 실험실에서 넘겼습니다. 거기서 기억은 유일한 주인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인과관계에 입각한 설명, 사건들을 서로 묶어주는 가닥이 필요합니다. 예외적인 일은 전체 구조의 일부로서 그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허용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 스토리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덜어내, 좀 더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내놓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75)

놈들이 성공한다고 가정해보세. 놈들이 싸움에서 이겨 나블루스의 모든 아랍인, 헤브론의 모든 아랍인, 갈릴리와 가자의 모든 아랍인, 세상의 모든 아랍인이 유대인의 핵폭탄 덕분에 사라진다고 생각해봐. 앞으로 오십 년 뒤 놈들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중요성이라고 전혀 없는 작고 시끄러운 나라뿐이겠지. 팔레스타인을 박해하고 파괴한 결과가 그렇게 될 거야.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벨기에 같은 나라가 만들어지는 거지. 하지만 그나마 자랑할 만한 브뤼셀 같은 도시도 없는 나라. 진짜유대인들이 문명에 기여한다면 그런 것뿐이야. 유대인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모든 특징이 없는 나라! 자기들의 사악한 점령체제하에 살아가는 다른 아랍인들에게 자기들의 우월성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주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난 자네의 민족과 함께 사람이야.

 

(185-186)

이스라엘의 군사적 팽창을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기억과 결부시켜 팽창주의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점령지를 꿀꺽 집어삼킨 뒤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땅에서 또다시 몰아낸 일을 역사적인 정의, 정당한 보복, 그저 자기방어로 정당화하기 위한 캠페인. 이스라엘의 국경선을 넓힐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움켜쥐는 모습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베이루트의 민간인들을 폭격한 일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뼈를 박살 내고 아랍인 시정들의 팔다리를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행동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다하우, 부헨발트, 젤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벨제크. “그건 거짓이라니, 필립. 어찌나 잔인하고, 냉소적인 거짓인지! 영토를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한 가지 의미를 지닌다. 딱 한 가지 의미만, 이런 정복을 가능하게 해준 물리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 영토를 다스리는 것은 지금껏 그들이 누리지 못했던 특권을 행사하는 일. 남을 억압하는 희생자로 만드는 경험, 이제는 타인들을 다스리는 경험. 권력에 미친 유대인, 이것이 그들의 모습이야.

 

(189)

전세계 유대인들의 눈에도 유지되는 나라라는 것, 점령지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봉기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마키아벨리 국가라는 것, 이 나라가 마키아벨리식 세계에 있는 것은 사실일세, 시카고 경찰국과 마찬가지로 성결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들은 이 나라가 유대인 문화, 민족, 유산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지난 사십 년 동안 선전했지. 사실 이 나라의 존재는 품질과 가치 면에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선택적인 것이었는데도 이스라엘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라고 선전하는 데 온갖 술수를 동원했어.

 

(204-205)

사람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이건 아주, 아주 기본이죠. 사막에서 온 겁니다. 저 풀잎은 내 것이고, 내가 기르는 짐승은 그 풀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 우리 집 짐승이 먹을 것이야, 너희 집 짐승이 먹을 것이냐, 여기서부터 타키야(시아파 신도들의 박해의 위험이 있을 때 신앙을 감추는 행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대개 위장이라고 하죠. 시아파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이슬람 문화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장은 이슬람 문화의 일부입니다. 위장을 허락하는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위험해지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 상대가 분명히 솔직하고 진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죠.

 

(229)

당신은 그냥 정치투쟁이라는 저열한 어리석음보다 대학이라는 고상한 어리석음이 더 좋은 거겠지. 지금 이 일이 멍청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 심지어 쓸데없는 일이라는 말도 할지 몰라. 하지만 이런 게 원래 이 지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야

 

(392-393)

그 작품의 첫 번째 대사, 그러니까 1 3장을 여는 대사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사백 년 전 샤일록이 세상의 무대에 나와 자신을 소개한 말 때문에요. 그래요. 사백 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 샤일록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은 항상 재판을 받는 신세였어요. 지금도 유대인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이라는 형태로, 유대인을 상대로 한 현대의 재판, 결코 끝나지 않는 이 재판의 시발점이 바로 샤일록 재판입니다. 전세계 관객들에게 샤일록은 유대인의 화신입니다.

 

(469)

관용구, 관심사, 정신적인 리듬 면에서 K의 일기나 A. F.의 일기 같은 글들은 훤히 눈에 띄는 애잔함을 확인해준다. 첫째, 유대인은 평범하다. 둘째, 그들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평범한, 단조롭고 눈부시며 축복받은 평범함, 모든 관찰, 모든 감상, 모든 생각에 이것이 있다. 유대인이 꾸는 꿈의 중심, 시온주의와 디아스포리즘 모두에 열기를 제공해주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잊었을 때 사람이 되리라는 것. 평범함. 지루함.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단조로움. 진을 치지 않는 삶. 각자 자기만의 유람선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안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대인의 삶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

 

(499-500)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권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라서 벗어날 수 없는 도덕적 의무도 갖고 있소. 어떤 형태로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할 의무.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소. 그들을 쫓아내고 억압했으니까. 그들을 추방하고, 때리고, 고문하고, 살해했으니까. 유대인 국가는 처음 생겨난 순간부터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던 곳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존재감을 지우고 그 땅을 빼앗는 데 전력을 다했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 손에 쫓겨나 이리저리 흩어지고 정복당했지. 유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배반했소.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했다는 뜻이오. 그들을 경멸과 예속의 대상인 타자(他者)’로 만들어,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소. 테러나 테러리스트나 야세르 아라파트의 어리석은 정치행보와는 상관없이, 사실은 이것이오. 팔레스타인 민족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유대 민족은 전적으로 유죄다. 내게 있어 경악스러운 일은 소수의 부자 유대인이 PLO에 거액을 기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대인이 자기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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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5년 봄호 - 통권 189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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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철마다 읽는 계간지 <녹색평론 2025년 봄 호>, 통권 189권을 이야기해줄게. 지난 녹색평론이 출간되고 이번에 출간되는 사이에 가장 큰 일은 아무래도 12.3 계엄령, 친위쿠데타, 내란이 아닐까 싶구나. 그래서 이번 녹색평론의 부제도 그와 연관된 <시민이 주도하는 개헌운동>으로 되어 있단다. 녹색평론사에서 <녹색평론 2025년 봄 호>을 준비할 즈음에는 당연히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고 확신하던 분위기여서인지 글들이 모두 탄핵 인용 이후의 대한민국과 헌법이 나아갈 길에 대해 다루고 있단다. 하지만 아빠가 이 책을 읽은 것이 3월말인데, 탄핵 선고가 계속 미루어지면서 설마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던 때였단다. 당연히 탄핵 인용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란 수괴가 구속 취소되어 무죄인양 거리를 활보하고, 폭력적인 탄핵 반대를 선동하는 이들이 난동을 부리는 것을 설마라는 불안감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단다. 그래서 <녹색평론 2025년 봄 호>에서 탄핵이 당연하다는 글들이 다소 거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단다.

그래도 다행히 조금은 늦었지만, 탄핵이 인용이 되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았었단다. 하지만 여전히 내란 세력들이 도처에서 속 터지는 짓들을 하고 있으니, 아직도 불안함이 자리를 잡고 있구나. 내란 동조자인 대통령권한대행이라는 자가 월권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아직 내란의 잔재 세력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단다. 지금은 내란의 잔불을 완전히 꺼야 하는 시기란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개헌 이야기도 오가기도 하는데, 개헌은 새 정부 들어서서 시민들의 의견을 오랜 시간 신중하게 경청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는단다. 기한을 두고 졸속으로 하는 개헌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야.

….

 

1.

이번 탄핵 선고를 기다리면서 불안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불법 계엄을 저지르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가서 유리창을 깨는 것을 온 국민이 전세계 사람들이 다 보고, 내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증거물과 증언들이 차고 넘쳤는데도 탄핵 인용이 안 될까 불안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헌법의 기준대로 판단하지 않고, 정무적인 판단을 할까 그랬던 것 같구나,. 헌법재판소는 항소도 하지 못할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정무적인 판단을 해도 되는가. 이 책에서는 그런 헌법재판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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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첫째, 9명 임명직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 헌재가 국민이 선출한 300인 국회 위에 군림하는 것이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둘째, 헌재 결정의 타당성 여부를 가릴 견제 기관이 존재하는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한국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가 아니므로) 과두체제이며, (견제받지 않으므로) 독재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과두적인 독재기관은 때때로 민의를 배반하고 독재지향적인 권력, 특권층의 이해에 영합하는 하수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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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AI가 대신 결정을 한다면 더 일찍 더 정확하게 결정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어.

녹색평론에서 오랫동안 주장한 것 중에 하나가 시민회의의 구성이란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 특히 기한이 오래 걸리는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들 중에 차출로 뽑힌 시민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란다. 대한민국 정치가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시민 회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 정권에서는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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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시민의회는 일반시민 중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소규모 대표들이 공공정책에 대해 심도 있는 숙의를 거쳐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 기구이다. 시민의회는 통계적으로 전체 시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추첨으로 구성되면, 운용은 숙의를 핵심으로 한다. 숙의는 단순히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이성적 토론을 통해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흔히 다수가 참여하는 방식은 정제되지 않은 의견들의 충돌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나, 시민의회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개인들이 참여하더라도 숙의를 통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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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이 있었단다. 역사는 이 시대를 탄핵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왜 이런 무능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리고 이런 대통령이 무식한 짓을 하는데 시스템으로 막을 수 없었을까? 그래서 개헌의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빠도 개헌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란다. 1987년 개정된 헌법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시대도 변한 만큼 그 시대에 맞는 헌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시민회의도 개헌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단다.

이 책에서는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나라의 개헌 사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단다. 칠레에서 시도했던 개헌은 정권이 왔다갔다 하면서 결국 실패했다고 하는구나. 핀란드와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진 개헌의 성공은 개헌을 준비하는 우리나라에서 배울만하다는 생각이, 읽을 때는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질 않는구나.

….

그리고 헌법을 개정을 한다면 오늘날 가장 직면한 기후 변화에 대한 내용도 담겼으면 한다는 의견에 아빠도 격하게 공감한단다.

=======================

(119)

나는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자연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하는, 좋은 삶을 구성하는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는다. 자연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존중이 법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나의 믿음이 법은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위 그리고 집단 책임성에 대한 개인 권리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생태적 상호의존성을 인정해 인간 삶의 자연적 조건을 내재화하고, 이를 헌법과 인권법, 재산권, 기업의 권리 및 국가 주권을 포함하여 모든 법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오슬로선언의 취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삶을 함께 생각하고, 이를 이뤄나가기 위한 개인적인, 또 집단적인 실천을 해야 한다. “나의 행동이 대양의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지라도좋은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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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이 책에 실린 정치 이외의 주제들은 크게 와 닿지 않더구나. 몇 개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모두를 환대하는 공원이라는 글에서는 조경가 박승진 님의 공원의 설명을 읽을 수 있는데,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가 보고 싶더구나. 통의동 브릭웰, 대구 미래농원, 목동 오목 공원이 그 공원들이란다.

생태예술가 퍼트리샤 조핸슨의 인터뷰를 실려있는데, 다음 발췌글로 감상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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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나쁜 디자인이 없습니다. 나쁜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자연의 어떤 부분을 살펴보더라도, 그 기능에 가장 적합한 디자인이 결합돼 있을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연의 또다른 속성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거예요. 바로 이게 예술과 생명의 차이입니다. 학교에서 저는 예술은 완벽한 형태를 추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예술작품은 단 하나의 요소를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을 만큼 완벽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미켈란젤로나 르 코르뷔지에 등으로 이어져 오는 고전예술 전통입니다. 그런데 제가 했던 작업은 그것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어요. 우선 살아있는 세계를 작품 속에 들어오게 허용하면, 완벽함이라는 것은 순간적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자연은 쉴 새 없이 변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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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남일 님의 히말라야 트래킹 여행기는 부러움만 가득 채웠단다. 아빠는 가까운 산이나 가야겠다. 그리고 이번 호에도 읽을만한 책들의 서평이 실렸는데, <몸이 기후다>라는 책은 읽어보고 싶었단다.

….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다행히 탄핵이 인용되어 대한민국의 창피함이 많이 상쇄된 것 같구나.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못난 짓을 많이 해서 전세계적으로 엄청 창피했는데, 이젠 그런 내란 수괴를 내쫓아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구나. 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을 탄핵시켰다는 것에 대해 외국에서도 칭찬하고 좋게 평가하는 분위기더구나. 심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부러워하기도 하고… ^^ 이제는 다시는 우리나라에서는 내란을 동조했던 정당에서는 대통령이 나오질 않길 바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실로 끔찍한 가정이긴 하지만 12.3 쿠데타가 곧바로 제압될 수 없었다고 상상을 해보자.

책의 끝 문장: 무엇보다도 그에게 천지간 농업으로서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논밭 신령님들의 말씀들을 받아 쓰”(<다시 심고心告-혼자 보고 혼자 들은 말>)는 일이기도 할 터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윤석열과 그 일당이 주장하는 통치행위라는 예외적 권력은, 왕에게 법을 지키지 않아도 특권을 주었던 중세에나 있을 법한 일로서 독재자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윤석열이 입에 달고 다니던 자유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며 왕이나 권력자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법치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비상계엄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동한 것인지를 헌법과 법률에 규정해 놓았다. 그 규정을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길이다. 윤석열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자였다면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이 원리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전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니며 압제를 저지를 수 있는 이상성격자에 불과하다. - P43

한국사회가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위해, 시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시민의회와 양원제를 결합한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시민의회와 양원제의 도입은 일회성 개헌을 위해서도 유용하지만, 지속적인 민주주의 발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읍면동 민회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기초지자체 민회, 광역지자체 민회를 거쳐 국가 민회를 구성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이는 국민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정치적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완화하는 유력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아닌 국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 P71

취재 후 1년 6개월가량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치는 더욱 오염됐다. 그 결과 우리 앞에 남은 것은 폐허다.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대통령은 철저하게 정치를 버렸다. 가장 헌법을 할 대통령은 헌법을 무시하고 공화국을 배신했다. 이 위험하고 불성실하며 비민주적인 대통령은 분명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이후’는 얼마나 다를까. 국민의힘은 내란우두머리 피의자 대통령과 절연하긴커녕 부정선거 음모론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마저 에둘러 감싸고 있다. 방탄 논란과 강경 일변의 전략에 갇힌 민주당은 갈등과 대립을 끊어내고 미래로 나아갈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두 정당의 적대적 공생만 견고해지는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만 말하는 것은 정확한 처방이 될 수 없다. 오랜 실패에서 확인됐듯 개헌은 신속한 방법도 아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이 맡겨져 있는, 선거 직전에 반짝 다루다 거대 양당의 최대 이익만 반영하고 마는, "정말 중요한" 선거제도를 논의해야 할 때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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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0)

그렇다. 이따금 정말이지 이상한 생각이, 얼른 보기에는 전혀 가능하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결국에는 그런 생각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런 생각이 강렬하고 열정적인 소망과 합쳐지게 되면 때로는 그것을 숙명적이고 피할 수 없는 어떤 것, 예정된 어떤 것으로, 또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일어나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거기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예감의 결합이라든지, 예사롭지 않은 의지의 강화, 그리고 자신의 상상에 의한 중독이나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이, 모르겠다. 어쨌든 오늘 밤(나는 평생토록 이 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비록 그 사건이 산술에 의해 완전히 증명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게는 아직까지도 기적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믿음이 내게 그토록 단단하고 뿌리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분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아마도 나는 그것을 수많은 것들 중에서 일어날 수 있는(그러니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경우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도저히 일어나지 않고서는 안 되는 어떤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206-207)

그런데 나는 빨간색이 연이어 일곱 번씩이나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상한 오기가 생겨서 일부러 빨간색을 물고 늘어졌다. 내가 그렇게 한 데에는 자존심도 절반쯤 작용했다고 보는데, 정말이지 나는 앞뒤 가리지 않는 모험으로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야릇한 느낌이다-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전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는데도 별안간 모험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영혼은 수많은 느낌들을 거쳐 왔으면서도 그것들에 의해 충만되는 것이 아니라 자극만을 받은 채 완전히 진이 빠질 때까지 더 많은 느낌들, 더욱더 강렬한 느낌들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거짓이 아니라 정말인데, 만일 게임의 규칙상 한꺼번에 5만 플로렌까지 거는 것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나는 분명히 5만 플로렌을 걸었을 것이다. 주위에서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난리들이었다. 빨간색이 벌써 열네 번이나 나왔다고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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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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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한강 작가님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기념으로 책 두어 권을 샀다고 했잖아. 그 중에 한 권이 <디 에센셜 한강>이라는 책이란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기획한 시리즈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엮은 시리즈란다. 당연한 거겠지만, 문학동네 출판사에서는 이미 한강을 높이 평가한 듯 하구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 작가님의 대부분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갔는데, 물론 이 책도 베스트셀러 한 자리를 차지했지. 이 책을 2023년에 미리 기획한 사람은 문학동네에서 보너스 좀 받았으려나?^^ 이런 생각도 문들 들었단다.

책이 예쁘게 잘 디자인되었단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모든 책들이 작가마다 한 가지 색상으로 표지 디자인을 했단다.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작가들의 색을 정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버지니아 울프는 빨간색, 조지 오웰은 밝은 파란색, 김수영은 녹색등등. 한강 작가님은 흰색이었단다. 작품 자체가 순수해서 그럴 수도 있고, 한강 작가님 소설 중에 <>이란 작품이 있어서도 그렇게 정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무튼 디 에센셜 시리즈는 책 디자인이 예뻐서 다른 시리즈들도 다 모아놓으면 인테리어로 좋을 것 같더구나.

이제 <디 에센셜 한강> 책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에는 장편 소설 <희랍어 시간>과 단편 <회복하는 인간><파란 돌> 두 편과 시 5, 산문 8편이 실려 있었단다. 아빠는 그 동안 한강 작가님의 작품은 장편 소설들만 읽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산문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단다. 모든 작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고, 몇몇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1.

장편 <희랍어 시간>은 단행본으로도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 받은 작품이란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보면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고 했는데, 위 선정 이유 중에 한 부분인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는 부분이 소설 <희랍어 시간>에 아주 잘 어울리는 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특히 시적인 산문이라는 부분소설이긴 한데, 시와 같은 소설이었어. 소설의 형식으로 쓴 시라고 할까, 시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라고 할까.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도 많이 있어서 읽기는 쉽지 않았어. 하지만 중간중간 언어를 가지고 마법을 부린 듯한 문장들이 영혼까지 닿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발췌한 문장들도 많은 책이란다.

15살 때 식구들과 함께 독일로 이민간 남자. 17살 때 눈이 불편해서 안과에서 갔는데, 유전병 때문에 앞으로 시력이 계속 안 좋아지다가 마흔 살 즈음에는 결국 실명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어린 나이에 얼마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까. 그 이후 남자의 안경은 점점 두꺼워져 갔단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안과 의사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어. 그 안과 의사의 딸은 청력을 잃어 말을 들을 수 없었어. 하지만 입술 모양으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단다. 그 소녀는 어렸을 때부터 몸도 허약해서 늘 병원에서 지냈어. 그렇다 보니 그 남자가 소녀가 만난 첫 남자라고 할 수도 있었어.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남자는 그 소녀에게 고백을 했는데 그만 퇴짜를 맞고 말았지. 소녀는 자신이 건강하지 못해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싶어. 소녀는 결국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20대 때 그는 독일에서 친구와 등산을 갔다가 사고로 친구가 죽었어. 이렇게 젊었을 때 두 번의 큰 죽음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가 되었어. 이후 방황하다가 남자는 31살에 한국으로 왔단다. 그는 대학에서 희랍 철학 학위를 받아서,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희랍어 교양 강좌를 가르쳤단다.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은 당연히 적었어. 희랍어는 그리스어란다. 예전에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어떤 출판사에서는 <희랍인 조르바>로 출간하기도 했단다. ‘희랍이라는 말은 그리스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남자가 한국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6년이 되었고, 그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졌단다. 학생들은 그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지만, 거의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나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어. 그의 수강생 중에 한 여자가 있었단다.

여자는 십대 때 갑자기 말이 안 나오는 증세를 겪었어. 그 일로 정신과 진료도 받았지. 나중에 이상한 외래어 발음을 보고 이걸 읽으면서 다시 말문이 트였다고 했어. 그 이력 때문에 나중에 이혼할 때도 아홉 살 아들의 양육권을 남편한테 빼앗기고 말았어. 세 번의 재판을 했지만, 남편은 여자의 정신과 진료 이력을 문제 삼았고, 결국 여자는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기도 만 거야. 그런 여자는 또 다시 말이 안 나오는 증상이 찾아왔단다. 무슨 수를 쓰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어. 오래 전에 이상한 외래어를 읽으면서 말문이 트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것을 기대하고 이상한 외래어인 희랍어 수업을 듣게 된 거야.

….

어느날 남자가 자신이 일하는 아카데미 건물에서 새를 쫓아가다가 어두운 지하 계단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말았는데, 안경도 떨어지면서 깨져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온 여자가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단다. 눈을 잃어가는 남자. 말을 잃어버린 여자. 둘은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는 소설이란다.

 

2.

단편 <희복하는 인간>당신이 주인공이야. 당신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었어. 언니는 당신에게 열등감을 가졌어. 당신은 고집 세고 서른 넘게 연애도 못하고, 부모와 관계가 안 좋아 경제적인 도움도 받지 못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당신을 부러워했어. 언니는 결혼하여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을 가졌는데 말이야. 당신과 언니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원했었는데 어느 날 언니가 당신과 함께 병원에 가자고 해서 갔어. 그런데 무서운 병에 걸린 언니그리고 투병하다가 언니는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어. 당신은 발목을 겹질려 한의원에서 쑥찜을 받다가 화상을 입고 며칠 방치했다가 덧나서 병원에 가서 화상 치료를 받았어. 그러면서 아팠던 언니를 생각하며 언니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병원에서는 화상을 입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핀잔을 주고, 수술이 필요해 보이지만, 새 살이 나는지 지켜보자고 했어. 다행히 상처에서 새살이 나긴 했지만 아주 더디게 진행되었어.. 그래도 당신은 언젠가는 다 회복하게 될 거야

<파란돌>이라는 단편은 짝사랑했던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의 소설이란다. 오랜만에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었어. 17살 때 먹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당신은 평가를 해주었어.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당신의 화실에 와서 그려도 좋다고 했어. 당신은 친구의 삼촌이었어. 당신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상처가 나면 안 아무는 병을 앓아서 조심하면 지내야 했지. 그 병 때문에 술과 담배가도 안 했어. 혼자 조용히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잘 어울리는 직업인 것 같았어. 매일 당신의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당신을 사랑하게 되고, 첫키스도 당신과 하고당신은 얼른 얼른 크라고 했지. 하지만 당신은 결국 그 병으로 인해 죽고 말았어. 이후 주인공은 자라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결혼 생황도 순탄치 않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불행했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 그런 상처 입은 영혼의 이야기가 짧게 이어졌단다.

….

아빠가 게을러서 읽고 나서 바로 독서 편지를 써야 하는데, 두어 주 지난 다음에 쓰다 보니... 메모를 해두었지만 위 두 편의 단편 소설들은 제대로 된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는구나. 위 내용이 소설과 다를 지라도 이해해 주길 바래.

….

이 책을 통해 한강 작가님의 산문들도 처음 읽어보았다는데, 소설보다 산문이 더 읽기 편했단다. 붓 가는 대로 쓰신 것 같아서 읽기 편했고, 한강 작가님의 어린 시절 삶과 가족과 일상과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 가난하여 진짜 피아노는 못치고 피아노 학원도 가지 못하고 종이 피아노를 치면서 연습했다고부모님도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학원을 보내주셔서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이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어. 한강 작가 님의 아버지도 유명한 작가님이란다. 한승원 작가님으로 아빠는 한강 작가님 책보다 한승원 작가님의 책을 더 많이 읽은 것 같구나.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라는 산문은 작가인 아버지에 관한 글인데, 공감 가는 문장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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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

어느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자식에게 찾아온다. 그것이 자식의 운명이다. 인생은 꼭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 없이. 불만도 연민도 없이. 말도 논리도 없이. 글썽거리는 눈물 따위 없이. 단 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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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통해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책에도 그 소설들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실려 있는데, <소년이 온다>를 쓸 때 작가님의 심정이 담긴 글이 좋았단다. 다시는 이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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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한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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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이 책에 실린 몇 편의 작품을 소개해주면서 마칠게. 한강 작가님의 다른 책을 또 읽게 되면 이야기해줄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라고 자신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유언했다.

책의 끝 문장: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이 마음에서 출발하고 싶다.



수년 전, 아이가 마음껏 놀게 하려고 일부러 맨 아래층에 얻은 집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발을 구르거나 뛰어다니려 하지 않았다. 거실에서 줄넘기 연습을 해도 된다고 그녀가 말하자 아이는 물었다. 지렁이랑 달팽이들이 시끄러워하지 않을까? - P25

그렇게 상상하며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 지루해질 때쯤. 천천히 뒷산의 산책로를 오르기도 합니다. 연푸른 나무들은 한 덩어리로 일렁이고, 꽃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번져 있습니다. 산기슭에 있는 작은 절의 대중방 마루에 앉아 나는 쉽니다. 무거운 안경을 벗어들고,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흐릿한 세계를 둘러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 - P42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한다는 중간태의 희랍어 문장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진실이 어리석음을 파괴할 때, 진실 역시 어리석음에서 영향을 받아 변화할까요.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이 진실을 파괴할 때, 어리석음에도 균열이 생겨 함께 부서질까요. 내 어리석음이 사랑을 파괴할 때, 그렇게 내 어리석음 역시 함께 부서졌다고 말하면 당신은 궤변이라고 말하겠습니까. 목소리. 당신의 목소리. 지난 이십 년 가까이 잊은 적 없는 소리. 내가 아직 그 목소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 당신은 다시 내 얼굴에 그 단단한 주먹을 날리겠습니까. - P49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당신의 얼굴은 내 눈꺼풀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눈꺼풀을 열면 당신은 천장으로, 옷장으로, 창유리로, 거리로, 먼 하늘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겨 어른거렸습니다. 어떤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도 그토록 집요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 여름밤 내 책상 옆의 작은 거울 속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어설픈 수화를 연습하는 내 상반신이 비쳐 있었지만, 거기 어른을 나는 매 순간 알아보았습니다. - P50

그에 비하면 언어는 수십 배 육체적인 접촉이었다.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간다. 혀가 마르고 침이 튀고 입술이 갈라진다. 그 육체적인 과정을 견디기 어렵다고 느낄 때 그녀는 오히려 말이 많아졌다. 긴 문어체의 문장으로, 유동하는 구어의 생명을 없애며 말을 이어갔다. 목소리도 평소보다 커졌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수록 점점 사변적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순간들이 반복되는 시기에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없었다. - P62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믿지 않는 사람은 꿈을 꾸는 상태에 있는 거라고 플라톤은 생각했고, 그걸 누구에게든 논증을 통해 설득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세계에선 그렇게 모든 것이 뒤집힙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이 오히려 모든 꿈에서 깨어난 상태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실 속의 아름다운 사람들을 믿는 대신 아름다움 자체만-현실 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믿는 자신이. - P105

그 순간, 불쑥 오래된 한 단어의 기억이 절반쯤 잘린 채 떠올라 그녀는 그것을 붙들려 한다. 오래전에는 해가 진 직후와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을 호(呼)……로 시작하는 한자어로 불렀다고 했다. 멀리서 오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어, 큰 소리로 불러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서양식 표현과 비슷한 연원을 가진, 호……로 시작되는, 끝끝내 완전해지지 않는 그 단어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뒤척인다. - P176

지금 내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펜촉 또는 송곳을 들고 자신이 뚫다 만 종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옆얼굴이다. 그들이 내쉬는 더운 숨이 구멍들을 통과해 가장 단순한 언어가 된다. 그들은 어떤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데, 간결한 부호 같은 언어들이 그 구멍들에서 새어나온다(들립니까, 나는 지금 온 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듣고 있습니까).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피 같은, 우리가 가진 생명의 가장 연한 부분, 또는 어떤 목소리의 이미지.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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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0)

하지만 어느 쪽 교육 방침도 공통의 가정을 깔고 있었으니 그것은 아이의 성장과 변화가 주어진 조건에 대한 반응이라는 견해였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아이에게 반응하는 것이 세상의 숙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남다른 개성 때문이든, 악마적인 아름다움이나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 때문이든, 아이들은 세상 속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가 세상을 망쳐 버리고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는다. 끝없이 양보하는 쪽은 오히려 세상이다. 세상은 그렇게 굴복함으로써 스스로를 갱신하고 쇄신한다.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다. 살기 위해 죽는 것.

 

(466)

소리 멋지지. 미래를 읽을 줄 아는 자는 아주 드물어. 너는 캔들이 현재를 읽을 줄 안다고 말했지. 하지만 과거를 읽는 것도 재주는 재주야. 과거를 느끼고 과거에서 새로운 힘과 지식을 얻는 거지. 언제나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이라고나 할까. 내 생각으로는 이름 없는 신이 너에 대해 알게 되면 그것도 인간의 커다란 힘이 될 거야. 슬프게도 다른 많은 좋은 생각들처럼 아직까지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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