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14)

나는 그가 좋았다.

SF, 판타지를 좋아한 대한민국의 음악 청년.

그의 집요한 광기와 좌충우돌의 불화,

어떨 땐 해학적이기까지 한 허세와 그 뒷면의 대책 없는 섬세함까지.

그는 대한민국의 1980년대가 분만한 가장 모순적인 열정을 지닌 청년이었다.,

=======================================

신해철.

아빠 세대면 신해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신해철을 싫어하는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 신해철은 음악과 말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아빠 또한 그의 음악에 열광을 했고, 그의 말에 공감을 하고 감동을 받았고, 그의 생각과 영혼을 존경했단다.

지금은 가고 없지만, 지금도 그는 아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던 무한궤도라는 그룹을 통해서야. 그들의 시작은 너무나 강렬했으며, 그 강렬함의 여운은 아직도 진동하고 있는 듯 해.

음악평론가로 유명한 강헌이 신해철에 대한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에 아빠는 출간일을 손꼽아 기다렸단다. 이 책을 쓰신 강헌이라는 분도 아빠가 좋아하는 사람이거든강헌이 음악평론가로써 신해철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끈끈하고 찐~~한 인연이 이어졌다고 하는구나.

신해철이 허망하게 세상을 등지기 얼마 전에도 그들은 신해철 노래로 이루어진 뮤지컬에 대해 계획하기도 했었대. 강헌은 신해철이 죽고,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일필휘지로 긴 추모사를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해. 당시 신해철의 유고집이 나오기로 되어 있어서, 이 책은 3년 뒤로 출간을 미루었다가 올 봄에 출간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강헌은 1996년에 영화 <정글스토리>를 제작하고 있었대. , 정글스토리이 영화, 아빠도 기억하고 있어. 윤도현이 신인 시절에 주연을 했던 그 영화록커가 주인공이었던 그 영화그 영화의 제작을 강헌이 했구나강헌은 음악감독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신해철에게 부탁을 했는데 한치 망설임 없이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는구나. 1996년이면 이미 신해철은 일류스타였는데, 돈도 얼마 주지 못하는 음악감독을 흔쾌히 하겠다고 했대. 비록 영화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신해철은 이 영화를 통해 영화음악감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했던 것이야. 이후에도 두어 편의 영화의 음악감독을 했었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처음 알게 될 사실이란다.

그리고 강헌은 또 한번 신해철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대. 그것은 바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찬조 연설. 그 전까지 신해철은 정치와 담을 쌓고 음악에만 충실했는데, 이 찬조연설을 함으로써, 논객으로써의 재능도 보여주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가 직접 쓴 찬조연설은 명연설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어. 이 책에도 그의 찬조연설의 일부를 실어서 아빠도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지금 읽어봐도 감동이구나. 신해철은 찬조연설로 끝난 것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거리 유세까지 함께 했다는구나. 한번 책임을 지면 끝까지 책임을 지는 의리파 신해철.  멋지구나.

그런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까지 이어져서 추모앨범 <노무현을 위한 레퀘엠> 프로듀싱을 강헌과 함께 했단다. 이 앨범은 아빠도 가지고 있어 다시 한번 꺼내봤어.그 앨범에는 신해철의 사진도 들어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뭉클해지는구나.


1.

이제 본격적으로 신해철, 그의 음악과 삶과 영혼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앞서 이야기했던 1988, 이보다 화려할 수 없는 데뷔. 몇 해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당시 장면을 보여 주었는데,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무한궤도를 보고 놀랜 반응이 바로 당시 무한궤도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이었을 거야. 다시 그 화면 영상을 찾아보니, 풋풋한 신해철의 모습에 또한번 옛추억 속에 빠져들게 되는구나.


사실 그보다 먼저 1988년 강변가요제에도 출전했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본선에 진출하지는 못했대.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하지 못해서, ‘그대에게라는 곡도 음악을 반대하는 아버지 몰래, 문방구에서 파는 멜로디언을 사서 이불 속에서 하룻밤에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최고의 히트곡이 만들어진 그대에게는 정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어. 요즘도 응원가 일순위로 뽑고 있고, 각종 경연대회에서 불리고 있는 그대에게’… 이제는 세대를 뛰어넘어 너희들까지 좋아하게 되었잖아.^^

그룹사운드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타는 것이 드문 일이었는데, 노래가 워낙 좋다 보니 대상을 탔을 테고,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사람이 그룹사운드 출신 영원한 가왕 조용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구나. 그렇게 조용필과 신해철이 인연을 맺고 나서 이후에도 그 인연을 이어갔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탔으니, 이제 본격적인 활동을 해야 했으나, 아마추어 그룹의 데뷔 앨범을 만들어주려는 이들이 많이 없었대. 기획사들이 원하는 것은 돈 잘 버는 솔로 가수였던 거야. 하지만, 신해철이 원했던 것은 그룹이었어. 그때 조용필이 도움을 주었단다. 조용필이 이끌었던 밴드 위대한 탄생의 멤버가 만든 신생기획사에서 무한궤도의 1집 앨범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거야. 그 신생기획사가 1990년대 우리나라 음반 시장을 이끌었던 대영AV였단다.

대학가요제에서 신해철은 서울대 그룹 실험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 알게 된 정석원이 무한궤도에 합류하게 된단다. (정석원은 나중에 아빠가 또 엄청 좋아하게 되는 01OB를 만들게 된단다.), 역사가 만들어지던 시기였구나.

그리고 무한궤도 1…. 이 앨범에도 아빠가 정말 좋아했던 노래가 있단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많은 기획사들의 우려를 날려버리듯 무한궤도 1집은 크게 성공을 했어. 그런데, 무한궤도리는 이름을 지었을까? 그 그룹의 심오하고 멋있다는 생각은 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본적은 없었어. 이 책의 지은이 강헌도 직접 이유를 듣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이 추측을 했는데, 공감이 가더구나.

=========================================

(43)

무한궤도’, 이 특이한 밴드 이름은 스무 살 음악청년의 터질 듯한 가슴에 담은 야망과 의지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무한궤도는 산업혁명기 영국인 리처드 에지워스의 발명품으로 탱크나 불도저를 움직이는 캐터필러를 말한다. 즉 앞바퀴와 뒷바퀴를 연속적인 궤도를 연결하는 장치를 지칭한다. 무한궤도를 음악적 첫걸음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채택한 이유에 관해 그가 특별히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 네이밍에서 표명하려고 한 것은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만드는 밴드는 앞바퀴와 뒷바퀴, 그리고 가운데의 작은 바퀴들까지 모두 일체가 되어 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하모니를 일구어낼 것이며, 땅이 울퉁불퉁하거나 도저히 전진할 수 없는 고랑이 패어 있다고 해도 불굴의 의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2.

무한궤도 1집에 성공을 했지만, 1집으로 팀은 해체되었단다. 아무래도 신해철 1명의 대한 비중이 너무 컸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어. 아무튼 신해철은 솔로로 데뷔하면서 연이어 히트 앨범을 내면서, 특급 스타 반열에 오르게 돼그렇게 솔로로 성공했다면 성공과 돈맛에 계속 솔로를 했겠지만, 신해철의 피는 밴드를 위한 피였어.

=========================================

(85)

신해철에게 밴드는 평생에 걸친 화두이자 천형(天刑)에 가까운 숙명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음악 친구들과 함께 밴드로 데뷔했으나 한 장의 앨범을 끝으로 솔로로 후퇴했다가, 많은 우려와 저지에도 불구하고 인기 가수의 길을 반납한 채 다시 밴드 맨의 삶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지지와 비난의 극단적인 소요를 불러오는 도화선이기도 했다.

=========================================

그는 다시 밴드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그는 그의 밴드가 아닌, 밴드 구성원 모두의 밴드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 아빠도 넥스트 1집을 사서 정말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나는구나. 본가에 아직 그 CD가 있을 것 같은데,  다음에 가면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신해철의 꿈과 달리 그룹 활동의 한계도 있었어. 밴드 구성의 완벽체인 4명의 멤버로 구성이 되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신해철의 비중이 너무 컸던 것은 어쩔 수 없었어. 넥스트는 4개의 앨범으로 활동을 접는단다. 그 넥스트에 평가를 강헌은 이렇게 했어.

=========================================

(123)

넥스트는 아직 대중적인 기반을 획득하지 못한 한국의 젊은 록 밴드들에게 하나의 이상이자 목표였고, 나아가 극복의 대상이었다. 적어도 넥스트가 이들에게 밴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은 분명하다. 사실 1970년대의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1980년대의 들국화를 제외하면 이 땅에서 록 밴드는 저주받은 존재나 다름없지 않은가?

=========================================

그는 넥스트 활동을 접고 해외 유학을 떠나게 돼. 그리고 외국에서도 계속 실험적인 음악을 하고,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멈추지 않아.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어.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신해철은 솔로 활동, 넥스트 활동을 다시 재개하면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단다. 삶을 마감하던 그 해에도 컴백 앨범을 발표했는데, A.D.D.A라는 곡을 듣고 역시 신해철이라는 생각을 했었단다. 그가 그렇게 쉽게 가버릴 줄

정말 슬프더구나.


 

3.

신해철.

그는 가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해서도 논리 정연한 말로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존경스러운 논객이기도 했어. 신해철은 87학번이야. 우리나라 1987년에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면 국가와 사회문제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서 그가 박노해 시인의 헌정 앨범에도 참여하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싶구나.

========================================

(26~27)

신해철은 짧다면 짧은 생애 내내 롤러코스터 같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지만, 스스로 확고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다. 그 원칙은 그가 음악만큼이나 열정을 가지고 추구한 인문학적 사유에서 비롯한다. 신해철은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같은 위악의 페르소나를 유쾌하게 연출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도 언제나 본능적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더듬이를 지녔다. 나는 그와 세 개의 트리뷰트(tribute, 헌정) 작업을 같이했다. 2001년 들국화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 200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2년 노무현 추모 앨범과 공연. 그중에서 사회적 반향이 상대적으로 가장 약했지만, 내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작업은 한국 문화사에 노동자 문학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박노해 시인이 1984년 출간한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헌정 음반 프로젝트다.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이자 문학도였던 나와 내 동년배 사람들에게 <노동의 새벽>은 시인이자 혁명가를 자처한 박노해에 대한 입장 차이와 관계없이 충격적인 의미를 담은 예술적 사건이다. 나는 이 시집이 (출간되고 20년을 지나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이유로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더구나 <노동의 새벽>은 단일 시집으로는 가장 많은 작품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이기도 하다. 그래서 2004년 봄, 사상 최초로 시집 헌정 음반을 기획했다. 하지만 제작비도 충분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프로듀서가 없었다. 나는 2000년대라는 새로운 흐름에서 그저 운동권 가요의 동어반복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음악적 감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부여하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

========================================

그는 논객으로써 각종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이 뜻하는 바를 주장했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기도 했어. 동성동본의 결혼이 지금은 합법화되었지만, 그것이 불법이던 시절에도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강력히 주장하였고,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라는 노래로도 만들었단다. 그렇게 신해철은 노래하는 지식인으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원이었어. 청소년들에게는 삶의 방향을 이야기해주는 멘토 역할도 해주고

아무리 몇 번씩 생각을 해보아도 그의 부재는 우리 사회의 큰 손해구나. 촛불시위를 한창이었을 때 그가 살아 있었다면 함께 했을 것이고,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대한민국이 되어가는 모습을 함께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그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구나. 부디, 저 하늘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님과 함께 만나 바뀐 대한민국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으면 좋겠구나.

이 편지를 쓰면서도 신해철의 노래를 들으면서 쓰고 있어. 가사를 가만히 들어보니, 가사 하나하나에도 깊은 뜻들이 담긴 것들이 많구나..

…. ...

(18)
신해철에 관해서는 예술가로서의 삶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논리와 행동으로 참여한 논객, 혹은 행동주의자로서의 면모다.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개입은 저 멀리 식민지 시대 이후로 근대 한국에서 대중예술인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금기였다. 이들은 탈정치화의 영역에서 대중을 웃기고 울려 위안하는 대가로 인기와 부를 누리는 예외적 시민권자였다.

(85)
신해철에게 밴드는 평생에 걸친 화두이자 천형(天刑)에 가까운 숙명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음악 친구들과 함께 밴드로 데뷔했으나 한 장의 앨범을 끝으로 솔로로 후퇴했다가, 많은 우려와 저지에도 불구하고 ‘인기 가수’의 길을 반납한 채 다시 밴드 맨의 삶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지지와 비난의 극단적인 소요를 불러오는 도화선이기도 했다.

(120)
신해철은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갈파하는 대신 그동안 수없이 불러온 사랑 노래의 문법을 계승해 표현함으로써 이 곡의 수용 범위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신해철은 당사자가 당하는 고통의 선연함을 놓치지 않았으며, 바로 이 선연함의 무늬가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매너리즘에 빠진 천편일률적 여타 발라드와 구별시킨다.

(123)
넥스트는 아직 대중적인 기반을 획득하지 못한 한국의 젊은 록 밴드들에게 하나의 이상이자 목표였고, 나아가 극복의 대상이었다. 적어도 넥스트가 이들에게 밴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은 분명하다. 사실 1970년대의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1980년대의 들국화를 제외하면 이 땅에서 록 밴드는 저주받은 존재나 다름없지 않은가?

(178)
계간지 <상상>에 실린 인터뷰에서 신해철은 ‘연예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쾌감을 이렇게 밝혔다.
"어차피 너희 연예인들은 인기가 없으며 죽는 것 아니냐. 저는 연예인이라는 말 자체를 소름 끼치도록 싫어해요. 인기를 먹고살던 시대도 있었겠죠. 그리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면 상업적으로 음악을 판매할 수 있었던 시기 이전에는 예술이 없었는가 생각을 해보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원시인이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팔려고 그렸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인기 이전에 음악을 하자는 거죠."

(180-1)
서태지와 비교할 때 신해철의 애티튜드는 더 확연히 구별된다. 서태지가 철저한 은둔주의 노선으로 일관했다면(바로 이 때문에 이지아 스캔들의 역풍을 심하게 맞았지만), 신해철은 야동을 히히덕거리며 보는 것을 숨기지 않는 그러나 똑똑하고 명석한 머리로 공부도 잘하는 왕수다쟁이 이웃집 형 혹은 오빠 같은 애티튜드를 견지했다. 그에겐 ‘마왕’이라는,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별칭처럼 ‘교주’스러운 카리스마도 있었지만, 동시에 겸손함과 솔직함도 지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황하면서도 논리정연하고 과격한 것 같지만 근거가 선명한 논지를 비속어를 동반하고 쉽고 재미있는 구어체로 풀어내는 수사학이 있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4-18 06: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1988년 MBC 대학가요제 참가번호 16번 무한궤도의 「그대에게」가 준 충격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당시 온 가족이 함께 보고 있었는데, 노래가 끝난 후 잠시 조용했었지요.. 한참 후 아버지께서 ˝이 노래는 대중성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벌써 30년 전이네요 ^^:)

bookholic 2018-04-19 15:10   좋아요 2 | URL
그러네요. 30년이 휙~~~
아버님께서 음악적 센스가...^^

2018-04-18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9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자본주의공화국 - 맥주 덕후 기자와 북한 전문 특파원, 스키니 진을 입은 북한을 가다!
다니엘 튜더.제임스 피어슨 지음, 전병근 옮김 / 비아북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은 얼마 전에 녹색평론에서 소개되어 알게 되었어. 그리고 아빠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책제목을 적어두었다가 이번에 읽었단다. 아빠가 딱히 이즈음 읽어야겠다고 한 것은 아닌데, 우연히 최근 남북관계가 급격하게 좋아져서, 책을 펴면서 이 책을 읽는 시기로 깔맞춤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단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북관계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일 년도 채 안되어 교류가 이렇게 활발해질 수 있다니대통령을 잘 뽑아놓으니, 세상도 금방금방 좋아지는구나.

물론 북한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이런 분위기가 일시적일 수도 있어. 하지만 남북관계라는 것이 1차 그래프처럼 쭉 좋아질 수는 없는 것이지. 서로 밀고 당기면서, 다차원 그래프처럼 점진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려가면 되지 않겠니. 언젠가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 느린 걸음이지만 조금씩조금씩 나아가야 한다고 아빠는 생각해.

...

북한우리와 아주 가깝지만,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 곳. 언론에 비친 단편적인 모습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고…. 두 명의 영국인이 직접 취재한 북한의 이야기. 책 제목을 보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조선자본주의공화국. 북한의 정식 명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패러디해서 지은 제목이잖아. 북한 안에서도 자본주의가 싹트고 있다는 내용이 중심내용이었단다.

 

1.

해방 이후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후 초반에는 성공의 길을 걸었어.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 컸던 것도 있지만, 북학은 소련과 중국의 삼각관계를 잘 이용했다고도 하는구나. 그리고 그 초반의 성공적인 길을 김일성의 공으로 돌려서 김일성 1인 권력을 완성해갔어. 그런데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 소련의 지원은 뚝 떨어지고, 때마침 권력을 이양 받은 김정일의 실정이 이어지면서, 1990년대는 식량배급제가 파탄이 나게 되었어. 거기에 자연도 안 도와줘서 대홍수까지 발생했어.

1994년부터 1998년까지 기근이나 자연재해로 200~300만의 북한 주민들이 죽었다고 해. 배급제가 없어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가야 했어. 그러다 보니 암시장이 생기게 되었고, 시장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지. 시장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자본주의의 싹이 튼다는 것이야. 가정을 지키던 여성들이 암시장을 만들었는데, 영세 사업도 하게 되었고, 이로써 독립하는 여성도 생겨났대. 이후 시장은 더욱 번창하게 되었어.

북한 정부도 가끔 단속을 하지만, 뇌물로 해결할 수 있어. 북한 사회에 시장은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구나. 그러다가 2009 11월 대대적인 화폐개혁이 있었대. 시장 거래의 부가가치를 떨어뜨리는 화폐개혁이었어. 정부에 대한 분노도 엄청 컸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일부 엘리트들은 북한 돈이 아닌 중국 위안화나 달러로 보유하고 있대. 요즘에는 일반 주민들도 중국 위안화를 보유하고, 북한의 원화에 대한 신뢰도는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북한의 원화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니 인플레이션이 심해져서 2013 9월 노동자 월급이 3000~4000원이었는데, 이 책을 쓰고 있을 당시(2015)에는 30만원까지 올랐대. 그리고 정부의 일을 하면서 받는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하고 금액이 적어서, 많은 사람들이 부업을 하고 있었대. 그 부업이라는 것이 결국 시장 활동을 통해서라는구나. 그렇게 생겨난 시장을 장마당이라고 해.. 주부들이 시장 상인으로 많이 일하고, 기본생필품이 주거래 품목이란다.

.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무려 3만여 명이나 된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탈북한 지 몰랐어. 북한 인구의 약 0.1%라고 하는데…. 이들은 우리나라나 중국 등지에서 일을 하게 될 거야. 그런데 그들이 번 돈을 다시 북한으로 보내기도 한다는구나. 아빠는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으로 돈이 엄청 들어간다고 하는구나. 중국과 북한의 북경을 중심으로 돈이 유입되고 있대.

.

그리고 알게 모르게 민영사업도 활발히 이루어져 있고, 고위인사들도 모두 자기 사업들을 하고 있대. 김씨 집안들의 사람들도 중국의 고급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는구나. 그리고 외국에 있는 한식 식당의 많이 보유하고 있대. 그러면서 평양에도 부를 과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들은 스마트폰과 명품을 가지고 다닌대.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평양과 맨해튼을 합성해서 평해튼이라고 부른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온 소식들이구나. 이처럼 북한에 대한 정보는 너무 적었던 거야.

 

2.

그렇게 돈이 생기다 보니 여가 생활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구나. 여가 생활의 대표적인 것이 아무래도 텔레비전이 아닐까? 하지만 북한의 텔레비전 채널은 그리 많지도 않고, 재미도 별로그러면 어떻게 하겠어? 재미있는 해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들을 볼 수만 있다면 보겠지. 그렇게 불법으로 해외 매체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대. 북한 대부분의 주민들이 본다고 생각하면 돼. 예전에는 DVD로 반입이 많이 되었는데, 최근에는 USB를 통해서 반입이 많이 된대. 아무래도 USB는 크기도 작고, 썼다 지우는 것도 되니 얼마나 편하겠니.

한국드라마, 한국영화, 그 밖에 외국 매체들을 많이 본다고 하는구나. 이런 것들이 탈북에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래. 그런데 한가지 문제점…. 인터넷이 특히 제한적이라는 거야. 한국 드라마나 외국 매체들을 접하는데 인터넷만큼 편한 게 없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USB를 통한 파일 공유가 엄청 활발하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USB는 인터넷을 대신한다고 할 수 있어.

북한에서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편이야. 음주가무는 아무래도 우리 민족의 본성인데, 그것을 억압한다고 어디 가겠니. 그러다 보니 밀주가 관행이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하는구나. 노래방 기계를 가지고 있는 가정도 꽤 있대. MP3 플레이어도 보급이 되어 외국음악도 많이 접하고 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가요를 많이 듣는다고 하는구나. 지난 달에 평양에서 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들이 있었는데, 관객들이 우리나라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다고 들었어. 이렇게라도 계속적인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

지난달 성공적으로 마친 평창올림픽에 북한에서 모란봉 악단이 와서 공연을 했었어. 그 악단의 악단장이 현송월이라는 사람인데, 이 책에서 현송월에 대한 이야기도 하더구나. 현송월은 김정은의 전 여친이었는데, 김정은의 부인 리선주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소문이 한동안 있었대. 그러다가 모란봉 악단의 단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고그리고 올해 평창 올림픽에 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까지 주고 갔어.

북한에서는 기본적으로 국내여행에도 불법이야. 전에 북한 작가 반디가 쓴 <고발>이라는 소설집에서 북한에서 여행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었지. 자신의 지역 밖을 나가는 것도 허가가 필요하니 여행은 언감생심이겠지. 그런데,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조금씩 바뀌기는 했대. 사업 때문에 가는 여행객은 허가가 쉬워서 여행객이 늘어나고 있대. 물론 뇌물이 작동해야 했지. 신흥 상업 계급들도 서서히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대. 그러서인지 평양에서도 교통 체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대그래.. 북한도 서서히 변해야지, 언제까지 멈춰 있을 거냐.

담배는 어떨까? 김정일은 담배를 그렇게 싫어했다는구나. 그래서 21세기 3대 바보들을 흡연자, 컴맹,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했다는구나. 그런데 김정은은 애연가라 하는구나. 아버지 말을 안 듣는 아들이었나 보구나.^^

 

3.

이 책에서는 북한의 자본주의에 의한 변화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력구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 이양이 될 때도 쉽게 넘어간 것은 아니래. 김정일이 권력을 잡는데 숙부 김영주가 큰 장애물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김정일이 끌어들인 인물이 매제 장성택이었어. 김정일의 두뇌 역할을 했다는구나.

그런데 김정은은 권력을 잡자마자 여러 인사들을 숙청했는데, 그 중에 장성택도 포함되었잖아. 장성택이 죽었을 때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대서특필했던 기억이 있구나. 그것은 김정은 혼자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지금 김정은은 혼자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아니래.. 정확히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지 말하기 어렵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김정은과 그의 친척, 조직지도부 고위 인사, 그리고 이들의 신임을 받는 군 고위 인사와 당관료. 이들의 연합체가 아닐까 추측을 하더구나.

======================================

(103)

사실 지금 현재 누가 북한을책임지고있는지는 말하기가 어렵다. 확실히 김정은 막강하다. 김씨 일가의 다른 개인도 힘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북한에서 절대적이지 않다. 그들 외에도 김정은의 부친 김정일이 구축한 막후의 권력 구조가 존재한다. 그런 구조 위에 김정은 자신도 제한된 권위를 물려받은 것이다. 이 권력 구조의 명칭은 조직지도부(OGD). 장성택의 처형을 김정은의 단독 결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조직지도부가 얻을 게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동시에 조직지도부는 일반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장도 없는 조직인 데다, 여기에 혼란을 더하는 점은 조직원 중 일부는 진짜 조직지도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

요즘 김정은이 국내외적으로 많이 얼굴을 비치고 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이유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

북한의 여러 정치 조직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국가안전보위부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대한 설명은 책의 내용으로 대신할게

======================================

(179)

국가안전보위부가 일단 당신을 소환하면 인생은 영원히 바뀌고 만다. 그 시점에 이르면 당신은 사실상 어떤 반국가 활동을 한 정치범으로 확정이 된 것이다. 기적적으로, 힘 있는 사람이 개입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당신은 약식 공개 재판에서 죄를자백하게 되고,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 그 후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가족도 따라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다. 결정은 국가안전보위부가 내린다. 적정한 혹은 투명한 법적 절차라는 것은 없다.

======================================

 

4.

북한 사람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장면을 텔레비전에 보면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북한에도 핸드폰이 있네이러면서 말이야. 하지만, 이미 1998년에 핸드폰을 사용했대. 그러다가 2004년에 금지를 시켰고그리고 2008년에 다시 이집트 통신사와 합작하여 고려링크라는 통신사업자를 만들었대. 200만 가입자가 있고, 이제 스마트폰도 많이들 사용한대. , 국제전화와 인터넷은 안 된다고 해.

하지만 국경 근처에서는 중국이동통신망을 이용해서 국제전화와 인터넷을 한다고 하는구나. 물론 불법이고 걸리면 뇌물로 해결하면 되고불법폰으로는 외국산 스마트폰보다는 삼성, LG 핸드폰을 선호한다고 하는구나. 한글로 되어 있어서

라디오 방송의 경우 남북한 모두 상대방 라디오 방송은 잡히지 않게끔 되어 있어. 하지만 북한의 장마당에서는 외국산 라디오가 거래되고 있대. 그리고 사업가들에게 라디오는 중요한 매체라고 하는구나. 국제 정세를 미리 파악해야 어떤 물건값에 영향을 주는지 파악할 수 있대.

, 그럼 북한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까?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된 것은 2015년이란다. 그때만 해도 남북 관계도 좋지 않고, 북미관계도 좋지 않던 시절이잖아. 그런데, 이 책의 지은이들은 비교적 정확한 예측을 하고 있더구나. 마치 2018년의 봄을 예견한 것 같았어.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지은이들은 북한은 점진적인 국가 개방을 할 것이라고 했어.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2017 8월에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지은이들의 예측이 희망 섞인 이야기라고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작년에는 남북관계가 무척 안 좋았으니까. 툭하면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려서 주변국들을 긴장하게 만들었잖아.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예측이 어쩌면 맞겠다 싶었어. 그것도 아주 가까운 미래에 말이야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북한을 오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구나.

======================================

(252~253)

동시에 북한이 처해 있는 보다 광범위한 지정학적 환경이 놀랄 만큼 잘 균형 잡혀 있다. ‘미치광이평양이 한국이나 심지어 미국에 핵공격을 벌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는 그런 자살 공격을 고려할 아무런 동기가 없다. 북한 지도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더구나 미국과 한국 역시 북한에 대한 공격을 자제할 분명한 동기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중국의 현상유지 지지다. 중국 정부는 최근 북한 정부를 불만스럽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북한을 한계점까지 몰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동안 수년간 계속된 제재에도 평양에 사치품이 넘쳐나고 나아가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단기 혹은 중기적으로 볼 때 북한에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는 현 정권 지배하에서의 점진적은 국가 개방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은 이윤을 추구하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봉건적이고 전통적인사회주의 낙원북한은 오래전부터 바깥세계를 놀라게 할 힘이 있었다. 앞으로 10~20년 후 북한이 어떤 모습일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때까지 우리는 당혹감과 희망이 뒤섞인 심정으로 계속 지켜볼 따름이다.

======================================







(21)
북한의 초반 성공에는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 옛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다. 냉전 시기 내내, 북학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양국을 영리하게 이간질해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사랑의 삼각관계’에서 교묘히 이득을 추구함으로써 고래들 사이의 새우 신세인 자신의 약점을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나중에 후대 정권이 중국과 미국의 우려를 활용해 이익을 취한 능력에서도 반복된 이 전략 덕분에 북한은 중소 양국으로부터 지속적인 구호를 얻어 낼 수 있었고, 이는 국민의 식량배급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북한 정부는 주민들이 이 모든 것을 김일성의 후덕함에서 나온 것으로 믿게 만들 수 있었다.

(72)
최근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시내에서 ‘태블릿 발견하기’ 놀이를 즐긴다. 북한 엘리트들 사이에서 중국에서 구입한 태블릿은 재미있는 장난감이자 신분의 상징이다. 이른바 평해튼의 젊은 거주자들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의 모바일 기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북한 정부도 개발에 착수해 독자 모델인 안드로이드 태블릿 삼지연을 생산했다. 하지만 삼지연은 진정한 북한산은 아니다.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이고 내부 회로는 중국 회사 예콘에서 가져왔다. 가격은 200달러인데, 평양 무역박람회에서 한 대를 구입한 소식통은 ‘앵그리 버드’와 PDF 파일 리더, 미리 내려받은 전자책 약간이 갖춰진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기능은 국제적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태블릿과 비슷한데, 한 가지만 예외다. 삼지연에서는 와이파이 기능이 없다. 와이파이는 북한 내부에서 전혀 쓸모가 없는 사양이기 때문이다.

(195)
김정은의 아니 리설주는 일종의 유행 선도자다 리설주의 스타일은 평양의 신흥 부유층 여성의 전형이면서 지나치게 현란하지는 않은 수준이다. 흥미롭게도 리설주는 가끔씩 공식 행사에서 김일성 배지를 달아야 할 자리에 브로치를 단다. 또한 바리 정장을 입고, 심지어 하이힐도 신는다. 하이힐은 북한에서 최근까지도 문란하다는 이미지를 주었지만 이제는 여성성을 나타낸다. 리설주는 최고 지도자의 부인인 데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있기 때문에 의상에 관한 한 젊은 여성들에게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 모란봉악단 역시 비슷하다. 김정은이 직접 창단한 것으로 알려진 악단의 단원이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건 주민들도 옷차림에서 덜 보수적이어도 된다는, 사실상의 청신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01)
북한 사람이 한국 사람을 멋있어 하고 따라 하고자 하는 모습은 상식적으로 반정부 행위로 여겨진다. 하지만 북한 사람도 한국 사람이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자기네보다 훨씬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논평가들은 북한이 개방을 하게 되면 북한 사람이 한국의 우월한 삶의 질에 대해 ‘알아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 정부로서는 경제개혁을 결코 추구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북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바로 북한 주민의 정권 전복 의지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북한 사람은 정권 전복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질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경제개혁과 개방을 추구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4)

나는 그가 좋았다.

SF, 판타지를 좋아한 대한민국의 음악 청년.

그의 집요한 광기와 좌충우돌의 불화,

어떨 땐 해학적이기까지 한 허세와 그 뒷면의 대책 없는 섬세함까지.

그는 대한민국의 1980년대가 분만한 가장 모순적인 열정을 지닌 청년이었다.

(18)

신해철에 관해서는 예술가로서의 삶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지점이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논리와 행동으로 참여한 논객, 혹은 행동주의자로서의 면모다.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개입은 저 멀리 식민지 시대 이후로 근대 한국에서 대중예술인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금기였다. 이들은 탈정치화의 영역에서 대중을 웃기고 울려 위안하는 대가로 인기와 부를 누리는 예외적 시민권자였다.

(26~27)

신해철은 짧다면 짧은 생애 내내 롤로코스터 같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지만, 스스로 확고한 원칙을 가진 사람이다. 그 원칙은 그가 음악만큼이나 열정을 가지고 추구한 인문학적 사유에서 비롯한다. 신해철은 쫌 놀아본 오빠의 미심쩍은 상담소같은 위악의 페르소나를 유쾌하게 연출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에도 언제나 본능적으로 약자의 입장에서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더듬이를 지녔다. 나는 그와 세 개의 트리뷰트(tribute, 헌정) 작업을 같이했다. 2001년 들국화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 200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트리뷰트 앨범과 공연,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2년 노무현 추모 앨범과 공연. 그중에서 사회적 반향이 상대적으로 가장 약했지만, 내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작업은 한국 문화사에 노동자 문학의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박노해 시인이 1984년 출간한 시집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 헌정 음반 프로젝트다.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이자 문학도였던 나와 내 동년배 사람들에게 <노동의 새벽>은 시인이자 혁명가를 자처한 박노해에 대한 입장 차이와 관계없이 충격적인 의미를 담은 예술적 사건이다. 나는 이 시집이 (출간되고 20년을 지나는 동안) 크고 작은 여러 이유로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더구나 <노동의 새벽>은 단일 시집으로는 가장 많은 작품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이기도 하다. 그래서 2004년 봄, 사상 최초로 시집 헌정 음반을 기획했다. 하지만 제작비도 충분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프로듀서가 없었다. 나는 2000년대라는 새로운 흐름에서 그저 운동권 가요의 동어반복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음악적 감각을 새로운 관점에서 부여하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따.

(43)

무한궤도’, 이 특이한 밴드 이름은 스무 살 음악청년의 터질 듯한 가슴에 담은 야망과 의지를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무한궤도는 산업혁명기 영국인 리처드 에지워스의 발명품으로 탱크나 불도저를 움직이는 캐터필러를 말한다. 즉 앞바퀴와 뒷바퀴를 연속적인 궤도를 연결하는 장치를 지칭한다. 무한궤도를 음악적 첫걸음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채택한 이유에 관해 그가 특별히 언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 네이밍에서 표명하려고 한 것은 아마도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만드는 밴드는 앞바퀴와 뒷바퀴, 그리고 가운데의 작은 바퀴들까지 모두 일체가 되어 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하모니를 일구어낼 것이며, 땅이 울퉁불퉁하거나 도저히 전진할 수 없는 고랑이 패어 있다고 해도 불굴의 의지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85)

신해철에게 밴드는 평생에 걸친 화두이자 천형(天刑)에 가까운 숙명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음악 친구들과 함께 밴드로 데뷔했으나 한 장의 앨범을 끝으로 솔로로 후퇴했다가, 많은 우려와 저지에도 불구하고 인기 가수의 길을 반납한 채 다시 밴드 맨의 삶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지지와 비난의 극단적인 소요를 불러오는 도화선이기도 했다.

(120)

신해철은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갈파하는 대신 그동안 수없이 불러온 사랑 노래의 문법을 계승해 표현함으로써 이 곡의 수용 범위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신해철은 당사자가 당하는 고통의 선연함을 놓치지 않았으며, 바로 이 선연함의 무늬가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매너리즘에 빠진 천편일률적 여타 발라드와 구별시킨다.

(123)

넥스트는 아직 대중적인 기반을 획득하지 못한 한국의 젊은 록 밴드들에게 하나의 이상이자 목표였고, 나아가 극복의 대상이었다. 적어도 넥스트가 이들에게 밴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은 분명하다. 사실 1970년대의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1980년대의 들국화를 제외하면 이 땅에서 록 밴드는 저주받은 존재나 다름없지 않은가?

(178)

계간지 <상상>에 실린 인터뷰에서 신해철은 연예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쾌감을 이렇게 밝혔다.

어차피 너희 연예인들은 인기가 없으며 죽는 것 아니냐. 저는 연예인이라는 말 자체를 소름 끼치도록 싫어해요. 인기를 먹고살던 시대도 있었겠죠. 그리고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면 상업적으로 음악을 판매할 수 있었던 시기 이전에는 예술이 없었는가 생각을 해보면,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원시인이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팔려고 그렸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인기 이전에 음악을 하자는 거죠.”

(180-181)

서태지와 비교할 때 신해철의 애티튜드는 더 확연히 구별된다. 서태지가 철저한 은둔주의 노선으로 일관했다면(바로 이 때문에 이지아 스캔들의 역풍을 심하게 맞았지만), 신해철은 야동을 히히덕거리며 보는 것을 숨기지 않는 그러나 똑똑하고 명석한 머리로 공부도 잘하는 왕수다쟁이 이웃집 형 혹은 오빠 같은 애티튜드를 견지했다. 그에겐 마왕이라는,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별칭처럼 교주스러운 카리스마도 있었지만, 동시에 겸손함과 솔직함도 지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황하면서도 논리정연하고 과격한 것 같지만 근거가 선명한 논지를 비속어를 동반하고 쉽고 재미있는 구어체로 풀어내는 수사학이 있었다.

(267-268)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합리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동안 이른바 스타를 향한 10대의 동경은 예술가로서 그들을 인정하는 차원보다는 보이프렌드 혹은 걸프렌드 대리 만족의 수준에 머무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데뷔해서 방송국을 들락거릴 무렵 선배들은 한결같이 이 판은 똑똑한 척하면 죽는다라고 충고해주었다. 다시 말해, 인간적인 허점을 보여야 대중이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조금씩이나마 퇴조하는 기미가 보이고, 아티스트가 자기 입장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것을 지지하는 대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대중 덕분에 지금 내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제 대중음악가도 어떻게든 대중에 영합하려 하기보다는 뚜렷한 자기주장을 펼쳐야 할 때라고 본다. 하지만 모든 측면이 낙관적이지는 않다. 거리의 패션만 봐도, 하나가 유행하면 자기 개성은 팽개치고 너도나도 그쪽으로 달려가지 않는가? 순응과 주입만을 가르치는 교육 제도가 존속하는 한, 주류 문화에 일방적으로 몸을 맡기는 문화적 획일성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이제 삶의 밟고 어두운 모든 면을 가리지 말고 가르쳐야 할 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빛 마신 소녀 - 2017년 뉴베리 수상작
켈리 반힐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소설은 겉표지가 예뻐서 눈 여겨 본 책이란다. 겉모습에 혹하면 안 되는데….^^ 아빠는 유달리 예쁜 책표지에 관심이 가더구나. 아빠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책 디자인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지^^ 그래서 알아본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원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하는데, 재미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읽는 아빠와 같은 어른이 읽어도 나쁘지 않아. 이 책은 너희들이 조금만 더 크면 읽어도 되겠다 싶더구나.

달빛 마신 소녀. 은유적인 표현인줄 알았는데, 소설 속 주인공이 실제로 달빛을 마시고 마법사가 되었단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그런 일이 일어난 다음에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해줄게.

1.

잰이라고 하는 마녀와 글럭이라고 하는 괴물과 피리언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용이 함께 살고 있는 숲이 있었어. 그리고 숲 한쪽 끝에는 보호령을 받는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 반대편 숲 끝에는 자유도시가 있었어. 그런데 언젠가부터 보호령 쪽 숲 속 빈터에 해마다 아기가 버려졌어. 잰은 그 불쌍한 아기를 데려다 숲 반대편의 자유도시에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부부에게 전해주었어. 그 날은 자유도시의 축제의 날이 되었단다. 그리고 그 아기들은 모두 자유도시에서 행복하게 잘 자라났단다.

올해도 잰은 버려진 아기를 데리고 가는데아기가 너무 예쁜 거라자유도시 가는 길을 자꾸 멀리서 돌아가고아기가 울면 별빛을 모아 먹이곤 했는데, 별빛을 먹인다는 것을 실수로 달빛을 먹이게 되었어. 어쩌면 고의였을지도 몰라^^ 달빛을 먹인 것이 왜 실수냐 하면 달빛을 먹게 되면 마법사가 되거든

아기가 마법사가 되어버려서, 자유도시에 데려다 주지 못하고, 잰이 직접 데리고 와서 키우게 되었어. 그리고 그 아기에게 루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괴물 글럭과 피리언도 루나를 무척 좋아했단다.

다섯 살이 된 루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법을 쓰게 되었어. 다섯 살인 아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 거야. 그리고 얼마나 천방지축인지는 아기를 키워본 부모라면 다 알 거야^^. 그렇다 보니 루나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게 자꾸 마법을 쓰게 되었어. 이에 잰은 루나의 마법을 몸 속에 가둬두었다가 루나가 13살이 되면 나올 수 있도록 마법을 썼어.

그런데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어. 그 마법으로 인해 잰의 마법은 점점 줄어들고, 결국 루나가 13살이 되면 잰은 죽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마법이었어. 그런데도 잰은 그런 마법을 썼어. 그만큼 루나를 사랑했던 것이지. 그 이후 루나는 평범한 소녀처럼 자라났단다. 부작용이 하나 있긴 했어. 루나의 기억력이 자꾸 왔다갔다는 하는 것이었어.  

2.

보호령 사람들은 장로들이 이끌어 갔는데, 그 중에 대장로는 걸랜드라는 사람이었고, 걸랜드는 조카인 앤테인을 처음으로 장로회에 포함시켰어. 앤테인은 견습장로가 되었지. 보호령 사람들은 해마다 숲 속의 마녀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쳤어. (아까 이야기했듯이 숲 속의 마녀는 아이를 버려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대부분 부모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앤테인이 처음 견습장로가 된 해의 제물로 바칠 아이의 부모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어. 어쩔 수 없이 장로들이 강제로 아이를 데려갔어. 앤테인도 따라 숲 속에 갔는데, 숲 속에 빈터에 아이를 그냥 두고 오는 것을 보고, 마녀가 오기 전에 짐승이 물어 가면 어쩌냐고, 마녀가 안전하게 데리고 가는 것을 확인하자고 가자고 이야기했다가 혼만 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어.

앤테인은 그 일이 마음 속에 남아서 불편하게 했어. 그래서 아이를 제물로 마치는 희생제 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계속 불참했단다. 그때 미친 듯이 울부짖었던 아이의 엄마는 결국 성에 갇혔어. 그 아이가 바로 잰이 데리고 간 루나였단다. 루나의 엄마가 갇힌 성은 수녀들이 살고 있는 성이기도 했어.

5 년이 지나고 앤테인은 루나의 엄마를 찾아갔어. 루나의 엄마는 어디서 났는지 귀한 종이로 종이 새를 잔뜩 만들었어. 그런데 그 종이 새들이 실제 날아와서 앤테인을 공격을 했고, 앤테인은 빰에 깊은 상처가 흉하게 났고, 이후에도 그 흉터는 지워지지 않았어. 앤테인은 더 이상 장로는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만두었어.

앤테인은 목공소를 차리고 목수로 일했어. 그는 목공에 소질이 있어서 크게 성공을 했단다. 그가 학교를 다닐 때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있었어. 이름은 에신이라고에신은 수녀가 된다고 성에 들어갔었는데, 자신 스스로 그만두고 성을 나왔고, 우연히 앤테인과 만나게 되었단다. 에신도 사실 앤테인을 좋아했었거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혼을 했단다.

앤테인은 장로를 그만두었지만, 여전히 숲 속에 빈터에 두고 아는 아기들에 대한 걱정을 했단다. 그래서 희생제날, 몰래 장로들을 뒤따라갔고, 남겨진 아기를 혼자 지켜보았어. 그리고 정말 늙은 마녀가 나타나서, 아기를 데려가는 것이었어. 그래 잰이었어.

잰이 버려졌다고 생각한 아기를 데려가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어떤 젊은 남자가 공격을 하는 것이야. 잰은 잰 나름대로 아기를 지켜야겠다고 그 젊은 남자의 공격하고 새로 변신하여 그 자리를 도망갔단다. 서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3.

루나는 점점 커가면서 마법이 조금씩 새어나왔어. 하지만 그것이 마법인 줄은 몰랐지. 루나는 지도를 그리는데, 자신이 가 본 자유도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보지 않은 숲 반대편도 지도를 그릴 수 있었던 것이야. 그곳을 꿈에서 봤거든

루나는 까마귀 알을 하나 부화하게 했어. 그래, 자신도 모르게 또 마법이 새어 나온 거야. 그 까마귀는 늘 루나의 곁에 있게 되었단다. 그 뿐만 아니라 루나는 까마귀의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어.  루나는 그런 것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한편, 아주 작은 용 피리언이 우연히 장화를 발견해서 그들이 자신 집에 갖다 놨어. 그런데 그 장화는 신비한 장화였어. 장화를 신으면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거든

루나가 점점 커가면서 잰은 자신이 점점 늙는 것을 알 수 있었어. 500년 동안 늙지 않았던 잰이 늙고 있었고, 마법을 쓸 때도 점점 힘에 붙였어. 그래서 잰은 루나의 곁을 떠나기로 했어. 루나에게 편지를 남겨두고루나가 그 편지를 보고 가만히 있겠니. 당연히 잰을 찾아 나섰지.. 잰을 따라 무작정 숲으로 가다가 땅 밑 어둠 속으로 떨어졌어. 루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글럭과 피리언도 루나를 찾아 길을 떠났단다.

4.

앤테인과 에신은 아이를 갖게 되었어. 출산일을 계산해보니 자신의 아이가 희생제의 제물로 바쳐야 했어. 엔테인은 걸랜드를 찾아가 해결책을 제시했어. 마녀를 공격해서 무찌를 수 있다고 했어. 걸랜드는 앤테인이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했어. 걸랜드는 앤테인을 막기 위해 원장 수녀 이그나시아 수녀를 찾아갔어. 그리고 앤테인의 계획을 막아 달라고 했어. 이그나시아 수녀는 그렇게 하기로 했어.

성에 갇힌 미친 여자, , 루나의 엄마. 미친 여자가 성을 탈출했어. 그리고 자신의 꿈에서 보았던 곳으로 갔어. 자신이 만든 종이 새를 타고 숲으로 날아갔어. 이 여자도 마녀냐고? 아니야.. 이 여자가 이야기하기를 광기와 마법은 비슷한 것이라고 했어. 그래서 광기도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미친 여자는 종이 새를 타고 숲으로 가서 루나가 머물렀던 집에 도착을 했어. 루나가 잰을 찾아 길을 떠났기 때문에 빈 집이었지. 그곳에 장화가 있길래 신었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그 장화 말이야.

.

잰은 생각해보니 아기를 찾으러 가는 날이 다가왔어. 그래서 아기를 찾으러 갔어. 마법을 써서 제비로 변해서 갔지. 제비로 변한 잰가는 길에 앤테인을 만났어. 앤테인도 숲 속의 빈터에 가는 길이었어. 마녀와 싸우기 위해서어떤 움직임이 있어서 마녀가 나타난 줄 알고 무기를 휘둘렀어. 확인해보니 작은 제비가 자신이 휘두른 무기에 날개를 다쳤어. 앤테인은 새를 치료해 주기 위해 자신의 품에 넣고 데리고 갔어. 그리고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랐어.

앤테인이 하는 혼잣말을 들은 잰…. 그제서야 보호령 사람들이 아기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잰은 제비에서 본 모습으로 변해서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잰은 마법이 점점 약해져서 본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었어. 답답한 마음에 부리로 계속 쪼기만 했어.

이그나시아 수녀는 앤테인을 찾기 위해 숲 속으로 향했어. 그러다가 숲 속에서 장화를 신은 미친 여자를 만났어. 이그나시아 수녀는 깜짝 놀랐어. 왜냐하면 미친 여자가 신고 있는 장화는 자기 것이었거든…. 미친 여자도 이그나시아 수녀를 알아보고 도망을 갔어. 뒤를 쫓는 이그나시아 수녀

이그나시아 수녀…. 그녀는 사실 마녀였어. 그런데 마녀의 신분을 속이고 수녀로 지내고 있었던 거야. 그것을 앤테인의 아내인 에신도 알고 있었어. 수녀 수업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 그런데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어.

이그나시아 수녀가 숲 속으로 가자, 에신은 성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수녀들에게 이그나시아 수녀의 정체를 알려주었어. 그리고 성을 떠나라고 했어. 보호령 마을은 늘 슬픔이 가득한 구름이 늘 떠 있었는데, 이그나시아 수녀가 숲으로 떠나자 그 구름이 싹 거쳤어마을 사람들도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시위를 하기 시작했어.

5.

다시 숲 속 상황을 보자꾸나. 루나는 마법의 힘이 점점 세어지고, 그 마법으로 할머니의 위치도 알게 되었어. 그곳에 갔더니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젊은 남자(그래, 앤테인이야.. )과 제비만 보였어. 앤테인은 루나를 보고 소녀로 변한 마녀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루나를 공격하려고 했어. 때마침 도착한 피리온과 글럭이 앤테인을 공격을 막아내서 루나는 안전할 수 있었어. 아주 작은 용이었던 피리온은 갑자기 몸이 커져서 지금은 글럭보다 더 덩치가 큰 용이 되었어.

루나는 마법을 써서 잰을 제모습으로 변신시켰어. 잰은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해서, 앤테인은 오해를 풀었어. 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미친 여자와 이그나시아 수녀가 차례로 나타났지. 미친 여자는 루나를 보자마자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루나도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알아챘단다.  그리고 잰은 이그나시아 수녀를 알아봤어.

이그나시아 수녀의 진짜 정체는 슬픔포식자였어. 사람들의 슬픔을 먹고 사는 마녀. 그래서 희생제를 만들어서 아기를 제물로 바치게 한 거야. 마을 사람들의 슬픔을 먹기 위해서 그리고 마음에도 언제나 슬픔이 가득한 구름이 떠 있게 했고오백 년 전 화산이 터졌을 때 다른 마법사들을 배신해서 마법사들을 죽게 하고, 그때 피리언의 엄마도 죽게 만든, 그야말로 나쁜 마녀였던 거야. 슬픔이 사라지자 아그나시아의 마법도 사라졌어. 그냥 늙은이에 불과했어.

다들 보호령 마을로 돌아왔어. 루나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어. 엄마는 이름도 잊어버렸는데, 루나가 찾아주었어. 엄마의 이름은 아다라였어.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 잰은 마지막 숨을 쉬고 세상을 떠났어. 글럭은 그 잰을 데리고 습지로 떠났단다. 아름다운 시 한편 남기고 말이야.

=======================================

심장은 별빛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바늘 같은 그리움은 어둠 속에 사라진다.

끊기지 않는 화음이 무한과 무한을 잇는다.

내 심장이 네 심장에 소원을 빌고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는 동안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동안 우주는 팽창한다.

그러는 동안 사랑의 신비가 드러나고

다시 또다시, 너의 신비 속에서.

나는 떠난다.

나는 돌아온다.

글럭

=======================================

그렇게 소설은 끝났어. 아름다운 영화를 한편 본 기분이었어. 하지만 아빠의 머리로 상상하는 영상은 부족했어. 나중에 어떤 영화감독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383-384)
"자. 지식이라는 게 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란다. 네 몸, 네 심장, 네 생각에서도 나오지. 가끔은 기억에 저 나름의 생각이 있을 때도 있어. 우리가 만든 공기방울이 꽃을 안전하게 지켜줬지. 생각나? 공기방울을 만들어. 공기방울 안에 또 방울을 만들고, 마법의 공기방울. 얼음의 공기방울. 유리와 철과 별빛의 공기방울. 습지의 공기방울. 중요한 건 재료가 아니라 의도란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하나씩 그려봐. 집 둘레에, 텃밭 둘레에, 나무 둘레에, 농장 둘레에. 마을 전체에 두르고, 자유도시의 마을들도 둘러. 공기방울과 공기방울과 공기방울들. 둘러싸. 지켜. 우리 셋이서 같이 네 마법을 쓸 거야. 눈을 감으면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 줄게."

(382)
엄마에게 마법이 있었다. 루나는 느낄 수 있었다. 루나의 마법과는 다른 종류였다. 루나의 마법은 뼈와 조직과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 있었다. 엄마의 마법은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바구니 안에 남아 있는 온갖 잡동사니 같았다. 달그락거리는 부스러기와 조각들. 그래도 루나는 엄마의 마법을 느꼈다. 엄마의 갈망과 사랑도.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그게 루나의 몸 안에서 솟구치는 힘을 더 대범하게 해 주었고 넘치는 마법의 길을 이끌어 주었다. 루나는 엄마의 손을 더 꼬옥 쥐었다.

(144)
"시인이 말하기를 조급함은 작은 존재의 것이다. 벼룩, 올챙이, 초파리 같은. 우리 루나는 초파리보다 훨씬 뛰어나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

경제학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끼는 방법에 대한 과학이라고 묘사되어 왔다. “사랑은 희소성이 있다는 것이 이 개념의 기본 전제다. 따라서 사랑은 아껴서 사용해야 하고, 불필요한 곳에 써 버려서는 안 된다. 사랑으로 사회를 움직이면 개인적인 삶에서 사용할 사랑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찾기 어렵고,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경제학자들은 사회를 조직하는 데 사랑 말고 다른 것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8)

시장이라는 기계는 사람들의 평범하고 기본적인 감정 같이 단순한 것을 가지고 세계 평화와 모든 이의 행복을 창조해 내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따라서 모두가 이 이야기에 매혹된 것도 놀랍지 않다. 착취를 개인적 악감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급 7000원을 받으며 등골이 휘게 일하는 여성도 사악한 누군가가 강요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책임져야 할 사람도 없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 그리고 경제학은 피할 길이 없어. 우리의 본성에 있으니까. 사실 그게 우리의 본질이야.

우리는 모두 경제적 인간이니까.

(53)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은 1950년대 들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카고대 경제학과 소속의 남성 몇 명이 인간의 모든 행위를 경제학 모델을 이용해 분석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합리적 개인은 상여금을 놓고 남들과 경쟁하고 자동차 구매 시 더 좋은 조건을 취하려고 흥정을 벌일 뿐 아니라, 소파 뒤까지 청소하고, 빨래를 널고, 자녀를 낳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59)

결혼한 여성이 퇴근하면 무엇을 하는가? 부엌을 치우고 다림질을 하고 아이들의 숙제를 돕는다. 결혼한 남성이 퇴근하면 무엇을 하는가? 신문을 보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깐씩 아이들과 놀아 줄 것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여가 시간을 집안일에 많이 쓰고,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피곤해진다. 베커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여성에게 더 낮은 보수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부엌을 치우느라 여성은 남성보다 더 피곤하다. 따라서 근무 시간에 남성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커의 생각이었다.

동시에 경제학자들은 이와 정반대의 설명도 내놓았다.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그들의 수입이 더 낮기 때문이다. 여성의 수입이 더 낮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이 가족 전체로 볼 때 손해가 덜하다는 설명이다.

(86)

경제학자들은 자기들이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원인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들에 대한 비판은 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샅샅이 연구하면 진실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모든 것이 경제적 인간이라는 진실 말이다.

(130)

금융계의 혁신은 항상 시간과 돈 사이의 관계를 다양하게 변화시키고 이용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 왔다. 사실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이 금융에 회의적이었던 것도 바로 금융이 시간을 가지고 장난친다는 점 때문이었다. 시간은 신에게 속한 것이고 신만이 관장할 수 있는 영역이다. 성경에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을 시간을 파는 행위라고 봤다. 고리대금업자는 돈을 빌려줌으로써 그 사람이 내년이 되기 전에는 살 수 없을 물건을 오늘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빌린 돈에 대한 이자는 대출을 받을 시점과 내년 사이에 경과하는 시간의 값이다.

(152)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루커스가 여왕의 질문(“왜 아무도 이런 일이 생실 줄 몰랐나요?”)에 대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경제학자들이 위기를 예측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애초에 이런 일은 예측할 수 없다고 예측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185)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게 하려 평생을 싸웠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돈이나 선의 중 한 가지 요인만이 동기가 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게다가 이 개념은 성별에 관해 우리가 가진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성은 자기 이익 추구라는 본능에 의해 나아가고 여성은 전체적인 그림을 조화롭게 만다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204)

1970, 미국의 한 CEO는 근로자 보수의 30배 정도를 벌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이 숫자는 500배가 되었다. 유명한 금융가 J.P. 모건은 미국 기업의 CEO는 평직원 월급의 20배가 넘는 보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07년에는 그 격차가 364배로 벌어졌다. 그리고 미국을 모방삼아 서구 사회에서 CEO 의 보수가 전반적으로 늘어났다. 영국에서는 2002년에서 2012년까지 CEO들의 보수가 3배 증가했다. FTSE 100대 기업의 CEO와 평직원 평균 보수 격차는 1998 45배이던 것이 2010 120배로 벌어졌다.

(216)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민으로서의 인간과 경제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구분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람 사이에는 오직 한 가지 관계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경제적 관계다. 다시 말하면 시민과 노동자와 소비자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모두 동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경제적 인간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220)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자본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노동과 자본 사이의 갈등을 간단히 해결한다. , 인간의 삶을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투자 행위로 보는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빵 한 쪽과 생선 한 마리로 신도들을 먹이는 것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누구나 먹고살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당신의 능력을 믿는다. 험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그리고 우주가 우리에게 경의를 표한다.

(282)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존한 채 살아가고, 따라서 사회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우리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든 상관없이 우리는 항상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이야기할 매체가 필요하다.

현재의 경제학에 인류의 현실적인 경험을 위한 자리는 없다. 주류 경제학 이론은 허구의 인물,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인물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286-7)

우리의 관계는 경쟁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 자연을 적대적인 상대로 간주할 필요도 없다. 모든 부분을 합친 것보다 전체가 더 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은 기계 혹은 정교한 기계적 움직임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경제적 인간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헛되다 느낄 수 있는 상황은 많지만 이 문제만큼은 헛되다 외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정의 목표는 바뀔 수 있다. 세상을 소유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편안하게 살려고 애쓰는 여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298-9)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신시켜야 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임무다. 페미니즘의 관점은 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혜택, 환경, 그리고 노령화 사회가 곧 직면하게 될 돌봄 인력의 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깊은 관련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이상의 훨씬 큰 문제에 관한 것이다. 현재까지는 페미니즘 혁명의 절반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성들을 더해서는 젓는 것까지는 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이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깨닫고, 그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 경제, 정치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을 해내는 것이다. 경제적 인간을 단상에서 내려오게 해서 작별을 고하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경제와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